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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12-13 15:59
2010년 12월 12일 동경만나주일말씀 (감사-5- 고난속에 숨겨진 감사)
 글쓴이 : 동경만나교…
조회 : 4,636   추천 : 0  
2010년 12월12일 주일예배
『감사 -5- 고난속에 숨겨진 감사』
본문 : 시편 119:71-72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좋으니이다.”
[卑しめられたのはわたしのために良いことでした.わたしはあなたの¿を學ぶようになりました.
あなたの口から出る律法はわたしにとって/幾千の金銀にまさる惠みです.]

고난과 감사의 숨겨진 비밀을 성경말씀을 통하여 알아내고 우리의 고난도 감사로 바꿀수 있는 시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아멘.

먼저 우리가 이 비밀, 고난속에 숨겨진 감사를 찾아내어 내것으로 삼기 위하여 오늘 우리는 세가지를 알아야 합니다.

첫째는, 고난의 시작을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지금 나의 이 고난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 를 알고 있나요?
많은 사람들이 고난의 근본도 모르고 힘들어하고, 괴로워합니다. 어디에서 시작된 고난일까요? 이 고난이 나의 잘못에서 온 것이라면, 당연히 고난을 받고 그 댓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러나 이 고난이 나의 잘못과 관계없이 온 것이라면, 그 고난에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의미가 있는 고난은 고난으로 변장한 축복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수많은 신앙의 인물들이 그렇게 축복을 가장한 고난이라는 테스트를 이겨내고 축복의 면류관을 쓸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사랑하시고, 축복하시기 원하시지만, 고난을 두려워하고, 고난받지 않은 사람에게 동일한 복을 주시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의미있는 고난은 하나님의 영광이며, 예수그리스도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이 쓰실수 있는 일꾼을 선택하실 때 하나님은 고난으로 테스트 하셨습니다. 오래전에는 욥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이유없는 고난을 이겨내고, 하나님께 고난받기 전보다 큰 축복을 받게 되었으며,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이 이유없는 고난의 길을 순종하고 떠났을때에 그와 그의 자손이 축복의 사람들로 성경에 기록되어 남게 된 것입니다.

모세는 태어나면서부터 고난받을 사람으로 정해졌지만, 그가 40세부터 80세까지 40년을 애굽의 왕자라는 신분에서 살인자요, 도망자의 신분으로 양을 치며 고난 받았지만, 결국 그 고난을 묵묵히 순종하며 부귀영화를 포기했던 애굽의 왕자는 이스라엘민족 수백만명을 포로에서 해방시키는 구원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고난받는 분이 있습니까?
그 고난의 이유를 모르겠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이유있는, 의미있는, 사명있는 고난일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고난은 고난이 아니요, 축복을 위장한 고난이라는 이름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단  두절 기록되어 있는 한 남자를 여러분들에게 소개하고 싶습니다.
그의 이름은 야베스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야베스의 기도는 고난가운데 하나님께 기도하여 축복받은 대표적인 축복의 기도로 오늘날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 야베스라는 사람은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축복의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야베스라는 이름의 뜻은 고통과 고난이라는 뜻입니다. 그의 어머니가 아들을 낳을때에 고통, 고난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이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고통과 고난을 갖고 태어난 불행하고 저주받은 아이였습니다.

얼마나 힘들고, 얼마나 괴로웠던지 어느날, 고난의 사람 야베스가 하나님께 솔직하게 기도합니다. 그 기도의 내용이 바로 역대상 4장 9-10절의 말씀입니다.

歷代上 4:9-10 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태어날때부터 이유없이 고난과 고통의 사람이었던 고통의 운명이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이 그를 고난의 사람에서 축복의 사람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이 야베스의 이야기를 연구하면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왜 우리들이 고난가운데서 야베스처럼 축복으로 바꾸고 살지 못할까? 왜 그럴까요?
단 한가지가 야베스와 우리들이 다른 점이라는 것을 알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는 고난가운데서도 죽어도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야베스는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너무나 자신의 인생이 힘들고 고난의 연속이어서 기도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의 선택을 들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야베스는 고난에서 감사로 인생전환을 할수 있었습니다.

고난의 시작을 알았습니까? 이제 이 고난의 의미를 알았다면, 고난을 감사로 바꿀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기도입니다.

