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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9-28 10:08
2014년 9월 28일 서른아홉번째 주일말씀
 글쓴이 : 동경만나교…
조회 : 3,813   추천 : 0  
성경본문: 사도행전 3:1-8
제목 : 보라 보라 보라(見よ!見よ!見よ!)

1.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 2.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 3.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 4.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 5.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 6.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 7.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 8.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1.ペトロとヨハネが,午後三時の祈りの時に神殿に上って行った./ 2.すると,生まれながら足の 不自由な男が運ばれて來た.神殿の境內に入る人に施しを乞うため,每日美しい門」という神殿の 門のそばに置いてもらっていたのである./ 3.彼はペトロとヨハネが境內に入ろうとするのを見て,施しをこうた./ 4.ペトロはヨハネと一緖に彼をじっと見て,「わたしたちを見なさい」と言った./ 5.その男が,何かもらえると思って二人を見つめていると,/6.ペトロは言った.「わたしには金や銀はないが,持っているものをあげよう.ナザレの人イエス·キリストの名によって立ち上がり,步きなさい.」/ 7.そして,右手を取って彼を立ち上がらせた.すると,たちまち,その男は足やくるぶしがしっかりして,/ 8.躍り上がって立ち,步きだした.そして,步き回ったり躍ったりして神を贊美し,二人と一緖に境內に入って行った.)
 
동상이몽(同床異夢)이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같이 앉아 있지만,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있다는 뜻입니다.
어쩌면 여기에 앉아 있는 우리들도 모두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어떤 분은 설교하는 목사를 보면서, “어! 목사님 지난주보다 살이 좀 빠져보이네. 바쁘셨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수 있고, 어떤 분은 설교자를 향해서 바라보고 있지만, 저를 보지 않고 사실은 제 뒤에 있는 십자가를 보면서, “저 십자가는 얼마나 주고 샀을까? 어디서 샀지? 우리 집에도 하나 사서 걸어둘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저런 여러 가지 생각이 다르다고 해도, 오늘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풍성하게 임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성경에 보니,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대화를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기적을 체험하는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는 예수님의 제자들인 베드로와 요한이 등장하고, 태어나면서부터 걸을 수 없는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한 남자가 등장합니다.

2절 말씀은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걷지 못하는 사람이어서 다른 사람들이 이 사람을 성전 문앞에 내려놓고 갔습니다. 그 이유는 성전에 들어가고 나가는 사람들에게 돈을 받아서 먹고 살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성전안에 두지 않고, 성전 문 밖에 있었을까요?
 유대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장애를 가진 사람은 성전 안에 들어갈 수 없다. 라는 율법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은 지금 일하러 성전앞에 와 앉아 있는 것이고, 이 사람의 일을 성전에 예배를 드리고 예물을 드리러 가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돈을 얻는 것이 이 사람의 일입니다.

오늘 성경의 이 이야기는 아주 놀라운 복음의 진리를 가르치고 있으므로 여러분이 잘 기억해 주면 좋겠습니다.
오늘 이 성경에서는 세 번의 보라!(見よ!)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세 번의 보는 의미가 각각 다르며, 그 세 번의 보는 말의 의미를 깨달아 알때에 은혜와 구원이 연결되고 있는 것을 여러분은 목격하실 것입니다.

첫 번째 보는 말은, 3절 말씀에 있습니다.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彼はペトロとヨハネが境內に入ろうとするのを見て,施しをこうた)

