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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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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6-12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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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동경만나교…
 조회 : 4,273  추천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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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12일 주일예배 『그리스도인의 힘③-섬김』 본문 : 마태복음 20:25-28 말씀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そこで,イエスは一同を呼び寄せて言われた.「あなたがたも知っているように,異邦人の間では支配者たちが民を支配し,偉い人たちが權力を振るっている.しかし,あなたがたの間では,そうであってはならない.あなたがたの中で偉くなりたい者は,皆に仕える者になり,いちばん上になりたい者は,皆の僕になりなさい.人の子が,仕えられるためではなく仕えるために,また,多くの人の身代金として自分の命を獻げるために來たのと同じように.」}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사람이 가장 필요하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렇다면, 다른 사람이 살기 위해서 내가 섬기고, 봉사해야 한다고 한다면, 당연하다고 생각이 될까요?
아닙니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을 위하여 내가 존재한다는 것 보다는, 내가 편하고, 내가 살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돈을 내면, 나는 돈을 낸 만큼 다른 사람에게 서비스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봉사를 받기 원하면, 우리는 그 댓가를 지불하여야 합니다.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것도 그렇고, 쇼핑센타에서 물건을 살때도 그렇습니다. 맛있는 식사와 좋은 서비스를 받기 원하면, 좋은 식당에 가서 많은 돈을 지불하여야 합니다. 좋은 물건을 살 때, 친절한 점원의 서비스를 받고 싶으면, 많은 돈을 내야합니다. 280엔짜리 규동을 먹으면서, 종업원이 문밖까지 나와서 인사해 주는 서비스를 바랄수 없습니다. 280원짜리 식사의 서비스는 자기가 문을 열고 들어가서 메뉴를 선택하는 자판기에 돈을 넣고, 티켓을 뽑아서 빈자리가 생길때까지 서서 기다리다가 밥이 나오면 식사를 하고, 물을 더 마시고 싶으면, 자기가 물을 따라 마셔야합니다. 그것이 280엔짜리 식사의 서비스입니다. 아무도 불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280엔짜리 식사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이 세상의 모든 일은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서비스를 하는 사람과 서비스를 받는 사람입니다.
서비스를 하는 사람은 서비스를 받는 사람에게 돈이라는 댓가를 받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다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다릅니다.
돈을 받지 않지만,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해서 살아갑니다. 교회는 참 이상한 곳입니다.
그렇게 섬기는 사람이 교회에서는 존경받는 사람이 됩니다. 그렇게 섬기는 사람이 교회에서는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그렇게 하라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말씀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あなたがたの中で, 偉くなりたい者は,皆に仕える者になり,いちばん上になりたい者は,皆の僕になりなさい.}
참 이해할 수 없는 곳이 교회입니다.
높은 사람은 섬김을 받는 사람이고, 존귀한 사람은 사람들에게 봉사를 받아야 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지만, 교회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너희 중에]라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이곳이 바로 [너희 중에]입니다. 이곳에서 여러분은 존경받고 싶으십니까? 이곳에서 여러분은 존귀한 사람이 되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다른 믿는 자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이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아멘.
그런데 잘못 섬기면, 사람이 다칩니다. 사람의 마음도 다치게 되고, 믿음도 떨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섬길 때, 섬김의 원칙을 가지고 섬겨야 합니다.
세가지 섬김의 원칙이 있습니다.
첫 번째 원칙,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안에서 섬기다가 지쳐버리고, 섬기다가 절망하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무리하게 섬겼기 때문입니다. 무리하게 봉사하다가, 몸에도, 마음에도, 믿음에도 무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섬김은 나의 가능한 한도만큼만 섬기는 것이 첫 번째 원칙입니다.
많은 교회안에서 섬기는 위치가 되는 분들이 집사님들입니다.
집사라는 직분은 교회를 지키고, 교회의 사역을 아름답게 이끌어 나가는 중요한 직분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교회는 집사님들의 헌신과 봉사로 성장하게 됩니다. 교회의 여러 가지 대소사가 집사님들의 섬김으로 성공하게 됩니다. 그런데 많은 집사님들이 1년 혹은, 2-3년을 봉사하지 못하고, 손을 들게 됩니다. 손을 든다는 것은 봉사를 그만두거나, 교회를 안 나가게 되는 경우를 말합니다.
너무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할수 있는 만큼만 하여야 하는데, 한계를 넘어서 무리하게 봉사하다 보니까, 믿음이 안 받쳐 주고, 건강도 안 받쳐주고, 환경도 안 받쳐주는 것입니다.
민수기8:23-26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레위인은 이같이 할지니 곧 이십오 세 이상으로는 회막에 들어가서 복무하고 봉사할 것이요. 오십 세부터는 그 일을 쉬어 봉사하지 아니할 것이나, 그의 형제와 함께 회막에서 돕는 직무를 지킬 것이요 일하지 아니할 것이라 너는 레위인의 직무에 대하여 이같이 할지니라.]
