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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8-15 10:42
2010년 8월 15일 동경만나주일말씀 (나를 회복하여 주옵소서)
 글쓴이 : 동경만나교…
조회 : 12,850   추천 : 0  
2010년 8월 15일 주일예배 (동경 만나 교회)
『나를 회복하여 주소서』
본문 : 시편 80:3-7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빛을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백성의 기도에 대하여 어느 때까지 노하시리이까?
주께서 그들에게 눈물의 양식을 먹이시며 많은 눈물을 마시게 하셨나이다.
우리를 우리 이웃에게 다툼 거리가 되게 하시니 우리 원수들이 서로 비웃나이다. 만군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회복하여 주시고 주의 얼굴의 광채를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 )
(“神よ,わたしたちを連れ歸り/御顔の光を輝かせ/わたしたちをお救いください.
万軍の神,主よ,あなたの民は祈っています.いつまで怒りの煙をはき續けられるのですか.
あなたは淚のパンをわたしたちに食べさせ/なお,三倍の淚を飮ませられます.
わたしたちは近隣の民のいさかいの的とされ/敵はそれを嘲笑います.
万軍の神よ,わたしたちを連れ歸り/御顔の光を輝かせ/わたしたちをお救いください.”)

이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각기 모양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을때는 참 멋지게 창조하셨다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고 창세기 1장27-28절에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
“神は御自分にかたどって人を創造された.神にかたどって創造された.男と女に創造された.神は彼らを祝福して言われた.「産めよ,增えよ,地に滿ちて地を從わせよ.海の魚,空の鳥,地の上を這う生き物をすべて支配せよ.”(신공동역)

하나님은 영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것일까요?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하나님의 영의 모양입니다. 그것이 우리 인간에게 창조된 하나님의 형상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며, 하나님은 자비로우신 분입디다. 동물에게는 거룩도 없고, 사랑도 없습니다. 단지, 본능적인 능력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배할 수 있는 것도 인간뿐이며, 거룩할 수 있는 것도 인간뿐입니다. 바로 우리가 가진 거룩과 사랑은 하나님의 형상인 것입니다. 그런데 의문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우리가 행복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기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자유롭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고통스럽고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상처라고 말합니다.
육체에 생긴 상처가 아니라서 잘 아물지가 않습니다.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아도 치료되지 않는 상처입니다. 이 상처는 바로 우리의 마음과 영혼에 생긴 상처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그 상처의 본질과 상처로부터 자유를 얻고, 행복해 질수 있는 방법을 성경말씀을 통해서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먼저, 이 영혼의 상처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명령이 있습니다. 이 명령은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것이며, 자신에게 내리는 명령입니다. 여러분 모두 자신을 향한 행복의 명령을 내리십시오. 같이 외쳐봅니다.

첫째, 상처로부터 자유하라!
둘째, 오늘 상처에서 회복하라!
셋째, 지금 행복하지 못한 마음은 바뀌어라!

지금부터 이 세가지 명령이 힘을 낼수있도록 성경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상처들을 치료해 나가기를 원합니다. 여러분도 기대하십니까? 아멘.
첫 번째 방법은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용서하라!)
그런데 누구를 용서하라는 말입니까? 생각만 나면 화가 나는 그를 용서하라는 말입니까? 어떻게 용서합니까? 한두 번도 아니고 만날 때마다 화나게 하는데요. 아닙니다. 그가 아니라, 나를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사실은 내가 아는 나는 그보다 더 나쁜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7:3-4절 말씀입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あなたは,兄弟の目にあるおが屑は見えるのに,なぜ自分の目の中の丸太に氣づかないのか.兄弟に向かって,『あなたの目からおが屑を取らせてください』と,どうして言えようか.自分の目に丸太があるではないか.”
우리는 언제나 나의 죄를 들키지 않기 위하여 다른 사람의 작은 죄를 밖으로 드러내려고 노력합니다. 나의 열등감을 발각당하지 않으려고 다른 사람의 열등감을 끄집어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수록 우리의 영혼은 더욱 깊은 상처로 괴로워하며, 다른 사람의 영혼도 상처를 입혀가고 있습니다.

자, 우리의 상처를 치료하는 첫단계는 무엇일까요? 환자가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 해야하는 첫단계는 무엇입니까? 의사선생님에게 진찰을 받는 것입니다. 그것을 용서라고 하겠습니다. 용서!

