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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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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10-07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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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동경만나교…
 조회 : 5,002  추천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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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로마서 8:18-25』
제목 : 고난과 영광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現在の苦しみは,將來わたしたちに現されるはずの榮光に比べると,取るに足りないとわたしは思います./ 被造物は,神の子たちの現れるのを切に待ち望んでいます./ 被造物は虛無に服していますが,それは,自分の意志によるものではなく,服從させた方の意志によるものであり,同時に希望も 持っています. / つまり,被造物も,いつか滅びへの隷屬から解放されて,神の子供たちの榮光に 輝く自由にあずかれるからです./ 被造物がすべて今日まで,共にうめき,共に産みの苦しみを味わっていることを,わたしたちは知っています./ 被造物だけでなく,“靈"の初穗をいただいているわたしたちも,神の子とされること,つまり,體の·われることを,心の中でうめきながら待ち望んでいます./ わたしたちは,このような希望によって救われているのです.見えるものに對する希望は希望ではありません.現に見ているものをだれがなお望むでしょうか./ わたしたちは,目に見えないものを望んでいるなら,忍耐して待ち望むのです.]
(오늘 동경만나교회 창립5주년 감사예배에 참석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많은 분들의 사랑과 기도로 이 교회가 이곳 호리키리 지역에 세워졌고, 어느덧 벌써 5년이 되었습니다. 창립5주년 감사예배를 준비하면서 어떤 성서의 말씀을 전해야 할까 3주전부터 준비하던 가운데, 오늘 모든 사람들이 경험하고 있는 인생의 고난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을 전하려고 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 가운데, 행복이라는 말과 불행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행복이라는 말은 어떤 좋은 일이 생겼을 때, 보다는 불행이 없는 생활, 평안과 평화를 의미하는 말로 많이 사용이 되고 있으며, 불행이라는 말은 고난이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말로 사용이 됩니다. 고난은 무엇입니까?
고난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를 포함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대체적으로 어려움, 아픔, 고통, 슬픔, 가난함 등이 심할 때, 그리고 계속될 때, 고난가운데 있다고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그래서 고난을 불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고난은 어려움이나 아픔이나 슬픔과 가난함일까요?
오늘 성경에서는 한마디 말로 이 고난(苦しみ)의 반대는 행복이 아니라, 영광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경말씀은 인간과 인생에 주는 교훈의 말씀이며, 진리의 말씀이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고난이 불행이 아니며, 고난은 영광이라는 말과 연결된다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그것은 사람은 누구든지, 어느 한사람 빠짐없이 모두 고난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고난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모두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단지 사람에 따라서 고난의 강도(强度)와 길이, 즉 시간이 다를 뿐입니다.
저도 지금 아주 힘든 고난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건강과 생활이 모두 한계에 도달해 있습니다. 그러나, 매일 기도와 금식으로 이겨내려고 무지하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의 이 고난 이후에 주어질 영광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소망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교훈은 고난 이후에는 반드시 영광이 온다고 가르쳐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늘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고난 이후의 영광은 앞의 고난과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이다. 라고 말입니다.
오늘 말씀은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그 고난을 우리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며, 어떻게 이겨낼 수 있는가에 대한 해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닥쳐오는 고난을 어떻게 해결하고 있습니까? 오늘 성경말씀을 통해서 여러분에게 현실로 있는 그 고난, 마음과 환경과 육체에 머물고 있는 그 고난의 해결방법을 얻어 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성서의 말씀 본문 18절을 보겠습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現在の苦しみは,將來わたしたちに現されるはずの榮光に比べると,取るに足りないとわたしは思います.]
이 말씀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사도라고 불리우는 바울선생님이 쓴 편지의 내용입니다. 지금 바울선생님은 엄청난 핍박과 고난가운데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여기 있는 우리가운데 아무도 이러한 핍박과 고난가운데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성경은 바울이 겪는 고난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1:23-2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キリストに仕える者なのか.氣が變になったように言いますが,わたしは彼ら以上にそうなのです.苦勞したことはずっと多く,投獄(とうごく)されたこともずっと多く,鞭打(むちう)たれたことは比較(ひかく)できないほど多く,死ぬような目に遭(あ)ったことも度々(たびたび)でした./ ユダヤ人から四十に一つ足りない鞭を受けたことが五度./ 鞭で打たれたことが三度,石を投げつけられたことが一度,難船(なんせん)したことが三度.一昼夜(ちゅうや)海上に漂(ただよ)ったこともありました./ しばしば旅をし,川の難,盜賊(とうぞく)の難,同胞(どうほう)からの難,異邦人からの難,町での難,荒れ野での 難,海上の難,僞(にせ)の兄弟たちからの難に遭(あ)い,/ 苦勞し,骨折って,しばしば眠らずに過ごし,飢(う)え渴(かわ)き,しばしば食べずにおり,寒(さむ)さに凍(こご)え,裸でいたこともありました.] 바울은 복음 때문에 범죄인처럼 감옥에 갇히는 고난까지 당했다고 말합니다.
2천년전 바울의 고난이 여러분과 저의 고난이 아닌 것, 지금 우리가 가진 고난의 무게가 바울보다 가벼운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아마도 우리들이 가진 믿음위에 바울에게 주어졌던 그 고난이 닥쳐온다면, 우리는 견디어내기 힘들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고백합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아멘.
현재의 고난이 아무리 힘들고 크다고 해도, 앞으로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 우리에게 주어질 영광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고난의 크기(大きさ)가 영광의 크기에 비하면 아주 작다는 표현인 것입니다.
