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주일말씀 |
|
|
|
작성일 : 11-02-13 16:08
|
2011.2.13『십자가 -2- 능력의 십자가』
|
|
|
글쓴이 :
동경만나교…
 조회 : 4,007  추천 : 0
|
본문 : 갈라디아서 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しかし,このわたしには,わたしたちの主イエス·キリストの十字架のほかに,誇るものが決してあってはなりません.この十字架によって,世はわたしに對し,わたしは世に對してはりつけにされているのです.]
지금으로부터 약 2천년전 하나님은 인간을 죄와 멸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죄가 없으신 거룩하신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 예수님은 중동지방 이스라엘민족 가운데 하나님을 예배하는 믿음의 가정에 태어납니다. 그리고 30세가 될 때, 예수님은 비로소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복음과 선교의 여행을 떠납니다. 그 여행은 불과 3년 반정도에 불과했으며, 그 여행의 끝은 사형수를 처형하는 처형장의 십자가 사형대 위였습니다.
인간을 창조한 거룩한 하나님이 어떻게 인간을 위해 죽을수 있는지, 아직도 인간들은 하나님이 사랑은 너무나 위대하고, 측량할 수 없이 높고 커서 이해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이 이해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관계없이 죽어가는 인간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 메달려 죽었다가 3일만에 부활해서 살아나시고, 수백명의 사람들이 쳐다보고 있는 상태로 하늘로 승천하셔서,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구원받은 우리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때까지 기다리시지만, 이후 2천년동안 그 예수님에게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이 죽어주셨던 그 십자가의 형상, 십자가의 상징을 모든 신앙과 예배의 중심에 놓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잠깐 인간이 표현한 십자가의 여러 사진들을 감상하시겠습니다.
(인터넷에는 십자가사진을 사진자료실에 따로 올려놓겠습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얼마나 아름다운 십자가입니까? 얼마나 멋진 십자가사진입니까?
그런데, 정말 이 십자가는 그렇게 아름다운 모양일까요?
어떤 십자가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박해받는 고통의 상징입니다.
어떤 십자가는 예배하는 사람들의 중심을 지켜주는 신앙의 상징입니다.
어떤 십자가는 믿음과 정의를 지키려고 하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정의입니다.
그리고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십자가는 능력이라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능력은 수도없이 많지만, 오늘은 몇가지만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첫째, 십자가는 비움의 능력이 있습니다.
보시니참 좋았더라는 묵상지 2월호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십자가는 비움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못으로 박혀 십자가에 달리실 때,
그분은 모든 것을 내려놓으셨습니다.
하나도 남김없이 다 비우셨습니다.
기적을 보면서 환호하던 군중들,
죽은 사람을 향해 다시 살아나라고 명령하시던 권능,
함께 죽겠노라 예수님을 따르던 충성된 제자들까지 모두 비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비우신 거룩한 공간에 하나님은 사랑을 부으셨습니다.
사랑이 차고 또, 차고 넘치고 또 넘치면서 세상 모든 곳에 하나님의 사랑이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십자가는 바로 자기비움입니다. 하나님 사랑의 충만입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십자가에 스스로 달려 올라가신 예수님의 양손에 쥐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수만명이 넘는 군중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오늘날 유명한 설교자나 유명한 부흥강사 목사님들처럼 은혜받은 신자들이 얼마나 많은 선물과 헌금을 드렸겠습니까? 그러나 십자가의 예수님에게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에게는 수많은 인류의 구원이라는 구원의 능력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에게 명예는 더 이상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보고 군중들은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외쳤습니다. 어디를 가시던지 수만명의 군중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온갖 질병이 치료되었고, 방언으로 말하고, 예언을 하고, 환상을 보았습니다.
군중들은 예수님이 이스라엘민족을 로마의 식민지배로부터 해방시켜 주고 왕이 되리라고 믿었습니다. 배고픈 현실에서 오병이어의 역사를 일으켜서 배부르게 먹게 해주고, 바위에서 물을 터트려서 생수를 마음껏 마시게 해줄수 있는 능력자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본 그들은 모두 예수님의 곁을 떠나갔습니다. 왕으로 알았던 수만명이 넘는 군중들도, 예수님을 위해 죽겠노라고 결심했던 충성스러운 제자들도 모두 떠나갔습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에게 아무 명예도 명성도 없었습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에게는 오직 우주보다 넓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나라, 천국의 주인이심과 하나님의 나라의 왕중의 왕이시며, 온 우주를 지배하시는 창조자라는 권위가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십자가의 능력은 증거입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을 예수님되게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증거의 십자가]라고 부릅니다.