(용서)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주어야 할 유산 중 하나는 대인관계에서 성공할 수 있는 건강한 자존감입니다. 그런데 이 자존감은 부모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용서를 통해 얻게 되기 때문에 부모는 자녀에게 이 무조건적인 사랑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자녀의 잘못까지도 무조건 사랑으로 덮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어렸을 때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자란 사람은 사랑받지 못한 상처를 한탄하면서 자기 자녀에게도 사랑을 주지 못합니다. 사랑을 받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사랑할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상처라는 것은, 내가 원하는 대로 사랑받지도 못했고 존중받지도 못했다는 것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즉, 자신의 이기심이 외부로부터/ 다른 사람들로부터 채워지지 못했다는 겁니다. 바로 이 이기심이 상처를 스스로 불러들인 범인입니다. 이 상처를 치유받기 위해서는 상처를 주었다고 생각하는 부모나 이웃을 탓하기에 앞서 먼저 자신의 이기심의 죄를 회개하고 용서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온갖 가난과 고통과 박해를 경험하신 분이시지만 상처가 없으신 분입니다. 예수님에게는 이기심이란 죄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상처 때문에 고통 받으시는 분은 반드시 자신을 먼저 용서하는 것에서부터 그 영혼의 상처가 치료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 누가복음 5장에는 한 중풍병자를 고치신 예수님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많은 사람들 때문에 주님을 만나기가 어렵다고 판단한 이 병자가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지붕을 뚫고 누운채 침대를 공중에서 달아 예수님 앞으로 내립니다. 그 믿음에 크게 감동하신 예수님은 그 환자를 향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네 죄가 다 용서받았다.”
“네 병이 다 나았다”는 말씀대신 “네 죄가 다 용서 받았다”고 하신 이유는 그 사람의 병의 원인이 죄 때문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 보다는 죄가 질병과 연관이 있음을 암시하신 말씀하신 것입니다. 모든 병이 죄때문은 아닙니다. 어떤 사이비종교집단에서는 감기에 걸려도 귀신들렸다고 하는데 그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입니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겨울에 이불없이 잠자면 다 감기에 걸리는데 그럼 이불이 귀신을 불러들이는 도구입니까? 아닙니다.

언제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이 죄를 불러들이고 그 죄는 고통으로 다가오는데 질병도 그 많은 고통 중의 하나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분명히 죄와 관계된 질병이 찾아왔을 때 우리는 육체적인 치료와 함께 그 죄와 연관된 영적인 문제를 다룰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가정 안에 질병으로 인한 고통이나 관계의 불일치에서 오는 고통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먼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하나님과의 잘못된 관계가 있는지를 먼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거기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세우십시오. 매일 말씀을 가깝게 두고 읽고, 묵상하고 공부하세요. 모르면 기도하시고, 목사님에게 전화해서라도 물어보세요. 하나님의 말씀은 가정을 변화시켜 이 땅에서의 천국을 맛보게 해주는 놀라운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때에 나의 죄가 깨달아지고, 회개하게 되는 힘이 있습니다. 나를 용서하는 그 전 단계로 말씀으로 나의 죄를 진찰하고 치료하는 것입니다.

(적개심에 관한 이야기)
가정의학 전문의인 돈콜버트 박사는 어느 날 심각한 고혈압 증세 때문에 다량의 혈압약을 복용하고 있었던 신자 한 사람과 상담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고혈압을 일으킬만한 소위 비만과 같은 신체적 결함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그와 상담하면서 콜버트 박사는 과거 그가 섬기던 교회 안에 심각한 분쟁이 생기면서 교회 신자들과의 갈등 때문에 그 교회를 떠나게 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그들에 대한 분노와 증오의 감정이 적개심으로 나타나면서 그의 혈압이 오르게 된 주된 원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극심한 적개심에 사로잡히게 되면 사실 상처를 준 사람들을 용서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담당 의사의 권고를 따라 이 신자는 실행에 옮겼습니다. 먼저, 하나님 앞에 그의 마음을 토해내면서 회개와 용서의 시간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의 평안을 되찾게 되자 그들을 직접 만나 용서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평안과 함께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고혈압 증세가 사라지고 혈압이 정상을 되찾은 것은 물론 한 때 험상궂게 보였던 그의 얼굴 모습도 전혀 딴 사람처럼 평온하게 변해갔습니다.

