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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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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1-09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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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동경만나교…
 조회 : 4,332  추천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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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9일 동경만나교회
『소망 -2- 우리들의 소망』
본문 : 로마서8:24-27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わたしたちは,このような希望によって救われているのです.見えるものに對する希望は希望ではありません.現に見ているものをだれがなお望むでしょうか.わたしたちは,目に見えないものを望んでいるなら,忍耐して待ち望むのです. 同樣に,“靈"も弱いわたしたちを助けてくださいます.わたしたちはどう祈るべきかを知りませんが,“靈"自らが,言葉に表せないうめきをもって執り成してくださるからです.
人の心を見拔く方は,“靈"の思いが何であるかを知っておられます.“靈"は,神の御心に從って,聖なる者たちのために執り成してくださるからです.]
소망을 일본에서는 희망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희망이라는 말보다는 소망이라는 말을 더 사용합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소망이라는 단어를 좋아합니다.
희망이라는 단어는 바라고 바란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소망이라는 단어는 좀 다릅니다. 사람이 사는 곳에서 바란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소망이라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 필요한 것을 바라는 것입니다. 원하는 것입니다. 꿈꾸는 것입니다.
(1-예화)
저의 친구중에 아주 똑똑하고, 생각하는 속도가 빠른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는 한국에서 좋은 대학을 가지 못해서 군대를 제대하고는 바로 외국에 가서 유학생활을 하며, 아르바이트를 해서 정말 좋은 대학을 나왔습니다. 언젠가 한번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데 그 친구는 자기의 소망은 부자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소망을 향하여 그 친구는 열심히 일했습니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했습니다.
왜냐하면, 돈이 모여지는 것이 자신의 소망을 이루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타향에서 일을 하며, 돈을 모으더니 조그만 회사를 만들어서 경영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함께 외국을 오가면서 무역을 하며 사업을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친구들과 관계가 좋지 않게 되어서 친구들도 떠나갔습니다. 그러나 그 친구는 아무 걱정이 없었습니다. 돈만 생기면 되었습니다. 돈이 자신의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친구도 결혼을 해서 아내와 아이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서로가 바빠서 자주 만나지 못하고 몇 년이 흘렀는데, 어느날 그 친구에게서 연락이 와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친구는 벌써 직원이 수십명이나 되는 중소기업의 사장이 되어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물어보았습니다. “너 이제 너의 소망대로 부자가 되었니?”그러자 친구는 저에게 조용하게 대답하였습니다. “부자가 뭐가 중요하니?”깜짝놀랐습니다. 불과 25-6세에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를 하며 거의 20년을 돈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살아왔던 그 친구가 돈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으니 말입니다.
“아니! 너의 소망이 부자가 되는거 아니었어?”그러자 친구는 다시 대답했습니다. “아내가 병으로 쓰러져서 몇 번의 수술을 했고, 회복하기 좋은 환경을 찾아서 다른 나라로 아이들과 함께 떠나서 가족들과 떨어져 살고 있는데 돈이 무슨 필요가 있냐?”라고 말했습니다. 그 친구의 집에 가보니 향이 집안 가득 퍼져 있었습니다. 아내의 회복을 위하여, 가정의 회복을 위하여 그는 24시간 향을 피어놓고, 또다른 소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그 향이 가득하고 적막한 집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 친구도 혼자있는 집에 들어가기가 싫어서 회사에서 일만하다가 늦게 집에 들어와 잠만 자고 회사에 출근하는 싱글생활이 벌써 몇 년이 되어 있었습니다. 가끔 떨어져 있는 아이들과 전화로 통화하지만, 아이들은 벌써 영어만 사용하는데 익숙해져 있었고, 영어가 서투른 아빠는 아이들과 점점 멀어져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이 친구의 소망은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렸고, 새로운 소망도 매일매일 조금씩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친구가 예수님을 믿고, 다시 진정한 소망을 가지고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여러분이 꿈꾸는 소망은 무엇입니까?
여기 부자는아니지만, 건강하지도 잘생기지도 않았지만, 여기 예배당에 와서 예배드리고 있는 우리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오늘 저와 여러분은 2011년에 우리들의 소망 세가지를 확인하여야 합니다.
첫째로, 개인의 소망입니다.
우리 개인의 소망이 무엇입니까? 우리 개인의 소망은 구원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개인의 구원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이 단지, 예수님을 믿는 것 만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원은 예수믿고 천국가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여러분의 구원은 무엇입니까? 집사님의 구원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소망은 구원입니다. 이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구원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 뿐입니까? 이것 뿐이라면, 이제 우리는 모두 소망을 이룬 것입니까? 우리가 모든 소망을 이룬 것이라면 행복해야 합니다. 천국에서가 아니라, 지금도 우리는 행복해야 합니다. 행복은 불만족이 없는 것입니다. 아니면, 조금쯤은 불만족한 것이 있더라도 불행하거나, 슬프거나, 힘들거나, 고통스럽지는 않은 것입니다. 우리는 완전한 존재는 아니니까요.
