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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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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2-20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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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20『십자가 -3- 십자가는 축복의 통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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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동경만나교…
 조회 : 3,876  추천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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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누가복음 14: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自分の十字架を背負ってついて來る者でなければ,だれであれ,わたしの弟子ではありえない.]
벤츠회사의 사장이 자동차의 너무나 소중한 안전장치를 개발했을 때, 그는 자신의 회사에서 만드는 자동차에만 장착할 수 없어서 모든 자동차 회사에도 알려서 그 안전장치를 공유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했느냐고?
당신네 벤츠자동차에만 부착했다면, 더 많은 돈을 벌수 있었지 않았느냐고 말했습니다.
그때 벤츠자동차의 사장은 말합니다. 이 안전장치는 너무나 중요한 것이라서 다른 모든 자동차와 공유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다른 사람과 공유하지 않으면 견딜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와 저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갈라디아서 6:14 말씀입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어린 아이들은 좋은 것을 갖게 되면, 친구들에게 가서 자랑을 합니다.
자랑하고 싶어서 친구집까지 찾아가서 자기가 갖게 된 그것을 자랑합니다.
왜 자랑합니까?
너무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기쁘기 때문입니다.
이 순수한 어린아이들처럼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도 십자가는 너무나 좋은 것이고,
너무나 큰 기쁨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이 십자가는 우리의 자랑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십자가는 자랑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십자가와 십자가에 달려 죽어주신 예수그리스도가 아니면,
우리 모두는 돈 때문에 멸당당했을 것입니다.
힘 때문에 멸망당하고, 권력 때문에 멸망당하고, 지식 때문에 멸망할 수 있었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의 축복으로 오늘 저와 여러분의 가슴속으로 들어와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돈을 벌어도 축복, 못벌어도 축복,
건강해도 축복 아파도 축복,
힘이 있어도 축복 없어도 축복,
권력을 가져도 축복 못가져도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십자가는 우리들에게 축복의 통로입니다.
통로라는 것은 연결하는 길입니다.
이쪽에서 들어가면, 저쪽으로 연결됩니다.
연결통로를 지나가면 통로의 끝에는 내가 가는 목적지가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바로 그런 통로입니다.
그냥 통로가 아니라 우리들에게 축복으로 연결해주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오늘 세가지 십자가의 축복을 나누겠습니다.
첫째, 십자가는 우리를 예수님의 제자로 성장시키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오늘 본문말씀 누가복음 14:27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예수님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스스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예수님의 은혜로 모든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은 우리 모두는 각자 자신의 십자가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가지게 된 이 십자가는 예수님이 지셨던 십자가처럼 무거운 십자가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못박히신 십자가처럼 고통스럽게 하는 십자가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육체가 죽는 순간까지 피를 흘려야 했던 사형대가 아닙니다.
우리들에게 주어진 십자가는 예수님을 인정하는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내가 구원받았음을 확인시켜주는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내가 죄의 노예가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표시입니다.
예수님을 믿게 된 우리들 한사람, 한사람이 모두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우리가 가진 십자가는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제자만이 가질수 있는 영광스러운 십자가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십자가는 우리에게 축복입니다.
이 십자가를 가진 사람은 누구나 예수님의 제자로 인정받습니다.
이 십자가를 등에 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누구나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갑니다.
이 세상이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우리의 십자가는 말합니다.
“이곳은 나의 고향이 아니다. 나의 고향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이 살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 바로 진정한 고향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가 지고 있는 십자가로 인하여 예수님의 제자로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즉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만만한 곳이 아닙니다.
분명히 예수님의 제자는 이 세상과 다른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선은 일요일을 주일로 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일이라는 것은 하나님께 진실과 성실한 예배를 드리는 날이며, 이 날 우리는 다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은혜를 받는 날입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의 제자는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선물은 성령이었습니다. 성령은 기도하던 제자들에게 주어진 선물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제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매일 하나님의 말씀이 무장되어 있지 않으면, 제자들의 삶은 이 세상에서 너무나 힘든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하여 성경말씀을 남겨주셨습니다.