사람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적개심을 지닌 채 살아갑니다. 그렇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게 되면 영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심각한 해악이 생겨나게 됩니다. 따라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이 치명적인 적개심의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합니다. 그가 바로 은혜 받은 지혜자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분노를 이겨내라는 것입니다. (분노를 이겨내라!)
분노는 영혼의 암세포입니다. 치료에 들어가면, 의료기계들이 몸에 닿을때마다 기분이 좋지는 않지만, 참아야 고칠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분노를 인내하고 참아야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 속에서 어려움에 부딪칠 때마다 분노하는 습관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분노는 마치 영혼의 암세포와도 같아서 사람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파괴합니다.
분노의 포로가 된 사람들은 대부분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지 못한데 대한 마음의 상처를 지니고 있습니다. 바로 이 상처가 자신을 정당화하면서 완벽한 논리로 자신을 변명하지요. 그러면서 문제의 원인을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립니다. 이것이 바로 비뚤어진 부정적 성품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같은 분노의 감정을 안은 채 결혼하기 때문에 상대배우자를 잘 알지 못하는 결혼 초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남편과 아내를 부부사이의 어떤 어려움도 서로 고백하고 위로를 나눌 도움의 대상으로 맺어주셨습니다. 그래서 부부는 자신의 상처를 내어 놓고 고백하고 서로를 용납하면서 그 상처가 치유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신뢰의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종교개혁가 마틴루터 선생님도 자신이 치러야 했던 가장 치열한 투쟁의 대상은 잘못된 교회제도이기에 앞서 자신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었던 분노였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가족을 돌보기 원한다면, 여러분 이외의 사람들을 돕기를 원한다면, 먼저 해결되지 않은 자신의 분노부터 치유 받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분노란 사람을 죽이는 영혼의 암세포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가 서로를 분노하게 만드는 위험한 말의 습관들을 고쳐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대화중에 사용하는 “절대로” 또는 “매일” 같은 말 속에는 상대방의 감정을 쑤셔대는 공격의 칼날이 숨겨져 있습니다.
어느 날 저녁 아내가 “당신은 맨날 TV 앞에만 앉아 있으니 편하겠구려”라는 가시 돋친 한 마디 말을 내뱉자 남편이 고개를 들더니 대답합니다. “하루 종일 집에서 빈둥거리는 당신은 얼마나 편할까?” 하고
빈정거립니다. 이때부터 이들 부부의 가정은 평화가 깨지고 분노로 인한 전쟁터로 변해버립니다.

성경에는 이 말하는 습관에 대한 지혜의 말씀이 있습니다. 야고보서1:19절입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わたしの愛する兄弟たち,よくわきまえていなさい.だれでも,聞くのに早く,話すのに遲く,また怒るのに遲いようにしなさい.) 아멘.
이것이 바로 성경의 말씀에 순종하는 방법입니다. 상대의 말을 잘 듣는 습관을 기르기 위해서는 그가 말한 것을 반복해서 물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사실 속히 듣고 더디 말하는 것이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생각 없이 즉각적으로 응답할 경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상대방의 마음을 공격하는 공격적인 언어가 사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사이의 대화의 목표는 누가 말을 잘해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관계를 유지하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혹시 「A타입 인간」이라는 말을 아십니까?
지금으로부터 50여 년전, 샌프란시스코의 외과의사였던 프리드만은 A타입 인간이란 말을 쓰기 시작했는데 Anger, 즉 분노라는 단어의 첫 글자인 A를 사용 한데서 보듯이 이는 분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A타입 인간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은 그 성격이 조급하고 경쟁적이며 항상 서두르면서 다른 사람에 대해 자주 화를 냅니다. 이들은 또한 야망이 많아서 일이 지체되거나 남의 간섭 받는 것을 싫어함은 물론 사람과의 대화에서도 상대방의 말을 잘 끊고 자기 말만 합니다. 또한 교통체증을 참지 못한 채 앞차를 향해 경적을 울려대지요. 이 모든 행동 뒤에는 마음속의 분노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같은 A타입 인간은 자신의 문제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분노라 하지 않고 불같은 성격이라고 말합니다.(그러나 불같은 성격이 아니라 불독같은 성격입니다. 불독이 뭡니까? 강아지가 아니고 개입니다. 다시말하면, 개같은.. 더 이상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래서 한 번씩 불같이 화를 내고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금방 정상으로 돌아갑니다. 또한, 다시 화내는 일이 반복되면, 자신의 성격은 맺고 끊는 게 확실하고 뒤끝은 없다면서 또 다른 변명을 늘어놓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한 사람은 그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아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낸다는 성경의 말씀을 따라 이 분노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12장 35절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善い人は,良いものを入れた倉から良いものを取り出し,惡い人は,惡いものを入れた倉から 惡いものを取り出してくる.”

