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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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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1-29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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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29일 주일말씀 제목 : 평화, 평화,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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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동경만나교…
 조회 : 3,968  추천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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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29일 주일예배 본문 : 『역대상 12:16-18』
제목 : 평화, 평화, 평화
"베냐민과 유다 자손 중에서 요새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오매
다윗이 나가서 맞아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평화로이 내게 와서 나를 돕고자 하면 내 마음이 너희 마음과 하나가 되려니와 만일 너희가 나를 속여 내 대적에게 넘기고자 하면 내 손에 불의함이 없으니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감찰하시고 책망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매, 그 때에 성령이 삼십 명의 우두머리 아마새를 감싸시니 이르되 다윗이여 우리가 당신에게 속하겠고 이새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함께 있으리니 원하건대 ①평안하소서 당신도 ②평안하고 당신을 돕는 자에게도 ③평안이 있을지니 이는 당신의 하나님이 당신을 도우심이니이다 한지라 다윗이 그들을 받아들여 군대 지휘관을 삼았더라.“
[ベニヤミン族とユダ族の人同じも,要害にいるダビデのもとに來た.
ダビデは彼らの前に出て,こう言った.「もしあなたたちが平和を望んでわたしを助けようとして來たのなら,わたしもあなたたちと心を一つにしよう.しかし,もしわたしを欺いて,敵に引き渡すつもりなら,わたしたちの先祖の神がそれを見て,責め立ててくださるように.わたしはこの手でどんな不法も働いたことがないのだから.すると靈が三十人隊の頭アマサイに降った.「ダビデよ,わたしたちはあなたのもの.エッサイの子よ,あなたの味方です.平和がありますように.あなたに平和,あなたを助ける者に平和.あなたの神こそ,あなたを助ける者.」ダビデは彼らを受け入れ,部隊の頭とした.]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단어중에 평화라는 말이 있습니다. 평화를 뜻하는 말로 평안, 평강이라고도 말합니다. 히브리어로는 샬롬이라는 말입니다. 모두 같은 의미입니다.
무슨 뜻일까요? 전쟁이 없으면 평화인가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평화일까요?
샬롬, 즉 평화라는 말은 개인이나 공동체의 생활에서 정신적 육체적 물질적으로 완전한 충족상태를 말합니다.
구약성서에서는 군사적인 또는 경제적인 평안이 개인의 신체적이고 영적인 건강과 비슷하게 나타나므로 건강을 회복하는 것이 곧 평안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이사야 38 : 17)
처음에는 무사한 것, 무고한 것 곧 건강을 소망하는데 쓰이던 일상적인 인사말이었으나, 그후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는 평안(평강)의 계약이 되는 경우 사람에게 주는 하나님의 평화는 사랑으로 표현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그의 백성의 화(災)를 없애고 영원히 지키겠다는 축복의 뜻입니다.
신약성서에서는 예수님이 그 제자들을 전도자로 파송하실 때,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기도하라' (その家に入ったら『平和があるように』と挨拶しなさい.)라고 (마태복음 10 : 12에서 말씀하셨습니다. .
그러나 요한복음 14장27절에서의 평안은 세상에서 주는 것과 같지 않은 것으로써 새롭고 높은 이념을 가진 것인데 하나님과 사람사이에서 이루어지는 화평(화목)에서 오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주시는 죄를 범하고 심판받아야 하는 죄인이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옴으로써 얻는 영혼의 평화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과의 평화가 예수님에 의하여 주어지는 축복의 중심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자랑하고 하나님을 찬양함이 평안의 증거라 했습니다.
이 평안은 세상 것으로부터 옴도 아니고, 나의 공로와 나의 노력으로 만들어짐도 아니기에 오직, 하나님의 능력과 뜻으로 이루어진 것이기에 이 평안을 가진 사람은 언제나 어디서나 어떤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는 평화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쁨의 말씀을, 위로의 말씀을, 진리의 말씀을 우리에게 전해 주실때에 그 말씀으로 기쁨과 위로를 얻는 사람이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를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면, 이 말은 하나님에게로부터 오지 않는 것들이라면 절대로 평안의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에게서만이 위로를 얻을 수 있고 평안을 가질 수 있고 기쁨을 줄수 있습니다.
나의 모든 죄를 사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위에 죽으셨다는 진리의 말씀, 이 말씀은 하나님의 약속이며, 계약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모든 죄에서 회개하고 돌아서서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으면 너의 모든 죄를 사할 것이다. 아멘. 어찌 이 기쁜 소식이 있겠습니까? 이것으로 우리는 분명하게 언제나 어디서나 기쁨을 가지고 평안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은 더 구체적으로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세가지 평화에 대하여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이 세가지 평화를 얻을 때, 완전한 평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 일상적인 평화가 있어야 합니다.