이 남자는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일을 하기 위해 보았습니다.
영어로는 saw, 그냥 보았다는 것입니다. 특정한 사람을 본 것이 아니라, 성전에 들어가는 많은 사람들을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중에 이름도 모르는 남자 두 사람이 성전에 들어가는 것도 보고, 그들에게 돈을 달라고 손을 내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남자가 첫 번째, 바라 본 목적은 물질의 소원이었습니다.
돈을 원하여 바라 본 것입니다. 우리들이 태어나서 살아가면서 처음 바로 보는 것도 바로 이런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받기를 원하여 바라보고 살아갑니다. 나에게 좋은 것을 줄 것 같은 사람을 바라보기도 하고, 나에게 돈을 줄 것 같은 사람을 쳐다보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이 바라봄(saw)은 그냥 바라보는 것입니다. 큰 의미도 없습니다. 단, 욕심은 섞여 있는 바라봄입니다. 주면 좋고, 안 주면 할 수 없다는 식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두 번째로 보는 것에는 이유가 생겼습니다. 목적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이 남자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와 요한에게서 이 남자를 향하여 목적을 가진 것입니다. 제자들은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것은 지금 성전에 들어가는 목적을 일단 중지하고, 새롭게 가진 목적입니다. 그것은 그냥 바라보고 있는 이 남자를 자신들을 향하여 주목하여 바라보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합니다.

“우리를 보라!”이것은 작은 목소리지만 거절할 수 없는 명령같은 말입니다.
매일 성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들어가고 나옵니다. 자신이 손을 벌리면, 쳐다보지도 않고, 그냥 동전을 던져주고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을 위해 멈추거나 자신을 주목하여 봐주거나, 자신에게 말을 거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두 사람이 자신앞에 서서 자신을 향하여 보라! 고 명령한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여러분들은 각각 다른 생각과 계획들을 가지고 집을 나섰을 것입니다.
어떤 분은 예배를 마치고 어디를 갈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해야 재미있을까?를 생각하고 계획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오늘 이 예배당에 들어온 순간부터 하나님은 여러분을 주목하고 바라보고 계심을 느끼고 있습니까?

오늘 이 말씀을 시작하면서부터 여러분을 향하여 멈추어 서서 “나를 보라!”고 말씀하시는 예수그리스도가 느껴지십니까? 이것이 두 번째 보라!는 단어입니다. 이때의 보라(見よ)는 말은 영어로 look at, 주목하여 본다. 관찰하여 본다, 살펴본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늘 여러분을 살펴보시고, 주목하여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주님을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보라고 하실 때는 이유가 있겠지요? 우리는 우리의 필요한 것들, 환경의 변화, 생활의 개선, 육체의 건강과 돈이 목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그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습니까? 그런 것들이 우리의 마음과 정신과 영혼을 행복하게 할 수 있습니까?

교회에 왔습니다. 예배를 드렸습니다.
성경은 교회는 예수님의 몸과 같은 곳이라고 했으며,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영과 진리의 제사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몸인 교회에 와서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우리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우리는 평안과 은혜로 가득차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어디에서 문제가 있는 것입니까?
 예수님의 몸인 교회에 오지 않았던가, 영과 진리로 예배하지 않은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 예배의 자리에 앉아 있지만, 우리의 생각과 마음과 영혼은 예수님의 몸인 교회에 있지 않고, 다른 곳에 있는지 모릅니다. 예배한다고 앉아있지만, 실제로는 예배와 관계없이 앉아 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에게 예배한다고 말하면서, 이 예배시간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려고 하는지 모릅니다. 이런 방해의 요소들이 우리가 예수님의 몸인 교회를 섬기지 못하고 하고 있으며, 예배를 예배답게 드리지 못하게 하는지 되돌아보고 올바른 예배자의 모습을 찾아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주님이 우리들에게 명령하는 두 번째 보라!(見よ!)의 말씀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의 말에 놀란 이 남자는 드디어 주변을 둘러 보던 눈을 고정하고 베드로와 요한에게 향합니다.
그래도 아직 이 남자는 베드로와 요한에게 갖는 기대가 있습니다. 돈을 달라고 손을 벌리고 있으니, 돈을 많이 주려는가 보다. 오늘 행운인걸! 이 남자들이 나를 불쌍하게 생각하고 가는 길을 멈추고 나에게 말을 걸었으니 꽤 많은 돈을 얻게 되겠구나. 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이 남자는 지금 눈을 크게 뜨고 베드로와 요한을 주목하여 바라볼 것입니다.

