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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2-10 10:13
2013년 02월 10일 여섯번째주일예배 [하나님의 인간]
 글쓴이 : 동경만나교…
조회 : 4,409   추천 : 0  
2013년 2월 10일 동경만나교회 여섯번째 주일예배(한국어)

본문 :『창세기 1:26-28

제목 : 하나님의 인간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神は言われた.「我々にかたどり,我々に似せて,人を造ろう.そして海の魚,空の 鳥,家畜,地の獣,地を這うものすべてを支配させよう.」/ 神は御自分にかたどって人を創造された.神にかたどって創造された.男と女に創造された./ 神は彼らを祝福して言われた.「産めよ,增えよ,地に滿ちて地を從わせよ.海の魚、空の鳥、地の上を這う生き物をすべて支配せよ.」]

인간은 무엇입니까?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요? 인간은 왜? 어떻게? 무엇을 위하여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요? 오늘은 여러분과 저라는 인간본연의 본질적인 문제를 성경을 통하여 진리를 깨달으려고 합니다.

창세기라는 책은 인간역사의 처음, 그리고 하나님과 인간관계의 시작을 계시해서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자료입니다. 그리고 이 책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하나님을 알려주시기 위하여 만들게 하신 하나님의 책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책의 내용을 이해하고 연구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많은 생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은 특별하게 창조작업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의 기준은 하나님 자신이셨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장 26절 말씀을 주의깊게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26절에 인간을 창조하신 근원에 대하여 밝혀주고 있습니다.

かたどり (우리의 형상을 따라)
似せて (우리의 모양대로)

이 말은 의미깊은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かたどり (우리의 형상을 따라) 일본어 가타도리 라는 말은 크게 두가지 의미로 나뉘어집니다. 첫째는, 모방하다는 뜻이 있지만, 둘째는, 상징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모방하여 창조된 존재로서 인간의 모습에는 하나님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을 기독교에서는 속성(屬性)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물의 본질을 이루는 특징이나 성질을 말합니다. 어려운 말이지만 꼭 알아야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본질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속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속성에는 공유적(共有的)속성과 비공유적 속성이 있습니다. 비공유적 속성은 오직 하나님만 가지신 속성입니다. 예를 들면, 전지전능하심, 무소부재하심, 영원불변하심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공유적인 속성은 인간도 하나님과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사랑하는 것, 거룩하게 예배하는 거룩성, 나누고 베풀어주는 마음 같은 것들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모방하여 창조될 때, 하나님의 이 속성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하나님을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상징은 무슨 말입니까? 상징이라는 말은 사전에서 [말로 표현하기 힘든 어떤 사물을 표현하고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이라는 분을 표현하고 증거하는 상징이라는 말이 됩니다. 하나님을 상징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인간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자를 증거하는 증인으로서 상징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동물이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습니까? 동물이 찬양단을 만들고 악기를 만들고 악보를 그려서 노래를 하고 연주를 하며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까? 식물이 성찬식을 기념하고 포도주와 빵을 준비해서 예수님을 기억할 수 있나요? 안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셨지만, 먼저 창조된 식물이나 동물은 하나님을 나타내는 상징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기념하고 증거하는 상징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옆의 분하고 인사하겠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상징입니다. 당신에게서 하나님이 보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연구하다 보면, 하나님이 살아계신 위대한 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는 수없이 많은 증거들이 나타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떤 존재로 살아야 할까요?

첫째, 인간은 기쁜존재로 살아야합니다.(하나님의  영광된 존재입니다.)
1:3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마다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소감발표를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섯째 날 인간을 창조하신 후에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는 흠이 없고 아름답고 조화있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창조의 걸작품인 인간이 창조되었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시고 심히 기뻐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존재의 의미와 목적, 가치관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심히 기뻐하셨다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심히 기쁜 존재임을 말해 줍니다. 도공이 온 심혈을 기울려 도자기를 만들어 불후의 작품이 되었을 때 도공은 그 도자기를 보고 기뻐합니다. 그 때 그 도자기는 도공에게는 없어서는 안되는 귀한 존재로 변하게 됩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인간을 자기 형상대로 만드시고 심히 기뻐하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보시기에 없어서는 안되는 고귀하고 가치있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들을 위해 가장 귀한 독생자 예수그리스도까지 구속주로 대신 내어주시고 우리에게 소망과 하나님의 나라를 약속하여 주셨습니다. 사람은 누군가가 자신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해주면 기뻐하며 행복을 느낍니다.

