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ㅣ 로그인 ㅣ 회원가입 ㅣ 최근게시물 ㅣ 사이트맵  
ID저장
회원가입 ㅣ ID/비밀번호찾기
교회비젼소개
동경만나비젼
선교사소개
예배안내
주일말씀
주일말씀
   홈 >  주일말씀
 
작성일 : 13-01-27 23:05
2013년 01월 27일 네번째주일예배 [하나님의 도우심]
 글쓴이 : 동경만나교…
조회 : 19,735   추천 : 0  
2012년 1월 27일 동경만나교회 네 번째 주일예배
본문 :『출애굽기 17:11-16』
제목 : 하나님의 도우심(主は我が旗)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가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한 사람은 이쪽에서, 한 사람은 저쪽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무찌르니라 /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 하게 하리라 /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 이르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モ―セが手を上げている間,イスラエルは優勢になり,手を下ろすと,アマレクが優勢になった./ モ―セの手が重くなったので,アロンとフルは石を持って來てモ―セの下に置いた.モ―セはその上に 座り,アロンとフルはモ―セの兩側に立って,彼の手を支えた.その手は,日の沈むまで,しっかりと 上げられていた./ ヨシュアは,アマレクとその民を劍にかけて打ち破った./ 主はモ―セに言われた.「このことを文書に書き記して記念とし,また,ヨシュアに讀み聞かせよ.『わたしは,アマレク の記憶を天の下から完全にぬぐい去る』と.」/ モ―セは祭壇を築いて,それを「主はわが旗」と名付けて,/ 言った.「彼らは主の御座に背いて手を上げた.主は代代アマレクと戰われる.」.]


천지만물의 주인이시며, 창조자이신 하나님아버지의 넘치는 은혜가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이 예배와 이 말씀이 여기에 모인 우리들에게 처음이며 마지막같은 은혜와 감동으로 풍성한 시간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지난 한주간, 그리고 짧게는 13년, 길게는 70년에 가깝게 이 세상에서 지내온 모든 세월동안 여러분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이면서,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인간의 삶을 살아오는 동안, 하나님아버지가 여러분을 이 세상에 보내신 이유와 보내신 사명을 깨달아가며 삶을 지탱해 오신 여러분 한분, 한분을 진심으로 축복하고 또 축복합니다.

(옆, 앞뒤에 계신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이신 성도님들과 거룩한 인사로 교제합시다. 주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주의 이름으로 감사합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귀한 자녀들입니다. 태어난 시간도, 태어난 장소도 모두 다르지만, 우리의 신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믿습니까? 아멘.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만날때마다 축복하고, 사랑하고, 사랑받을 이유가 있으며, 서로를 존중하고, 감사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출애굽기라고 하는 성경말씀을 통하여 지금으로부터 무려 3,400년 전에 쓰여진 하나님과 인간의 역사를 통하여 3,400년전에 이스라엘민족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 그들의 구원이 되시며, 그들의 도우심이 되셨던 하나님이 오늘 우리의 구원이시며, 우리의 도우심이라는 것을 깨닫고,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이 세상에 살면서, 우리는 때때로 좌절하고 수없이 무너지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존재하시는가?”,“하나님은 왜 나를 돕지 않으시는가?”.
하나님을 시험하기도 하고, 하나님을 비난하기도 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을 향하여 불만을 터뜨리고, 분노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하나님이 안 계셔서 우리를 돕지 않으셨을까요?

아니면,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으시는 걸까요? 우리는 많은 의문을 갖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또 예배생활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하나님에 대한 의심과 의혹을 가지고 살아온 것이 사실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매주일 드리는 이 주일예배가 당연히 감동과 은혜가 넘치는 성령충만한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일주일에 한번 드리는 주일예배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하여 드리는 예배라면, 이곳에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한다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회복시키도록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어떻습니까? 예배는 하나의 형식적인 의식처럼, 기립해서 찬송하고, 앉아서 기도하고, 말씀을 읽고, 설교를 듣고, 고백을 하고, 헌금을 드려도 어느 한순간도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의심하며 예배를 마치고 돌아갑니다.