이때 이 남자가 베드로와 요한을 똑바로 바라보는 말이 세 번째 보라(見よ)즉,
looked straight, 똑바로 쳐다보는 것입니다. 모든 관심을 집중하여 바라보는 것입니다.
정신차리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는 attention!입니다.
 집중하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두 사람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이 여러분들에게 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놀라지 말고, 주님이 오늘 나에게 하실 말씀에 집중해야 합니다. 집중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성전으로 들어가고, 나가며 이야기를 합니다. 서 있는 두 사람 베드로와 요한에게 집중하지 않으면, 이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아 들을수 없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이 남자가 베드로와 요한에게 집중하여 똑바로 바라보는것처럼, 오늘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집중해야합니다. 똑바로 바라보십시오. 주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할렐루야!

5절을 보십시오.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何かもらえると思って二人を見つめていると)

이 남자는 아직도 자신의 욕심에 찬 눈으로 바라봅니다.
집중해서 바라보지만, 욕심의 눈입니다. 돈을 구하는 눈입니다. 돈을 좀 주세요! 라는 눈빛입니다.

우리들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리고 주일에는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면서도, 자신의 욕심만 생각하다고 돌아갈 때가 있지 않습니까?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하고 싶어합니다. 섬기는 것은 싫고, 섬김을 받는 것은 좋습니다. 누가 주는 선물은 좋지만, 내가 남에게 선물하는 것은 싫습니다. 남이 나에게 좋은 말을 들려주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내가 남을 높이고, 칭찬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할 수 있으면, 기분 좋은 마음을 상하게 하고, 높여주지 않으려고 깍아 내리는 말을 합니다. 그렇게 다른 사람 마음을 상하게 하여, 예배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고, 또 예배를 드리고 나서도 기분 좋게 얻은 진리의 깨달음과 은혜를 다 버리고 집에 가도록 하는 실수를 우리는 자주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이 남자의 눈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줄까하여 바라보는 욕심의 눈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돈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남자에게 정말 필요한 것, 지금 잠깐동안 기쁘게 하는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귀한 것을 이 남자에게 주기로 결정했습니다. 그것은 이 남자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 곧 복음인 것입니다.

오늘 말씀 6-8절 말씀을 다시 한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ペトロは言った.「わたしには金や銀はないが,持っているものをあげよう.ナザレの人イエス·キリストの名によって立ち上がり,步きなさい.」/ そして,右手を取って彼を立ち上がらせた.すると,たちまち,その男は足やくるぶしがしっかりして,/ 躍り上がって立ち,步きだした.そして,步き回ったり躍ったりして神を贊美し,二人と一緖に境內に入って行った.)아멘.

정말 이 남자에게 필요했던 것은 오늘 밥을 사먹을 돈이 아니라, 태어나면서부터 걸을 수 없었던 자신의 고통, 절망, 아픔과 장애인 걷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남자는 욕심의 눈으로 베드로와 요한을 보았지만, 이 남자를 주목해서 보고, 멈추어 섰던 베드로와 요한은 이 남자의 근본적인 소망을 들어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우리에게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예수님이 여러분을 건강하게 해줄까? 부자로 만들어줄까? 재미있게 해줄까? 기대하며 바라보지 마십시오. 예수님은 오늘 여러분의 영적인 문제, 영혼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하여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아직 우리가 죄인일때에 구원해 주셨습니다.
구원받을 수 있는 아무 이유가 없는 우리들, 많은 우상과 다른 신들을 찾았던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보다 큰 은혜와 기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아직도 예수님을 집중해서 보지 않고, 다른 곳에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어디 재미있는 곳이 없나? 어디 맛있는 곳이 없나? 어디 좋은 물건 없나?”

진리는 오늘 이곳에 있는데 우리의 눈과 마음은 어디에 가 있습니까?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하시고, 여러분을 누구보다 더 사랑해 주시는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보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태어나면서부터 걸을 수 없었던 사람이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에게 일어난 이 사건의 구원의 사건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목해서 보아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걸을 수 있게 된 이 남자가 걸어서 처음 간 곳은 하나님의 집, 성전이었다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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