HOME ㅣ 로그인 ㅣ 회원가입 ㅣ 최근게시물 ㅣ 사이트맵  
ID저장
회원가입 ㅣ ID/비밀번호찾기
교회비젼소개
동경만나비젼
선교사소개
예배안내
주일말씀
주일말씀
   홈 >  주일말씀
 
작성일 : 14-01-26 09:51
2014년 1월 26일 네번째주일
 글쓴이 : 동경만나교…
조회 : 3,751   추천 : 0  
본문 : [창세기 3:16-19]
제목 : 나의 치료자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神は女に向かって言われた.「お前のはらみの苦しみを大きなものにする.お前は,苦しんで子を産む.お前は男を求め彼はお前を支配する./ 神はアダムに向かって言われた.「お前は女の聲に從い/取って食べるなと命じた木から食べた.お前のゆえに,土は呪われるものとなった.お前は,生涯食べ物を得ようと苦しむ./ お前に對して土は茨とあざみを生えいでさせる野の草を食べようとするお前に./ お前は顔に汗を流してパンを得る土に返るときまで.お前がそこから取られた土に.塵にすぎないお前は塵に返る.]

모든 인간에게는 상처가 있습니다. 외형의 상처가 아니라 마음속에 있는 상처입니다.
이 마음속에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단지 그 상처의 모양이나 크기가 다를 뿐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상처를 잊고 살아가고, 어떤 사람은 상처속에서 아픔과 고통가운데 인생을 살아가는 것일까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 아닙니다.
상처는 그대로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치료받아야 하는 것입니까?
상처는 치료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속의 상처든지, 외형의 상처든지 치료하지 않으면 자연히 치유되지 않습니다.

옛말에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말이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가면 잊어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정말 그렇습니까? 시간이 오래 지나갔다고 해서 과거에 받았던 마음의 아픔이 모두 치료되었습니까? 그래서 이제는 과거의 그 사건, 과거의 그 어떤 아픔을 이야기해도 아무렇지도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치료하지 않으면,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깨끗하게 치료했다고 해도, 그 상처가 치료받은 흔적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입니다. 없던 일이 아니라 있었던 일이었기 때문에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치료받게 되면, 그것이 더 이상 나에게 아프게 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최초에 창조된 인간은 상처를 입지 않은 상태로 창조되었습니다. 인간의 본래모습은 상처가 없는 건강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면, 최초의 인간에게 주어진 최초의 상처는 무엇일까요? 궁금하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말씀에 보니,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에바가 하나님이 금지한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서 먹는 불순종의 죄로 인하여 인간에게 무거운 징벌이 내려집니다. 그러나, 범죄한 인간에게 하나님이 내리신 징벌이 실제의 상처는 아닙니다. 이것은 상처의 동기가 될 뿐입니다.

친구가 나쁜 일을 같이 저지르자고 유혹했습니다. 그래서 친구와 함께 나쁜 일을 저지르다가 경찰에 붙잡혀서 형무소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을 붙잡은 경찰이 미운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을 유혹해서 죄를 저지르도록 한 나쁜 친구가 미운 것입니다.

최초의 남자 아담의 상처는 바로 에바 때문이었습니다. 아내인 에바가 자신을 유혹해서 불순종의 죄를 저지르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 죄의 댓가로 아담은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살기 좋은 집, 일하지 않아도 먹고 살수 있었던 에덴동산에서 쫒겨나야 했습니다. 추위와 더위가 괴롭히는 세상속에 던져졌습니다.

자신의 죄로 땅도 저주받았으며, 땅은 에덴동산에서처럼 자연스럽게 가장 맛있는 과일과 야채를 내어 주지 않고, 열심히 땀을 흘려 땅을 갈고 일해야만 일한 만큼의 야채와 과일을 내어주었기에 힘들게 일을 할 때마다 아담은 에바 때문이라고 하는 상처가 가슴속에 깊이 남아있었습니다.