 감동도, 은혜도 성령충만도 임재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의 임재하심을 기대하며, 그분께만 드리는 신령과 진정의 예배가 아니면, 그분을 만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렇게 예배하는 자를 찾고, 만나주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아담의 장남인 가인이 드린 제사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가인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에는 아무런 구별이나 거룩함이 없이 형식적으로 드리는 제사가 되었기에 가인과 가인이 드린 제물을 하나님은 받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생인 아벨이 드린 제사는 하나님과 만났습니다. 아벨이 드린 제사는 자신이 가진 것 가운데서 구별하여 마음을 다하여 준비하였기에 아벨과 아벨이 드린 제물을 하나님은 받으셨습니다.

자신의 제사를 받지 않은 하나님께 분노하여 얼굴이 붉어진 가인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もしお前が正しいのなら,顔を上げられるはずではないか.正しくないなら,罪は戶口で待ち伏せており,お前を求める.お前はそれを 支配せねばならない.)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가르침과 사랑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마음은 이미 하나님의 가르침보다 더 분노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죄가 이미 그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밖으로 나가 동생 아벨을 죽이는 인류 최초의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오늘의 이 예배에 실패한다면, 참된 예배자를 찾으시고, 신실한 자녀를 찾으시는 하나님아버지를 오늘 만나지 못하고, 말씀을 통해서 주시는 가르침을 들어도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분노하며 나가서 죄의 지배를 받고, 하나님이 주신 형제를 치는 가인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약하며, 죄에 지배받기 쉬운 존재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며, 하나님은 우리를 돕는 자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의 중요한 단어는 여호와닛시(主はわが旗)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깃발이라는 뜻으로, 하나님이 도우신다는 의미입니다.

오늘 말씀의 배경은 구약성경 출애굽기 17장에 있습니다. 17장 1-3절에 이스라엘사람들은 먹을 물이 없는 것 때문에 분노하고 화가 났습니다. 17장 바로 전에 출애굽기 16장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사람들에게 매일 만나(マナ)와 메추라기(うずら)를 내려주셨습니다. 아침이면 온 땅위에 만나를 내려주셨고, 저녁이면, 메추라기를 날려보내서 이스라엘사람들이 먹는 것 때문에 고통받지 않게 해주셨습니다. 매일 아침과 저녁에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물이 없다고 다시 분노하며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들의 모습 같지 않습니까?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깨어나게 하시고, 일하게 하시고, 말하게 하시고, 살아가게 하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깨어나면 입술을 열어 불평과 불만을 말하고, 가족들과 이웃에게 그 분노를 표현합니다. 매일 생명과 은혜의 기적가운데 있으면서도, 구원받은 은혜, 하나님께 사랑받는 은혜를 잊어버리고 살아갑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충분한 것을 망각하고, 충분하지 않은 것, 충분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추구하며 불만과 불평으로 하나님을 시험합니다.

출애굽기 17:5-7절을 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이 분노하는 사람들,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들을 위하여 물을 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물을 주신 장소를 맛사(マサ)라고 불렀습니다. 그 뜻은 하나님을 시험했다는 뜻이며, 다투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자들의 불신을 기록하고 있는 이름이 영원히 남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출애굽기 17:8-12절을 보니, 이스라엘사람들이 출애굽하여 처음으로 전쟁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서 손을 들고 있는 동안은 아말렉군대와 전쟁을 하는 이스라엘이 승리하지만, 힘이 들어 모세의 손이 내려오면 아말렉군대가 이스라엘을 이기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여러 가지 깊은 진리를 우리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첫째, 모세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사람들을 구원하여 인도하도록 세우신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사람들의 생명과 진리를 인도하는 선생이요, 보호자의 역할입니다. 그가 하나님께 기도하며, 두손을 들고 나아갈때에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입니다.
두 손을 하늘을 향하여 든다는 것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신뢰한다는 신앙입니다. 모세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해주신다는 모세의 간절한 믿음의 표현인 것입니다. 두 손을 드는 것은 항복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하나님께서 해주십시오. 라는 모세의 믿음입니다. 오늘 모세의 믿음의 두손을 가지고 하늘을 향하여 항복하며 하나님을 신뢰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 모세도 인간이었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오랜시간 두 손을 들고 있을 때, 피곤하고 힘들어 자연스럽게 손이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하늘의 하나님의 도우심을 요청하는 믿음의 손이 땅을 향하여 내려오자, 모세의 믿음으로 인한 이스라엘군대가 힘을 잃고, 전쟁에 익숙했던 아말렉군대가 힘을 얻어 이스라엘을 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하나님이 주신 능력이 있으며, 수많은 이스라엘백성을 대표하여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그도 사람입니다. 힘들면 지치고, 마음과 다르게 몸은 내려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돕는 자를 세워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돕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셋째, 모세에게는 모세를 돕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현대교회가 은혜롭게 부흥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전체 성도의 20%가 헌신자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우리교회는 작은 교회입니다. 매주일 예배출석자가 20여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교회는 4명의 헌신자가 필요한 교회입니다. 4명의 헌신으로 이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하는 이유가 될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운데 주님의 교회를 건강하게 부흥시키는 헌신자 20%는 과연 누구일까요?
그런데, 만약 여기에 있는 20명이 모두 교회의 헌신자가 된다면, 이 교회는 100명교회와 같은 영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줄로 믿습니다. 아멘.