보석이 있는 장소를 찾아가는 길을 알았는데, 모르는 길로 돌아간다면 얼마나 우둔한 사람입니까? 고난을 감사와 축복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알았는데 행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바보같은 사람입니까? 만약 제가 여러분에게 만엔을 주고 만엔만큼 기도해 주세요. 라고 한다면, 기도해 주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나요? 하물며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를 듣고 고난을 감사로 바꾸어 주신다고 하시는데, 왜 기도하지 않는 것일까요?

저는 참으로 미스테리입니다. 하나님은 믿는데 하나님에게 기도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신사에 가서 기도하는 사람보다 더 나은 점이 무엇입니까?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면서 구원받은 은혜가 기도하지 않는 생활이라면, 누가 우리를 천국갈 사람으로 인정하겠습니까?

오늘부터 기도하는 습관을 가집시다. 정 어려우면, 식사할 때 식사기도라도 좀 오래합시다. 식사기도를 2분씩만 하면, 하루에 기도 6분 정도 하는 사람이 됩니다. 153운동 아시죠? 내년에 다시 시작하고 싶습니다. 하루에 5분기도, 3장 성경읽기 운동입니다.
첫 번째 키워드는 기도입니다.


둘째는, 고난의 과정을 정확하게 느껴야 합니다.
내가 지금 고난의 과정가운데 있다. 어디만큼 와 있나? 나의 고난의 여행은 지금 어디쯤일까? 나는 앞으로 얼마나 더 고난의 시간을 이겨내면 되는가? 알아야 합니다.

시편 119:67 말씀을 읽겠습니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제가 아는 어떤 목사님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이분은 용인에서 기도원을 운영하시는 기도원의 최목사님입니다. 최목사님은 제가 참 존경하는 분입니다. 제가 아는 어느 목사님보다도 선교에 헌신적이시며, 선교사님들을 귀하게 섬기는 분입니다. 제가 한번은 일본선교사로 나온후, 처음으로 한국에 들어가서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목사님은 저를 차에 태워서 시내에 있는 의류쇼핑센타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겨울잠바와 속옷, 양말까지 우리 가족이 몇 달을 입을수 있는 옷을 한가방을 사주셨습니다.

그런데 계산할 때 보니까, 이 분이 돈이 있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장 기도원 전기세를 낼 돈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외국에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가 왔다고 최선의 헌신을 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이 최목사님에게 감동받은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중의 하나인 타지키스탄이라는 나라가 있습니다. 이 나라는 600만명의 인구중에 200만명이 다른 나라로 돈을 벌러 나가있어, 국내 전 인구는 약 400만명이 살고 있습니다. 400만명중에 399만명이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이고, 1만명이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인입니다. 그래서 이 타지키스탄에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가족과 인연을 끊어야 하며, 마을에서 이지메를 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과격파 무슬림들에게 생명을 위협받는 공격을 받기도 하는 상황입니다. 실제로 2000년 10월1일 예배중에 폭탄테러를 당하여 성도들 10명이 그자리에서 순교했고, 수십명의 성도들이 중화상을 입은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 타지키스탄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님을 후원하는 기도원의 목사님이 어느 해, 너무나 어려운 사역을 하는 타지키스탄 선교사님을 위로하기 위하여 선교여행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당장 월말에 1억5천만원을 갚아야 하는 상황에서 목사님은 다시 은행을 찾아가서 4천만원을 빌렸습니다. 그래서 4천만원을 가지고 타지키스탄의 선교사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선교사님 앞에 4천만원이 들어있는 봉투를 내려 놓고 무릎을 꿇고 앉았습니다. 선교사님, 저를 위해 축복기도를 해 주십시오.

그러자, 타지키스탄 선교사님이 기도는 안해주고,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러더니 작은 방에가서 작은 봉투하나를 가지고 와서 마찬가지로 무릎을 꿇고 앉아서 저를 위해 축복기도를 해 주십시오. 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봉투를 하나씩 주고, 서로를 위해 눈물로 축복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서로에게 건네 준 봉투를 열어보았습니다.

선교사님이 받은 봉투에는 기도원의 목사님이 은행에서 빌려온 4천만원을 미국달러로 환전한 돈이 들어있었습니다. 이 4천만원은 기도원 목사님이 한국으로 돌아가서 당장 월말까지 갚아야 하는 1억 9천만원의 일부였습니다.