그런데 실제로 한사람도 소망을 완전히 이루고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아직 완전한 소망을 가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예수님을 믿는 것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원안에는 개인의 축복도 포함되어야 합니다. 가정의 화목함과 가족의 건강, 주변 사람들과의 인간관계, 사회적인 개인의 위치도 인정받고 사는 현실도 중요한 축복이며, 없어서는 안될 우리의 삶의 조건들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가장 중요한 것이지만, 먹어야 사는 인간에게는 육적인 것도 축복받아야 우리의 소망이 축복된 소망으로 느껴질 수 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할렐루야!
두 번째, 사회의 소망입니다.
사회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사회의 구원입니다. 사회의 부정부패가 깨끗하게 정화되는 것, 인간을 위한 사회복지제도가 더 풍성해 지는 것, 음식이 없어서 고통스럽게 굶어죽거나, 치료비가 없어서 약도 못 쓰고 죽는 사람이 없는 사회, 정치와 경제가 안정적으로 되어 살고 싶은 나라가 되는 것, 이런 모든 것들이 사회가 구원받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서로 돕고, 서로 도와주며, 협력하는 사회, 힘이 없는 사람도, 돈이 없는 사람도 억울함을 당하지 않는 그런 사회는 분명히 소망이 있는 사회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이러한 사회를 누가 만드나요? 하나님이 하시나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여기있느 우리들에게 이 일을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능력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다 못하면 우리의 자녀들이 하게 하여야 합니다.
2세, 3세 자녀들을 이 일을 할수 있도록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자녀를 위한 오늘의 기도
주님, 저희의 자녀가 땅 끝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신령한 세계인으로 살게 해주십시오. 하나님이 한 지역에 갇혀 계신 신이 아니라, 세계와 열방, 민족과 방언 가운데서 홀로 높으신 하나님이심을 드러내는 역사의 선각자가 되게 해주십시오. 민족을 사랑하되 타민족을 혐오하는 좁쌀이 되지 말게 하시고, 고유한 민족문화를 지니되 편협한 국수주의자가 되지 말게 해주십시오. 나뉘고 찢긴 온 세상과 만물을 예수님을 머리로 통일하는 일을 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온 세계를 자신의 일터, 예배처, 사역지로 삼는 자녀가 되게 해주십시오.
(2-예화)
여러분에게 전세계에서 존경하는 일본인 한사람, 한사람의 크리스천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의 이름은 카가와토요히코(賀川豊彦1888-1960)입니다.
메이지대학과 고베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미국시카고대학에 유학한 후, 23세부터 고베빈민가에서 빈민구제전도를 시작하여 1921년엔 고베소비조합을 설립합니다.
카가와토요히코는 목사지만, 사회사업을 중심으로 일을 합니다.
일본에 처음으로 소비조합을 세웠고, 동경학생소비조합, 江東소비조합, 信用組合, 동경의료이용조합 등을 세웁니다. 카가와목사가 세운 생활협동조합은 1927년 조합수 106개, 조합원수는 74,985명 정도로 크게 확산되었습니다.
1941년부터 민간평화사절로 4개월간 300여 차례에 걸쳐 일본과 미국의 평화를 호소했으며 반전운동 혐의로 일본에선 경찰에 구속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일생을 크리스챤으로서 평화, 노동, 농민, 어민조합, 협동조합 등에 힘썼으며, 사랑, 봉사, 협동, 상부상조정신을 외쳤습니다.
고베에는 사회복지시설 가운데 행복의 마을(Shiawase-no-mura)에는 수십만평의 부지에 장애자와 노인들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함께 이용하고 활동하는 각종의 복지, 오락, 운동시설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세계에서 유일한 초대형 복지마을이라 하겠습니다.
건강한 자와 약한 자가 함께 살아가는 사랑의 세계라 할 것입니다.
일본의 사회복지제도는 전세계의 선진국에 앞서갑니다. 특히, 고베지역의 사회복지제도와 그 시설이 앞서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카가와 토요히코의(賀川豊彦)의 영향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빈민구제, 고아와 노인복지, 농민운동, 노동조합운동, 구라사업, 여성운동, 투표권 확대운동 등 수많은 사회운동을 한 사람으로 노벨평화상 후보까지 올랐던 인물이었습니다.
1923년 9월1일 일어난 대지진으로 사망자 10만, 행방불명자 4만여 명이 발생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카가와목사는 즉시 상경하여 구조활동을 시작합니다.
