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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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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9-16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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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16일 주일예배 [교회중심의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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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동경만나교…
 조회 : 4,413  추천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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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설교말씀은 21세기목회연구소 김두현목사님의 40일 특별40일 기도 말씀에서 편집하였습니다.)
2012년 9월16일 주일예배 본문 :『역대하 7:12-16』
제목 : 교회중심의 신앙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네 기도를 듣고 이 곳을 택하여 내게 제사하는 성전을 삼았으니 /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들에게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전염병이 내 백성 가운데에 유행하게 할 때에 /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 이제 이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 / 이는 내가 이미 이 성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을 여기에 영원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으리라.]
[その夜,主はソロモンに現れ,こう仰せになった.「わたしはあなたの祈りを聞き屆け,この所を選び,いけにえのささげられるわたしの神殿とした./ わたしが天を閉じ,雨が降らなくなるとき,あるいはわたしがいなごに大地を食い荒らすよう命じるとき,あるいはわたしの民に疫病を送り¿むとき,/ もしわたしの名をもって呼ばれているわたしの民が,ひざまずいて祈り,わたしの顔を求め,惡の道を捨てて立ち歸るなら,わたしは天から耳を傾け,罪を赦し,彼らの大地をいやす./ 今後この所でささげられる祈りに,わたしの目を向け,耳を傾ける./ 今後,わたしはこの神殿を選んで聖別し,そこにわたしの名をいつまでもとどめる.わたしは絶えずこれに目を向け,心を寄せる.]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때는 행복하게 살도록 해주셨지만, 인간이 불순종의 죄를 지으면서, 인간에게는 여러 가지 고통과 고민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살아가면서는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을 겪게됩니다. 자녀들에 대한 걱정, 부부간의 갈등, 경제적인 어려움, 직장문제와 인간관계, 건강의 문제 등을 가지고 살아가게 됩니다. 돈이 많은 사람도 걱정이 있고, 고통이 있으며, 건강한 사람도 걱정이 있고, 고통이 있습니다. 잘생긴 사람도 걱정이 있고, 권력을 가진 사람도 고통의 시간을 보냅니다.
모든 사람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지만, 고통이나 근심걱정없이 행복하게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살아가면서 때로는 고통의 시간이 있고, 때로는 걱정의 시간도 있다고 받아들이는 것이 건강한 생활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왜 나만 이런 고통을 겪느냐고? 왜 나만 이렇게 힘든거냐고? 나만 문제가 있는 것처럼 패배의식이나 비교의식, 열등의식을 갖고 있다면, 이것은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중에 한사람에게도 패배의식이나 비교의식, 열등의식을 갖도록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은 하나님의 가장 소중한 생명으로 창조하셨으며, 구원하셨고, 자녀삼아주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지위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왕의 자녀입니다. 왕족의 신분을 가지고 있으며, 이 세상을 지배할 권위를 가진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는 문제가 다 있습니다. 다만, 그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고, 적응해 나가는가 하는 방법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서툴거나 부족하게 되면, 유감스럽게도 결과는 대부분 더 큰 상처와 아픔으로 남게 됩니다.
어떤 부부들은 자신들의 트러블을 대화로 해결해 보려고 대화를 시도하지만, 대화를 하면 할수록 더 큰 상처와 더 큰 문제로 남기게 되는 것을 봅니다. 대화를 하는 것도 방법이 있고, 인격이 필요합니다. 한 쪽에서 끝없이 인내하고, 이해하고, 포용하지 않으면, 그 대화는 영원히 결론을 맺을 수 없습니다. 한사람이 한사람을 가르치려는 입장에 서 말한다던가, 구술이 좋은 한쪽의 일방적인 대화로 이끌어간다면, 다른 한쪽은 결코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안고 고통속에 지내다보면,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은 [의욕상실]이라는 병에 걸리게 됩니다. 아무것도 해결하고 싶지 않고, 노력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절대로 시간이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습니다. 그 문제는 표면에 드러나지 않을뿐, 언제든지 폭발할 위험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용기도 자신감도 없어지게 하여, 사람들을 기피하고 점점 실망감이나 절망감이 마음가득히 차게 됩니다.
