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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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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5-26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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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5월26일 스물한번째주일 [믿음 소망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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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동경만나교…
 조회 : 4,483  추천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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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26일 주일예배-한국어
본문 :『고린도전서 13:13』
제목 : 믿음 소망 사랑(信仰,希望,愛)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それゆえ,信仰と希望と愛,この三つは,いつまでも殘る.その中で最も大いなるものは,愛である.]
[And now abideth faith, hope, charity, these three; but the greatest of these is charity.]
1 Corinthians 13:13 [KJV]
인간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을 섬기는 종교행위를 합니다.
문제는, 인간이 섬기는 신들 가운데는 살아있는 신이 있으며, 죽은 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죽은 신들이며, 살아있는 신은 유일한 하나님뿐입니다.
그 외에 신이라고 생각해서 인간이숭배하는 대부분은 사실은 신이 아니라, 신이 창조한 영적인 존재이거나, 인간보다 못한 존재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인간은 이렇게 영리하면서도 무지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다른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능력자입니다.
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눈에 보이지 않으나,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필수적인 요소를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 소망, 사랑입니다.
이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인간에게만 주어진 것이며,
인간만이 이 세가지, 보이지 않으나 실재하는 것으로 인하여 행복할 수 있으며,
인간이 만족할 수 있는 힘을 주고 있습니다.
첫째, 믿음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믿음이란, 다른 사람을 신뢰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자신의 생각에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자식을 신뢰하고, 형제와 자매가 신뢰하고, 같은 학교, 같은 반에서 공부한 친구를 신뢰합니다.
그러나, 이 신뢰는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인간이 인간을 신뢰하는 믿음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신뢰하고, 자식이 부모를 신뢰하는 것도 제한되어 있습니다.
부모는 자식이 성공하기를 바라고, 바라는 만큼 반드시 성공하리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부모의 믿음이 자식의 장래에 그대로 연결되지는 않습니다.
형제와 자매가 같은 부모님에게서 태어났지만, 생긴것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장래의 비젼도 다릅니다.
모든 것이 다른 사람을 형제와 자매라고 해서 신뢰한다는 것은 분명히 제한적인 신뢰임에 틀림없습니다.
같은 학교, 같은 반에서 공부한 친구가 좋다고 해서 그를 믿는다고 한다면, 분명히 그 믿음은 내 생각과 같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렇듯 인간이 인간을 믿는다고 하는 믿음은 반드시 제한적이며, 또, 시간이 흐를수록 변할수 있는 변질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환경에 따라서 인간의 마음이 변하면 그 믿음도 변할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인간을 믿는 믿음이 반드시 아름다운 결과를 내는 믿음은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어주는 것입니다.
상황과 환경에 따라서,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서 상대방이 변할 수 있지만, 변하더라도 나는 믿어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그 사람을 믿어서 그 사람에게 상처받을 수도 있고, 그 사람에게 손해를 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믿어주는 것입니다. 변질된 그가 다시 똑바로 돌아올때까지, 그리고 다시 나의 신뢰에 응답할 때까지 기다려주고, 인내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름다운 사람의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많은 시간을 기다리고, 참고, 인내해야 합니다.
누가 이렇게 할 수 있을까요?
인간의 역사상 오직 한 분만이 그렇게 기다리고, 참고, 인내해 주었습니다.
그가 바로 예수그리스도 나와 우리의 구세주입니다.
그는 나와 우리가 수많은 죄를 깨닫고 회개할 때까지 기다려주셨습니다.
우리가 죄를 미워하고 죄에서 떠날때까지 참고 인내해 주셨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우리가 죄에서 떠나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며, 참고, 인내해 주십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신뢰를 받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행복합니까!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입니까!
오늘 여러분은 변함없는 믿음의 사람이 된 것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 소망은 무엇일까요?
소망이란 아무리 힘들고 고난의 환경에 처해 있더라도 이겨낼 수 있는 힘과 기대를 주는 능력이 됩니다.
소망은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게 하며, 실패가운데도 절망하지 않게 합니다.
소망이란 인간이 육체만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육체를 넘어 정신과 영혼을 소유한 위대한 생명체라는 것을 알게 해주는 강한 능력입니다.
소망은 보이지 않는 힘이지만, 보이는 힘을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보이는 것을 다스리고 보이는 것을 움직일 수 있게 합니다. 소망을 가진 인간은 언제나 승리를 생각하며, 승리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그는 언제나 승리자가 되게 해줍니다.
그러나, 인간은 소망과 함께 절망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망은 끝없는 기대를 약속하지만, 절망은 그 모든 희망에 대한 약속을 단호하게 내던져버리게 하는 것입니다.
소망과 절망은 인간에게 양면성을 가르쳐줍니다. 인간은 언제나 승리할 것 같은 소망을 가지지만, 어느 순간인가 절망이 찾아오면, 그 모든 소망은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리게 합니다. 언제 희망이 있었느냐는 듯, 절망은 인간을 추하게 만들고 나약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OK]라는 말은 좋다, 잘된다는 긍정적인 의미이지만, 어떤 사람은 이것을 바꿔서 봅니다.
