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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8-31 19:26
201년 8월28일 말씀제목 [거룩하라!] 레위기11:45절 말씀
 글쓴이 : 동경만나교…
조회 : 3,965   추천 : 0  
2011년 8월 28일 주일예배 『거룩하라-聖別せよ』①

본문 : 레위기 11:45절 말씀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わたしはあなたたちの神になるために,エジプトの國からあなたたちを導き上った主である.
わたしは聖なる者であるから,あなたたちも聖なる者となりなさい.]

우리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은 특별한 행위입니다. 이것을 신앙행위라고 말합니다.
신앙행위라는 것은 특별합니다. 일반적인 의식이나 사회적인 행위와 다른 것입니다.
이 사회에서 가장 위엄있고, 권위가 있는 의식이 어떤 것입니까?

학교의 과정을 마치고 졸업할 때, 졸업식이 있습니다. 기쁨과 아쉬움이 있지만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새출발이기도 합니다. 특히, 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할때는 학위수여식이 있습니다. 오랜시간 연구하고 노력한 결과로 그 분야에서 당신이 최고다. 라고 인정받는 박사학위를 수여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인정받는 예식이라고 해서 인정식(認定式)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예식보다도 소중한 예식이 있습니다. 두사람의 장래를 약속하는 결혼식입니다. 각각 다른 인생을 살아온 두사람이 결합하여 하나의 가정을 이루고 새가족을 이루는 약속이 바로 결혼식입니다. 결혼식은 두사람을 위한 예식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일생을 살았던 한사람의 인생이 이 세상을 떠날 때는 장례식을 합니다. 한사람의 모든 역사와 이 세상에서의 발자취가 마무리되는 조용한 시간이 바로 장례식입니다. 장례식은 한사람을 위한 예식입니다.

아마도 이러한 예식들은 이 사회에서 가장 존중되는 예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예식들의 중심은 사람입니다. 사람이 이 모든 예식의 중심이 됩니다. 사람을 위한 예식입니다. 사람을 위해서 사람들이 모여서 의식을 진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배는 다릅니다. 예배의 중심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오히려 사람이 모든 마음과 정성을 당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예식입니다.

거룩이란 무엇입니까?
거룩이라는 것은 인간에게 사용되는 말이 아닙니다.
거룩은 하나님께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거룩하신 일을 이루시는 거룩하신 하나님」,

이 거룩이라는 말에는 [구별]이라는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구별이라는 것은 성경에서 성별(聖別)이라고 말합니다. 거룩하게 나눔/구별이라는 뜻입니다.
거룩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께 사용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나눔/구별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관계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나누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은 이 거룩한 나눔, 성별에 대하여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들을 함께 은혜나누기를 원합니다. 여러가지 성경의 거룩하라는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시간이 되는데까지 하겠습니다.

첫 번째 성별(聖別)은 - 안식일의 거룩입니다.
신명기 5:12절 말씀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安息日を守ってこれを聖別せよ.あなたの神,主が命じられたとおりに.]아멘.

본래 안식일이라는 것은 창세기부터 시작합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시는 사역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6일동안 일하셨습니다. 그 말씀의 현장을 우리 다같이 성경을 찾아가면서 함께 말씀을 읽겠습니다.

창1장5절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光を昼と呼び,闇を夜と呼ばれた.夕べがあり,朝があった.第一の日である.]
8절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神は大空を天と呼ばれた.夕べがあり,朝があった.第二の日である.]
12-13절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 地は草を芽生えさせ,それぞれの種を持つ草と,それぞれの種を持つ實をつける木を芽生えさせた.神はこれを見て,良しとされた.夕べがあり,朝があった.第三の日である.]
18-19절 [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시고 빛과 어둠을 나뉘게 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 昼と夜を治めさせ,光と闇を分けさせられた.神はこれを見て,良しとされた.夕べがあり,朝があった.第四の日である.]
22-23절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神はそれらのものを祝福して言われた.「産めよ,增えよ,海の水に滿ちよ.鳥は地の上に增えよ.」夕べがあり,朝があった.第五の 日である.]
31절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神はお造りになったすべてのものを御覽になった.見よ,それは極めて良かった.夕べがあり,朝があった.第六の日である.] 아멘.

이렇게 하나님은 6일동안 일하셨습니다. 그리고 7일째는 무엇을 하셨습니까?