기억하십시오. 인간은 인간의 문제를 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문제는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무슨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는지, 어떤 일로 힘들어 하는지는 하나님이 우리자신보다 더 잘 알고 계심을 인정하셔야 합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의 삶의 문제와 삶의 의미를 가르쳐주시기 위해 특별하게 선택하시고 지정하신 장소가 있습니다. 그곳이 바로 성전이며, 곧 교회입니다. 교회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수 있는 하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교회는 모든 축복과 충만함과 은혜와 능력을 저장하고 있는 이 세상의 유일한 하나님의 사역의 장소입니다.
에베소서 3:21 말씀은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에베소서 5:23 에서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아멘.
골로새서 1:18절은 예수님의 몸은 교회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솔로몬이 일으켰던 부흥운동의 절정기에 하나님께 약속을 받은 내용입니다. 15-16절 말씀입니다. [이제 이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 / 이는 내가 이미 이 성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을 여기에 영원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으리라.]아멘.
하나님의 눈과 하나님의 마음이 항상 있는 곳, 하나님께서 영원히 계시는 곳, 그리고 이곳에서 기도하는 기도에 귀를 기울이겠다고 약속하신 곳, 이곳이 바로 성전입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이 아버지 다윗이 이루지 못한 성전건축을 완성하고 이곳에서 거룩한 집회를 열고 절기를 지키는 모습을 보시면서, 솔로몬이 바라는 모든 것을 형통하게 이루는 축복을 하셨습니다.
지난날에 솔로몬의 기도를 보면, 그가 얼마나 성전에 대한 꿈과 관심과 사랑을 갖고 하나님께 매달렸는지를 알수 있습니다. 12절에 말씀합니다. [내가 이미 네 기도를 듣고 이 곳을 택하여 내게 제시하는 전을 삼았다]아멘. 하나님은 솔로몬의 기도와 중심을 보셨습니다.
신앙생활에 성공하려면, 솔로몬처럼 성전중심신앙을 지켜야합니다. 하나님은 성전을 구별하시고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시편11편4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의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그들을 감찰하시도다]아멘.
하박국2장20절 말씀은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그 온 천하는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성전에서 온 천하를 다스리시는 분입니다. 신자들이 성전을 가까이 하고, 성전을 통하여 예배를 드리며, 성전에 모여 기도하기를 힘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잘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전중심신앙으로 사는 것입니다. 물론, 가정에서 가족예배를 드리기도 하고, 산에 올라가 혼자 기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본은 교회를 중심으로 한 신앙이후에 그 모든 신앙의 행위들이 덧입혀져야하는 것이지, 교회는 돌아보지 않으면서 개인적인 신앙의 모습들만 추구하는 것은 중심이 잘못되어 있는 것입니다. 어느 곳에서든지 기도할 수 있습니다.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런, 오늘 솔로몬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은 이곳 성전에서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그 중요성을 가르쳐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현대의 신자들의 의식에서 성전사랑과 성전에 대한 뜨거운 열정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불과 3-40년전까지만 해도, 오래된 나무바닥의 성전바닥을 얼마나 사모했는지, 교회에 가장 먼저 오시는 분들은 나이가 많으신 할머니 권사님들이셨습니다.
할머니권사님들이 교회에 오시면, 가장 먼저 하시는 것이 예배당 가운데 나무바닥에 무릅꿇고 않아서 두손을 모아 조용히 기도하시고, 일어나서는 집에서 빨아온 하얀 수건으로 예배당 바닥을 닦고 청소하는 것으로 예배준비를 하셨습니다.
