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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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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9-20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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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년 9월18일 말씀제목 [당신은 사랑받고 있습니다] 요한1서 4:7-12절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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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동경만나교…
 조회 : 3,916  추천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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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18일 주일예배 『당신은 사랑받기 위하여』
본문 : 요한1서 4:7-12절 말씀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①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 ②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 사랑은 여기 있으니 ③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愛する者たち,互いに愛し合いましょう.①愛は神から出るもので,愛する者は皆,神から生まれ,神を知っているからです./ 愛することのない者は神を知りません.神は愛だからです./ ②神は,獨り子を世にお遣わしになりました./ その方によって,わたしたちが生きるようになるためです.ここに,神の愛がわたしたちの內に示されました./ ③わたしたちが神を愛したのではなく,神がわたしたちを愛して,わたしたちの罪を償ういけにえとして,御子をお遣わしになりました.ここに愛があります./ 愛する者たち,神がこのようにわたしたちを愛されたのですから,わたしたちも互いに愛し合うべきです./ いまだかつて神を見た者はいません.わたしたちが互いに愛し合うならば,神はわたしたちの內にとどまってくださり,神の愛がわたしたちの內で全うされているのです.]
오늘은 사랑의 정의에 대하여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사랑, 그리고 우리가 받은 그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함께 은혜를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성경에서 가장 하나님의 사랑을 잘 표현하고 있으며,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씀을 세부분으로 나누어서 함께 말씀을 연구하며, 성령님이 주시는 사랑이 풍성한 시간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첫째,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愛は神から出るもので,愛する者は皆,神から生まれ,神を知っているからです.)
사랑의 근원, 사랑은 어디에서 시작이 되었을까요?
사랑은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이란 하나님의 것이라는 뜻입니다. 분명히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시작되었으며, 하나님이 완성하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가장 핵심입니다. 이 사랑의 시작과 근원을 인정할때에 우리는 그 사랑을 연구할수 있으며,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화)작은 공원에서 세남매가 놀고 있었습니다. 3살짜리와 5살, 7살짜리 귀여운 아이들입니다.
5살 아이가 말합니다. “오빠! 왜 엄마는 아빠가 출장갔다오면 우리보고 나가서 놀라고 하는거야?”7살 오빠가 대답합니다. “에이 바보야, 그건 엄마아빠가 사랑하려고 하는 거야.”
다시 5살아이가 묻습니다. “엄마아빠가 사랑하는데 왜 우리가 공원에서 놀아야 해?”
그러자 3살짜리 아이가 대답합니다. “언니! 사랑은 두 사람만 하는거야.” 너는 3살짜리가 어떻게 아니? 그러자 3살짜리가 대답합니다. “내가 한두살먹은 어린앤줄 알아?”
정말 그렇습니까? 사랑은 한사람만 하는 것일까요? 여러분들은 한사람만 사랑하세요? 아니지요?
그러나, 이 말에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그렇지만,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아니라, [바로 나] 한사람만을 위한 사랑을 표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은 여기에 있는 우리를 사랑해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아직 하나님이 자신을 구원해 주셨는지, 구원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한사람에게 지속적으로, “내가 너를 사랑한단다. 나는 너를 사랑해서 네가 모든 죄에서 용서받고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놓았단다. 이제 너는 나의 사랑을 깨닫고, 내가 너를 위하여 준비한 구원의 길, 예수그리스도를 인정하고, 믿기만 하면 된단다. 이것이 나의 최고의 사랑이란다.”라고 고백하고 계십니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우리는 그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온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본질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탄생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사랑할 줄 아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사랑으로 인간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인간이 가장 사랑해야 하는 존재또한 하나님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인간의 사랑은 조건적이며, 유효기간이 있습니다. 상대방이 나에게 잘해주면, 나도 잘해주지만, 상대방이 나에게 무례하고 하고, 무시하면, 나도 상대방을 무례하게 대하고 무시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무례하지 않습니다. 교만하지도 않고, 거칠지도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의 말씀은 우리들에게 사랑의 실천과 정의에 대하여 잘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3:1-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たとえ,人々の異言,天使たちの異言を語ろうとも,愛がなければ,わたしは騒がしいどら,やかましいシンバル.たとえ,預言する賜物を持ち,あらゆる神秘とあらゆる知識に通じていようとも,たとえ,山を 動かすほどの完全な信仰を持っていようとも,愛がなければ,無に等しい.全財産を貧しい人々のために使い盡くそうとも,誇ろうとしてわが身を死に引き渡そうとも,愛がなければ,わたしに何の益もない.]