그러나, 상처받은 사람이 아담뿐입니까? 아니지요. 사실은 아내 에바도 상처받았습니다. 비록 자신이 뱀의 유혹에 빠져서 자신과 남편까지 하나님께 불순종하게 했지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첫째는 사탄이 이용한 뱀의 간교함에 속은 것이 이유지만, 따지고보면, 지배하고 다스려야 하는 뱀의 말을 들었던 자신의 실수이기 때문에 뱀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전적으로 자신의 잘못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누구 때문일까요? 에바는 남편 아담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요?

남편인 아담이 자신이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어서는 절대 안된다.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확실하게 가르쳐 주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명령을 직접 받은 것은 분명히 남편인 아담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담은 자신에게 정확하게 하나님의 명령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창세기 2:16-18절 말씀이 증거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主なる神は人に命じて言われた.「園のすべての木から取って食べなさい./ ただし,善惡の知識の木からは,決して 食べてはならない.食べると必ず死んでしまう.」/ 主なる神は言われた.「人が獨りでいるのは良くない.彼に合う助ける者を造ろう.」]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아담이 자신에게 정확하게 가르쳐 주지 않아서, 자신이 뱀과 이야기할 때, 자신있게 말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창세기 3:1-3절을 보겠습니다.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主なる神が造られた野の生き物のうちで,最も賢いのは蛇であった. 蛇は女に言った.「園のどの木からも食べてはいけない,などと神は言われたのか.」/ 女は蛇に答えた.「わたしたちは園の木の果實を食べてもよいのです./ でも,園の中央に生えている木の果實だけは,食べてはいけない,觸れてもいけない,死んではいけないから,と神樣はおっしゃいました.」]

그래서 에바는 하나님께 받은 이 출산의 고통의 아픔은 모두 남편 아담 때문이라고 생각하였으며, 아이를 낳는 고통을 받을 때마다 남편인 아담을 미워하게 되었을 겁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교훈을 배워야 합니다.
첫 번째 교훈은, 우리의 상처가 누구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내가 치유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의사와 훌륭한 병원이 있어도, 병을 가진 사람이 치료받기를 거절하면 절대로 치료될 수 없습니다. 아담과 에바는 하나님께 죄를 회개하고 모두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서로에게 그 죄를 전가하여 결국 아무도 용서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만약, 아담이 하나님께 에바의 잘못을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에바에게 확실하게 교육시키지 못한 때문이라고 회개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하나님은 아담에게 다음부터 잘 하라고 하시고 용서하시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아담만 열심히 일을 하는 징벌을 주시고, 에바에게는 아무 징벌도 주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에바는 미안해서 더 아담을 사랑했을 것이며, 아담은 에바의 사랑으로 위로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치는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도, 에바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아담과 에바의 상처, 즉 서로를 미워하고 서로에게 잘못을 떠맡기는 이 일은 이 두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치유되지 않은 비극은 더욱 커졌으며, 극적으로 달려갑니다.

창세기 4:3-8절을 보겠습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時を經て,カインは土の實りを主のもとに獻げ物として持って來た./ アベルは羊の群れの中から肥えた初子を持って來た.主はアベルとその獻げ物に目を留められたが,/ カインとその獻げ物には目を留められなかった.カインは激しく怒って顔を伏せた./ 主はカインに言われた.「どうして怒るのか.どうして顔を伏せるのか./ もしお前が正しいのなら,顔を 上げられるはずではないか.正しくないなら,罪は戶口で待ち伏せており,お前を求める.お前はそれを支配せねばならない.」/ カインが弟アベルに言葉をかけ,二人が野原に着いたとき,カインは弟アベルを襲って殺した.]