대학생협회 및 대학의 협력을 받아 구제활동을 펼쳤습니다. 집을 잃은 피해자들을 위해서는 복지관을 설치하고 진료소, 법률상담소, 아동학교, 탁아소와 소비조합 매점을 개설하였습니다. 또한 지진 피해자들의 탁아소 급식으로 영양식 배급사업을 시작하였는데 가내수공업, 영세기업 노동자들에게도 환영을 받아 급속히 확대되었습니다. 4개의 사업소에서 배식한 수는 1일 최대 2만 식이었다고 하니 한사람의 구제가 수만명의 생명을 구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회를 구원하는 것은 사회자체가 아니라, 이 사회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의 정신이었던 것입니다.
세 번째, 교회의 소망입니다.
교회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개인의 소망이 개인구원이며, 사회의 소망이 사회구원인 것처럼, 교회의 소망도 교회가 구원받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교회는 구원의 방주역할을 하는 곳이기 때문에 교회의 소망은 교회의 승리입니다.
교회의 승리는 교회가 그 역할을 잘 감당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이 세상의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이 사회의 소망이 되고, 개인의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교회의 소망입니다.
교회는 그런 곳입니다. 개인에게도, 사회에도, 이 나라에도 기쁨이 되고, 희망이 되어주 는 그런 존재입니다.
(2-예화)
여러분!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알고 있습니까? 여의도순복음교회는 명실공히 전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입니다. 성도수가 78만명입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를 개척해서 세운 목사님은 조용기목사라는 분입니다. 모르는 사람은 외계인입니다.
이 조용기목사님은 세 사람의 성도를 앉혀놓고 교회를 개척했다고 합니다. 그 세사람은 아내와 두자녀들이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을 세사람의 가족성도들을 놓고 설교를 하던 목사님은 언제나 하늘을 보며, 삼천명의 성도가 자기 앞에 앉아서 자신의 설교를 듣고 아멘아멘 하고 있다고 생각했답니다. 그리고 언젠가 정말 3천명이 앉아 있더랍니다.
조목사님은 언제나 성도들에게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가난하고 배고프고, 아프면서 교회에 다니는 것이 자랑이 아닙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축복받고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며, 베풀며 교회에 다니는 것이 자랑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말씀에 순종하여 축복받은 성도들이 전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를 서울 여의도에 건축하였습니다. 오늘 주일에도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는 오전7시부터 오후7시까지 7번의 예배를 드립니다.
조목사님이 올해 교회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은 참 감동적입니다.
“꿈꾸고 믿고 말하고,”
이 일이 계속되면 바라는 것이 나타납니다.
좋은 것을 꿈꾸고 믿고 말합시다.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아멘!
오늘 본문말씀을 다시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わたしたちは,このような希望によって救われているのです.見えるものに對する希望は希望ではありません.現に見ているものをだれがなお望むでしょうか.わたしたちは,目に見えないものを望んでいるなら,忍耐して待ち望むのです. 同樣に,“靈"も弱いわたしたちを助けてくださいます.わたしたちはどう祈るべきかを知りませんが,“靈"自らが,言葉に表せないうめきをもって執り成してくださるからです.
人の心を見拔く方は,“靈"の思いが何であるかを知っておられます.“靈"は,神の御心に從って,聖なる者たちのために執り成してくださるからです.]
우리의 소망은 구원을 얻었지만, 보이는 소망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소망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보이는 것이 소망이 아니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눈에 보이는 돈이나 집이나 자동차가 소망이 아닙니다. 그런 것들로 소망을 삼은 사람들은 모두 그것들을 이 땅에 놓고 이 땅을 떠났습니다. 함께 할수 없는 것들이 어떻게 참소망이 될수 있겠습니까?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참소망입니다. 그 소망은 바로 교회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머리가 되신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행복하지만, 쉬운 길은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그리스도를 함께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우리는 양보하고 희생하여야 합니다. 그들을 섬기고 존경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주님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모든 사람들 위에 서기를 원합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존경받기를 원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원합니다. 예수님만이 알아주시는 것은 너무 힘듭니다. 예수님이 아니라 사람이 알아주기를 원합니다. 교회안에서만이 아니라 밖에서도 알아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조금씩 예수님과는 관계없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은 모두 알고 계십니다. 아멘!
우리는 그렇게 훌륭하고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 연약한 사람이라는 것도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십니다. 성도인 우리들을 도와주기 원하십니다.
단지 주님은 우리가 그분의 때와 그분의 말씀에 순종할때까지 기다릴실 뿐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신년을 맞았습니다.
올해 우리들이 해야할 일은 예수그리스도를 소망으로 삼고 인내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예수그리스도!
그분만이 우리의 소망이 되심을 고백하며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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