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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12-05 01:14
2010년 12월 5일 동경만나주일말씀 (감사-4-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까?)
 글쓴이 : 동경만나교…
조회 : 10,357   추천 : 0  
2010년 12월05일 주일예배
『감사 -4-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까?』
본문 : 누가복음 18:43

“그러자 그 소경은 곧 보게 되어 하느님께 감사하며 예수를 따랐다. 이것을 본 사람들은 모두 하느님을 찬양하였다.”(공동번역)
[盲人はたちまち見えるようになり,①神を②ほめたたえながら,③イエスに從った.これを見た民衆は,こぞって神を贊美した.]

이 말씀만으로는 내용 전체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35절부터 43절까지 모두 읽어봐야합니다. 말씀을 이해하기 위하여 오늘 말씀은 공동번역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다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누가복음 18장 35절부터 43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예리고에 가까이 가셨을 때의 일이었다. 어떤 소경이 길 가에 앉아 구걸하고 있다가, 군중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사람들이 나자렛 예수께서 지나가신다고 하자, 그 소경은 곧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하고 소리질렀다. 앞서가던 사람들이 그를 꾸짖으며 떠들지 말라고 일렀으나 그는 더욱 큰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예수께서는 걸음을 멈추시고 그 소경을 데려오라고 하셨다. 소경이 가까이 오자,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셨다. "주님, 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 하고 그가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자, 눈을 떠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 소경은 곧 보게 되어 ①하나님께 ②감사하며 ③예수를 따랐다. 이것을 본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イエスがエリコに近づかれたとき,ある盲人が道端に座って物乞いをしていた.群衆が 通って行くのを耳にして,「これは,いったい何事ですか」と尋ねた.「ナザレのイエス のお通りだ」と知らせると,彼は,「ダビデの子イエスよ,わたしを憐れんでください」と 叫んだ.先に行く人同じが叱りつけて默らせようとしたが,ますます,「ダビデの子よ,わたしを憐れんでください」と叫び續けた.イエスは立ち止まって,盲人をそばに連れて來るように命じられた.彼が近づくと,イエスはお尋ねになった.「何をしてほしいのか.」盲人は,「主よ,目が見えるようになりたいのです」と言った.そこで,イエスは言われた. 「見えるようになれ.あなたの信仰があなたを救った」
盲人はたちまち見えるようになり,①神を②ほめたたえながら,③イエスに從った.これを見た民衆は,こぞって神を贊美した.]

오늘 말씀은 한사람의 소경이 예수님을 만나 믿음으로 구원받고, 예수님에게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이야기에서 굉장히 중요한 말씀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43절 말씀입니다. 43절 말씀입니다.

“그러자 그 소경은 곧 보게 되어 ①하느님께 ②감사하며 ③예수를 따랐다. 이것을 본 사람들은 모두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盲人はたちまち見えるようになり,①神を②ほめたたえながら,③イエスに從った.これを見た民衆は,こぞって神を贊美した.]

저는 이 말씀에서 세가지 교훈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첫째, 눈을 뜬 소경은 누구에게 감사해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알았다는 것입니다.
눈을 뜬 소경은 하나님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은혜를 받고, 축복을 받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누구에게 은혜를 받았는지, 누구에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고 살아갑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너무나 형식적이고 너무나 가식적으로 하나님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너무 모르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에 대하여 이 두꺼운 성경이 소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말씀과 무관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그저 두꺼운 책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경은 단순히 인쇄된 책이 아닙니다. 성경을 펴고 읽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으로 전달이 되지만, 성경을 열어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성경은 단지 서점에서 판매하는 일반책과 다를바가 없습니다. 그리고 일요일에만 보는 아주 재미없는 책이라고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계약의 책입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맺은 계약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니죠, 어쩌면 계약서 정도가 아니라 우리에게 확실하게 약속하신 등기서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등기서류는 무엇입니까? 집을 사면, 그 집이 당신의 것이라고 이름이 기록된 서류입니다. 어떤 사람도 등기되지 않은 이름으로 그 집의 주인이라고 주장할 수 없는 증거입니다.