기억합시다. 제자의 삶은 주일, 기도, 말씀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 십자가는 우리의 능력이 되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고린도전서 1:18 말씀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십자가가 모든 사람들에게 축복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던지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제자의 십자가를 진다면 모르지만,
믿지 않는 사람, 예수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무 능력도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그저 사형수가 매달리는 십자가로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 십자가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십자가는 우리에게 능력을 부여해 줍니다.
어떤 능력입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은 인간에게 필요한 육적인 것, 정신적인 것, 영적인 것 모두를 포함합니다.
창세기 1:27-28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아멘)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시기 위하여 사랑하는 인간을 위해 창조하시고,
인간이 모두를 지배하도록 축복해 주신 곳입니다.
이처럼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모두 지배하도록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영의 사람들에게 지배 받게 된 것입니다.
이 세상은 육의 사람, 정신의 사람, 영의 사람 세종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육의 사람은 선과 악을 구별하지 못하고,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하는 사람, 돈을 벌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이용하고 상처를 주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런 육의 사람을 지배하는 사람들은 옳고 그른 것을 구별할 줄 아는 정신의 사람, 이성의 사람입니다.
정신의 사람은 이성적인 사람들이기 때문에 육의 사람들이 법을 어기면 그들을 구속하여 교육을 시킵니다. 사회를 유지시키기 위하여 이성을 가진 사람들이 육의 사람들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정신의 사람들은 영혼의 정체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로 갈 것인지, 육체가 죽으면 어디로 갈 것인지 궁금해 하며, 영혼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영의 사람들은 이러한 사람들, 정신의 사람들과 육의 사람들을 영의 사람으로 신분을 변화시켜 주어야 합니다.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 세상에서 가장 부자는 하나님에게 축복받은 사람이며, 가장 큰 권력을 가진 사람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욥기서 1:1-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우스라는 곳에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욥이었다. 그는 완전하고 진실하며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악한 일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사람이었다. 그의 슬하에는 아들 일곱과 딸 셋이 있었다. 그에게는 양이 칠천 마리, 낙타가 삼천 마리, 겨릿소가 오백 쌍, 암나귀가 오백 마리나 있었고 종들도 매우 많았다. 그는 동방에서 제일가는 부자였다.”라고 말합니다.
역대하9:13-27절 말씀은 부자이며, 왕중의 왕이었던 솔로몬왕을 소개합니다.
“솔로몬의 세입금의 무게가 금666달란트요. 그 외에 또 무역상과 객상들이 가져온 것이 있고 아라비아 왕들과 그 나라 방백들도 금과 은을 솔로몬에게 가져온지라. 솔로몬 왕이 쳐서 늘인 금으로 큰 방패 200개를 만들었으니 방패 하나에 든 금이 600세겔이며, 또 쳐서 늘인 금으로 작은 방패 300개를 만들었으니 방패 하나에 든 금이 300세겔이라 왕이 이것들을 레바논 나무 궁에 두었더라. 왕이 또 상아로 큰 보좌를 만들고 순금으로 입혔으니, 그 보좌에는 여섯 층계와 금 발판이 있어 보좌와 이어졌고 앉는 자리 양쪽에는 팔걸이가 있고 팔걸이 곁에는 사자가 하나씩 섰으며, 또 열두 사자가 있어 그 여섯 층계 양쪽에 섰으니 어떤 나라에도 이같이 만든 것이 없었더라. 솔로몬 왕이 마시는 그릇은 다 금이요 레바논 나무 궁의 그릇들도 다 순금이라 솔로몬의 시대에 은을 귀하게 여기지 아니함은 왕의 배들이 후람의 종들과 함께 다시스로 다니며 그 배들이 삼 년에 일 차씩 다시스의 금과 은과 상아와 원숭이와 공작을 실어옴이더라.