여러분의 가족들, 사람들을 향하여 권위있는 말을 사용하십시오.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한 심리연구소의 두 연구원은 사람의 말과 행동이 씨앗의 발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한 적이 있습니다. 이들은 두 개의 화분에 똑같은 흙과 비료를 섞어 넣은 다음 23개씩의 씨앗을 심었습니다. 그리고는 두 화분을 같은 온실 속에 두어서 씨앗이 발아되는 동안 똑같은 태양열을 받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하루에 세 번씩 첫 번째 화분에 심겨져 있는 씨앗들을 향해 “너는 절대로 흙을 뚫고 나와 싹을 틔울 수 없어. 혹시 싹이 난다 해도 곧 말라 죽을 거야.”라는 말로 학대했는가 하면 두번째 화분에게는 정반대로 대했습니다. “그래, 내가 정성껏 심은 씨앗들은 다 잘 자란단다. 너도 마찬가지야. 너는 분명히 아름다운 식물로 자라나서 예쁜 꽃을 피우게 될 거야. 그 날이 기다려지는구나.” 네 이렇게 말이지요.
드디어 3주간의 시간이 지나 두 화분의 사진이 유명한 주간 잡지인 타임지에 실렸습니다. 그런데 부정적인 말로 학대를 받았던 화분에는 몇 개의 작은 싹만 나왔을 뿐이지만 격려의 말을 듣고 자란 화분에는 길게 자란 여러 개의 줄기들이 활짝 핀 꽃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말과 행동이 식물의 씨앗에도 영향을 미친다면 가까운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사용하는 말과 행동의 결과는 엄청날 것입니다. 여러분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여러분의 입에서 나오는 사랑의 말, 위로의 말, 격려의 말이 얼마나 그들을 축복하는지 모릅니다.

오늘 우리가 할 일은 분노의 말 대신에 축복과 사랑의 말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방법은 애통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분노를 이겨내라!)
치료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겸손하게 마음을 낮출 필요가 있습니다. 의사들이 가장 싫어하는 환자가 어떤 환자인줄 아세요? 아는척 하는 환자입니다. 의사가 진찰도 안 끝났는데 자기 병이 무엇무엇 일꺼라고 하고, 어떻게 해야 치료된다고 처방전까지 만드는 환자가 가장 싫다고 합니다.

 마태복음 5장 3-4절 말씀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心の貧しい人々は,幸いである,/天の國はその人たちのものである.
悲しむ人々は,幸いである,/その人たちは慰められる.”

성경 마태복음에는 애통하는 자는 위로의 복을 받게 된다는 말씀이 나오는데 여기서의 애통함이란 사람의 죄를 보면서 느끼게 되는 거룩한 슬픔입니다. 우리는 종종 나 자신의 이기적인 마음, 또한 만나는 사람들의 완악한 마음을 대하면서 깜짝 놀랍니다. 이 사회의 악함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바울사도는 이 같은 애통함을 통해 일생동안 사람들을 위해 헌신 했고 또한 자기 자신의 죄와 맞서 싸웠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을 볼 때 그의 외모나 조건이나 환경보다는 감추어진 내면의 영적 빈곤함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죄를 보면서 불쌍히 여기고 슬퍼하면서 복음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는 우리는 모든 사람과의 관계에서 성공하는 진정한 승리자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이 사람의 죄를 보고 슬퍼하면서 이 타락한 사회 속으로 들어가서 죄에서 인도해 낼 때,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한 동역자로써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위로의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예레미야33:6-8 말씀입니다.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읍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안과 진실이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 내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여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며, 내가 그들을 내게 범한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며 그들이 내게 범하며 행한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라.)
(しかし,見よ,わたしはこの都に,いやしと治癒と回復とをもたらし,彼らをいやしてまことの平和を豊かに 示す. そして,ユダとイスラエルの繁榮を回復し,彼らを初めのときのように建て直す.わたしに對して犯したすべての罪から彼らを淸め,犯した罪と反逆のすべてを赦す.)

그리고 마음이 가난한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영적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 마음이 가난합니다. 영적으로 너무나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힘으로는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도 맺을 수 없고 하나님의 방법을 따를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 나의 마음이 가난한 것, 그래서 나는 영적으로 빈곤한 죄인임을 시인하고 고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을 기도하십시오. 고백의 기도를 하십시오.

