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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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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10-14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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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14일 주일예배 [부흥의 시작-말씀의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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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동경만나교…
 조회 : 4,798  추천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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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14일 주일예배 본문 :『느혜미야 8:1-6 』
제목 : 부흥의 시작-말씀의 회복
느혜미야 8:1-6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그 본성에 거하였더니 칠월에 이르러는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①모세의 율법책을 가지고 오기를 청하매 / 칠월 일일에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 남자, 여자 무릇 알아 들을만한 회중 앞에 이르러 / 수문 앞 광장에서 ②새벽부터 오정까지 남자, 여자 무릇 알아 들을만한 자의 앞에서 읽으매 뭇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 때에 학사 에스라가 특별히 지은 나무 강단에 서매 그 우편에 선 자는 맛디댜와 스마와 아나야와 우리야와 힐기야와 마아세야요 그 좌편에 선 자는 브다야와 미사엘과 말기야와 하숨과 하스밧다나와 스가랴와 므술람이라 / 학사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저희 목전에 책을 펴니 ③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 에스라가 광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④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였느니라.]
(오늘 말씀의 시작이 무겁고, 어려운 이야기라서 가볍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드리고 시작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할렐루야, 아멘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정확한 뜻은 나중에 말씀해 드릴 예정입니다만, 이 재미있는 이야기에서 할렐루야와 아멘은 다른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화: 옛날에 말을 타고 다니던 때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윗마을(上町)에서 목회하시는 목사님이 아랫마을(下町)에서 목회하는 목사님에게 말(馬)을 빌리러 왔습니다. 아랫마을 목사님은 말을 빌려주면서 말을 다스리는 명령어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 말은 "할렐루야"하면 달리고 "아멘" 하면 선다는 것이었습니다.(이제 아시겠지요? 할렐루야 하면 달리라는 뜻이고, 아멘은 서라는 의미입니다.
윗마을 목사님은 잘 알겠다고 인사하고 말에 올라서 할렐루야라고 하니까 아 정말로 말이 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한참을 신나게 달리다보니까 저 앞에 위험한 낭떠러지가 보이는 것입니다. 당황한 목사님은 말을 멈추는 단어가 생각이 안 났습니다. 뭐였지요? 그렇죠, 아멘이라고 해야하는데, 급하니까 생각이 안난 겁니다. 이제 죽었구나생각하고 목사님은 목사답게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살려주세요 하나님하고 기도하고는 예수님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니까 말이 낭떠러지 바로 앞에서 딱 멈추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너무 기쁜 나머지 뭐라고 했을까요?
그렇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라고 외쳤더랍니다.)
오늘 말씀은 부흥에 대한 말씀이지만, 시작은 더욱 무겁게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불행(不幸)이란 무엇입니까? 불행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그렇다면, 어떤 불행이 가장 고통스러운 불행일까요?
여러분은 불행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불행은 행복하지 않은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행복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럼, 행복하지 않은 것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평화롭지 않은 것, 즐겁지 않은 것, 기쁘지 않은 것, 편안하지 않은 것들입니다.
반대로 전쟁이 있는 것이 불행이요, 우울하고 고통스러운 것이 불행이요, 슬프고 아픈 것이 불행이요, 불편하고 힘든 것들이 불행의 종류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도 가장 불행한 일이라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불행을 크게, 세가지 범위(範圍)로 나눈다면, 첫째는 개인적인 불행이요, 둘째는 가족이나, 조직, 회사와 같은 작은공동체의 불행이요, 셋째는 사회와 국가같은 커다란 공동체의 불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의 불행이 아무리 커도, 가족과 회사의 불행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국가의 불행에 비교하면, 작은 것이 됩니다. 국가와 같은 아주 커다란 공동체의 불행이라면 어떤 것입니까? 다른 나라와 전쟁이 일어나고, 그 전쟁에 패배하여 다른 나라의 식민지가 된 나라, 그래서 국민들은 다른 나라에 끌려가서 승리한 국가의 포로가 되고, 노예가 되는 그런 불행을 국가적인 불행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런 큰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말아야겠지만, 역사적으로 이런 커다란 국가적인 불행은 수없이 많이 일어났었습니다. 1945년 패전한 독일과 일본도, 중국, 싱가포르, 두바이, 한국 등 아시아의 대부분의 국가들이 식민지를 경험했고, 패전을 경험했습니다.