창세기 2장 1-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天地万物は完成された.第七の日に,神は御自分の仕事を完成され,第七の日に,神は御自分の仕事を離れ,安息なさった.この日に神はすべての創造の仕事を離れ,安息なさったので,第七の日を神は祝福し,聖別された.]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제7일에는 안식하셨습니다.
그냥 안식하신 것이 아니라, 모든 일에서 손을 놓고 떠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 7일째날 안식일을 축복하시고, 성별(聖別)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6일동안 열심히 일하고, 7일째는 안식을 가지셨습니다. 그리고 그 날을 거룩하게 구별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지켰던 안식일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일요일이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이 지켰던 안식일이 금요일 해질때부터 토요일해질때 까지로, 금요일 오후부터 안식일이 시작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 금요일 이스라엘의 안식일이 시작될 때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율법을 지키기 위해 안식일에 되기 전에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율법의 주인이셨던 예수님을 알지 못했기에, 그들은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안식일 전에 죽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안식일이라는 율법을 깨뜨리시고, 안식일이 시작되는 시간에 모든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죽음은 우리에게 용서와 구원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탄의 정죄에서 승리하셨고, 그 증거로 부활하셨습니다.

그 부활하신 날이 금요일부터 삼일째 되는 날, 즉 일요일 새벽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그 예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율법, 새로운 안식일을 부여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일요일에 교회에 모여 부활하신 예수님을 찬양하고 죽음에서 승리하신 구원의 주님께 예배하는 것입니다.

이전의 율법에 있던 안식일은 율법에 율법을 더하여서 사람을 편히 쉬게 하는 안식일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을 괴롭게 하고, 서로를 정죄하게 하는 안식일로 타락해 있었습니다. 이 율법의 안식일이 어땠는지 아십니까?

(현대 유대인의 안식일 지키기)
제가 한번 여러분들에게 질문해 보겠습니다. 지금 현대를 살고 있는 유대인의 안식일지키기에 대한 질문입니다. 유대인들의 사고방식으로 잘 생각하고 대답해 주십시오.

유대인의 안식일에 요리하는 것은 될까요? 안될까요? (안됩니다. 이유는 열을 가해서 물질의 변화를 가져오는 행위를 하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전에 요리를 해놓고 낮은 불로 데우는 것은 됩니다.)

안식일에 운전하는 것은 될까요? 안될까요? (안됩니다. 마찬가지로 스파크를 일으켜서 연료를 태우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회당이 멀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안식일 전에 자동차를 가져다 놓고, 안식일에 걸어서 가야합니다. 안식일이 끝나면 저녁에 자동차를 타고 돌아갑니다.)

안식일에 돈을 사용할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당연히 없습니다. 가지고 있어도 사용할수 없는 돈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성전에서 예물용 돈을 따로 환전해서 드렸던 것입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에 전화하거나 받는 것은 될까요? 안될까요? (안됩니다. 전화뿐만 아니라 라디오, 텔레비전 등 모든 전기제품의 사용을 금지합니다. 무엇을 끄고, 켤수 있는 행위가 금지되어 있습니다.)

안식일에 전등을 켜는 것은 될까요? 안될까요? (역시 안됩니다. 화장실같은 경우는 안식일전에 아예 켜 놓아야 합니다.)

그럼, 화장실에서 휴지를 사용하는 것은 될까요? 안될까요? (안됩니다. 칸을 자르는 행위가 금지되어 있습니다. 미리 잘라놓거나, 티슈를 사용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에 화초에 물을 주거나, 꽃꽂이를 하는 것은 될까요? 안될까요?(역시 안됩니다. 인간이 무엇을 살리거나, 죽이려고 하는 의도가 있는 행위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미리 물을 주고, 꽃을 사와도 물이 없는 화병에 꽂아두어야 합니다.)

안식일에 쓰고, 그리고, 지우는 것은 될까요? 안될까요? (안됩니다. 안식일에 사용해야 할 물건의 어떤 포장이나, 병뚜껑도 미리 열어놓아야 합니다.)

그러나, 현대유대인의 안식일법에는 중요사항이 마지막에 있습니다.
위급상황이 인간의 삶에 닥칠 때, 모든 것은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이뤄진다.
그래서 위급상황에서 누군가를 병원에 데려가기 위해서는 안식일에도 운전할 수 있다.
전화도 사용될 수 있고, 그밖에 것들도 필요에 따라 사용될 수 있다.
생명을 구하는 것이 안식일 법을 지키는 것보다 우선한다. 는 것입니다.

