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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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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11-28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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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28일 동경만나주일말씀 (감사-3- 감사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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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동경만나교…
 조회 : 4,342  추천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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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28일 주일예배
『감사 -3- 감사의 조건』
본문 : 데살로니가후서 2:13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しかし,主に愛されている兄弟たち,あなたがたのことについて,わたしたちはいつも神に感謝せずにはいられません.なぜなら,あなたがたを聖なる者とする“靈"の力と,眞理に對するあなたがたの信仰とによって,神はあなたがたを,救われるべき者の初穗としてお選びになったからです)
여러분은 교제가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교제가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교제는 서로 나누는 것입니다. 당신의 마음을 내가 이해하고, 당신의 이야기를 내가 들어주고, 나의 마음을 당신이 알아주고, 나의 이야기를 당신이 들어주는 것입니다.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내가 가진 것을 상대방에게 나누어 주고, 상대방이 가진 것을 내가 나누어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교제가 되는 이유는 조건이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당신의 것을 내게 주지 않아도, 나는 내것을 당신에게 나누어 주겠습니다. 나에게 당신에게 줄 것이 없지만, 당신의 것을 조금 나누어 주십시오. 이것이 교제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교제를 조건인줄 압니다.
조건은 무엇입니까? 내가 너에게 나의 것을 줄테니까, 너도 너의 것을 나에게 주어야 한다! 라는 조건입니다. 이 조건은 당신이 당신의 것을 내게 주지 않으면, 나도 내것을 당신에게 주지 않겠다. 는 강한 계약입니다. 다시말하면, 내가 하나님을 믿어줄테니까 하나님은 나를 축복해야한다는 조건을 걸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올바른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아무 조건없이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건이 있는 만남은 거래라고 하며, 조건이 없는 만남은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거래와 사랑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거래는 이해가 없습니다. 물론 용서도 없습니다. 오직 거래에 따른 조건만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용서가 있습니다. 감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은혜가 넘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면서 감사할 수 있는 환경, 감사할 수 있는 이유가 있어서 감사한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조건이 있는 가짜감사입니다. 가짜 감사라는 것은 환경과 조건에 따라서 언제든지 변하는 잠깐의 감사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제목은 『감사의 조건』입니다. 우리는 어떤 조건으로 감사할 수 있는가? 의 질문을 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조건으로 감사할 수 있습니까?
몸이 아픈 사람은 어떨까요? 큰 병이 나서 병원에 입원해서 누워있거나, 암에 걸려서 1년도 못살게 된 환자는 어떨까요? 그의 병이 낳는다면, 통증에서 해방되어 아프지 않게 된다면 얼마든지 감사할 수 있을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프지 않습니다. 병원에 입원하지도 않았습니다. 무서운 큰병이나 암에 걸리지 않은 건강한 몸이지만, 매일 감사하고 있나요? 돈이 없어서 배고플땐 밥을 먹을수 있으면 감사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우리는 밥을 먹게되어도 감사하지 않습니다.
어떤 조건이 충족이 되면, 감사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 조건이 충족되어도 우리는 감사하지 않습니다. 잠깐 감사한 마음이 있다가도 금방 사라집니다. 만약 그 감사의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감사할 이유가 없습니다. (옆사람에게 감사의 인사를 해보실까요? 감사합니다. 무조건 감사합니다.)
무조건 감사한다고 말하니까? 어떻습니까? 정말 감사한 마음이 느껴지십니까? 그렇치 않습니다. 우리는 감사할 수 있는 조건, 감사해야 할 이유를 찾지못하면, 진정한 감사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뭐가 감사해? 뭐가 기뻐? 아니 무슨 감사할 꺼리가 있어야 감사하고, 기뻐할 일이 생겨야 기뻐하지? 뭐가 그렇게 감사해? 뭐가 그렇게 좋아?”
감사하지 못하고, 기쁨이 없는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는 감사하고, 기뻐하는 사람의 모습도 화가 날 수 있습니다. 배고 고픈 사람에게는 밥이 있어도 식욕이 없어서 먹지않는 사람이 화가 나는 조건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요, 사실은 감사할 수 있는 조건은 없습니다.
어떤 조건 때문에 감사한다면 그것은 올바른 감사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말씀인 데살로니가후서 2:13을 다시한번 보겠습니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しかし,主に愛されている兄弟たち,あなたがたのことについて,わたしたちはいつも神に感謝せずにはいられません.なぜなら,あなたがたを聖なる者とする“靈"の力と,眞理に對するあなたがたの信仰とによって,神はあなたがたを,救われるべき者の初穗としてお選びになったからです)
성경은 당연히 우리가 감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선택하셨고, 구원받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구원은 돈이나, 건강이나, 환경의 조건이 아닙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전적인 은혜라는 의미를 아십니까? 우리는 죄로부터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구원받는 일에 인간의 힘, 나의 노력은 1%도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직 100%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로마서11:6절에서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もしそれが惠みによるとすれば,行いにはよりません.もしそうでなければ,惠みはもはや惠みではなくなります.)