어떤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을 많이 읽고 성경지식도 풍부합니다. 기도도 많이 하는 것 같고, 교회에서도 언제나 당당하게 말을 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리더쉽을 발휘하고, 믿음 있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존경할 만합니다. 그러나, 그의 중심에 사랑이 없다면, 그의 행위들이 사랑이 없는 행위, 섬김과 겸손함이 없는 행위라면, 그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고린도전서 13:4-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愛は 忍耐强い.愛は情け深い.ねたまない.愛は自慢せず,高ぶらない.禮を失せず,自分の利益を求めず,いらだたず,恨みを抱かない.不義を喜ばず,眞實を喜ぶ.すべてを忍び,すべてを信じ,すべてを望み,すべてに耐える.]
그렇습니다. 진정한 사랑이란 이런 것입니다. (사랑은 오래참고 온유합니다) 상대방에 대하여 오래 참아주는 것입니다. 온유한 것입니다. 온유함이란 따뜻하고 부드러운 성품을 말합니다. 거칠거나 딱딱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의 성품이 아닙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안에서 교회의 어려운 일들을 섬길때에 이름없이, 빛도없이 섬기는 것입니다. 내 이름이 가능한 드러나지 않도록, 그래서 섬기지 못하는 사람도 열등감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물건을 가져올때는 아무도 모르게 가져다 놓고, 교인들을 위해 사용하기 원할때는 그들이 눈치채고 나를 칭찬하여 하나님께 칭찬받을 일이 없어지게 하지 않도록 행동하는 신앙이 사랑입니다. 많은 믿음없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교회에서 행동한 일에 대하여 칭찬받기를 원합니다. 알아주지 않으면 교회를 떠나갑니다. 그러나 그것을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그것은 교만이라고 말입니다.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않고, 자기유익을 구하지 않고) 때로 무례한 사람이 있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교사된 목사에게 무례히 행동합니다. 오늘 내 얼굴표정을 보고 알아서 행동하시오. 라는 무언의 협박이 있습니다. 무언가 목회자에게 섭섭한 것이 있으면 하나님께 기도하며 되는데, 목회자에게 큰소리를 내고, 얼굴표정을 험악하게 하고 표현합니다. 어떤 교회는 교회를 자신의 상업수단으로 이용하는 교회도 있으며, 국회의원출마를 위해서 큰교회를 선택해서 다니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예수님이 장사꾼들을 매질하여 성전밖으로 내쫒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평생 한번도 화를 낸 일이 없는 예수님도 교회에서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자들에게는 크게 분노하셨습니다. 교회에서 돈을 버는 일만 자기유익을 구하는 걸까요? 교회에서 인정받고, 나를 나타내려고 하는 행위는 자기유익이 아닐까요? 우리는 오늘 한번 생각해보아야겠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고린도후서 1:18-20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神は眞實な方です.だから,あなたがたに向けたわたしたちの言葉は,「然り」であると同時に否」であるというものではありません.わたしたち,つまり,わたしとシルワノとテモテが,あなたがたの間で宣べ傳えた神の子イエス·キリストは,「然り 」と同時に「否」となったような方ではありません.この方においては「然り」だけが實現したのです.神の約束は,ことごとくこの方において「然り」となったからです.それで,わたしたちは神をたたえるため,この方を通して「ア―メン」と唱えます.]
예수님께서 하나님아버지의 모든 말씀에 순종하셨습니다. 그분에게 아니오라는 부정은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예만 있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본받아 우리도 예만 있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합니다. 예수그리스도안에서 예, 아멘으로 인정받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또한 사랑은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분노하고 화를 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대부분이 분노하지 않아도 되고, 화내지 않아도 되는 일들입니다. 참을 수 있는 일에도 화를 냅니다. 그리고 잠시 시간이 지나면 화를 내고 분노했던 것에 대하여 부끄럽고, 죄책감이 찾아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분노하고 화를 낸 것이 악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분노하는 종류는 두종류가 있습니다. 거룩한 분노와 악한 분노입니다. 거룩한 분노는 아주 드문 경우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지켜드리기 위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지키기 위하여 분노할 일이 있습니까? 그런 일로 여러분은 분노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들은 대부분 그렇지 않은 일로 분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지켜드리기 위해서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분노합니다. 나의 계획과, 내 생각과 내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분노합니다. 이 분노하는 습관이 심해지면, 우울증이 되고, 조울증이 되기도 합니다.