정작 우리는 자기자신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며 우리의 존재를 천하만물보다 더 귀하게 여겨 주신다는 것을 안다면, 힘이 나고 살 맛이 나지 않겠습니까? 사람들은 누구나 다 자기에 대해서 불만을 갖고 있습니다.‘내 키는 왜 이렇게 크다가 말았을까?,‘내 코는 왜 이렇게 납작하지?,‘내 얼굴은 왜 더 아름답게 생기지 못했을까?,‘나는 왜 이렇게 머리가 나쁠까?,‘내 성격은 왜 이렇게 급하고 다혈질일까?,‘나는 왜 이렇게 부족한 것이 많을까? 이렇게 사람은 여러 가지 이유로 자기자신을 무가치하게 여기고 자학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당신의 손으로 지으시고 심히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모양과 형상을 따라 우리를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어떤 부모가 자기가 낳은 자식을 못생겼다고 하며, 미워하겠습니까? 세상의 어떤 사람이 뭐라고 해도 그 부모의 눈에는 자기자식이 가장 아름답고 예쁘게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큰 사랑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키가 크든 작든, 코가 납짝하든 우뚝하든, 쌍거풀이 있든지 없든지 전혀 상관치 않으시고 최고로 좋다고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타인과 비교해서 기뻐하지 않으시고 절대적으로 인격적으로 기뻐하십니다.

어떤 사람들이 자신을 학대하고 이 환경의 올무, 운명의 쇠사슬에 얽매여 살아가며 불행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 안에서 자아발견을 하지 못하고 상대적인 인생을 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거룩하게 최고의 가치를 받아서 창조된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진리를 깨닫게 된다면, 타인과 비교하던 열등감에서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또한 고통스러운 자기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서 행복한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가장 기쁜 존재입니다.

둘째는 인간은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야합니다.

인간이 가져야 할 가치관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으냐? 나쁘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들 앞에서는 조심스럽게 행동하며, 다른 사람들의 말에 신경을 씁니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는 착하고 의로운 척 행동하고 열심히 일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보이지 않은 곳에서는 입술로, 손으로 발로 마음으로 온갖 죄를 저지릅니다. 이처럼 이중적인 인격을 소유한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예배하며 사는 사람들은 사람이 보나 안 보나 다른 것이 없습니다. 아직 다혈질의 성격이 완전히 바뀐 것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 못지않게 잘 참아내도록 훈련되었습니다. 아직 완전하게 죄의 유혹에서 떨어진 것은 아니지만, 은밀한 곳에서 죄 짓기를 두려워하며, 그런 자리를 피해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보고 계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에 등장하는 요셉이 있습니다. 그는 축복을 약속받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아들입니다. 이 요셉은 10명의 형들의 시기와 질투로 인하여 애굽의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부잣집 아들에서 다른 나라 사람의 노예의 신분으로 변한 요셉의 인생은 고통과 좌절뿐이었습니다. 아무것도 희망이 없었고, 기쁨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노예 요셉이 당시의 가장 위대한 제국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미국의 국방장관보다 더 높은 자리입니다. 미국의 국방장관은 다른 어떤 나라에 가더라도 미국대통령의 권위만큼 인정받고 존중받는 위치입니다. 미국의 국방장관이 전용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를 방문하면, 그 나라의 대통령과 총리가 나와서 영접을 하는 높은 신분입니다. 요셉은 그 당시 그보다 더 높은 신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요셉이 이처럼 위대한 인물로 변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노예로 있을 때, 자신이 섬기던 주인인 보디발의 부인이 자신을 유혹하였을 때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고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기를 두려워하였기 때문입니다.

창세기39장9-10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この家では,わたしの上に立つ者はいませんから,わたしの意のままにならないものもありません.ただ,あなたは別です.あなたは御主人の妻ですから.わたしは,どうしてそのように大きな 惡を働いて,神に罪を犯すことができましょう.」/ 彼女は每日ヨセフに言い寄ったが,ヨセフは耳を貸さず,彼女の傍らに寢ることも,共にいることもしなかった.]

하나님앞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의식하고 살아야하며, 죄의 유혹에서 떠나가야 합니다.
오늘날의 장로교회를 있게 한 인물은 존칼빈이라는 신학자이자 목사입니다. 그의 생애의 최대 목표는 두가지인데 그것은‘하나님 앞에서(In the sight of God),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For the glory of God)'였다고 합니다.

그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처럼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위대한 인생을 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 때 우리의 심령에 참 자유와 기쁨이 있는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억하십시오. 인간의 진정한 가치는 하나님 앞에 있을때 나타나는 것입니다.

