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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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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7-28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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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7월28일 서른번째주일 [샬롬, 평화의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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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동경만나교…
 조회 : 4,026  추천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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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28일 주일예배-일본어
본문 :『요한복음 16:33』
제목 : 샬롬, 평화의 인사(シャローム、平和の挨拶)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
[これらのことを話したのは,あなたがたがわたしによって平和を得るためである.あなたがたには世で 苦難がある.しかし,勇氣を出しなさい.わたしは旣に世に勝っている.」
"I have told you these things, so that in me you may have peace. In this world you will have trouble. But take heart! I have overcome the world."]
평화는 축복입니다.
마음이 평안한 사람, 가정이 평안한 사람, 평화가 있는 나라에서 살고 있는 사람은 축복받은 사람이 틀림없습니다. 우리는 오늘 성경말씀을 통해서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평화의 사람, 평화를 축복받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평화의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어떤 사람이 평화를 얻을 수 있습니까?
첫째, 나를 알아야 합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자신을 평화의 사람으로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현재 여러분 자신의 마음이 평화로 가득 차 있는가? 아니면 근심과 걱정으로 가득 차 있는가? 이것은 자기자신만 알 수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를 돌아볼 때, 자기의 마음속에 평안이 없다면, 평안을 구해야 합니다. 평화가 필요한 사람입니다.
둘째, 내가 가진 재능, 달란트를 알아야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재가 제일 잘 하는 것은 무엇인지, 내가 가장 즐겁고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알아서 자신을 평화로 준비해 가야 합니다.
평화, 평안은 행복한 마음의 열쇠입니다. 모든 사람은 일을 하고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즐겁고 기쁘게 일을 하지만, 어떤 사람은 힘들고 고통스럽게 일을 합니다. 자신의 재능과 달란트에 맞는 일을 하는 사람은 일이 많고, 힘들어도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재능과 달란트에 맞지 않는 일을 하는 사람은 그 일이 많지 않고, 힘들지 않아도 고통스럽습니다.
셋째, 누구를 만나야 하는지 결정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그 인생이 바뀌기도 합니다.
가족은 다릅니다. 부모와 형제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노력한다고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가족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때로, 내 맘에 안드는 선물을 받을 때도 있는 것처럼, 가족도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족은 하나님의 권한에 있는 하나님의 선물임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가족은 서로서로가 돌보고 지켜주어야 하는 의무를 가진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 자신에게 주어진 가족은 우리 마음대로 끊을 수 있는 관계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를 만나야 평화를 얻을 수 있을까요?
첫째, 내 이웃을 잘 만나야합니다.
평화의 이웃을 만나면, 이웃관계가 늘 평안합니다. 이웃이 평화의 사람이어야 우리 집도 평화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웃이 평화가 없는 사람들이면, 우리집도 평화를 지키기가 힘들어집니다. 그래서 평화의 이웃을 만나야 합니다.
둘째, 친구를 잘 만나야합니다.
좋은 친구, 평화를 전하는 친구는 좋은 소식입니다. 그러나, 평화를 전하지 않는 친구가 있습니다. 만날때마다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해주는 친구, 근심과 걱정을 전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만나도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비난하는 이야기만 하는 친구는 평화의 친구가 아닙니다. 만나면 좋은 이야기, 좋은 소식, 사람을 따뜻하게 위로하고 격려하는 친구를 만나야 합니다.
셋째, 모든 사람은 예수그리스도를 만나야합니다.
성경은 예수그리스도안에서 평화를 얻을 수 있다고 명확하게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은 평화를 얻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만날 때, 평화를 얻을 수 있습니다.
유대인의 인사는 이 세상에서 가장 평화의 인사법입니다. [샬롬]입니다.
사람이 짐승과 다른 점은 만날 때 인사하고, 헤어질 때 인사하고, 떨어져서도 인사한다는 점입니다. 사람과 사람은 인사를 합니다. 그 인사는 평화의 인사입니다.
인사에는 여러 가지의 뜻이 있습니다.
첫째, 만나서 반갑다(기쁘다)는 인사입니다.
영어로 “Good Morning”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라는 뜻입니다. 좋은 하루가 되기를 원하는 평화의 인사입니다.