내가 지키지 못한 악한 분노의 습관이 나를 이겨서 언제나 분노할 준비를 만들고, 언제나 화를 낼 준비태세를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보다 높은 내 안의 나, 나의 자존심, 나의 생각과 내 자아를 지키기 위하여 우리는 악한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슴에 품은 사람은 악한 것, 불의한 것, 정의롭지 못한 것에 동의하지도 않거니와 참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진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진 사람은 진리가 있는 곳에 머물며, 진리가 가르치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갑니다. 그것을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진리는 무엇입니까? 예수그리스도입니다. 모든 진리이시며, 모든 진리의 창조자이십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사람은 진리속에 머무는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14:6 말씀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イエスは言われた.「わたしは道であり,眞理であり,命である.わたしを通らなければ,だれも父のもとに行くことができない] 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진리는 간단합니다.
디도서 1:1-2절 말씀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바울이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
[神の僕,イエス·キリストの使徒パウロから わたしが使徒とされたのは,神に選ばれた人々の信仰を助け,彼らを信心に一致する眞理の認識に導くためです.これは永遠の命の希望に基づくもので,-]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라고 말씀합니다. 믿음과 경건함이 없는 진리는 말이요, 글일 뿐입니다. 우리속에서 믿음으로 경건함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아직 우리 안에 예수님의 진리가 머물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실천이며, 경건은 구별된 거룩함입니다. 우리가 믿는다고 하면서 말씀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나를 희생하지도 않으면, 그 믿음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경건하게 산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것과 내 것을 구별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시간과 내 시간을 구별하지 못하여 주님의 날인 거룩한 주일을 자기 마음대로 계획하고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분명히 경건은 아닐 것입니다.
참된 경건은 모양과 행위가 동일한 것입니다. 주일에는 일찍 일어나 예배를 준비하고, 가장 깨끗한 돈으로 헌금을 준비하고, 가장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기쁜 마음으로 주일예배에 참여합니다. 11시 예배만 주일이 아닙니다. 예배와 더불어 교회의 모든 형제자매가 일주일 만에 모여 함께 위로하고, 축복하며 교제하는 일요일의 모든 시간이 주일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다른 성도를 섬겨주고, 기쁜 일도, 힘든 일도 함께 나누고, 아픔을 나누는 것이야말로 오늘 일요일을 주일로 지키는 성도의 경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 것입니다.)
고 말씀합니다.
참는 것을 인내라고 합니다. 우리는 인내를 오해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상대방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고, 숫자를 셉니다. 부모와 자식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너 한번만 더하면 용서하지 않을꺼야. 너 한번만 더 잘못하면 그때는 가만두지 않을꺼야.] 이 말은 참 인내의 뜻이 아닙니다. 단지 무서운 징벌을 조금 연기해 주는 것뿐이지, 용서가 아닙니다. 분노와 보복을 키우고 있을 뿐입니다.
용서는 그 잘못을 완전히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나에게 저질렀던 잘못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다음에 같은 잘못을 했을 때, 너 전에도 몇 번이나 똑같은 잘못을 저질렀지?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라고 하는 것은 성경에서 가르치는 인내의 의미가 아닙니다. 인내는 용서하는 것입니다. 끝까지 용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인내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숫자를 세는 것이 아닙니다. 이전의 모든 잘못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새로운 잘못을 저질렀을 때, 잘못했다고 하면, 또다시 완전히 잊어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경적인 인내의 뜻입니다.