디모데후서3:15 말씀입니다.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また,自分が幼い日から聖書に親しんできたことをも知っているからです.この書物は,キリスト·イエスへの信仰を通して救いに導く知惠を,あなたに與えることができます.]

성경을 읽어 보십시오. 분명히 알수 있습니다. 바로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의 나라의 상속자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 성경은 우리가 절대로 잊어버려서는 안되는 천국의 등기부등본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안에 기록된 자신의 구원받은 사실을 알지 못한다면, 이 성경은 그 사람에게 책장에 꽂혀있는 많은 책 가운데 한권에 불과할 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을 소중히 하는 방법은 집에 곱게 모셔 놓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 성경을 펴고,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시는 말씀과 교제하십시오. 어렵고 힘들 때, 성경말씀은 위로와 격려가 됩니다. 어떤 풀지 못하는 어려운 문제에 봉착했을 때에도 성경말씀은 해결책을 제시해 줍니다.

마가복음 12:24-25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함이 아니냐.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イエスは言われた.「あなたたちは聖書も神の力も知らないから,そんな思い違いをしているのではないか.死者の中から復活するときには,めとることも嫁ぐこともなく,天使のようになるのだ.]

둘째, 눈을 뜬 소경은 감사를 알았다는 것입니다.

 43절 말씀입니다.
“그러자 그 소경은 곧 보게 되어 ①하느님께 ②감사하며 ③예수를 따랐다. 이것을 본 사람들은 모두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盲人はたちまち見えるようになり,①神を②ほめたたえながら,③イエスに從った.これを見た民衆は,こぞって神を贊美した.]

하나님께 감사했다. 고 하는 기록을 우리는 여러 성경을 통하여 감사의 깊은 뜻을 나누어 보겠습니다.

한국어 개역성경입니다.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따르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

일본어 신공동역 성서입니다.
“盲人はたちまち見えるようになり,神をほめたたえながら,イエスに從った.これを見た民衆は,こぞって神を贊美した.”

일본어 신개역 성서입니다.
“彼はたちどころに目が見えるようになり,神をあがめながらイエスについて行った.これを見て民はみな神を贊美した.”

영어 NIV 성경입니다.
“Immediately he received his sight and followed Jesus, praising God. When all the people saw it, they also praised God.”

영어 KJV 성경입니다.
“And immediately he received his sight, and followed him, glorifying God: and all the people, when they saw it, gave praise unto God.”

이 모든 성경의 뜻에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한국어 뜻으로는 감사드리다, 영광을 돌린다. 일본어 뜻으로는 찬송한다, 숭배하다, 영어 뜻으로는 찬송하다, 예배하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소경에서 눈을 뜨게 된 이 사람은 하나님께 예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소경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구원해 주신 은혜에 감격하며 감사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누가복음 17:12-19 말씀에서 또 다른 한 사람을 감사하는 사람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보겠습니다.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ある村に入ると,らい病を患っている十人の人が出迎え,遠くの方に立ち止まったまま,
聲を張り上げて,「イエスさま,先生,どうか,わたしたちを憐れんでください」と言った.イエスはらい病を患っている人たちを見て,「祭司たちのところに行って,體を見せなさい」と言われた.彼らは,そこへ行く途中で淸くされた.その中の一人は,自分がいやされたのを知って,大聲で神を贊美しながら戾って來た.そして,イエスの足もとにひれ伏して感謝した.この人はサマリア人だった.そこで,イエスは言われた.「淸くされたのは 十人ではなかったか.ほかの九人はどこにいるのか.それから,イエスはその人に言われた.「立ち上がって,行きなさい.あなたの信仰があなたを救った.」]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모든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았던 것처럼, 2천년 전에 예수님께 병을 치료받았던 10명의 나병환자 가운데 하나님께 감사하기 위하여 돌아왔던 사람은 한사람 뿐이었다.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감사하기 위하여 돌아온 그 사람은 이방인 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방인이라는 것은 성경도 잘 모르고, 하나님도 잘 모르는 사람, 믿음도 약하고, 연약한 사람을 표현합니다. 그러나 그는 감사할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감사하기 위하여 돌아온 그에게만“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여야 합니다. 17-18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そこで,イエスは言われた.「淸くされたのは十人ではなかったか.ほかの九人はどこにいるのか.この外國人のほかに,神を贊美するために戾って來た者はいないのか.」]