그렇게 하나님의 종 모세가 팔이 아파서 자연스럽게 두팔이 땅을 향하여 내려오자, 아론과 훌이 옆에서 모세를 돕는 자가 되어줍니다. 모세를 위하여 돌의자를 가져다가 모세가 앉게 하고, 자신들을 서서 양팔을 한쪽씩 붙들어 하늘을 향하여 들도록 합니다. 이제부터는 모세의 믿음이 아니라, 아론과 훌의 믿음으로 양팔이 하나님을 향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모세의 믿음의 팔이 아니라, 모세의 양팔을 받치고 있는 아론과 훌 두사람의 믿음을 보시고 응답하여 주십니다. 모세가 팔을 들고 있을때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모세를 받치고 하늘로 모세의 팔이 향하도록 한, 두 사람의 믿음대로 모세의 양팔이 하나님을 향하여 들고 있다고 인정하여 주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사람들이 아말렉군대를 쳐서 승리하게 하여 주십니다.

모세가 나이가 많고 경험이 많아서 지도자가 되었고, 돌의자에 앉아서 양팔을 하늘로 드는 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이 세우셨기 때문에 존중받아야 하며, 존경받아야 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모세의 팔을 들어 그를 돕는 자가 된 아론은 모세의 형입니다. 이 사건이 일어난 때는 모세가 80세의 노인일때지만, 아론은 83세의 더 나이많은 노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나이와 관계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돕는 일도 나이와 관계없습니다. 그의 믿음과 그의 겸손함이 하나님께 쓰임받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오랫동안 훈련시키셨고, 많은 고난을 겪게 하셨습니다. 40년동안 바로의 왕궁에서 가장 높은 자로 왕자로 부귀영화를 누렸던 모세를 40년동안 가장 낮은 자로 양치는 목동으로 훈련시키셨습니다. 바로의 왕궁에서는 왕자가 배워야 할 세상의 모든 언어와 학문을 배웠지만, 목동으로의 40년은 자신이 배우고 익힌 세상적인 지식과 교만을 모두 내려놓는 훈련의 시간이었습니다. 40세 청년이 아니라, 80세 노인이 되어서야 하나님은 자신을 자랑하고, 자신의 지식과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주장을 하지 못하게 된 노인 모세를 사용하시려고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은 수많은 이스라엘사람을 구원하시고, 도와주십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그들의 울부짖음과 고통의 기도가 헛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듣지 않으셨던 것이 아니라, 매일 언제나 그들의 아픔과 기도를 듣고 계셨던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80세까지 하나님의 신실한 순종자로 준비될 때까지 인내하며 참으셨을 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첫 번째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여호와닛시[主は我が旗]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나타내시며, 우리를 돕는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오늘, 우리에게 돕는 자는 누구입니까?
그분은 오직 여호와하나님이신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의 아픔과 고통을 쉬지 않고 들으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돕는 때를 기다리며 참고 인내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그분만을 신뢰하십시오. 그리고 그분이 운영하고 세우신 거룩한 예수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돕는 자, 아론과 훌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아래는 일본어설교원고입니다.(번역:최성득형제)

[モーゼが手を上げている間、イスラエルは優勢になり、手を下ろすと、アマレクが優勢になった./モーゼの手が重くなったので、アロンとフルは石を持って来てモーゼの下に置いた.モーゼはその上に座り、アロンとフルはモーゼの両側に立って、彼の手を支えた.その手は、日の沈むまで、しっかりと上げられていた./ヨシュアは、アマレクとその民を剣にかけて打ち破った./主はモーゼに言われた.「このことを文書に書き記して記念とし、また、ヨシュアに読み聞かせよ.『わたしは、アマレクの記憶を天の下から完全にぬぐい去る』と.」/モーゼは祭壇を築いて、それを「主はわが旗」と名付けて、/言った.「彼らは主の御座に背いて手を上げた.主は代代アマレクと戦われる.」.]