어느 원시부족의 마을의 인사는 혀를 갑자기 내미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다른 나라는 혀를 내밀면 놀리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마을사람들에게는 가장 좋은 평화의 인사입니다. 이 마을 사람들은 외부인이 자신의 마을에 들어오면 경계하고 독화살을 입안에 물고 있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조금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상한 사람이면 입안의 독화살을 불어서 상대방을 공격해서 죽여버립니다. 그러므로 이 마을 사람들이 혀를 내 밀고 입안을 보여 주는 것은 <내 입속에는 당신을 해칠 무기가 없습니다>라는 것을 보여 주는 평화의 인사법인 것입니다. 그 마을에서 만난 사람이 혀를 내밀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평화의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둘째, 인사에는 소망이 들어 있습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라는 인사는 폭풍우가 일고 있는 아침에도 똑같이 합니다. 안 좋은 날씨에도 좋은 아침입니다. 라고 인사하지 날씨가 안 좋다고 나쁜 아침입니다. 라고 인사하지 않습니다. 좋은 아침이 되기를 원하는 소망이 인사속에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중요한 절기에 꿀과 사과를 선물로 주면서 <싸나 토바>라고 인사합니다. 꿀같은 한 해가 되라는 축복입니다. 또 식탁 위에는 머리가 올라옵니다. 생선 머리, 소머리 고기를 집안 식구들에게 먹이면서 인사합니다.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가 되지 마세요> 인사는 소원입니다.
셋째, 인사 속에는 안부가 들어 있습니다. 평안하였는지 안부를 묻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한국사람들의 인사는 <아침식사 하셨습니까?> <밤사이 평안하십니까?>라는 인사가 많았습니다. 1953년에 전쟁이 끝나고, 황폐(こうはい)해진 나라는 먹을 것이 모자라서 가난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가난해서 먹을 것이 없는 시절이기에 아침인사는 [아침식사 드셨습니까?]였고, 전쟁으로 밤사이 죽는 사람들이 많을 때의 아침인사는 [밤새 별고 없으셨습니까?]라는 인사였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아침식사를 못하는 사람이 없는 시대로 바뀌자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를 하게 됩니다.
일본의 인사는 御早う御座います、こんにちは、こんばんわ 세가지 인사로 나뉩니다.
오하요우고자이마스는 お早いお着でございますね。의 인사로 저보다 먼저 도착하셨습니다.는 인사입니다. 곤니찌와는 今日は大変お日柄もよくなりますね。의 인사로 오늘은 아주 좋은 날씨입니다. 는 인사입니다. 곤방와는 今晩はごきけんよろしくお願いします。의 인사로 오늘밤은 기분좋게 보내시라는 평안의 인사입니다. 일본의 인사법도 모두 평안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평안합니까?”,“평화입니까?”, “당신에게 평화가 있기를 원합니다.”
세계역사의 시작인 유대인의 인사는 3500년 동안 변함없이 <샬롬입니다> 샬롬의 인사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샬롬인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인사입니다.
유대인은 3500 년 동안 샬롬이라는 인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샬롬이라는 인사가 제일 먼저 나오는 곳은 창세기 43장 23절입니다. <그가 이르되 너희는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너희 하나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재물을 너희 자루에 넣어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 너희 돈은 내가 이미 받았느니라 하고 시므온을 그들에게로 이끌어 내고>
(御安心なさい.心配することはありません.きっと,あなたたちの神,あなたたちの父の神が,その寶を袋に入れてくださったのでしょう.あなたたちの銀は,このわたしが確かに受け取ったのですから」と答え,シメオンを兄弟たちのところへ連れて來た.)
요셉이 애굽에서 자신을 노예로 팔았던 원수같은 형들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두려워 떨고 있는 형들을 향해서 인사합니다. <그가 이르되 너희는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御安心なさい.心配することはありません.> 이 인사가 히브리어로 [샬롬]입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유대인은 샬롬이라는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둘째, 온 세계 유대인들의 인사입니다. 온 세계 유대인들은 어느 곳에 살든지 샬롬 하나로 통하고 있습니다. 샬롬이라는 말은 <평화> <평강>이라는 뜻입니다. 샬롬이라는 말이 구약 성경에 350번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유대인들은 3500년 동안 샬롬이라고 인사를 하는 것일가요? 샬롬속에 들어 있는 의미는 무엇일가요? 2차 대전후에 유럽에서 <인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라고 물었습니다. 여론 조사였습니다. 가장 많이 나온 대답은 <평화> 샬롬이라는 말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동산(エデンのその)은 평화의 동산이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던 동산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서 에덴의 평화는 깨지고 말았습니다. 유대인들은 나라를 빼앗겼습니다. 이스라엘 땅에 유대인이 가장 적게 남아 있었을 때가 23,000명이었습니다. 23,000명만 남고 모두 나라를 떠나는 아픔을 당하여야 했습니다.