10명의 나병환자가 모두 병고침을 받았습니다. 그 병고침은 은혜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10명의 나병환자 모두에게 구원받았다고 선언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감사하러 오지 않은 9명에 대하여 예수님이 책망하고 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감사하는 한 사람에게만 말씀하십니다.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イエスはその人に言われた.「立ち上がって,行きなさい.あなたの信仰があなたを救った.]

예수님을 잘 믿는다고 스스로 자화자찬하는 우리들도 때때로 하나님앞에 자주 나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앞에 나가서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왜? 나에게 축복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왜? 나의 기도에 빨리 응답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왜? 나의 환경을 변화시켜 주지 않고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종으로 부리려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빌려준 돈을 받아내야 하는 사람처럼 채촉하고 협박하고 있습니다.
그런 우리가 어떻게 감사할 줄 알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에게 감사하지 않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죄를 모두 없애주시기 위하여 어떤 댓가를 치루셔야 했는지 우리는 잘 모릅니다.
알기는 알지만, 이론적으로만 알뿐입니다. 하나님이 흘리신 그 눈물의 의미는 잘 모르고 살아갑니다.
안다면, 우리는 이렇게 살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여러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어떤 일을 하셨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은 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에게 모든 지배권을 주시고 맡겨주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축복하기만 하고, 저주하거나 천벌을 내리지 않는 창조자인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자기 마음에 드는 수많은 우상을 만들어서 하나님을 대신하는 신이라고 숭배하여 왔습니다.

하나님께 드려야 할 예배를 그런 만들어진 신들에게 대신 예배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멸시하고 무시하였습니다. 인간 스스로 심판받고 영원히 죽어야 하는 죄를 저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수천년을 인간들을 죄를 만들고, 죄를 쌓고, 죄를 모아 왔습니다. 이 모든 죄의 댓가는 죽음이며, 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당하는 길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그 모든 죄에서 구원하여 주시려고 한가지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창조주를 배반하고, 인간이 인간을 미워하고 죽이는 죄를 저질러온 우리를 위하여 대신 피흘려 심판받기로 결심하셨습니다.

왜 하나님이 대신 죽으셔야 했을까요?
왜냐하면, 죄가 있는 자가 죄를 용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형수가 다른 사형수를 위하여 두 번 죽을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죄의 값을 치루어 줄수 있는 존재가 없었습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질 수 있는 죄가 없는 존재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 뿐이셨습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는 하나님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입니다.
아버지 하나님,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
거룩하신 성령입니다. 이분을 우리는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늘에서 이 땅으로 내려오셔서 사람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인간이 아니면, 죽어줄수 없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국 인간으로 십자가에서 우리의, 나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어주신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이름이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죄가 없으신 하나님이 죄인인 인간을 위해 죽어주심으로 죄에서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 자만 구원이 허락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그리스도가 인간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어주셔서 내 죄가 용서받고, 구원받았다는 이 복음을 믿을 때, 구원받았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믿으셔야 합니다. 성경의 모든 사실이 안 믿어져도 이것만은 믿어야 구원받습니다.

구원은 이 세상에서 우리의 육체가 죽을 때, 우리의 영혼이 천국으로 인도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육체가 죽기 전에 예수그리스도가 믿는자와 믿지않는 자를 심판하실 때 믿는자로 살아서 구원받게 되는 유일한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셋째, 눈을 뜬 소경은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43절 말씀을 다시한번 보겠습니다.
“그러자 그 소경은 곧 보게 되어 ①하느님께 ②감사하며 ③예수를 따랐다. 이것을 본 사람들은 모두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盲人はたちまち見えるようになり,①神を②ほめたたえながら,③イエスに從った.これを見た民衆は,こぞって神を贊美した.]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지만, 예수님을 따르지는 않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예수님이 자신을 따르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 예수님의 마음, 예수님의 계획은 아무 관심도 없습니다.
오직 자신의 인생, 자신의 마음, 자신의 계획만이 유일한 관심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20%의 사람들이 교회를 다닌다고 합니다. 5명 중에 한명이 교회를 다닙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은 변하지 않습니다. 바닷물은 짠 소금물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바닷물의 소금염분은 3.1-3.8%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이 염분으로 인하여 바닷물은 썩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떤 오염물이던지 바다로 들어가면, 모두 정화시키고, 깨끗하게 만들어냅니다.