이 고백을 주님이 받으시고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천국은 하나님께 자신의 영적 빈곤함을 시인하는 자들의 소유라고 주님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같은 고백 뒤에는 나의 구원을 위해 내가 주님께 드릴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깨닫는 겸손함이 따르게 되는데 이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나의 노력으로 무언가를 해 보려고 했던 욕심을 포기합니다. 그리고 나의 연약한모습 그대로를 고백하고, 십자가 앞에 엎드리면 그때부터 주님이 일하십니다. 그래서 가난한 마음은 치료의 시작이며, 축복의 시작입니다.
 
네 번째 방법은 죄를 미워하되 죄책감으로 괴로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멀리하라)!
치료를 받으면서 또 병에 걸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치과에서 충치치료를 받으면서, 그래도 식사하고 양치를 안하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치료받기 시작한 여러분들은 죄를 멀리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시편39:12-14
(주께서 죄악을 책망하사 사람을 징계하실 때에 그 영화를 좀먹음 같이 소멸하게 하시니 참으로 인생이란 모두 헛될 뿐이니이다 (셀라)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 나는 주와 함께 있는 나그네이며 나의 모든 조상들처럼 떠도나이다
주는 나를 용서하사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
(あなたに罪を責められ,懲らしめられて/人の欲望など蟲けらのようについえます.ああ,人は皆,空しい.〔セラ
主よ,わたしの祈りを聞き/助けを求める叫びに耳を傾けてください.わたしの淚に沈默していないでください.わたしは御もとに身を寄せる者/先祖と同じ宿り人.
あなたの目をわたしからそらせ/立ち直らせてください/わたしが去り,失われる前に.)

성경에는 주인이 여행을 떠나기 전에 세 사람의 종들에게 재산을 나누어 맡기고 여행을 떠나는 주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섯 달란트나 두 달란트 받은 종들은 주인께 순종해서 이익을 남겨 칭찬 받았지만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을 두려워해서 그 돈을 땅속에 감추어 두었다가 다시 꺼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때 한 달란트를 그대로 돌려주면서 종은 말합니다. “만약 자기가 그 돈을 잃게 될 경우 주인에게 받을 책망이 두려워 그렇게 했다” 라고 변명합니다. 이처럼 일을 시작도 해보기 전에 두려워하는 이 종의 마음은 비뚤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이 두려워하는 마음은 사단이 넣어준 죄 된 마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두려움이 아닌 능력과 사랑과 용기를 부어주시는 분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한 달란트 받은 종처럼 두려움 속에 숨어 있으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 않고, 온갖 변명으로 자신을 합리화 시키면서 잘못의 원인을 반드시 다른 사람 탓으로 돌려버리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자신이 죄인임을 나타내는 전형적인 현상입니다.
이 같은 혐오스런 죄인의 태도는,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두려운 생각이 들 때마다 말씀으로 이겨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과 사랑과 용기있는 믿음으로 감사하면서 말씀을 따라 순종해야합니다. 그 때 우리는 다섯 달란트 받은 종처럼 착하고 충성스런 종이라는 하나님의 칭찬과 함께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반드시 우리는 날마다 죄를 미워하고 멀리 떨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죄를 지은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회개하여야 합니다. 카토릭처럼 교회에 와서 신부에게 모두 고백하듯이 목사에게 꼭 와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죄를 깨달은 순간, 그 자리에서 진심으로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드리면 그것으로 완벽하게 용서되는 것입니다.
그 죄까지도 용서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주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상한 사람이 있습니다. 분명히 새벽에 와서 기도하며 회개했는데, 그 다음날 새벽에 똑같은 회개기도를 하며 울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매일 회개하고 매일 같은 죄를 짓고 있나 했더니 그것도 아닙니다. 한번 지은 죄를 자신이 용서하지 못하고 죄책감 때문에 매일 같은 회개기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면, 모두 용서해 주십니다. 그리고 다시 같은 죄를 범죄하지 않도록 노력하며 살아가면 충분한 것입니다.
시편103:12절 말씀입니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東が西から遠い程/わたしたちの背きの罪を遠ざけてくださる.”

다섯 번째 방법은 영혼을 치료하시는 예수님을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9:11
(무리가 알고 따라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영접하사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 병 고칠 자들은 고치시더라.)
(群衆はそのことを知ってイエスの後を追った.イエスはこの人々を迎え,神の國について語り,治療の必要な人々をいやしておられた.)