天地万物の主人で、創造者である父なる神様のあふれる恩恵が今日皆さんと共にしますようにイエス様の御名で祝福致します。

今日の礼拝と御言葉がここに集まった私たちに初めてのようで最後のような恩恵と感動で豊かな時間になりますようにイエス様の御名で祝福致します。

この一週間、そして短くは13年間、長くは70年近くの間、この世で過ごしたすべての歳月の間、皆さんは偉大なる神様の子供であり、この世に生まれ人間の人性を生きてくる間、父なる神様が皆さんをこの世の中に送られた理由と送られた使命を悟りながら人生を支えてきた皆さん一人、一人を心より祝福致し、また、祝福致します。

(隣の、前と後の方にいらっしゃった偉大な神様の子供である信徒様と偉大な挨拶で交際しましょう。 主の御名で愛します。主の御名で祝福します。主の御名で感謝致します。)

私たちは全員神様の大事な子供です。 生まれた時間も、生まれた場所もすべて違いますが、私たちの身分は神様の子供です。 信じますか? アーメン.
それで私たちは会うたびにお互いに祝福し、愛し合う理由があり、また、愛される理由があって、お互いを尊重して、感謝しなければならない理由があります。

今日私たちは出エジプト記という聖書の御言葉を通じて今から何と3,400年前に書かれた神様と人間の歴史を通じて3,400年前にイスラエル民族と共にされた神様、彼らを救った神様、彼らを助けられた神様が、今日私たちの救い主であり、私たちを助けられるということを信じて、その恩恵を共に分け合いたいとします。

今までこの世の中に生きながら、私たちは時々挫折して、数えきれない程倒れたりしました。 “神様が本当に存在されるのか?”、“神様はなぜ私を助けられないのか?”.
神様を試したり、神様を非難したり、神様を恨んで文句を言いながら、私たちをこの世の中に送られた神様に向かって不満をぶちあけたり、怒ったりもしました。 ところで、本当に神様がおられないで私たちを助けられなかったのでしょうか?

でなければ、神様は私たちを愛されないのでしょうか? 私たちは多くの疑問を持って、信仰生活をしながら、また、礼拝生活をしながらも、絶えず神様に対する疑いと疑惑を持って生きてきたのが事実です。 もし、そうでないならば、私たちは毎週奉げるこの日曜礼拝があまりにも感動的であり、聖霊様で充満された礼拝にな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

一週間に一度奉げる礼拝ですが、この礼拝が生きておられる神様に向かって奉げる礼拝であれば、神様の臨在を感じられなければなりません。 神様を信頼し、神様の助けを求めるのであれば、神様の恩恵が私たちを回復させるように神様に進まなければなりません。

しかし、どうですか? 礼拝を一つの形式的な儀式のように思い、起立して賛美して、座って祈って、御言葉を読んで、説教を聞いて、告白をして、献金を奉げるだけで、結局、一瞬も私たちは神様を信じず、疑って礼拝を終えて帰ります。

感動も、恩恵も聖霊充満も臨在する時間がありません。 私たちが生きておられた神様に会いたいのであれば、その方が臨在することを心から期待して、その方にのみ差し上げる神霊と真情の礼拝でなければ、その方に会うことはできません。 なぜなら、神様はそのように礼拝する者を探し、会われるとおっしゃったためです。

アダムの長男であるカインが奉げた祭事では神様に会うことができませんでした。 カインは神様に奉げる祭事は何の区別のない、偉大さが全くない形式的な祭事であったため、カインが奉げたお供え物とカインを神様は受けられなかったのです。 しかし、弟であるアーベルが奉げた祭事では神様に会うことができました。 アーベルが奉げた祭事は自身が持ったもの中で区別し、偉大な気持ちで準備したのでアーベルとアーベルが奉げたお供え物を神様は受けとりました。