그리고 1900년 동안 가는 곳마다 박해를 받았습니다. 심지어 히틀러는 600만명을 학살하였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옆집 사람이 밤새 끌려 가서 학살을 당하였습니다. 그래서 항상 옆집이 궁금하였고 옆 사람이 불안하였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늘 샬롬이 임하도록 안부를 묻고 항상 그렇게 축복하여야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3500년 동안 인사로 한 말은 이것입니다. <당신에게 평화를>(샬롬 아레이헬) 탈무드에 <어떤 사람이 샬롬이라는 인사를 받기만 하고 주지 않을 경우 그는 도둑으로 불리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샬롬이라는 인사속에는 평화에 대한 그리움이 들어 있습니다. 유대인은 [샬롬]이라고 인사하면서 평화를 소망해 왔던 것입니다.
셋째, 샬롬은 하늘 나라의 인사입니다. 하나님의 본질은 샬롬 즉 평화입니다.
하나님은 평화의 왕입니다. <양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 하사 자기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속에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히13;20-21)
[永遠の契約の血による羊の大牧者,わたしたちの主イエスを,死者の中から引き上げられた平和の 神が,御心に適うことをイエス·キリストによってわたしたちにしてくださり,御心を行うために,すべての 良いものをあなたがたに備えてくださるように.榮光が世世限りなくキリストにありますように,ア―メン.]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9;6)
[ダビデの王座とその王國に權威は增し/平和は絶えることがない.王國は正義と惠みの業によって /今もそしてとこしえに,立てられ支えられる.万軍の主の熱意がこれを成し遂げる.]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의 본질도 샬롬입니다. 성령충만한 사람, 성령님에게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에게는 평화가 있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5;22-23) [靈の結ぶ實は愛であり,喜び,平和,寬容,親切,善意,誠實,]
하나님의 나라의 본질도 평화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들어가서 영원히 살게 되는 그 나라, 즉 하나님의 나라는 평강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17) [神の國は,飮み食いではなく,聖靈によって與えられる義と平和と喜びなのです.]
하나님의 나라의 평화에 대하여 이사야서에 기록한 성경말씀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다같이 찾아서 함께 읽겠습니다. (이사야서 11;6-9)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狼は小羊と共に宿り豹は子山羊と共に伏す.子牛は若獅子と共に育ち小さい子供がそれらを導く./ 牛も熊も共に草をはみその子らは共に伏し獅子も牛もひとしく干し草を食らう./ 乳飮み子は毒蛇の穴に戱れ幼子は·の巢に手を入れる./ わたしの聖なる山においては何ものも害を加えず,滅ぼすこともない.水が海を覆っているように大地は主を知る知識で滿たされる.]
이 "샬롬"이라는 말에는 다섯가지의 뜻이 있습니다.
첫 번째, 샬롬은 평화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 자신이 살고 있는 가정과 사회와 나라가 언제나 평화롭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샬롬은 평강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내면적인 측면을 말하는 것으로 마음의 평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만약 외부적인 요인으로 환경은 평화하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내면적인 평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27절 말씀입니다.
[평강을 너희에게 주노니 곧 나의 평강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 하지도 말라]
(わたしは,平和をあなたがたに殘し,わたしの平和を與える.わたしはこれを,世が與えるように與えるのではない.心をさわがせるな.おびえるな.)
세 번째, 샬롬은 정의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 살고 있는 곳은 불의로 충만한 곳이 아니라 정의가 충만한 곳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처럼 불의한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정의를 간절히 원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사는 사회, 그리스도인이 모인 교회 에서는 하나님의 정의(こうぎ)가 바로 서도록 해야 합니다.
네 번째, 샬롬은 질서를 의미합니다.
오늘날의 가정과 사회는 질서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가정에서는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간의 질서가 무너져가고 있으며 사회에서는 나이가 많은 사람과 젊은 사람들 사이에 질서가 무너져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이 질서의 문제는 서로의 위치를 구별 해 주는 문제이지 결코 서로를 차별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하는 것은 운전자가 질서를 지키지 않아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가정과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질서의 문제와 많이 연관 되어 있기 때문에 질서가 바로 잡히게 되면, 평화로운 가정과 사회가 될 것입니다.