그리고 선교사님이 건네 준 봉투를 열자, 봉투 안에서는 도장과 은행통장, 그리고 비밀번호를 적은 작은 쪽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선교사님은 이 은행에 있는 돈은 한국에 나올때마다 한국에서 만난 후원자들이 선교사님  식사하세요. 라고 준 식사비와 뒷굽이 떨어진 구두를 보고 새구두를 사서 신으라고 준 돈, 그리고 미국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는 선교사님의 딸을 위해 사용하라고 준 용돈들을 지난 10년동안 한국에서 떠날 때마다 공항에 있는 은행에 예금했던 돈인데, 이번에 힘들고 어려울 때, 타지키스탄을 위해 기도하고 선교여행을 오는 첫 번째 분에게 헌금하려고 금식기도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기도의 응답이 바로 1억5천만원을 빚지고, 다시 선교사를 위해 4천만원을 빚을 내어 중앙아시아의 가난한 선교지 타지키스탄을 찾아온 이 목사님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깜짝 놀란 사건이 있습니다 .
한국에서 온 최목사님이 한국으로 돌아가면 당장 갚아야 하는 빚이 모두 얼마입니까? 원래 있는 빚 1억5천만원에 다시 선교비로 4천만원을 빌려서 1억 9천만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선교사님 헌금해 준 통장에 들어있는 금액이 2억1천만원이었습니다.

기도원의 목사님은 그 통장을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모두 찾았습니다. 그리고 2천만원은 먼저 십일조로 드리고 남은 1억 9천만원을 은행에 모두 갚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목사님은 눈물로 간증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10년동안 테스트하시면서 10년동안 오늘을 준비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최목사님은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수년동안을 많은 선교사님들을 후원하고, 많은 분들을 돕는 귀한 사역을 하는데도 기도원은 전기세를 내지 못할정도로 힘들고, 빚쟁이들에게 쫒기는 어려운 일들을 겪었지만, 물에 빠진 사람이 가만히 바닥에 발이 닿을때까지 기다렸다가 바닥을 치고 올라와야 물밖으로 나올수 있는 것입니다. 아직 하나님의 시간이 남았습니다. 라고 말입니다.

여러분, 지금 너무나 힘들어서 바닥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렇게 생각해보세요.
아직은 바닥이 아니다.
조금만 더 내려가야 바닥을 차고 올라갈 수 있다. 라고 말입니다.

내가 받는 이 고난이 나를 사용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시라면, 우리는 아직 조금더 기다릴 수 있지 않습니까? 조금 더 인내할 수 있지 않을까요?

시편 34:19-20 말씀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그의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 중에서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

두 번째 키워드는 바로 인내입니다.

셋째는, 고난속에서 감사를 찾아내어야 합니다.

여러분, 성경에 나오는 인물가운데 인간으로 가장 고통스러운 고난을 당한 사람이 누굴까요? 네 바로 욥기에 나오는 욥이라는 사람입니다. 욥은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는데 사단의 시험으로 인하여,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테스트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이 테스트가 너무나 혹독합니다.
인간으로서 견딜수 없는 고난의 연속입니다.

ヨブ記 13-19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하루는 욥의 자녀들이 그 맏아들의 집에서 음식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실 때에, 사환이 욥에게 와서 아뢰되 소는 밭을 갈고 나귀는 그 곁에서 풀을 먹는데, 스바 사람이 갑자기 이르러 그것들을 빼앗고 칼로 종들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하나님의 불이 하늘에서 떨어져서 양과 종들을 살라 버렸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갈대아 사람이 세 무리를 지어 갑자기 낙타에게 달려들어 그것을 빼앗으며 칼로 종들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주인의 자녀들이 그들의 맏아들의 집에서 음식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시는데, 거친 들에서 큰 바람이 와서 집 네 모퉁이를 치매 그 청년들 위에 무너지므로 그들이 죽었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한지라.”

말할수 없을 정도의 고난이 줄지어 닥쳐왔습니다.
이정도로 고난이 닥친 사람이면, 하나님을 원망해도 아무도 뭐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20절부터 22절을 보십시오. 욥은 절대로 하나님께 죄를 짓지 않습니다.