오래전, 유럽국가들의 식민지확장 정책에 따라 아무 이유도 없이 그저 힘이 없다는 이유로 침략을 받고, 부족과 나라를 잃어버린 아프리카인들은 피부색깔도 검다는 이유로 백인들에게 포로가 되고, 학살을 당하고, 노예라는 이름으로 재산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처럼, 국가의 불행은 사회적인 불행을 불러옵니다. 불행한 국가의 사회는 동일하게 불행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국가의 불행은 국민의 불행도 초래합니다. 나라를 잃어버린 국민은 국민이 아닙니다. 그저 승리한 국가의 재산이며, 노예이며, 전리품에 불과한 것입니다. 자유도 없고, 소망도 없고, 기쁨도 없습니다. 즐거울 일도 없고, 행복할 일도 없습니다. 한 나라의 불행은 그 나라에 있는 모든 사회와 사람에게도 불행을 전염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을 섬겼던 사람들, 하나님이 선택하셨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주 오랜시간 나라를 잃고, 다른 나라의 포로생활을 하고, 노예생활을 했던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이스라엘민족의 역사와 맥을 같이합니다. 왜냐하면, 인류최초의 역사인 창세기서에서 최초의 인간의 자손의 역사는 이스라엘 민족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이스라엘이 국가의 형태로 세워진 것은 BC 약1053년-1030전, 사울왕이 이스라엘의 초대왕으로 세워지면서 부터입니다.
전세계가 역사적인 연대를 표기하는 표기법이 있습니다. BC와 AD입니다. 예수님 탄생 이전(Before Christ)'을 뜻하는 BC와 '주님이 태어난 해(Anno Domini)'를 뜻하는 AD입니다. 사울이 이스라엘의 초대왕이 된 때는 예수님탄생 전 약1053-1030년 전이었다는 뜻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3060년전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오랜 역사가운데 세워졌던 이스라엘왕국은, BC922년 솔로몬이 죽은 후 르호보암이 왕위를 이어 받았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을 선하게 다스리려고 하지 않았던 르호보암에 의하여, 10지파가 다윗의 자손을 거부하고 여로보암을 왕으로 세워 북이스라엘왕국을 세웠으며, 남은 유다와 베냐민지파를 중심으로 남유다왕국으로 분열되게 됩니다. 이것은 왕상11:30-31의 예언대로, 되어진 것이며, 사울40년, 다윗40년, 솔로몬40년으로 이어진 이스라엘 12지파의 통일왕국은 120년 만에 분열되었습니다.
그러나, 북이스라엘도 남유다도 우상을 숭배하며, 하나님을 멀리하면서 멸망의 길을 걷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버리면, 하나님은 우리의 국가와 사회와 가정과 개인을 버리시고, 하나님이 버리신다는 것은 불행의 시작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떠나간 두 분열된 왕국은, BC722년, 앗시리아제국(니느웨와 이라크가 수도)에 의하여 완전히 멸망당하고, 이어서 바벨론제국에 의하여 남유다왕국도 멸망당하고, 식민지배를 받게 되고, 왕족과 지배층은 모두 포로생활을 하게 됩니다.
포로생활을 하던 이스라엘백성들이 70년만에 처음 고향으로 1차 포로귀환을 받고, 2차 포로귀환, 3차 포로귀환을 하게 됩니다. 오늘의 말씀은 2차 포로귀환 당시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포로생활에서 귀환하면서 가장 먼저 회복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오늘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성전건축과 부흥운동이라는 것입니다.
옛날 옛날 아주 먼옛날, BC 1400년경, 애굽의 식민지배를 받던 이스라엘민족이 430년만에 탈출하여 자유를 얻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잊고 살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통해서 구전(口傳)되어 왔던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는 것을 하나님이 들으셨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800년 후에 다시 온 민족이 식민지배를 받고, 포로가 된,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시 하나님을 부르짖고 구원을 찾았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과거 아브라함(창 15:9-21)과 이삭(창26:2-5)과 야곱(창28:13-15)과 다윗(삼하7:4-17)을 통해주신 축복의 약속을 기억하시고, 이스라엘의 역사를 지속시키기 위하여 느혜미야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귀환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느헤미야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의 포로생활에서의 귀환을 이끌면서, 하나님께로의 회복을 시작합니다. 이것이 부흥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전을 다시 건축하면서, 이 성전에서 예배하게 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오늘의 성경말씀은 바로 그 부흥의 현장을 구체적으로 기록하며, 우리들에게 회복의 자세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회복의 자세, 부흥의 과정을 모두 4가지로 분류하며, 오늘 여기 있는 우리들이 가져야 할 부흥과 회복의 4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느혜미야 8:1-6 말씀을 다시한번 보겠습니다.