아담과 에바가 서로를 미워하는 가운데 가인과 아벨이라고 하는 아들들이 태어났습니다. 그러자 마음 속 깊은 곳에 남아있는 상처를 치료하지 않았는 아담과 에바는 마찬가지로 가인과 아벨에게도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교육을 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보니, 가인과 아벨의 제사모습이 다릅니다.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カインは土の實りを主のもとに獻げ物として持って來た./ アベル は羊の群れの中から肥えた初子を持って來た)

두 사람의 제사의 차이는 ‘구별’이라는 것입니다. 구별은 마음의 정성입니다. 신명기 6:5절 말씀은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あなたは心を盡くし,魂を盡くし,力を盡くして,あなたの神,主を愛しなさい.) 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신실하게, 정성껏 하나님께 드릴 제물을 구별했던 동생 아벨의 제사만 하나님은 받으셨습니다. 가인도 분명히 그렇게 제사하면 안되는 것을 알았기에 자신의 잘못으로 하나님이 자기가 드린 제물을 받지 않으셨지만, 가인은 무척 화가 났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상처의 분노를 역시 가장 가깝게 있으며, 또한 자신보다 약한 사람인 동생 아벨을 향하여 표현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아담과 에바의 상처에서 시작된 첫 번째 살인사건이며, 첫 번째 가족살인사건이며, 첫 번째 상처가 가족에게 표출된 사건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상처받은 사람은 자신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 특히 가장 가까이 있는 가족들에게 그 상처를 옮겨주고, 더욱 고통을 당한다는 것을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두 번째 교훈은, 치료되지 않은 상처의 분노는 내 가장 가까운 사람을 아프게 합니다.
아담과 에바가 가인과 아벨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과 믿음을 잘 교육했다면, 가인이 그렇게 제사를 가볍게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자신의 실수를 잘못했다고 회개하고 고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인 아담과 에바가 그랬던 것처럼, 회개하지 않고, 그 책임을 동생때문인 것처럼 동생에게 그 분노를 발출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상처와 아픔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변함이 없습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あなたがあなたの神,主の御聲によく聞き從い,今日わたしが命じる 戒めをことごとく忠實に守るなら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고, 행하는 것입니다.(主の御聲によく聞き從い忠實に守る)
그런데 아담도, 에바도, 가인도,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기억하여 지키지 않아, 이런 엄청난 가족의 상처가 탄생한 것입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창세기 4:25-26절 말씀입니다.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再び,アダムは妻を知った.彼女は男の子を産み,セトと名付けた.カインがアベルを殺したので,神が彼に代わる子を授けられたからである./ セトにも男の子が生まれた.彼はその子をエノシュと名付けた.主の御名を呼び始めたのは,この時代のことである.)

장남인 가인의 죄로 죽은 둘째아들 아벨을 대신하여 상처입은 아담과 에바에게 하나님은 ‘셋’이라고 하는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셋’이 ‘에노스’라는 아들을 낳고 ‘에노스’ 때부터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는 기록입니다.

결국, 창세의 시대에 인간은 범죄함으로 서로를 미워하며 상처속에서 살았지만,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시작되기 전, 즉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기 전까지 아담과 에바, 그리고 가인의 상처는 계속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날의 우리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누구의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가르치지 않아 일어난 일을 아내의 탓으로만 돌리고 있는 아담의 상처입은 모습입니까?
아니면, 자신이 범죄하고, 남편을 미워하는 에바의 상처입은 모습입니까?
아니면, 그 부모의 상처를 이어 받아, 자신이 하나님께 올바로 예배하지 않고 있기에 받지 못한 축복을 동생의 탓으로 여기어, 동생을 죽인 가인의 상처입은 모습입니까?

인간에게는 이 세 사람의 상처가 어떤 모양으로든지 유전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해결책은 에노스에게 있었습니다.

아담의 손자인 에노스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할 때에, 성경은 아담의 시대와 상처를 더 이상 기록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오늘 우리가 신명기 6:5절 말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心を盡くし,魂を盡くし,力を盡くして,神,主を愛しなさい.)처럼, 나에게서 하나님을 향한 올바른 예배와 믿음으로 내 조상때부터의 모든 상처, 그리고 나의 가족들에게 있는 모든 상처, 내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내 안의 쓰고 쓴 상처의 뿌리를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치료받아야 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Address : 〒124-0005) 東京都葛飾区宝町1-3-15
Copyright ⓒ 2008 동경만나교회. All rights reserved. E-mail. jmcc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