(20)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우리는 이 말씀에서 정말 하늘이 내린 부자는 다르구나.
이정도 신앙은 되어야 하나님이 재물을 맡기시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욥도 사람입니다. 아프면 아픔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욥은 진리를 알고 있었습니다. 어떤 진리일까요? 하나님이 주신 것은 언제나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이 맡겨놓으신 것은 언제든지 다시 찾아가실수 있다. 라는 진리입니다.

욥은 언제나 이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놀라운 고난이 닥쳐 왔음에도, 하나님의 것을 되찾아 가신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들도 지금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이요. 빌려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잘 관리하는 관리인입니다. 나의 생명도, 나의 능력도, 나의 가족도, 나의 자녀들도 모두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하나님이 필요하시면, 그때 그때 사용하실수 있도록 돌려드려야 합니다.

한번 다같이 외쳐볼까요?

“나의 생명도, 나의 능력도, 나의 멋진 얼굴도, 나의 재산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는 부자가 되어서 자선사업을 많이 하게 하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재물을 주셔서 자선사업을 조금밖에 못하게 하셨다면, 이것도 순종해야 하지 않을까요?

나의 육체를 연약하게 하셔서, 나의 연약함을 사용하시기 원하신다면, 나의 연약함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준비된 것이라면, 나의 육체의 연약함으로 인한 매일매일의 통증과, 매일매일 진통제를 먹고 참아야 하는 그 시간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예비된 것이라면, 나의 고난이 감사가 아닐까요?

그러나, 설마 욥과 같은 고난을 겪은 사람이 있겠습니까? 성경을 보겠습니다.

ヨブ記 30:17-20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밤이 되면 내 뼈가 쑤시니 나의 아픔이 쉬지 아니하는구나. 그가 큰 능력으로 나의 옷을 떨쳐 버리시며 나의 옷깃처럼 나를 휘어잡으시는구나. 하나님이 나를 진흙 가운데 던지셨고 나를 티끌과 재 같게 하셨구나. 내가 주께 부르짖으나 주께서 대답하지 아니하시오며 내가 섰사오나 주께서 나를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다.”

고난의 신학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난받는 그리스도라는 말은 많이 들어 보았을 것입니다. 기독교는 고난에서 탄생한 신앙입니다. 그리고 그 고난은 무한한 축복을 동반하는 고난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늘의 왕이시며, 창조주이시지만, 스스로 인간을 위해 선택하셔서 인간으로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이 땅의 가장 강한 나라의 왕으로 오신것도 아니며, 부자의 아들로 태어나시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출생부터 고난으로 시작하셨습니다. 추운 12월의 겨울날, 잠잘곳도 없어 동물들의 우리안에서 출생하였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30년을 아버지를 도와 목수의 일을 하였습니다.

30세가 되어서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고난의 여행을 시작하셨습니다. 돈도 옷도 가지지 않은 빈손으로 제자들을 불러 모으며 먼 거리를 걸어서 여행을 하며 병든자들을 치료하고 회복시키셨고, 죄인들을 회개하게 하고 용서하셨으며, 죄와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깨끗하게 구원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여행은 무려 3년 반이나 계속되었으며, 이 여행의 끝은 인간이 견디지 못한다는 극한의 사형법인 십자가형을 받고 몇시간을 피를 쏟으며 고통을 받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고통스러운 사형을 죽으셔야 우리의 죄가 용서받을 수 있었던 것이며, 그렇게 고난받고 죽어주신 예수그리스도를 믿어야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원과 용서가 어떻게 깨끗할 수가 있으며, 품위가 있을수 있으며, 고귀함이 있을수 있습니까? 더러운 죄인들 가운데서 그들을 위해 죽어주신 예수그리스도의 고난이 어떻게 향기가 날수 있으며, 어떻게 즐거움과 향략과 멋진것과 함께 어울릴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깨끗하고 고상한 분위기가 아니라, 기괴하고 섬찟한 볼품없는 나무사형대였던 것입니다. 녹슨 긴 못이 박히고 고통의 핏줄기가 흘러내린 그런 아픔과 고난의 십자가가 예수님의 마지막 사역의 거룩한 상징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무엇이길래 그런 예수님을 무시하고 살수 있습니까?
우리가 무엇이길래 예수님을 똑바로 믿지 않고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건가요? 도대체 우리의 정체가 무엇이길래 예수님과 관계없이 행복하게 살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까?

마지막으로 베드로전서의 말씀으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베드로전서 3:11-17 말씀입니다.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고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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