그런데 사람은 어떻습니까?
한국은 전 인구의 15%가 넘는 사람들이 기독교인입니다. 그렇지만 한국은 기독교국가가 아닙니다.
여전히 죄인들이 생겨나고, 여전히 배고픈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약 일본인구의 15%가 기독교인이라면 일본은 어떨까요? 일본에는 범죄가 일어나지 않을까요? 일본에서는 홈리스가 다 없어질까요?
순간적으로 개인적인 생각으로 아마도 일본은 기독교국가가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요? 그렇치 않습니다.

기독교국가로 시작된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카나다에 범죄가 없습니까?
기독교국가로 선포했던 로마에 죄가 없습니까? 있습니다. 한국이나 일본과 동일하게 죄를 저지르고 살아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을 따르고 살아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소경은 눈을 뜨는 은혜를 입게 되자, 예수님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자신이 받은 구원의 은혜를 잊어버리지 않는 방법은 구원해주신 분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먹고, 자면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성경은 이 소경이었던 제자가 누구인지는 밝히고 있지 않지만, 분명히 그는 은혜받고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입니다. 내 생활가운데 예수님을 모셔 들일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내 인생에 예수님을 참여시키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은 받고 싶습니다. 이것이 솔직한 우리들의 믿음의 정체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구원받은 것 말고, 죄를 용서해 주신 것 말고, 나는 다른 것이 필요합니다.
천국에 있는 상급말고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수 있는 돈이 필요합니다. 천국에 Q라리 가는 것 말고, 이 세상에서 오래 살수 있는 건강이 필요하다구요. 하나님은 정말 내가 원하는 것 모르세요? 나는 돈과 건강이 필요하단 말입니다. 믿음, 봉사, 충성, 헌신, 선교, 구제 이런 것들은 그 다음이에요. 돈 다음이라구요. 알아 들으시겠어요. 하나님. 그러니, 제발 돈을 주세요. 그리고 건강을 주세요. 환경도 바꿔 주시구요.

그러나 이렇게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아마도 하나님이 주시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얻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디모데전서 4장 2절에 나오는 것으로,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화인맞은 양심,  즉 마비된 양심입니다. 죄를 지어도, 죄의식이 없어야 하고, 하나님을 무시해도 하나님이 두렵지 않는 그런 딱딱한 양심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감사하며 살고 있나요?
우리는 어떨 때 감사할 수 있는지 여러분에게 고베 러브소나타에서 소개된 닉부이치치 라는 남자를 소개하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5분 영상을 소개합니다.)

여러분도 영상을 통해 보신것처럼, 닉부이치치는 두 손도 두 다리도 없이 태어났습니다.
혼자 옷을 입을수도 없지요.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알고 나서 그 인생이 변했습니다.
사명이 생긴겁니다. 전세계를 다니면서 용기를 주고, 젊은이들을 격려하는 것입니다.
캄보디아, 아프리카, 인도,, 전세계를 다니면서 그 불구가 된 몸을 가지고 전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두팔과 두 다리를 가지고도 전도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동경만나교회 성도여러분, 
이 사랑으로, 여러분의 목마른 사랑을 채우기 원하십니까?
여러분의 가슴에 구멍이 뚤려 있습니까?
절망과 낙담으로 흔들리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사랑을 만나야 합니다.

기도합시다.
나도 하나님의 사랑을 만나고 싶다고 소원하십시오.
닉부이치치와 같은 뜨거운 사랑을 체험하고 싶다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 여러분을 혼자 내버려두지 말아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렇게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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