自身の祭事を受けいれてくれなかった神様に怒って顔が真っ赤にカインに神様はおっしゃいました。 “顔を上げられるはずではないか.正しくないなら、罪は戸口で待ち伏せており、お前を求める.お前はそれを支配せねばならないとおっしゃいました。

しかし、カインは御言葉を通じた神様の教えと愛を受けることができませんでした。 なぜなら、彼の心はすでに神様の教えより怒りで充満されていたためです。 罪がすでに彼を支配していたためです。 彼は結局弟アーベルを殺す人類最初の殺人者となりました。

今日私たちがこの礼拝に失敗すれば、私たちは、今日真の礼拝者を探して、真実な子供を探す父なる神様に会うことができなくなります。神様の教えを聞いても悟ることができないならば、私たちは怒って、先には罪の支配を受けて、神様がくれた兄弟を打つカインのような人となるでしょう。 そのように人間は弱くて、また不道徳であり、罪に支配されやすい存在です。 そうであるにも関わらず、神様は私たちを愛し、私たちを助ける方だと聖書には書かれております。

今日本文の御言葉の中で、最も重要な単語は「主はわが旗」という言葉です。 神様は私の旗という意味は、神様が助けられるという意味です。

今日の御言葉の背景は出エジプト記17章全体です。 17章1-3節にはイスラエルの人々は飲める水がないことに怒って腹が立っていたと書かれております。 出エジプト記16章で神様はイスラエルの人々に毎日 (マナ)と (ウズラ)をくださいました。 毎朝なら(マナ)をくださいましたし、夕方なら、(ウズラ)を飛び立たせてイスラエルの人々が食べることに苦痛を受けないようにしました。 毎朝と夕方に奇跡を体験させました。 しかし、もう水がないと神様を試したのです。

我々の姿と同じではありませんか? 毎朝と夕方で私たちに生命をくれて、目覚めるようにして、仕事をするようにして、話すようにして、生きていくようにされるのにもかかわらず、私たちは目覚めれば口を開けて不満と文句をいって、家族や友人達に怒りを表しました。
毎日生命と恩恵の奇跡の中でいながらも、罪から救われた恩恵、神様に愛される恩恵を忘れて生きています。 毎日恵まれていることを忘却(ぼうきゃく)し、充分でないこと、充分でなくてもかまわないことを追求して不満と文句の声をあげ、我々は神様を試しています。

それでもかかわらず、出エジプト記17章5-7節を見ると、神様はモーゼを通じてこの怒る人々、神様を試す者のために水を出して下さいました。 そして水をくれた場所をマサと呼びつけました。 その意味は神様を試したという意味であり、争ったという意味を持ちます。 神様を信頼しない者の不信を表す言葉が永遠に残ることになったのです。

そして引き続き出エジプト記17章8-12節を見ると、イスラエルの人々がエジプトを出てから、初めて戦争を経験することになりました。 ところで奇妙な現象が起こりました。 モーゼが神様の杖を手にとらえて山頂に立って手をあげている間はアマレク軍隊と戦争をするイスラエル軍が勝利しますが、疲れてモーゼの手が下ろせばアマレク軍隊がイスラエルに勝利したのです。 この話は様々深い真理を私たちに教えてくれます。

まず、モーゼは神様がイスラエルの人々を救うために立たせた神様の人ということです。 モーゼはイスラエルの人々の生命と真理を導く先生であり、保護者でありました。 彼が神様にお祈りを奉げ、両手をあげ進む時に神様は彼のお祈りをお聞きになったということです。 両手を空に向かってあげるということは、神様に全てのものを任せ、神様の助けを信頼するという信仰です。 モーゼがすることではなく、神様がなさってくれるというモーゼの切実な信仰の表現であることです。 両手をあげるのは降参の意味を有しています。 私にできることなんて何もありません。すべて、神様に任せます。 というモーゼの信仰です。 今日モーゼの信仰の両手を持って空に向かって降参して神様を信頼する神様の人々になりますようにイエス様の御名で祝福致します。