그러면, 그 말은 [KO]라는 패배의 의미로 변합니다.
한국어에 재미있는 단어가 있습니다.
[살자]라는 말은 살아보자는 의지가 담긴 긍정적인 단어이지만, 거꾸로 읽으며, [자살]이라는 뜻이 되어서 죽자는 부정적인 단어로 바뀌게 됩니다.
더 재미있는 한국말이 있습니다.
[님]이라는 글자는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지만, 점 하나만 붙이면 [남]이라는 단어로 변해서 전혀 모르는 타인이라는 단어가 됩니다.
이것처럼 소망이라는 말이 절망으로 바뀌면 인간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한 사람으로 바뀔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 소망은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영원한 소망입니다. 그 소망은 인간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가 만들어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 소망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요한일서 2:22-25절 말씀을 다같이 찾아서 봉독하겠습니다.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과 아버지 안에 거하리라 /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僞り者とは,イエスがメシアであることを否定する者でなくて,だれでありましょう.御父と御子を認めない者,これこそ反キリストです./ 御子を認めない者はだれも,御父に結ばれていません.御子を 公に言い表す者は,御父にも結ばれています./ 初めから聞いていたことを,心にとどめなさい.初めから聞いていたことが,あなたがたの內にいつもあるならば,あなたがたも御子の內に,また御父の 內にいつもいるでしょう./ これこそ,御子がわたしたちに約束された約束,永遠の命です.]
[Who is a liar but he that denieth that Jesus is the Christ? He is antichrist, that denieth the Father and the Son. / Whosoever denieth the Son, the same hath not the Father: he that acknowledgeth the Son hath the Father also. / Let that therefore abide in you, which ye have heard from the beginning. If that which ye have heard from the beginning shall remain in you, ye also shall continue in the Son, and in the Father. / And this is the promise that he hath promised us, even eternal life.]
인간의 약속은 상황과 형편에 따라서, 환경과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서 흐려질 수 있으며, 잊혀 질 수 있으며, 지워질 수 있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상황과 형편이 변하고, 환경과 시간이 아무리 흘러가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이 바로 변하지 않는 영원한 생명을 주겠다는 약속입니다. 우리에게 변함없는 약속을 주신 하나님은 영원한 생명이라고 하는 소망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육체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완벽한 생명체였지만, 최초의 인간 아담과 에바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하면서 죄를 짓고 영원하지 않은 육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예수님을 구세주라고 고백하는 모든 사람은 십자가에서 완전하게 죽었다가 부활하여 영원히 죽지 않는 천국으로 올라간 예수님처럼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고 약속했습니다. 이 약속은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소망입니다. 우리는 이 소망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소망의 사람들입니다.
이 영원한 소망을 얻는 방법은 예수그리스도를 우리의 약속의 소망으로 믿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예수그리스도가 영원한 생명의 약속이 되어 주신 것을 고백하는 믿음이 있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셋째, 사랑은 무엇일까요?
냉장고에 코끼리를 넣는 3단계 방법을 아십니까?
1. 냉장고의 문을 연다.
2. 냉장고안에 코끼리를 넣는다.
3. 냉장고의 문을 닫는다.
그때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질문을 합니다.
“코끼리가 어떻게 냉장고 안에 들어갑니까?
코끼리가 들어가는 냉장고가 어디에 있습니까?
왜 코끼리를 냉장고에 집어넣어야 합니까?“
또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목사님 하나도 재미없어요. 썰렁한 개그에요.”
그럼, 공룡을 냉장고에 넣는 4단계 방법은 아십니까?
1. 냉장고의 문을 연다.
2. 냉장고 안에 있던 코끼리를 꺼낸다.
3. 공룡을 냉장고안에 집어넣는다.
4. 냉장고의 문을 닫는다.
그냥 졸리니까, 웃어보자고 하는 유모어에 사람들은 여러 가지 반응을 합니다.
“안 웃긴다. 더 졸리다.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더 해라. 설교하고 무슨 상관이냐?“
사랑은 상대방의 의도에 맞추어 주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나에게 기쁨을 주려고 했으면, 기쁘지 않아도 기쁘다고 해주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나에게 웃음을 주려고 했으면, 웃기지 않아도 웃어주는 것입니다.
사랑은 서로를 배려하고, 서로를 위하여 내 것을 나누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사랑을 이렇게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13:4-7절 말씀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愛は忍耐强い.愛は情け深い.ねたまない.愛は自慢せず,高ぶらない./ 禮を失せず,自分の利益を求めず,いらだたず,恨みを抱かない./ 不義を喜ばず,眞實を喜ぶ./ すべてを忍び,すべてを信じ,すべてを望み,すべてに耐える.]
[Charity suffereth long, and is kind; charity envieth not; charity vaunteth not itself, is not puffed up, / Doth not behave itself unseemly, seeketh not her own, is not easily provoked, thinketh no evil; / Rejoiceth not in iniquity, but rejoiceth in the truth; / Beareth all things, believeth all things, hopeth all things, endureth all things.] 1 Corinthians 13:4-7 [KJV]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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