다섯 번째, 샬롬은 조화(ちょうわ)라는 뜻이 있습니다.
조화는 서로 대립하거나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부족을 채워줌으로 완전을 이루는 것을 말합니다.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 빈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눅10:5-6)
[どこかの家に入ったら,まず,『この家に平和があるように』と言いなさい./平和の子がそこにいるなら,あなたがたの願う平和はその人にとどまる.もし,いなければ,その平和はあなたがたに戾ってくる.]
"샬롬"이라는 단어가 구약의 제사장들이 축복을 빌어주는 기도문에 사용되었듯이, 샬롬의 헬라어 "에이레네" 라는 말은 하나님이 교회에 주시는 평안을 기도하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인간의 샬롬적인 관계가 인간의 죄로 인하여 깨어졌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깨어진 평화를 회복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가?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책이 바로 성경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평화의 회복은 하나님의 용서를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즉, 샬롬과 용서는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평화는 단순히 인간과의 회복에만 제한된 것이 아니라, 전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동식물을 포함합니다. 성경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는 완전한 평화와 완전한 구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참 샬롬은, 개인적인 평안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함께 행복한 공동체의 평화, 공동체의 샬롬, 우리들 가족과 가정의 샬롬, 이 나라와 이 세계의 평화를 향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샬롬과 공동체적 샬롬을 동시에 보여주는 성경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의 이야기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는 세 가지의 비유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⑴잃어버린 양을 찾는 목자의 비유(失った羊を探す牧者), ⑵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는 여인의 비유(失ったドラクメ銀貨を探す女), ⑶잃어버린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비유(失った息子を探す父)입니다. 이 비유의 초점은 잃어버린 양과 드라크마와 집나간 아들을 찾았다는 즐거움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잃어버린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렇게 간절하게 찾으며, 잃었던 한사람을 찾으셨을 때, 하나님은 무척 기뻐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 세 가지 비유에서 발견하게 되는 공통점은 모두가 전체의 회복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는 100마리 양들 중의 하나였으며, 잃어버린 드라크마는 10개의 드라크마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집을 나간 아들은 두 아들 중의 하나였습니다. 한 마리 양, 한 개의 드라크마, 한사람의 아들이 돌아왔을 때, 전체가 회복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남아있는 99마리의 양, 남은 9개의 드라크마, 그리고 집에 남아있던 큰아들은 모두가 불완전한 샬롬이었습니다. 평화롭지만, 불완전한 평화였습니다. 잃어버린 자들이 돌아올 때 남아있던 자들도 모두 완전한 샬롬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 세상에 진정한 평화는 없습니다. 모두가 불완전한 평화입니다. 그러나, 이 불완전한 평화가운데 예수그리스도가 오셨을 때, 완전한 평화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가져온 것은 바로 "평화의 복음"이며, 행복과 기쁨을 가르치는 "평화의 도"입니다.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위에서 희생해 주심으로, 하나님과의 적대관계에서 화해로 인도되고, 동시에, 하나님과의 평화만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사이에 평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4:27절 말씀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わたしは,平和をあなたがたに殘し,わたしの平和を與える.わたしはこれを,世が與えるように與えるのではない.心をさわがせるな.おびえるな.]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없는 평화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적대적인 평화로 타락합니다. 그러므로, 평화의 중심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기초한 평화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평화는 평화가 아닌 영적인 다툼의 시작이 됩니다. 진정한 평화는 반드시 믿음과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전제(ぜんてい)되어야만 하며, 창조주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가 진정한 평화가 됩니다.
욥기 22:21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
神に從い,神と和解しなさい.そうすれば,あなたは幸せになるだろう.
"Submit to God and be at peace with him; in this way prosperity will come to you.
빌레몬서 1:20
오 형제여 나로 주 안에서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게 하고 내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하게 하라
そうです.兄弟よ,主によって,あなたから喜ばせてもらいたい.キリストによって,わたしの心を元氣づけてください.
I do wish, brother, that I may have some benefit from you in the Lord; refresh my heart in Christ.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마음의 평화, 우리 가족의 평화, 우리 회사의 평화, 우리 사회의 평화, 우리 나라의 평화, 이 모든 평화는 하나님을 믿는 저와 여러분의 믿음이 만들어내는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오늘 이 세계를 향한 우리들 한사람, 한사람의 평화의 기도가 이 세계를 평화의 세계로 이끌어가는 힘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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