마가복음 15:39 말씀을 보겠습니다.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이스라엘사람 뿐만 아니라, 중동지역과 유럽을 지배했던 거대한 로마제국의 사람들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일본도 평범한 회사원보다 자위대의 군인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군인들은 자신들이 생명을 던져서 지키고 싸워야하는 현실이 예수님때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군인들은 나라를 위해서, 그리고 로마황제를 위해서 상급자의 명령을 받고 생명을 던져 전쟁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가복음 말씀은 이상한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로마의 군인들, 로마의 정치가들, 로마의 권력가들도 예수님이 수만명의 군중을 거느리고 설교를 하시는 모습도 보았고, 떡5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이 넘는 사람들을 배부르게 먹게하는 기적도 보았고, 태어나면서부터 장애자인 사람들의 불치병을 수술용 메스 한번 사용하지 않고, 피한방울 흘리지 않고, 고치는 기적보다 더한 기적들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마지막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참혹한 사형대인 십자가에 올라가 달려 죽어 주셨을 때, 그 모든 것을 지켜보았던 로마제국의 장교인 백부장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 사람 예수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라고 말입니다.
이처럼, 십자가는 우리들에게 예수님을 믿는 증거가 되어야 합니다.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던지, 예수님의 십자가는 내가 왜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가? 예수님은 나에게 어떤 분이신지. 증명해주는 능력이 바로 십자가의 능력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바라보는 믿음의 눈은 육체의 눈이 아니라, 마음의 눈입니다. 우리 마음이 예수님에게 향해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마음을 예수님의 증인이 되도록 만드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십자가의 능력은 자기부인입니다.
사람들의 불행은 불평과 불만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불평과 불만의 시작은 욕심입니다. 무언가 가지고 싶은 것, 누리고 싶은 것, 소유하고 싶은 것,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으로부터 시작된 욕심과 욕망이 채워지지 않을 때, 그것이 물질적인 것이거나, 사람에 대한 것이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물질도 사람도 내 마음대로, 내 생각대로, 내 뜻대로 하고 싶은데 그렇게 되지 않을 때, 우리 마음은 불평과 불만이 생겨납니다. 그리고 그대로 내버려두면 점점 불평과 불만은 커져갑니다. 결국 불평과 불만은 불행하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인격과 정신을 파괴시켜 나갑니다. 인생이 힘들고, 사는 것이 힘들고, 결국에는 먹는 것도, 자는 것도, 보는 것도 모두 힘들다고 느끼게 만듭니다.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에게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것이 아니면, 그것은 대적 곧, 사단의 유혹이요, 사단의 공격이요, 사단의 계획입니다. 무슨 계획입니까? 우리를 망가뜨리고, 불행하다고 느끼게 만들고, 결국에는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뜨려 놓으려고 하는 악한 계획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러한 악한 대적들, 사단의 계획에 지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우리가 섬겨야 하는 왕으로 보내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섬겨주실 인간으로 보내셨습니다. 나의 죽을 죄악을 대신하여 모두 지고 죽어주실 대속자로 보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획은 선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인간행복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가 감사하며 사는 것이며, 나누며 사는 것이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4:27 말씀을 보겠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십자가의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말입니다. 이 말씀은 자기부인의 뜻입니다. 자기자신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내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나의 욕심, 나의 욕망, 나의 죄악, 나의 주장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예수님 때문에 구원받은 나는 이제 예수님의 것입니다. 예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어주실 때, 나의 더러운 죄악도 함께 죽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아직도 교회에서 내 목소리를 높여야 할 이유가 있다면,
만약, 아직도 다른 성도님보다 인정받아야 할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만약, 아직도 목사님이 내 말을 들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아직 예수님의 십자가의 능력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화-장님코끼리만지기)
옛날부터 전해오는 이야기중에 [장님코끼리만지기]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들에게 커다란 코끼를 만져보게 하고, 무엇인지 설명해 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같은 코끼리를 만졌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만진 부분에 따라 각자 설명이 달랐습니다. 다리를 만진 사람은 커다란 나무기둥 같다고 말합니다. 코리를 만진 사람은 굵은 빗자루 같다고 말합니다. 배를 만져본 사람은 커다란 북 같다고 말합니다. 상아를 만진 사람은 큰 뿔과 같다고 말합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맞는 말을 했습니다. 자신들이 만져보고 경험한 것을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자신이 경험한 부분이 전체라고 착각하고 있다는 것 뿐입니다.
로마서 6:14-15절 말씀은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아멘.
말씀을 한곳 더 보겠습니다.
로마서 8:9-11절 말씀입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마지막으로 보시기참 좋았더라 묵상집 1월호에 실렸던 십자가 묵상에 관한 글을 읽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사랑의 주님, 오늘 하루 저의 삶을 돌아봅니다.
가정과 일터, 인간관계와 여러 가지 일들을.
십자가의 사랑으로 살게 하소서.
십자가를 생각하며 죄와 허물을 회개합니다.
저의 부족함이 이웃에게 상처를 주거나 하나님의 일에 방해가 되지 않게 하소서.
십자가의 헌신과 희생을 닮아 십자가의 능력과 희망으로 살게 하소서.
피 흘리시며 죽기까지 우리를 섬기셨던 주님을 본받게 하소서.
하나님 나라의 도구로 써 주소서.
모든 어려움과 걱정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습니다.
오늘도 성령님의 음성에 민감하게 하소서.
십자가의 사랑으로 살게 하소서.
오늘은 십자가의 능력을 구하며 기도하겠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