{主はモ―セに仰せになった.以下はレビ人に關することである.二十五歲以上の者は,臨在の幕屋に入って務めに就き,作業をすることができる.五十歲に達した者は務めから身をひかねばならない.二度とそれに從事してはならない.ただし,臨在の幕屋で同族の者が警護の任に當たるのを助けることはできるが,自分で作業をしてはならない.あなたはレビ 人の務めについて,以上のように指示しなければならない.}
이 말씀을 묵상해 보았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왜 하나님은 성막안에서 봉사하는 레위인들에게 나이제한을 두셨을까요?
회막안의 일은 아주 힘든 일들입니다. 성막은 커다란 이동식 텐트같은 것이었습니다. 무거운 물건들을 나르고 닦아내야 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제물로바쳐진 동물들은 소나 양, 염소같은 커다란 동물들이 많았습니다. 하루종일 그 커다란 제물들을 자리고, 옮기는 일은 중노동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50세가 되면, 그런 힘든 일에서는 손을 떼고, 그 나이에 맞는 봉사로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셨습니다. 그 일은 성막을 감시하고, 젊은이들을 돕고, 가르치는 일로 봉사하도록 한 것입니다.
두 번째 원칙, 나에게 맡는 봉사를 하자라는 것입니다.
교회의 봉사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한사람이 모두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나누면 될까요? 각 성도에게 맡는 일을 하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이것을 [은사배치사역]이라고 부릅니다. 각자에게 주신 은사에 따라서, 자신이 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1장 16-18절 말씀
[원하건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그가 나를 자주 격려해 주고 내가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와 만났음이라. (원하건대 주께서 그로 하여금 그 날에 주의 긍휼을 입게 하여 주옵소서) 또 그가 에베소에서 많이 봉사한 것을 네가 잘 아느니라.]
{どうか,主がオネシフォロの家族を憐れんでくださいますように.彼は,わたしをしばしば勵まし,わたしが囚人の 身であることを恥とも思わず,ロ―マに着くとわたしを熱心に探し,見つけ出してくれたのです.どうか,主がかの日に,主のもとで彼に憐れみを授けてくださいますように.彼がエフェソでどれほどわたしに仕えてくれたか,あなたがだれよりもよく知っています.}
사도바울은 오네시보로라고 하는 한사람을 교회에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네시보로라는 이 사람을 축복하며, 이 사람을 기억하라고 교회에 그의 봉사한 일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오네시보로가 어떤 봉사를 했습니까? 그는 바울을 격려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감옥에 있는 바울을 찾아가서 그와 함께 하여주었습니다. 그 당시의 감옥은 죄수의 가족들이 먹을 것과 옷을 넣어주지 않으면 안되었다고 합니다. 전도여행을 하던 바울에게 로마의 감옥은 외롭고 힘들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때 찾아와서 먹을 것을 넣어주고, 옷을 넣어주는 일을 오네시보로가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섬김에 대하여 바울을 잊지않고, 교회에 소개하며 오네시보로를 알아주라고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16장 15:20절 말씀을 다같이 찾아보겠습니다.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같은 사람들과 또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사람에게 순종하라.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온 것을 기뻐하노니 그들이 너희의 부족한 것을 채웠음이라. 그들이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사람들을 알아 주라.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 모든 형제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너희는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兄弟たち,お願いします.あなたがたも知っているように,ステファナの一家は,アカイア州の初穗で,聖なる 者たちに對して勞を惜しまず世話をしてくれました.どうか,あなたがたもこの人たちや,彼らと一緖に働き,勞苦してきたすべての人々に從ってください.ステファナ,フォルトナト,アカイコが來てくれたので,大變うれしく思っています.この人たちは,あなたがたのいないときに,代わりを務めてくれました.わたしとあなたがたとを元氣づけてくれたのです.このような人たちを重んじてください.アジア州の諸敎會があなたがたによろしくと言っています.アキラとプリスカが,その家に集まる敎會の人々と共に,主においてあなたがたにくれぐれもよろしくとのことです.すべての兄弟があなたがたによろしくと言っています.あなたがたも,聖なる口づけによって互いに挨拶を 交わしなさい.}
바울은 또다른 성도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스테바나, 브드나도, 아가이고, 이러한 사람들에게 순종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성도들을 섬기기로 작정하고, 교회의 부족한 것을 채우는 봉사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목회자인 바울선생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가부부였습니다. 바울은 이처럼 목회자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이해해주는 성도들에 대하여 온 교회에 말합니다. 교회는 이런 봉사자들을 알아주라. 고 말합니다. 일본어성경은 이런 사람들을 존중하라. 귀하게 생각하라. 존경하라. 는 뜻으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목회자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 성도, 다른 성도들의 부족한 것을 채워주고 섬기는 성도는 교회에서도 존경받고 순종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섬김의 원칙, 기쁨으로 봉사하라. 는 것입니다.