솔로몬 왕의 재산과 지혜가 천하의 모든 왕들보다 큰지라. 천하의 열왕이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마음에 주신 지혜를 들으며 그의 얼굴을 보기 원하여, 각기 예물을 가지고 왔으니 곧 은 그릇과 금 그릇과 의복과 갑옷과 향품과 말과 노새라 해마다 정한 수가 있었더라. 솔로몬의 병거 메는 말의 외양간은 4000이요 마병은 12,000명이라 병거성에도 두고 예루살렘 왕에게도 두었으며, 솔로몬이 유브라데 강에서부터 블레셋 땅과 애굽 지경까지의 모든 왕을 다스렸으며, 왕이 예루살렘에서 은을 돌 같이 흔하게 하고 백향목을 평지의 뽕나무 같이 많게 하였더라.”라고 말합니다.
“솔로몬의 세입금의 무게가 금666달란트는 현대로 계산하면, 약22.82t=약1천억엔에게 가까운 금액이며,
솔로몬 왕이 쳐서 늘인 금으로 큰 방패 200개는 약1,368kg=약55억엔 분량이며,
금으로 만든 작은 방패 300개는 금300세겔로 금1,026kg=약41억엔이 넘는 금액입니다.
이같은 사실은 이 세상에서 가장 부자도 가장 권력을 가진 사람도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어떤 사람들은 신앙과 돈은 반비례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일본의 교회는 목사님들은 가난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목사의 자녀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독립하면서부터,
가난이 싫어서, 가난한 목사아버지를 떠나갔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가난은 부끄러운 것도 아니지만, 자랑스러운 것도 아닙니다.
부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을 많이 가진 것이 부끄러운 것도 아니며, 자랑스러운 것도 아닙니다.
단지 그 돈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돈을 가진 사람을 부끄럽게 만들기도 하며, 자랑스럽게 만들기도 합니다.
선교지의 선교사가 사용하는 선교비는 복음을 전하며, 영혼을 구원하는 생명의 물질이 되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불신자가 많은 돈을 가지고 자신의 욕심을 위해 사용할때는 수많은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며, 이 세상을 타락시키는 부끄러운 물질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세상의 많은 재산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맡겨주셨습니다.
전쟁이 나면 수많은 고아가 생기고, 환자들이 발생합니다. 그때 달려가서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비가 많이 와서 수재가 나고, 불이 나서 화재가 나고, 지진이 나고 기근이 나서 재난을 당하는 사람들이 생겨날 때, 신속하게 식량과 물을 가지고 달려가서 도와주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재산을 잘 관리해 줄 믿음의 사람을 찾으시고 그들에게 재산을 맡기고 여러 사람을 살리는데 사용하도록 맡기십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능력을 얻은 사람은 하나님의 재산을 위탁받은 청지기이며 하나님의 재산을 관리하는 집사의 임무를 잘 수행하여야 합니다.
마태복음 25:20-23 말씀입니다.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지금 자신의 지갑속에 있는 돈이라고 자신의 돈이 아니며,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이라고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모두 하나님이 주신 건강과 일을 할수 있는 환경으로 얻어진 것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이며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재산을 성실하게 관리하고, 위탁받은 집사의 직분을 잘 감당할 때,
하나님은 더 큰 재산을 맡겨 주신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셋째, 십자가는 우리 육체의 부활을 증거해주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누가복음 24:7 말씀입니다.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오늘 우리들이 가진 놀라운 축복은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어주신 예수님 때문에 그 복음은 우리의 가장 놀라운 가장 귀한 축복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죽어주신 것만이 축복이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모두 육체가 죽을 때 모든 것이 끝나고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달려 죽어주신 십자가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3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십자가는 부활의 십자가입니다.
이 십자가는 우리에게도 예수님처럼 육체의 죽음이 끝이 아니라 부활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비행기를 타 보았나요?
일본에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나, 한국에서 일본으로 오는 비행기나 모두 타본 일이 있지요? 비행기를 탈때마다 승무원을 쳐다보지 않으면 안되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것은 비행기가 이륙한 후에 곧바로 모든 승무원들이 승객들 앞에 똑바로 서서 어나운스 멘트에 나오는대로 비상착륙시의 대처요령을 가르쳐줍니다. 이때, 대부분의 승객들이“또 하는구나, 지겹다 지겨워”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비행기사고가 났을 때, 이 비상착륙시 행동요령을 자세히 지켜본 사람과 안본 사람은 생과 사가 갈라지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비행기 사고로 목숨을 잃을 확율은 번개를 맞아 죽을 확율보다 적고
벌에 쏘여 죽을 확율의 절반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불과 몇십만분의 일의 확율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비행기 사고가 일어났을 경우는 피할 수가 없습니다.