안식일의 시작은 모세의 십계명(출애굽기 20:8-11)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십계명의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하여 제정해 주신 쉼의 원칙이었습니다. 제1계명에서 4계명까지는 하나님에 관련된 계명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존중하고 구별해야 하는 명령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안식일을 명령하셔서 인간이 쉼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안식일을 명령해 주시지 않았다면, 오늘 일요일에도 쉬지 못하고 일해야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크리스찬 사장의 밑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쉬지 못하고 일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 십계명에서 명령하신 안식일의 본의(本義)를 망각하고 총39조234장에 달하는 금칙을 제정하였고, 6조1항은 이렇게 지시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안식일에 공중 장소에서 개인 주택으로 물건을 운반하는 자는 그가 부주의로 하였으면 그의 죄로 인해 제사를 드릴 것이요, 만일 고의로 했으면 그 몸을 쪼개고 돌로 칠 것이라." 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안식일에 병자를 상에 누인채 운반하는 것은 허락하지만, 상만 운반하는 것은 노동의 죄로서 율법을 어기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누가복음 13:10-17절 말씀을 같이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안수하시니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 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분 내어 무리에게 이르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하지 말 것이니라 하거늘,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그러면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매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그가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니라.]
[安息日に,イエスはある會堂で敎えておられた.そこに,十八年間も病の靈に取りつかれている女がいた.腰が曲がったまま,どうしても伸ばすことができなかった.イエスはその女を見て呼び寄せ,「婦人よ,病氣は治った」と言って,その上に手を置かれた.女は,たちどころに腰がまっすぐになり,神を贊美した.ところが會堂長は,イエスが安息日に病人をいやされたことに腹を立て,群衆に言った.「働くべき日は六日ある.その間に來て治してもらうがよい.安息日はいけない.」しかし,主は彼に答えて言われた.「僞善者たちよ,あなたたちはだれでも,安息日にも牛やろばを飼い葉桶から解いて,水を飮ませに引いて行くではないか.この女はアブラハムの娘なのに,十八年もの間サタンに縛られていたのだ.安息日であっても,その束縛から解いてやるべきではなかったのか.」こう言われると,反對者は皆恥じ入ったが,群衆はこぞって,イエスがなさった數々のすばらしい行いを見て喜んだ.]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는 것, 의료행위도 노동이라고 생각하고, 율법안에 묶어 놓았던 것입니다.  안식일에 들것에 환자를 실어서 운반하는 것은 괜찮지만, 들것만 가져가면 안된다.  그러므로 율법대로라면, 환자를 실으러 가기 위하여 들것만 가져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환자의 집에 가서 그곳에서 들것을 만들어서 환자를 데려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렇듯 안식일의 율법은 인간을 위한 율법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2장1-2절 말씀에 아주 좋은 예가 나와 있습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そのころ,ある安息日にイエスは麥畑を通られた.弟子たちは空腹になったので,麥の穗を摘んで食べ始めた.ファリサイ派の人々がこれを見て,イエスに,「御覽なさい.あなたの弟子たちは,安息日にしてはならないことをしている」と言った.]

많은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말씀을 배우려고 따라다닌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율법을 어기는 장면을 찾아서 고소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마침 그 장면을 목격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이삭을 잘라서 손으로 비벼 먹는 것도 그들의 안식일율법에는 추수하는 노동이 되는 것이며, 안식일을 어기는 것이었습니다.

또 좋은 예화가 있습니다.
누가복음10장30-3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イエスはお答えになった.「ある人がエルサレムからエリコへ下って行く途中,追いはぎに襲われた.追いはぎはその人の服をはぎ取り,毆りつけ,半殺しにしたまま立ち去った.ある祭司がたまたまその道を下って來たが,その人を見ると,道の向こう側を通って行った.同じように,レビ人もその場所にやって來たが,その人を見ると,道の向こう側を通って行った.ところが,旅をしていたあるサマリア人は,そばに來ると,その人を見て憐れに思い,近寄って傷に油とぶどう酒を注ぎ,包帶をして,自分のろばに乘せ,宿屋に連れて行って介抱した.]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신 이유도 한 율법학자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습니다.
이 말씀에서 어떤 사람은 유대인을 말합니다. 유대인이 강도를 만나서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유대인중에서도 존경받는 사람들이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입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야말로 약자를 도와주어야 한다고 배운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바로 그들의 율법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의 율법에 죽은 자의 시체를 만지면 부정하게 되어 제사장은 제사를 집행 할 수 없게 되고, 레위인도 역시 성전에 들어갈 자격을 일정시간동안 읽어버리게 됩니다. 그것이 두려워서 이들은 지금 죽게 된 유대인이 자신들의 손에서 죽게 되면, 율법을 어기는 것이 되기 때문에 그들은 거의 죽게 된 사람을 만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현대사회는 참으로 예수님 믿기가 어려운 세상입니다.
일요일에 일하지 않으면 취직하기 힘든 곳이 많습니다. 일요일에 문을 열면, 돈을 더 많이 벌수 있다고 유혹하는 곳도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날인즉, 지켜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6일 동안은 일하되, 7일째는 하나님의 날로 거룩하게 구별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 안식일에 무엇을 합니까? 그냥 집에서 놀고 먹는 날입니까? 테마파크에 놀러가는 날입니까? 아닙니다. 안식일에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을 예배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오래전부터 안식일을 오늘날의 금요일 저녁 해질때 부터 토요일 해질 때 까지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지켰습니다. 우리와는 다른 날이지만, 거룩하게 구별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모든 상점은 문을 닫았고, 어떤 먹을 것을 구입할 수 없습니다. 오래전에 이스라엘로 여행을 갔던 분들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스라엘에 여행을 가면, 금요일 해지기 전에 토요일 먹을 것까지 사놓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금식해야 할 정도로 아무 곳에서도 음식을 구할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사람들은 안식일에는 모든 것을 놓고 쉬었습니다. 그러나 그냥 쉬는 것이 아닙니다. 이 안식일에 이스라엘사람들은 성전에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로마서 12: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こういうわけで,兄弟たち,神の憐れみによってあなたがたに勸めます.自分の體を神に喜ばれる聖なる生けるいけにえとして獻げなさい.これこそ,あなたがたのなすべき禮拜です.]