(첫째 원칙, 내가 할수 있는만큼의 봉사, 둘째 원칙, 나에게 맞는 봉사, 셋째 원칙, 기쁨으로 봉사.)
먼저 말씀을 보겠습니다. 베드로전서4장 9-11절 말씀을 찾아보겠습니다.
[①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②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③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①不平を言わずにもてなし合いなさい.あなたがたはそれぞれ,賜物を授かっているのですから,神のさまざまな惠みの善い 管理者として,その賜物を生かして②互いに仕えなさい.語る者は,神の言葉を語るにふさわしく語りなさい.③奉仕をする人は,神がお與えになった力に應じて奉仕しなさい.それは,すべてのことにおいて,イエス·キリストを通して,神が榮光をお受けになるためです.榮光と力とが,世々限りなく神にありますように,ア―メン}
①이 성경말씀은 우리에게 어떤 자세로 봉사하여야 하는 가에 대하여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원망없이 봉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교회는 성도들은 열심히 봉사하고 있지만, 봉사하면서 자기의 섬김의 은혜를 다 까먹습니다. 마치 외식하는 기도하는 사람들이 사람들 보라고 나 기도 잘한다고, 보이면서 기도할 때, 하나님께 응답받을 모든 칭찬이 이미 받았다. 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봉사하면서, 나 봉사한다. 나 열심히 한다. 라고 말하는 것이나, 봉사하면서 이건 잘못되었고, 이건 불만이고, 하면서 불평불만가운데 섬기는 것도 아무 가치가 없는 봉사라고 성경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②둘째, 봉사할때는 서로 봉사하라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봉사는 상대방에게만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섬김을 받고 싶으면, 내가 조용히, 아무말없이 먼저 섬기기 시작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어느날부터인가 사람들이 나를 존경하고, 나를 사랑하고, 나를 위해 섬겨주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③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가르치고 있습니다.
봉사, 사람들을 섬김이란 쉬운 것이 아닙니다. 내 개인의 힘, 나의 능력, 나의 믿음만으로는 다른 사람을 섬겨줄수가 없습니다. 잠깐이라면 가능하겠지만, 지속적으로 섬길수는 없습니다. 홈리스를 섬기면서 복음을 전하는 어떤 교회의 이야기입니다. 처음에는 홈리스가 교회에 와서 목욕시켜주고, 새옷을 갈아입혀주고, 따뜻한 밥을 주니까, 미소국 한그릇에도 감사하다고, 맛있다고 잘 먹더랍니다. 그런데 어느날부터인가 반찬이 적다고 불평불만하면서 큰 소리를 내더랍니다.
또 어떤 자원봉사자의 동일본피난소 이야기입니다. 처음에는 오니기리 한 개에도 감사하면서 식사를 했는데, 어느날 부터인가 채소와 고기를 달라고 불평불만이더랍니다. 그래서 지금은 채소와 단백질식품을 보내주고 있습니다. 줄때도 “채소와 단백질식품이 왔으니 가져가시오.”하면 안가져갑니다.
“가져가 주세요. 맛있게 드셔 주세요. 받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라고 말해야 자존심 상하지 않게 가져간다고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교회에서 역앞에 나가서 전도지를 사람들에게 줄때도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이 전도지를 받아서 꼭 읽어야합니다. 안 읽으면 구원받을수 없어요.”가 아니라 “이 전도지 받아주셔서 고맙습니다. 가능하면 한번 읽어주세요. 아주 재미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하면서 전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당당하게 복음을 전달하고, 구원받게 해주려는 마음이지만, 받는 사람에게 겸손하게, 기쁘게 섬기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우리의 섬김은 오래갈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섬김은 열매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두 기억하시고 알아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몰라줄수록 하나님은 더욱 알아주십니다.
히브리서 6장 10-12절 말씀을 보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神は不義な方ではないので,あなたがたの働きや,あなたがたが聖なる者たちに以前も今も仕えることによって,神の名のために示したあの愛をお忘れになるようなことはありません.わたしたちは,あなたがたおのおのが最後まで希望を持ち續けるために,同じ熱心さを示してもらいたいと思います.あなたがたが怠け者とならず,信仰と忍耐とによって,約束されたものを受け繼ぐ人たちを見倣う者となってほしいのです.}
그렇습니다. 분명히 성경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섬김과 봉사를 잊지않고 계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단, 우리들에게 원하는 것은, 마지막날까지 소망을 잃어버리지 말고, 열심을 내어 믿음으로 인내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작은 교회에서 매일 열심히 섬겨오시는 성도여러분, 사랑합니다.
오늘 다같이 이시간에 교회를 위하여 쉬임없이 봉사해 주시는 분들을 축복하며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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