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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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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3-07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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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동경만나교…
 조회 : 3,692  추천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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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무엇을 기도할까요?
말씀 : 민수기 11:31-34절 말씀
[바람이 여호와에게서 나와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진영 곁 이쪽 저쪽 곧 진영 사방으로 각기 하룻길 되는 지면 위 두 규빗쯤에 내리게 한지라 / 백성이 일어나 그 날 종일 종야와 그 이튿날 종일토록 메추라기를 모으니 적게 모은 자도 열 호멜이라 그들이 자기들을 위하여 진영 사면에 펴 두었더라 / 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 그 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불렀으니 욕심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함이었더라.]
오늘 본문의 말씀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모세가 430년동안 우상의 지배하에서 살던 이스라엘백성들을 인도해서 출애굽을 합니다.
애굽을 탈출할때도 모세와 하나님의 능력이 바로보다 강한지 의심하던 이스라엘백성에게 하나님께서 애굽에만 내리신 10가지 재앙을 보고 하셨으며, 마지막 열 번째 장자가 죽는 죽음의 재앙이 애굽전역에 임하는 것을 보고서야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모세를 따라 도망치듯 애굽을 탈출합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포로대탈출보다 더 영화적인 장면입니다.
탈출하자 말자, 애굽을 떠난 적이 없던 이스라엘백성들은 다시 의심하고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자유인이 된 것은 좋지만, 애굽에서는 이렇게 오랫동안 걷지도 않았고, 하루 일이 끝나면 지붕있는 집으로 돌아갔지만, 이제 광야에 들어서자, 돌아갈 집이 없는 것입니다. 불안하고, 초조하며, 자유인이 된 기쁨과 함께 앞으로 펼쳐질 미래와 장래에 대한 두려움이 함께 있었을 것입니다.
그때 청천하늘에 날벼락같은 소식이 전해집니다.
애굽의 최정예 군대가 자신들을 죽이러 쫒아온다는 것입니다. 제일 마지막에 있던 백성들이 뒤를 돌아보니, 먼 곳에서 하얀 흙먼지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이때 다시 그 작은 불안과 의심이 불일 듯 일어나 하나님과 모세에게 대항하며 달려듭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만물의 창조자이자 능력의 하나님이신 것을 이스라엘 백성 수백만이 틀림없이 경험하게 하십니다. 그 사건이 바로 [홍해바다를 건넌 사건]입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홍해바다를 밟고 건너갔습니다. 노인에서 어린아이까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목격하고 경험한 것입니다. 만약, 여기에 있는 우리들이 홍해바다를 건너는 기적을 체험한다면, 평생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홍해바다를 건넌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계신 하나님이 나에게 능력을 경험시켜 주신 일을 평생 두근두근 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 것 같지 않습니까?
이스라엘도 그날은 그랬습니다. 홍해바다를 건너고, 수백만의 백성들이 모두 건너자 마자, 홍해바다에 뛰어들어 죽이려고 쫒아오는 애굽의 정예부대, 특공대, 공수부대, 해병대, 특수수색대, 그린베레들을 한사람도 남김없이 홍해바닷물로 덮어 쫒아오지 못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을 찬양하며 눈물을 흘리며 감사하며 기뻐했을 것은 불보듯 뻔한 장면입니다. 아마도 평생 변치 않을 것 같은 간증거리를 갖게 되었겠지요.
이스라엘백성들이 얼마나 기뻐했는지 출애굽기 15:1-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 / 그가 바로의 병거와 그의 군대를 바다에 던지시니 최고의 지휘관들이 홍해에 잠겼고 / 깊은 물이 그들을 덮으니 그들이 돌처럼 깊음 속에 가라앉았도다 /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시니이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원수를 부수시니이다 / 주께서 주의 큰 위엄으로 주를 거스르는 자를 엎으시니이다 주께서 진노를 발하시니 그 진노가 그들을 지푸라기 같이 사르니이다}
그런데, 이제 생명을 위협하던 애굽의 군대도 모두 죽고, 완전한 자유인이 되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됩니다. 이들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따르면 됩니다. 그런데, 약속을 믿는 것은 변하면 안되는 것인데, 우리는 또 변합니다. 사흘길을 걸어도 물이 보이지 않자, 언제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했냐는 듯이 원망과 불평이 쏟아져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지시하여 쓴물을 단물로 바꿔주시고, 샘물 12개를 주셨습니다.