오래된 풍금에 앉은 먼지도 정성스럽게 닦아내고, 목사님이 설교하시는 강대상을 닦기 위해서는 강대상의 단을 올라가야 하는데, 거룩하고 구별된 강대상에 올라갈수는 있지만, 송구스러운 마음에 겸손하게 기도를 드리고, 강대상만을 닦는 새 수건을 꺼내서 정성껏 닦으시는 모습을 저는 기억합니다.
교회사랑에 대한 철저한 의식을 회복해야 합니다.
교회가 없으면 신자도 없습니다.
주님의 피값으로 교회를 위해 기도하여야 합니다.
교회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님을 인정하는 신앙을 회복하여야 합니다. 이곳은 교회이며, 예수그리스도의 몸의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교회의 주인은 머리되신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교회는 사람이 함부로 주장할 수 없으며, 교회에서는 사람의 소리를 높이는 곳도 아닙니다. 교회에서는 사람의 감정을 주장하고, 개인의 생각을 외치는 곳도 아닙니다. 교회는 머리되신 예수그리스도를 높이며, 예배하며, 찬송하며, 그분께 기도하는 곳입니다. 그분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사람의 모든 문제는 이곳에서 해결되며, 모든 아픔과 고통은 그분이 가져가십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신자들이 살아나야 합니다. 뜨거운 열정은 교회를 사랑하는 곳에 쏟는 것입니다. 교회가 살면, 신자가 살고, 교회가 살면 나라도 살아납니다. 일본의 교회가 살아나야 합니다. 많은 교회는 뜨겁게 살아있으며, 전도하며, 세례를 베풀지만, 또 다른 많은 교회는 오늘도 예배가 없습니다.
8천개가 넘는 일본교회가운데 1천개이상의 교회에 담임교역자가 없어서 한달에 한번 순회설교자가 오는 날만 예배를 드립니다. 성찬식을 하며 주님을 기념하라고 명령하셨지만, 목회자가 없는 교회는 1년에 한번 성찬식을 하는 것도 힘듭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회중심신앙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개인적인 일이 우선되었습니다. 언제나 가족과 가정의 일이 최우선이었습니다. 회사나 학교가 우선인 사람에게 어떻게 예수님의 교회와 예수님의 십자가사명이 우선일수 있었겠습니까? 다른 사람도 그렇다고요? 그래서 그 다른 사람들의 교회는 유지할 수 없어서 목회자가 떠나가고, 교회가 문을 닫게 된 것입니다.
교회를 세우고, 섬기기 위하여 눈물을 쏟으며 무릅을 꿇고 강단앞에 엎드리는 사람이 하나님께 쓰임받는 위대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축복을 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교회중심신앙을 지켰던 사람들입니다.
한국의 영락교회라는 전통있는 교회가 있습니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평양에서 신앙생활하던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맨손으로 피난와서 자기집보다 먼저 세운 교회가 바로 그 영락교회입니다. 영락교회가 자랑하는 10명의 신자들이 있는데 모두 한국에서 유명한 부자들이며, 존경받는 크리스찬들입니다. 그들이 모두 그때 자기집보다 교회를 먼저 건축했던 피난민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신자들를 하나님은 솔로몬처럼 크게 사용하시고 축복하십니다.
요한계시록 7:15-17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에게 베풀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는 무엇입니까?
다시는 주리지도 않고, 목마르지도 않으며, 상하지도 않게 하신다는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입니다. 밤낮은 아닐지라도 시간만 나면 성전에서 기도하며 밤을 지내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저희 어머니는 지금은 연로하셔서 매일 새벽기도와 저녁 9시기도를 지키시지만, 10년전만 해도 매주 금요일저녁은 철야기도를 하셨고, 20년전에는 일주일에 2-3일은 교회에서 철야기도를 하면서 강단을 지켰습니다. 제가 다닌 교회들에는 이렇게 거의 매주 교회에서 철야기도를 하면, 새벽기도를 마치고야 집에 돌아가는 신자들이 적지않았습니다.