성경은 사람을 영적인 존재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육체만이 아니라, 육체의 속에 마음과 정신이 있고, 그 모든 것 외에도 영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예배의 행위나 성결한 것,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은 영적인 부분의 것입니다. 그러나, 살기 위한 본능적인 부분들은 육체에 가까운 부분들입니다.
영과 육체가 한 사람 안에 함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영이 육체를 지배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영적인 사람이 육체의 일에 익숙해지면 영적인 부분이 약해지게 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보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성결하게 선을 행하는 것보다, 먹는 것, 입는 것, 사는 것, 즐기는 것을 중심으로 살게 되면, 영의 사람이 육체의 사람으로 약해지게 됩니다.
특히, 위험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육체의 고난에 익숙하여지면 안됩니다. 만약, 사람이 육체의 고난에 익숙해지면, 영적인 것들을 잊어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영적인 것들을 잊어버리게 되면, 그 사람에게 남은 것들은 육적인 부분들이 지배하게 되어서 살기 위한 본능적인 생활이 중심이 되어버리게 됩니다.
본능적인 생활은 무엇입니까? 살기 위해서 먹는 사람이 되고, 살기 위해서 잠을 자는 사람이 되고, 살기 위해서 일어나는 사람이 됩니다. 살기 위한 육체의 본능이 중심이 되어있기 때문에, 사람을 사랑한다던지, 악을 미워하고 선을 행한다던지, 무엇이 바르고,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구별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비난하고, 내가 좀 더 편리한 생활을 지키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생활을 깨뜨리고, 부셔버리는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은 영적인 부분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4-2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わたしたちは,このような希望によって救われているのです.見えるものに對する希望は希望ではありません.現に見ているものをだれがなお望むでしょうか./ わたしたちは,目に見えないものを望んでいるなら,忍耐して待ち望むのです.]
눈에 보이는 소망은 참 소망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눈에 보이는 소망이란 육체의 소망을 의미합니다. 육체적인 소망들은 무엇일까요? 육체만을 만족시키는 소망이지요. 육체를 만족시키는 것들에는 시간제한이 있습니다. 아무리 맛있는 것도 상미기간(賞味期限)이 있어서 그 시간을 지나면, 부패(臭くする)하여 쓰레기로 변합니다. 부가티 베이런 수퍼스포트라는 2억엔이 넘는 자동차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비싸고 멋진 스포츠카라도 운전하는 사람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쇠에 불과합니다.
사람의 영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소망하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확신할 수 있게 해줍니다. 그리고 육체의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소망이 사람을 인내할 수 있게 해주고, 고난가운데 힘을 내게 합니다. 성경은 바로 이 영적인 소망, 눈에 보이지 않는 소망을 영광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영광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성이여 너를 가리켜 영광스럽다 말하는도다.][神の都よ/あなたの榮光について人々は語る.]시편 87:3절은 그 영광이 하나님의 성이라고 말합니다.
온 인류의 마지막 성경이며, 마지막 예언의 책이라고 불리우는 성경의 마지막에 기록된 요한계시록이 있습니다. 그 요한계시록 3:12절 말씀은 [그 하나님의 성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새 예루살렘성]이라고 말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체가 이 세상에 살면서 열심히 살아갑니다. 성실하게 살아갑니다. 비록 고난이 있고, 힘들고 아플 때가 있지만,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분명히 시간제한이 있기 때문에 끝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고난의 시간이 끝나면, 이어서 영광의 시간, 하나님의 나라, 우리가 꿈꾸던 소망의 나라, 행복과 기쁨이 있는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 영광스럽게 여러분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그 영광의 나라에는 시간제한이 없습니다. 그 나라에 들어가는 시간부터 시간이 끝이 없이 이어집니다. 끝이 없는 행복, 시간제한이 없는 기쁨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주어지게 됩니다. 이것이 성경의 약속입니다.
지금 우리들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고난은 앞으로의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는 성경의 말씀이 진리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천국에는 금이 길바닥에 도로처럼 깔려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금이 무슨 가치가 있습니까? 물건을 사고, 집을 사고, 자동차를 사기 위해 모으는 재산이라는 의미는 이 세상에서나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고난가운데 힘들어하는 분이 있습니까?
육체의 질병과 마음의 병으로 괴로워하는 분이 있습니까?
인생의 진정한 행복과 평화를 찾기 위해 방황하는 분이 있습니까?
오늘 성경은 그런 분들에게 눈에 보이는 육체의 소망이 아니라, 영원히 제한이 없는 완전한 소망의 천국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1:1-4절 말씀을 여러분들에게 영적인 소망으로 전해드리며 오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わたしはまた,新しい天と新しい地を見た.最初の天と最初の地は去って行き,もはや海もなくなった./更にわたしは,聖なる都,新しいエルサレムが,夫のために着飾(きかざ)った花嫁のように用意を整(ととの)えて,神のもとを離れ,天から下って來るのを見た./ そのとき,わたしは 玉座(ぎょくざ)から語りかける大きな聲を聞いた.「見よ,神の幕屋が人の間にあって,神が人と共に住み,人は神の民となる.神は自ら人と共にいて,その神となり,/ 彼らの目の淚をことごとくぬぐい取ってくださる.もはや死はなく,もはや悲しみも嘆(なげ)きも勞苦(ろうく)もない.最初のものは過ぎ去ったからである.]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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