물은 인간이 살기 위한 본능적인 소원입니다.
인간의 몸의 80%가 물로 만들어져 있다고 하니, 인간에게 물은 생명과 같습니다. 그러나, 생명을 지으신 분이 하나님입니다. 물을 만드신 분도 하나님입니다. 인간에게 물이 가장 필요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기를 기다리셨습니다. 그 방법이 불평과 불만은 아니었습니다.
출애굽기 15:23-26절을 보니, 목마른 백성들이 인간 모세를 찾아가 원망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들이 방향을 잘못 찾은 것입니다.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물의 기적을 체험한 이스라엘백성들이 몇 일을 걸어가다 또 불평과 불만이 터져 나옵니다.
이번에는 어떤 불평일까요?
출애굽기 16:2-4절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 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애굽에서는 노예생활을 해도, 고기와 떡은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배고파 죽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리시는 만나로 배부르게 먹게 하십니다. 매일 기적을 체험합니다. 아침에 눈을 뜨고 문밖에 나가면, 온 사방에 맜있는 만나가 깔려있었고, 저녁에는 메추라기 떼가 깔려있어서 부드럽고 맛있는 메추라기고기를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매일 하늘의 양식을 먹고 살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합니다.
우리는 한번만 하늘에서 만나를 주셔도 평생 변하지 않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어야 합니다. 이스라엘백성들도 어린아이들이 배고프다고 했을 것입니다. 부모가 된 입장에서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해봐야겠는데 드넓은 광야에 먹을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들은 배가 고픈 본능적인 삶의 욕구에서 떡만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불평과 불만은 떡과 고기를 달라는 것입니다.
만일, 거지가 삼일을 굶었습니다. 먹을 것을 주세요, 그래서 밥을 주었더니, 나는 고기반찬이 아니면 못먹습니다. 고기도 좀 구워주세요. 라고 요청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주고 싶습니까? 쫓아내고 싶습니까? 인간이라면, 누구나 욕을 하고 쫒아낼 것이고, 그런 거지는 굶어죽을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을 보십시오. 떡과 고기를 주어라. 애굽에서 종노릇할때는 그래도 떡과 고기는 배부르게 먹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건 거짓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고기를 배부르게 먹지 못하는 세상인데, 수천년전에 애굽에서 노예생활하던 사람들이 어떻게 고기를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리고 애굽은 황소를 우상으로 섬기던 나라인데 어떻게 소고기를 먹을 수 있었겠습니까? 양이나 염소고기를 먹을 수 있었겠지만, 6-7-년대에 우리나라가 명절에나 고깃국을 한번씩 끓여먹었던 것처럼, 애굽의 명절에나 한번씩 고기를 먹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지금 광야에서 그들이 하나님께 고기를 달라고 소리지르고 떼를 쓰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이 원망에도 응답해 주셨습니다.
본능적인 것이 해결되었으니, 다 되었나요?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민수기 11:1-6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들으시기에 백성이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을 그들 중에 붙여서 진영 끝을 사르게 하시매 / 백성이 모세에게 부르짖으므로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니 불이 꺼졌더라 / 그 곳 이름을 다베라라 불렀으니 이는 여호와의 불이 그들 중에 붙은 까닭이었더라 /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
이번에는 떡과 고기 말고도, 생선, 오이, 참외, 부추, 파, 마늘을 달라는 것입니다. 이것저것 자기들이 애굽에서 마음껏 먹어보지 못했던 것도 다 달라고 떼를 쓰는 것입니다.
드디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민수기 11:31-34절 말씀입니다.
[바람이 여호와에게서 나와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진영 곁 이쪽 저쪽 곧 진영 사방으로 각기 하룻길 되는 지면 위 두 규빗쯤에 내리게 한지라 / 백성이 일어나 그 날 종일 종야와 그 이튿날 종일토록 메추라기를 모으니 적게 모은 자도 열 호멜이라 그들이 자기들을 위하여 진영 사면에 펴 두었더라 / 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 그 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불렀으니 욕심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함이었더라.]
성경에서는 참고 참으시던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것을 기록합니다.
본능적인 목마름이나 배고픔에는 불평과 원망을 들으시고도 응답해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욕심을 낼 때, 하나님은 심판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할 것은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이 세상에서 돈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목마름이나 배고픔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한다는 우리의 믿음이 필요한 때입니다.
의인의 기도는 치료하는 힘이 있으며, 능력이 있다고 했습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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