유대인들은 주전165년경 마카비 형제들에 의해 잠깐 동안 독립국가의 모습을 보이다가 주전 70년 로마의 장군 디도에 의해 나라가 완전히 멸망당한 후, 1948년 다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세우기까지 2000년 동안 세계를 방황하며 나라 없는 설움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 오랜 세월동안 유대인들은 민족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다시 나라를 세울 수 있었을까요? 많은 연구가들이 안식일 준수가 그 비결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어디를 가든지 몇 가정이 있든지 반드시 회당을 세웁니다. 그 회당에서 안식일을 구별하여 그 날은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웁니다. 자녀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칩니다.

유대인들은 회당, 안식일, 율법 이 세 가지가 동시에 이루어집니다.
안식일에 회당에 모이는 것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민족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2000년이 지난 후에도 다시 나라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이 그들을 지켰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가장 기본적인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안식일 준수에서 가장 근본적인 것은 일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방랑했던 40년 동안 안식일 전날에는 만나를 2일분을 내려주셨다는 것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하루의 첫 번째 일은 천막을 나가서 만나를 주어와서 가족을 위해 요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만나를 모으는 일도 안식일에는 수고하지 않고, 집안에서 가족들과 함께 안식일 전에 모은 만나로 먹고 쉴 수 있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도 매일 이렇게 기도합시다.
주님, 온전히 주일을 구별하여 지키게 하옵소서.
우리의 자녀들이 일생 주일을 지키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우리들이 교회, 주일, 말씀 이 세가지를 지킬 때,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주일에는 교회에 와서 말씀을 듣고 새기는 것입니다.
주일 예배가 우리의 믿음을 지켜주고, 우리의 영혼과 육신의 건강을 지켜주고, 우리의 인생을 지켜줍니다. 주일을 성실하게 지키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두 번째 성별(聖別)은 나와 우리의 거룩입니다.

민수기 11:18절 말씀입니다.
[또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몸을 거룩히 하여 내일 고기 먹기를 기다리라 너희가 울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애굽에 있을 때가 우리에게 좋았다 하는 말이 여호와께 들렸으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실 것이라.]
[民に告げなさい.明日のために自分自身を聖別しなさい.あなたたちは肉を食べることができる.主の耳に達するほど,泣き言を言い,誰か肉を食べさせてくれないものか,エジプトでは幸せだったと訴えたから主はあなたたちに肉をお與えになり,あなたたちは食べることができる.]

레위기 11:44절 말씀입니다.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길짐승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わたしはあなたたちの神,主である.あなたたちは自分自身を聖別して,聖なる者となれ.わたしが聖なる者だからである.地上を這う爬蟲類によって自分を汚してはならない.]

이 말씀들은 우리 몸을 구별하도록 말씀하신 나의 거룩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거룩에 대하여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거룩이란 무엇입니까? 
나와 너의 거룩입니다. 나와 너의 거룩한 관계를 말합니다.
너와 내가 모두 거룩한 관계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거룩한 존재도 아니고 거룩할수도 없는 죄에 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어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고, 구원해 주신 다음부터,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거룩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 말씀으로 히브리서 12:1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すべての人との平和を,また聖なる生活を追い求めなさい.聖なる生活を拔きにして,だれも主を見ることはできません.] 아멘.

모든 사람과 평화를 이루고, 그 평화속에서 거룩한 생활을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평화를 이루지 못하는 사람, 분쟁과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은 하나님을 볼 수 없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만의 거룩이 아니라 우리의 거룩함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갖지 못하는 사람에게 거룩함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문제를 일으키고, 안좋은 감정을 만드는 사람이 어떻게 거룩할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성경은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먼저 모든 사람과 평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 사람들과의 평화속에서 거룩하게 생활하라. 고 말씀합니다.
오늘 우리가 거룩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 가장 가까운 가족들과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다음시간에 세 번째 성별부터 다섯 번째 성별까지 이어서 은혜받기를 원합니다.
오늘 은혜받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과, 나와 우리의 거룩을 위하여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주님이 주신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우리가 되게 하시고, 나와 우리가 모두 거룩할수 있는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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