희생도 너무나 큽니다. 자동차 몇백대가 충돌한 대형사고가 비행기 한 대의 사고로 일어납니다.
다행이 불시착을 할수 있는 상황에서도 살아날 확률이 높지않지만, 불시착할수 없는 바다위의 경우는 바다와 접촉하면서 폭발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부분의 비행기사고는 치명적입니다.
그래서 비행기 승무원들은 오늘 이 비행기를 탑승하는 승객들 가운데 한사람이라도 비행기를 처음 타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고, 비행기는 여러번 탔지만, 오늘 처음 비상착륙시 대처법을 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기에 이 너무도 중요한 비상대책법을 가장 첫순서로 서비스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수많은 사람들, 무려 65억명이 넘는 이 지구상의 사람들 가운데 불과 몇십명, 몇백명 정도의 적은 숫자의 사람들과 교제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알고 있는 그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육체에 주어진 일정한 시간이 마쳐지면 모두 죽게되고 심판받게 됩니다. 두 번다시 판결을 뒤집을수 없는 영원한 형벌의 심판입니다.
즉, 십자가의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한 자는 천국,
십자가의 예수님을 믿지 않은 자는 지옥입니다.
그것은 영원한 판결이며, 영원한 심판이 됩니다.
많은 무지한 사람들이 사람이 죽으면, 아무것도 없이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쁜일만 하지 않고, 성실하게 살았으면 천국간다고 착각합니다.
죄송하지만, 정말로, 진짜로, 혼또우니, 리얼리, 착각입니다.
십자가는 부활의 능력을 전하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이 축복은 손에 쥐었다가 없어지는 모래같은 것이 아닙니다.
부활의 축복은 영원한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확실하게 약속된 미래이며, 장래에 예정된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사람의 약속과 달라서 약속이 깨지는 일이 없습니다. 약속이 변경되는 일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계약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와 약속하신 모든 계약은 성경에 기록되었습니다.
바로 이 성경책이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들과 변치않는 약속으로 계약한 계약서입니다.
이 계약의 내용을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요한복음 5장24-29절 말씀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요한복음 11장 25-27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마태복음 27장 50-54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아멘)
십자가에서 죽어주시고, 나의 죄를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을 알려주신 진리를 믿지 않으면 아무도 용서받을 수 없으며,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이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은 세종류의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육체대로 살아가는 육의 사람, 자기의 생각과 사회의 규칙에 따라 살아가는 이상을 가진 정신의 사람, 그리고 십자가의 예수님을 자신의 구세주로 시인하고 믿으며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가는 영의 사람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룩한 백성, 영의 사람들입니다.
이 지구는 영의 사람들이 지배하도록 되어 있으며, 영의 사람들이 다스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지배와 다스림의 권세가 정치나 경제나 권력이 아닙니다. 권세라면 하나님의 자녀라는 권세이며, 경제라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사람들을 섬기고 도와주는 일이며, 권력이라면 하나님께 기도하는 권력뿐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기록에 의하면, 세계최고의 부자들도 가장 힘이 센 사람들도, 가장 높은 권세와 권력을 가졌던 사람들도 모두 하나님의 섬기는 영의 사람들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이렇습니다. 세계최고의 부자였던, 욥과 아브라함, 세계최고의 힘을 가졌던 삼손과 세계최고의 부와 권력을 가졌던 다윗왕과 솔로몬왕의 이야기는 전세계가 부인할수 없는 역사적인 사건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알지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족과 형제들, 친구들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전하지 않고 어떻게 마음편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까?
오늘 마지막 말씀으로 사도바울이 빌립보서에 고백한 부활의 말씀을 함께 봉독하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빌립보서 3장 10-14절까지의 말씀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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