[①새벽부터 오정까지 남자, 여자 무릇 알아 들을만한 자의 앞에서 읽으매 뭇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이스라엘 자손이 그 본성에 거하였더니 칠월에 이르러는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지고 오기를 청하매 / ②칠월 일일에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 남자, 여자 무릇 알아 들을만한 회중 앞에 이르러 / ③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오정까지 남자, 여자 무릇 알아 들을만한 자의 앞에서 읽으매 뭇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 ④때에 학사 에스라가 특별히 지은 나무 강단에 서매 그 우편에 선 자는 맛디댜와 스마와 아나야와 우리야와 힐기야와 마아세야요 그 좌편에 선 자는 브다야와 미사엘과 말기야와 하숨과 하스밧다나와 스가랴와 므술람이라 / ⑤학사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저희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 ⑥에스라가 광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였느니라.]
첫째, 1절 말씀입니다. [모세의 율법책을 가지고 오기를 청하매]
모든 백성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모세의 율법책, 즉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성경을 요청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부흥하는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최우선으로 하는 교회입니다. 부흥하는 사람, 믿음이 성장하는 사람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둘째, 3절 말씀입니다. [②새벽부터 오정까지 남자, 여자 무릇 알아 들을만한 자의 앞에서 읽으매 뭇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저는 성경책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는 부자입니다. 사무실에는 제 성경책만 20권이 넘게 있습니다. 가장 오래된 성경은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만들어진 50년이 지난 어머님의 성경이 있고, 비싼 영어성경도 있고, 최근에 구입한 개정판 성경도 있습니다. 일본어 성경은 구어역(口語譯)성경, 신공동역(新共同譯)성경, 신개역(新改譯)성경도 있습니다. 카토릭교회의 외경이 포함된 성경도 있고, 중국어성경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책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은 자랑이 아닙니다. 3절 말씀처럼 말씀을 알아 들고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성경책은 한권밖에 없어도, 그 성경을 매일 펴서 말씀을 읽고, 보는 사람이 하나님께 회복되는 사람입니다.
셋째, 5절 말씀입니다.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포로에서 귀환하여 성전을 건축하던 모든 백성들이 모여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모세의 율법책을 펼때에 놀라운 행동들이 일어났습니다. 누구 한사람,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책이 펼쳐질때에, 자리에서 일어나 섰다는 것입니다.
일어선다는 것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겸손의 의미입니다. 또한, 경배의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을 펼때에, 오랜세월 하나님의 말씀없이 포로로 살아왔던 불행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금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책이 열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꿈에서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일, 이런 시간이 다시 돌아올까 기대하지도 못했던 포로의 삶에서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희망이며 소망이며 꿈이며, 비젼으로 말씀을 열어 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의 책앞에 일어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책이 열릴 때, 그들은 끊어졌던 소망이 이어지는 것 같았으며, 절망했던 그들의 인생, 불행하다고 생각했던 그들의 나라가 다시 회복되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불행한 백성들에게 희망이며, 회복이며, 부흥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말씀은 6절입니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였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읽기 시작하자, 일어섰던 모든 백성들이 두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며 응답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동의합니다. 그 말씀이 옳습니다. 그 말씀대로 하시옵소서. 라며 아멘!아멘!으로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할렐루야가 무슨 뜻입니까? 카톨릭교회에서는 알렐루야라고 하지만, 같은 말입니다. 할렐루야는 찬양하라는 말과 여호와라는 말이 합쳐진 말로, 여호와를 찬양하라! 는 뜻입니다. 기쁨에 겨워서 소리지르는 찬송입니다. 또한, 아멘이라는 말의 뜻은 할렐루야! 그러니 이 말을 들고 어떻게 아멘하고 대답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 이 말씀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전해주고 있을까요?
오늘 우리가 느끼고 있는 이 불행한 마음, 불행한 생각, 불행한 환경은 변할 수 있습니다. 다시 우리의 행복으로 회복할 수 있습니다. 다시 우리의 신앙이 뜨겁게 부흥할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어떻게 하면 될까요?
하나님의 말씀앞에 돌아올 때,
그 말씀앞에 일어설 때,
그 말씀앞에 엎드릴 때,
부흥과 회복은 다시 시작된다는 것을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부흥의 시작은 어디에서 부터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서 부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열고,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을 듣는 것으로 부흥을 시작했던 이스라엘이 오늘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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