성전을 지키고 기도하면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더욱 큰 은혜와 기쁨을 얻는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어디 먼곳을 다녀오면, 항상 교회에 먼저 들러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집에 돌아가고, 시험이나 중요한 문제들을 만날때마다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가르치셔야 합니다. 교회중심교육이 아니라 가정중심교육이 된다면, 10년후, 20년후에는 일본에 8천교회가 아니라, 7천교회, 6천교회밖에 안 남을지 모릅니다. 이것은 무서운 현실이 될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을 설명할 때, 제일 먼저 나오는 말씀이 바로 사도행전 2:46절 말씀입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아멘.
성전에 모이는 것에 마음과 행동의 일치를 보인 사람들이 초대교회의 성도들이었습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매일 성전에 모였습니다. 예배하고 기도하고, 찬양하며 교회중심생활을 했습니다. 집이 없어서도 아니며, 일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구원받고, 은혜받은 감격이 견딜수 없어서, 성령충만함이 안에서부터 흘러넘치니 교회로 달려올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초대교회는 단순히 부흥하는 교회가 아니라 폭발하는 교회였고, 능력이 살아있는 강한 교회가 되어 예루살렘도시 전체를 뜨거운 성령으로 변화시키고 부흥했던 것입니다.
13절 말씀입니다.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로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염병으로 내 백성 가운데 유행하게 할 때애]아멘.
극한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늘이 닫혔다는 것은 희망이 없는 절망적인 상태를 말합니다. 비를 내리지 않는다는 것은 은혜가 중단된 것을 말합니다. 메뚜기가 토산을 먹고 염병이 유행한다는 것은 온갖 재앙이 휩쓸는 고통중의 고통을 말합니다. 절망적이고, 은혜없는 고통의 삶은 곧 죽음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이 벌어질때에 성전에서 겸손하게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고 기도하면, 이 땅을 고쳐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치료하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회복시키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병을 고치시고,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주시는 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고, 믿는 것입니다. 그분이 고치시고 회복시키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잠시 나의 환경에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것 같고, 은혜가 바닥난 것 같고, 온 몸과 마음이 병든 것 같아도, 기도하십시오.
이 성전에서 기도하면, 하나님의 희망을 보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줄 수 없는 위로와 기쁨을 얻게 될 것입니다. 치유와 회복이 시작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성전에서 기도하는 자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할렐루야.아멘.
하나님은 고쳐주십니다. 외로움과 아픔으로 고통가운데 절망하는 여러분이 빈들에 홀로 서서 눈물 흘리는 모습을 그냥 내버려 두시지 않습니다. 의욕상실에 걸려서 망가져 가는 여러분을 방치하지 않으십니다. 무릅꿇고 엎드려 부르짖으십시오. 가슴속의 한숨을 쏟으며 하나님을 부르십시오.
건강한 독수리가 날개치며 솟아오르는듯한 강한 당신으로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외양간의 송아지가 뛰놀 듯이 거침없이 이 세상에서 한번도 패한 적이 없는 백전백승의 승리자 하나님의 편에 자리를 잡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하십니다. 단 여러분이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 잘 분별하십시오. [의욕상실]의 처소인지, 예수님의 몸된 기도하는 집인지.
성전사랑으로 축복받은 다윗과 솔로몬 부자를 기억하십시오.
교회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섬기는 신앙을 지켜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께 응답을 요청하는 예수님의 몸입니다. 몸이란 머리가 생각하고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행동의 역할을 합니다. 몸은 머리가 먹고 보고, 들을 대로 소화하며 건강하게 자라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예수님께서 여러분에게 말씀과 복음을 먹이시고, 보게 하시며, 듣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입으로 아멘, 아멘 화답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일들은 예수님의 몸인 교회안에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사랑하는자를 사랑하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교회중심신앙으로 사는 사람이 되십시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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