세째는 인간은 창조의 근본목적대로 살아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근본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43:21 말씀입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わたしはこの民をわたしのために造った.彼らはわたしの榮譽を語らねばならない.]

그런데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고 하면, 반발심이 생깁니다. 그러나 인간이 창조자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산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노예나 종이 되어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을 신뢰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라는 의미입니다. 만약, 인간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살아간다면, 인간은 다른 우상을 신으로 섬기며, 돈과 먹을 것만을 추구하는 동물적인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인생의 목적을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義)를 추구하는데 두고 살아간다면, 하나님이 태초에 인간을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모든 것을 주시고 축복하셨던 것처럼, 인간은 참 행복과 평화를 얻게 될 것입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공부를 하든지, 직장을 다니든지, 장사를 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그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이렇게도 하고 저렇게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의 자유함입니다.

하나님은 왜 인간을 사랑하실까요? 여러분은 하나님이 왜 자신을 사랑하시는지 생각해보신적 있습니까? 아마도 여러분이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간도 자기 자녀를 사랑하는 것은 자기의 혈통, 자기의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마음을 다하여 지으신 인간을 양자로 삼으시고, 자녀된 인간을 보호하시며, 이끄시며, 인도하시며, 축복하시는 것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하나님의 모습을 회복하여 하나님을 닮아가도록 회복시키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알고, 사랑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고 감사, 찬양, 예배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시고 행복하게 살기를 소원하는 분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인간인 우리는 이제부터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주신 사명을 확신하고 회복하여야 합니다.
1장28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후 그들을 축복하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28).‘생육하고 번성하라’이 말씀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을 많이 낳으라는 뜻으로 열매를 많이 맺으라는 것입니다. 열매는 축복의 상징입니다. 사과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할 때 나무로써의 존재 가치가 없습니다. 이처럼 인간이 열매를 맺지 않을 때 인간으로서의 존재가치를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씀은 복음을 전파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적 자녀를 많이 낳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 자녀를 많이 낳을 때 하나님께 영광이 되며 기쁨이 충만한 복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땅을 정복하라’,‘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이 말씀을 볼 때 축복이 바로 사명임을 보게 됩니다.이 사명은 적극적이고 진취적이고 도전적입니다. 또한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는 사명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인간은 단지 먹고 살기 위해 사는 일차원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먹고 살기 위해 공부하고, 먹고 살기 위해 직장을 다닌다면, 우리는 꿈도, 희망도 없는 피곤한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사명을 위하여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거룩한 존재의 모습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우리의 영혼은 기뻐하며, 이 세상이 주지 못하는 평화를 얻게 될 것입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위대하게 하는 것은 부나 권세나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명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을 증거하며 살아가는 사명입니다. 사명은 우리를 더욱 인간답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 무엇입니까? 그것은“사람을 취하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 죽어가고 있는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사람을 살리는 것이요.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우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땅 끝까지 나아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

이 사명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주님의 명령입니다. 이 사명을 영접한 개인이나 사회나 국가는 축복을 받습니다. 반면에 이 사명을 잃어버린 인간은 운명의 노예가 되어 비참하고 멸망하게 됩니다.

18세기 청교도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이 당시 라틴 계통은 남미 대륙으로 금을 찾으러 몰려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합니까? 남미는 금도 없고 복음도 없습니다. 그러나 신앙을 찾아 미국으로 간 청교도들은 어떠합니까? 그들은 짧은 시간에 거대한 국가를 세우고 찬란한 문명과 복음의 꽃을 피웠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미국의 청교도신앙이 타락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공립학교에서 기도가 중지되고, 신앙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기독교를 핍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제는 베리칩이라는 인간을 통제하는 칩을 이식하는 법안을 만들었습니다. 복음 전파의 사명을 잊고 세계에 파송하였던 선교사들을 다 철수하고 있습니다. 미국사회는 병들어서 물질주의와 향락에 빠져 마약과 무기의 나라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복음전파의 사명을 잊어버릴 때 병든 인생, 병든 나라로 전락하게 됩니다.

성숙하지 못한 신자들은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희에게 적당한 먹을 것을 주시면 사명을 감당하겠습니다.” 아닙니다. 사람은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감당할 때부터 먹는 문제, 삶의 문제, 영적인 문제를 해결받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먹고 살아야 사명인의 인생을 살 수 있지 않느냐? 고 생각하며 자신의 생활을 앞세웁니다. 아닙니다. 성경은 바뀌었다고 말합니다. 생활의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하고 복음을 전하려고 한다고 하지만, 그는 평생 자신이 받은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성경은 단호하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이것은 신실하신 주님께서 주신 약속의 말씀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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