2つ目は、モーゼも人間なので長い間両手をあげていると、疲れて自然と手が下りてくるということです。 天の神様の助けを求める信仰の手が地に向かって下りてくると、モーゼの信仰によるイスラエル軍隊が力を失い、戦争に熟練しているアマレク軍隊が力を得てイスラエル軍を打ち始めたのです。
神様の人、モーゼは神様が下さった力があり、数多くのイスラエル民族を代表して神様に会うことができる特権を持つ人でありましたが、彼も人間でした。 苦労すると疲れて、心と違って体は下りてくるようになるというです。 それで神様は神様の人を助ける者を立たせたのです。 神様の人を助ける神様の偉大な民になられることをイエス様の御名で祝福致します。

3つ目は、モーゼにはモーゼを助ける者がいたということです。 現代教会が恩恵にあふれて、復興して成長するためには全信徒の2割が献身者である必要があると言われます。 私たちの教会は小さな教会です。 毎週、礼拝に出席する人は20人余りしかいません。 それなら私たちの教会には4人の献身者が必要な教会となります。 4人の献身が復興して成長する理由になるのです。 私たちの中で神様の教会を元気付ける復興させる献身者2割は果たして誰なのでしょうか?
神様の人、モーゼが疲れて腕が痛くて自然と両手が地に向かって下りてきた時、アロンとフルがそばでモーゼを助けました。
モーゼのために石を持ってきてモーゼが座れるようにして、モーゼの両腕を片方ずつつかんで空に向かうように持ち上げたのです。 それはモーゼの信仰だけではなく、アロンとフルの信仰も両腕に含まれるということです。 神様はモーゼの信仰の腕だけではなく、モーゼの両腕を支えているアロンとフルの二人の信仰の腕を見て応じて下さいました。 モーゼが腕を上げている時と同様に、神様はモーゼを支えて空にモーゼの腕が向かうようにした、二人の信仰の通りにモーゼの両腕が神様に向かっていると認めて下さいました。 そして、イスラエルの人々がアマレク軍隊を打って勝利するようにして下さいました。

モーゼが年上で経験が多くて指導者になり、石に座って両腕を空に上げる者となったわけではありません。しかし、彼は神様がたてられた者なので尊重されるべきで、尊敬を受けなければならない者となりました。 モーゼの腕を上げて彼を助ける者になったアロンはモーゼの兄です。 この事件が起きた時はモーゼが80才の老人である時でしたが、アロンは83才でさらに年齢の高い老人でした。 神様がなさる仕事には年齢は関係ありません。 神様の人を助ける偉大な仕事も年齢とは関係ありません。 人の信仰と人の謙遜が神様に使われるだけです。

神様はモーゼを長い間訓練させられましたし、多くの苦難を体験させました。 40年の間、王宮で最も高い者で王子として富貴と栄華を享受(きょうじゅ)したモーゼを40年の間、最も低い者である子羊として訓練させました。王宮で王子が習わなければならない世の中のすべての言語と学問を習ったが、子羊としての40年は自身が学んで身につけた世の中の知識と傲慢を皆下ろす訓練の時間でした。 40才青年ではなく、80才老人になってから、やっと神様は自身の自慢や自身の知識や自身の考えや自身の主張をしなくなった老人モーゼをお使えになろうと呼びました。

そしてもうこのモーゼを通じて神様は数多くのイスラエルの人を救い、助けてくださりました。エジプトで奴隷の人性を暮らしていた彼らの泣き叫ぶ声と苦痛のお祈りは無駄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 神様はこのような声を聞いておられなかったのではなく、毎日いつも彼らの痛みとそのお祈りを聞いておられました。ただ、神様はモーゼが80才まで神様の信実な従順者として準備されるまで忍耐してこらえられただけです。 そして神様はこの最初アマレクとの戦争で[主は我が旗]という名前で私たちに現わされて、私たちを助ける者になってくれました。
ハレルヤ.

今日、私たちに助ける者は誰ですか?
その方はただわが主イエス神様であることを信じて下さい。
今日、私たちの痛みと苦痛を休まないでお聞きになる神様は私たちを助ける時を待って、忍耐してこらえていることを信じて下さい。
神様に祈って下さい。 その方だけを信頼して下さい。 そして、その方が運営して建てられたこの偉大なイエスキリストの体のような教会のために助ける者、アロンとフルような人となりますようにイエス様の御名で祝福致します。

 (お祈り致します。)

 
   
 


Address : 〒124-0005) 東京都葛飾区宝町1-3-15
Copyright ⓒ 2008 동경만나교회. All rights reserved. E-mail. jmcc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