시편 3:8 말씀입니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救いは主のもとにあります.あなたの祝福が/あなたの民の上にありますように.)
오늘 여러분에게 퀴즈를 내겠습니다. (문제는 맞힌 분에게는 선물이 있습니다.)
구원은 너무나 놀라운 은혜인데 왜? 구원받은 사람들은 구원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살아갈까요? 아니,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구원의 감격이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정답은 구원이 공짜이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놀라운 보물이 무료로 주어지게 되자, 사람들은 구원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모르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구원받았으니, 예배드려야 한다고 하니까, 일요일에 와서 예배당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구원받았으니 감사드려야 한다고 하니까, 헌금시간에 지갑열어서 구겨진 천엔짜리 두장을 꺼냅니다. 마치 과부가 드린 두렙돈 같습니다. 과부와 다른 점은 과부의 그 두렙돈은 자기 지갑에 있던 자신의 전부였다는 사실입니다.
(예화-어느 아버지의 감사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는 사랑스런 어린 아들의 자전거를 새로 사 주었습니다. 이 자전거는 박스를 뜯고 조립을 해야합니다. 신이 난 아이는 자기가 조립해 보겠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나사를 조이고 힘을 주어야 하는데, 아이의 힘만으로는 어렵습니다. 아빠가 도와주겠다고 했더니, 자기도 할 수 있다면서 화를 냅니다. 마음대로 조립이 되지않자 아들은 점점 힘들어하면서 새 자전거를 타는 기쁨이 사라지고, 자전거를 조립하느라 아빠가 도와주겠다, 싫다 내가 할꺼다.며 아빠와 다투게 되어버렸습니다.
자 여러분! 하나님앞에 있는 우리 모습을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주님앞에서 할수 있는 일은 주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를 누리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신 은혜를 충분히 누리고 쉬어야 다른 사람도 도와줄수 있습니다. 자기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없는 법입니다.
처음에는 거저 주시는 은혜를 감사하게 받는 연습을 해야합니다. 새 자전거를 사와서 아빠가 다 조립해서 안전하게 타게 되었을 때, 그저 편하게 페달을 밝고 달리면 되는 것입니다. 아빠의 기쁨은 아이가 신나게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볼때입니다. 아이가 열심히 자전거를 조립하느라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고 기뻐하는 아빠는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앞에서 내가 해보겠다고 외쳐대는 어린아이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어떤 날은 기뻐하고, 감사하다가도, 어떤 날은 우울하고, 슬프고, 괴로워합니다. 우리가 만약 자신의 구원받은 은혜를 감격속에서 살아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여전히 죄의 유혹과 슬픔속에서 지낼 수밖에 없습니다. 이 병은 일요일에 교회에 나온다고 치료되는 것도 아니고, 예배시간에 앉아있는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어떤 것보다 귀한 것은 내 영혼이 구원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이 놀라운 은혜 때문에 우리는 평생 감사할 수 있는 조건을 얻게 되었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어떤 힘든 상황이 나를 괴롭혀도 내 영혼은 자유합니다. 최소한, 구원받은 우리는 영혼을 죽이는 죄에 더 이상 묶여살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8절 말씀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どんなことにも感謝しなさい.これこそ,キリスト·イエスにおいて,神があなたがたに望んでおられることです.)
국제기아대책기구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50엔이면, 르와다난민에게 일주일치 옥수수죽을 보낼수 있고, 100엔이면, 결핵에 걸린 아이에게 2주분의 치료제를 공급해 줄수 있고, 300엔이면, 북한주민 1사람에게 1달치 식량을 보낼수 있고, 1500엔이면, 아시아 아프리카에 있는 기아난민 한가정에 1달 식량을 보낼수 있습니다. 5천엔이면, 어린아이 235명에게 하시카 예방왁신을 줄수 있습니다. 3만엔이면, 심각한 영양실조의 어린이들을 치료해 줄수 있는 (프랑피너츠)839박스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5만엔이면 말라리아모기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살충처리된 106가족에게 모기장 106동을 전달해 줄수 있습니다.
이 지구의 1억5천만명이 넘는 10살 이하의 아이들이 한달에 100엔도 안되는 돈을 받고 12시간 이상을 앉아서 돌을 깨고, 돌을 등에 지고 나르고, 우리가 먹는 초코렛의 원료인 코코아열매를 따기 위하여 높은 코코아나무를 아무런 안전장비없이 기어오릅니다. 물론 실수로 떨어져서 장애가 되거나, 죽어도 아무도 책임지지않으며, 보험금도 나오지 않습니다.