어느 날 한 나병환자가 주님 앞에 나아와 무릎을 꿇고 “주님, 당신이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할 수 있나이다”라고 병을 고쳐달라고 간청하자 저를 불쌍히 여기신 주님께서는 손을 뻗어 그 환자를 만지면서 “깨끗함을 받으라”고 말씀하시자 그는 즉시 그 병으로부터 고침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이 남들이 꺼려하는 나병환자를 만져주신 이유는 환자에 대한 주님의 사랑과 긍휼함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겉으로 보면 멀쩡해 보일지 모르지만 마음으로는 훨씬 더 더럽고 흉악한 죄인인 우리 곁으로 주님은 오늘도 가까이 오셔서 만져주십니다. 죄를 회개하게 하시고 질병도 고쳐주시고 또 위로하고 격려해주십니다. 그래서 이같은 주님의 은혜가 없이는 우리는 하루도 살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몰려드는 군중들을 피해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우리 역시 가정과 교회와 사회에서 수많은 일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때마다 주님처럼 사람을 떠나고 일을 떠나 주님과의 깊은 기도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지요. 그래야만 인생의 낙담과 실패를 멀리 한 채 주님 앞에서 영원한 승리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12:10-13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물어 이르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
(すると,片手の萎えた人がいた.人々はイエスを訴えようと思って,「安息日に病氣を治すのは,律法で許されていますか」と尋ねた.そこで,イエスは言われた.「あなたたちのうち,だれか羊を一匹持っていて,それが安息日に穴に落ちた場合,手で引き上げてやらない者がいるだろうか.人間は羊よりもはるかに大切なものだ.だから,安息日に善いことをするのは許されている.そしてその人に,「手を伸ばしなさい」と言われた.伸ばすと,もう一方の手のように元どおり良くなった.)

(관점 바꾸기)
한 자그마한 임대 아파트에 혼자 외롭게 살아가는 노인이 있었습니다. 그도 젊었을 때에는 큰 회사의 중역으로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살았던 적도 있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닥친 심장병과 함께 폐의 질환이 겹치며 결국 모든 것을 잃어버린 인생의 실패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고귀한 신분의 소유자임을 알고 있었던 그는 관점을 바꾸었습니다. 이웃으로부터 동정과 위로를 받기보다는 오히려 사랑을 주는 삶을 선택한 겁니다. 그래서 아침마다 아파트 앞에 나가 출근하는 젊은이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면서 하루를 축복해 주기 시작했지요. 주민들의 반응도 정겨워졌습니다. 저녁 때 돌아오다 만나면 인사하고 자신들의 집으로 초대해서 정겨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잦아졌습니다. 이처럼 자신과 이웃에 대한 관점을 바꾼다는 것은 인생을 지옥에서 천국으로 끌어 올리는 비결이 됩니다.

사랑하는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행복한 가정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아가는 한 부인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여름만 되면 불평을 늘어 놓습니다. 수영복을 입으면 팔에 튼 살때문에 창피해서 못살겠다는 겁니다. 이 부인에게는 모든 것이 완벽하기를 바라는 그 비뚤어진 관점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관점을 바꾸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신분을 확인하고 모든 것을 감사한 마음으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합니다. 그때부터, 속 썩이는 남편, 불평하는 아내, 그리고 말썽부리는 아이들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보니, 불행이 감사로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관점의 변화는 인생을 승리로 이끄는 원동력이 됩니다.

사사기15:18-19
(삼손이 심히 목이 말라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께서 종의 손을 통하여 이 큰 구원을 베푸셨사오나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서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의 손에 떨어지겠나이다 하니
하나님이 레히에서 한 우묵한 곳을 터뜨리시니 거기서 물이 솟아나오는지라 삼손이 그것을 마시고 정신이 회복되어 소생하니 그러므로 그 샘 이름을 엔학고레라 불렀으며 그 샘이 오늘까지 레히에 있더라 )
(彼は非常に喉が渴いていたので,主に祈って言った.「あなたはこの大いなる勝利を,この 僕の手によってお與えになりました.しかし今,わたしは喉が渴いて死にそうで,無割禮の者たちの手に落ちようとしています.」 神はレヒのくぼんだ地を裂き,そこから水が湧き出るようにされた.彼はその水を飮んで元氣を取り戾し,生き返った.それゆえ,その泉はエン·ハコレ(祈る者の泉)と呼ばれ,今日も レヒにある.)
마지막으로 사사기서의 말씀으로 오늘 우리의 정신이 회복되고 소생하여 지기를 원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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