둘째, 하나님이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神は,獨り子を世にお遣わしになりました./その方によって,わたしたちが生きるようになるためです.ここに,神の愛がわたしたちの內に示されました.]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났습니다. 그 사랑의 증거로 하나님은 사랑의 실천으로 가장 사랑하시는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이 아들 예수그리스도는 왕중의 왕이요, 창조자의 아들이신 창조자로 이 세상에 오셨지만, 가장 가난하고, 가장 고난받는 자의 자리로 내려오셨습니다. 신이지만, 신의 능력을 가지고 오신 것이 아니라, 밥을 먹지않으면, 배고 고프고, 매를 맞으면 피를 흘리는 연약한 인간으로, 완전한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단지 그분은 죄가 없으며, 죄를 지은 적이 없는 무죄한 분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 증거를 구했고, 하나님은 증거로 예수님을 보내주셨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고, 멸시하고, 결국 죽였습니다. 죽지 않을수 있는 예수님이었지만, 하나님의 구원의 뜻에 순종하여 여기 있는 우리와 나를 살리기 위하여 예수님은 저항하지 않고, 천국의 군대를 동원하시 않으시고, 십자가에서 모든 피를 흘리면서 고통가운데 죽어주셨습니다.
그렇게 죽어야 하는 죄인은 바로 우리들인데, 우리들은 이미 죄인이라서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할 자격이 없었습니다. 이 세상 누구도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지고 죽어줄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무 죄가없는 예수님이 모든 인간, 그리고 한사람, 한사람을 위하여 죽어주셨습니다. 여기 앉아 거져, 공짜로, 무료로 구원받은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을 위하여 죽어주셨습니다.
우리 모든 사람은 그렇게 예수님의 생명으로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차이가 있습니다. 이 구세주 예수님의 사랑의 희생은 믿는 자에게만 구원의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믿을수 없는 자는 아직 구원받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이 시간, 다시 한번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던 그 예수그리스도를 이시간 여러분의 구세주로 인정하십시오. 고백하십시오. 그러면 지금 이시간에 여러분의 영혼이 구원을 약속받습니다.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게 될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고민, 불만, 아픔, 고통, 질병, 괴로움, 문제, 외로움, 우울함도 여러분이 하나님의 아름다운 나라에 들어가는 날에는 모두 없어집니다. 이시간 한번 고백합시다. 잠깐 눈을 감고 따라서 소리내어 고백해 주십시오.
[사랑의 하나님, 나를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내 죄를 모두 용서하시고, 내가 지은 죄로 심판받고 멸망받아 마땅한 나를 / 구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어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셔서 올라가신 천국으로 나도 인도해 주셔서 / 영원한 생명을 얻어 행복하게 살게 해주실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회개기도 드립니다. 아멘]
셋째, 하나님이 먼저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わたしたちが神を愛したのではなく,神がわたしたちを愛して,わたしたちの罪を償ういけにえとして,御子をお遣わしになりました.いまだかつて神を見た者はいません.わたしたちが互いに愛し合うならば,神はわたしたちの內にとどまってくださり,神の愛がわたしたちの內で全うされているのです.)
아무도 먼저 하나님을 사랑한 사람이 없습니다.
여기 있는 우리 가운데도 감히 아무도 먼저 하나님을 사랑한 사람이 없습니다. 이 세상 어떤 사람도 하나님을 먼저 사랑한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사람을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여기 있는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여기 있는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지명해서 사랑하셨습니다.
죄를 가진 죄인이 선하신 하나님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창세기에서 말씀하신대로 에덴동산에서 행복하게 살던 죄없던 인간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는 범죄를 저지르면서 죄인이 되었습니다. 죄인이 되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선하신 하나님의 눈길을 피하는 일이었습니다. 나뭇잎을 잘라 벗은 몸을 가렸고, 자신들을 찾는 하나님을서 피하여 숲속에 숨어버렸습니다.
죄를 짓고 더러워진 죄인을 만날 수 없었던 하나님은 죄가 없는 예수님을 죄인의 죄를 대신하여 죽게하심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화목하게 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생명값으로 우리는 죄인에서 용서받고 구원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용서받고 구원받은 우리 속에는 이제 이전의 죄인이었던 내가 사는 것이 아닙니다. 죄인인 나는 완전히 죽었습니다.
이제 내 안에 사는 것은 예수그리스도입니다.
내 안에 있는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끝없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면(아멘), 서로 용서하면(아멘), 서로 이해하면(아멘), 서로 용납하면(아멘), 서로 희생하면(아멘), 우리 안에 사신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온전히 이룬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갈라디아서 2:20절 말씀으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生きているのは,もはやわたしではありません.キリストがわたしの內に生きておられるのです.わたしが今,肉において生きているのは,わたしを愛し,わたしのために身を獻げられた神の子に對する信仰によるものです.]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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