하루에 1달러 이하로 생활하는 사람들을 절대빈곤인구라고 부릅니다. 현재 전 세계의 절대빈곤인구는 인구의 27.2%인 15억명이 넘습니다. 그리고 해마다 동경도 2개만큼인 2500만 명씩 늘고 있다고 합니다. 절대빈곤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먹고 사는 것도 어렵기 때문에 아이를 키울 능력도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자녀를 돈을 받고 팔아버리는 부모도 있습니다. 부모 곁에서 매일 굶느니 끼니라도 해결하라고 사정이 좀 나은 집으로 보내지만, 팔려간 아이들은 부모의 생각과는 다르게 노예생활을 하며 비참하게 살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우리중에 100엔이 없어서 결핵에 걸린 사람도 없고, 1500엔이 없어서 굶어죽는 사람도 없습니다. 적어도 우리가 사는 일본내에서는 21엔이 없어서 하시카에 걸리는 아이도 없으며, 471엔이 없어서 말라리아에 걸려죽는 사람도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감사할 수 밖에 없는 조건의 하나라면 제가 너무 비약하는 것일까요?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은 왜 매일 우리와 관계없는 나라 사람들, 만난적도 없고 만날 일도 없는 빈곤한 사람들의 이야기만 하느냐? 고 말입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우리는 정말 그들과 아무런 관계도 없다고 생각하나요?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만 사랑하시고, 구원하기 원하신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우리의 도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셔야 할 일이라고 하나님에게 책임전가 하시겠습니까? 우리가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도와야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구원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사람들이기에 우리는 그들을 돕고, 그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1:3 말씀입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니,
(兄弟たち,あなたがたのことをいつも神に感謝せずにはいられません.また,そうするのが當然です.あなたがたの信仰が大いに成長し,お互いに對する一人一人の 愛が,あなたがたすべての間で豊かになっているからです.)
(우리교회는 아주 작은 교회입니다.
그러나 감사할 것이 너무나 많은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성도님은 매주일 모든 성도들이 기분좋게 교회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청소로 섬기기도 하고, 어떤 성도님은 아무도 모르게 교회의 필요한 용품들을 채우기도 하고, 어떤 성도님은 언제나 1시간 일찍 교회에 와서 차량봉사를 하기도 하고, 어떤 성도님은 기도하면서 은혜로운 찬양을 준비하기도 합니다. 그들의 섬김과 헌신이 있기에 우리는 매주일 깨끗한 예배당에서 은혜가운데 예배를 드릴수 있으며, 감사할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은 우리가 감사할 때, 우리의 믿음이 더욱 자란다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믿음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자라나는 것이다, 커져가는 것이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의 믿음은 큰 믿음이 있고, 작은 믿음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물론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성도님은 목사보다 믿음이 큰 분도 있습니다. 그래서 목사의 허물이나 실수도 용서하고 위해서 기도해 줍니다. 어떤 성도님은 교회는 오래 다녔지만 믿음은 많이 자라지 않아서 예수님을 믿은지 몇 년 되지 않는 성도님보다 믿음이 작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큰 젊은 청년성도가 나이가 많으신 성도님을 도와주고, 사랑해줍니다. 왜요? 믿음이 큰자가 작은 자를 섬기는 것이 성경의 원칙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성경에서는 섬김이라고 하며, 다른 말로는 헌신이라고 말합니다. 진정한 헌신은 나보다 약한 사람을 섬기고 도와주는 것입니다.
(보시기참 좋았더라에 나오는 예화입니다.)
영국정부가 중국에서 크게 전공을 세운 골든 장군을 포상하기 위하여 많은 상금과 직위를 주려고 하였으나 그는 모든 것을 거절하고 33회 교전이 기록된 금메달만을 받았습니다. 그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것이며, 그가 참전한 모든 전투의 유일한 기록으로 그의 전부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골든장군이 세상을 떠난후, 그 금메달을 찾았으나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흉년이 심하던 해, 그는 멘체스타에 금메달을 보내어 금을 녹여 판 돈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식량을 사주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그 메달을 녹이라고 보냈던 날의 일기장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다고 합니다.“이 지상에서 내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마지막 물건을 오늘 주 예수님께 바쳤다.”라고. 가장 귀한 것, 가장 귀한 부분, 가장 귀한 시간을 가장 귀한 분에게 드리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헌신입니다.
오늘 나는 무엇 때문에 감사하지 못하는가?
과연 우리가 감사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 우리가 감사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찾아서 돌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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