평화가 없다면, 우리가 오늘 예배할 수도 없으며, 평화가 없으면, 배고플때에 밥을 먹을수 없습니다. 배가 고파도 밥을 먹을수 없고, 갈증이 나도 물을 마실수 없다면, 그것은 평화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고난이며, 아픔입니다. 슬픔이며, 고통입니다.
다윗이 아직 왕이 되기 전의 일입니다. 다윗이 사울왕에게 쫒기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함께 하는 병사들과 가족들을 살리기 위하여 돈이 많은 부자에게 사자를 보냅니다. 그때 다윗의 인사는 평화의 인사였습니다.
사무엘상 25:5-6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다윗이 이에 소년 열 명을 보내며 그 소년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갈멜로 올라가 나발에게 이르러 내 이름으로 그에게 문안하고/ 그 부하게 사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는 평강하라 네 집도 평강하라 네 소유의 모든 것도 평강하라.”
[十人の從者を送ることにして,彼らにこう言った.「カルメルに上り,ナバルを訪ね,わたしの名によって安否を問い/次のように言うがよい.『あなたに平和,あなたの家に平和,あなたのものすべてに平和がありますように.]
그러나, 나발이라는 사람은 평화의 인사를 받지 못합니다. 그는 평화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지금 가지고 있는 평화가 어떤 것인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평화를 보내는 다윗을 모욕하고 비난합니다. 다윗은 나발과 그 모든 재산을 없애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그 소식을 들은 나발의 지혜로운 아내(アビガイル)가 음식을 만들어서 다윗에게 찾아와 평화의 인사를 전합니다. 그제서야 다윗은 나발의 아내의 평화를 받아들여서 나발을 멸망시키기로 한 것을 철회하고 돌이킵니다. 나발은 몰랐지만, 그의 아내로 인하여 자신이 누리는 평화가 유지되었던 것입니다. 결국 나중에 나발은 죽고, 나발의 아내는 다윗의 아내가 되어, 왕비(おうひ)의 자리에 앉게 됩니다.
우리는 때때로,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화에 감사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정작 자신이 누리던 평화를 잃어버리면, 그제서야 그것이 너무나 놀라운 은혜였고 하나님이 지켜주셨던 평화였음을 깨닫습니다. 혹은 회개하고 다시 찾기도 하지만, 혹은 영원히 되찾지 못할때도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가진 평화는 위대한 것임을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우리 자신에게 평화가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평화가 있어도 정작 나에게 평화가 없다면, 어떻습니까? 언제나 마음이 불안하고, 몸도 아프고, 정신도 혼란스러워서 자기자신이 힘들다면, 다른 사람의 평화가 나와 무슨 관계가 있겠습니까? 평화는 우선 나에게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에게 가장 많은 괴로움은 질병입니다. 가장 흔한 것은 두통입니다. 두통의 종류는 100만가지를 넘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두통의 원인도 마찬가지로 100만가지가 넘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작 두통으로 고통(苦痛)받는 사람들은 두통이 시작되면, 모든 일을 스톱하고 진통제를 찾아먹고 빨리 이 통증(痛み)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수 있는 것이 없을정도로 고통스러운 질병입니다.
그러나, 정작 가장 많은 생명을 빼앗아가는 질병은 [암]이라고 하는 병입니다. 이 암은 세포입니다. 몸속에서 생겨나서 몸속에서 퍼져나갑니다. 아무리 힘이 센 사람도, 똑똑한 사람도 자신의 몸속에서 언제 암세포가 생겨서 어떻게 퍼져나가고 언제 자신이 죽을지 알지 못합니다. 암을 치료하는 의사선생님도 자신의 몸속에 급성 암세포가 발생하고 퍼져 말기암(末期ガン)이 되었는데 깨닫지 못하다가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이렇듯이 질병(やまい)은 우리 자신의 육체를 공격하고 지배하고 고통을 안겨줍니다. 질병이 있는 사람은 평화를 얻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4:27말씀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わたしは,平和をあなたがたに殘し,わたしの平和を與える.わたしはこれを,世が與えるように與えるのではない.心をさわがせるなおびえるな)라고 말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화의 복이 오늘 여러분과 저에게 함께 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셋째,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평화가 있어야 합니다.
가족, 동료, 이웃들에게 평화가 없다면, 우리는 언제나 불안하고 위험한 상황가운데 있게 될 것입니다. 내 가족도 평화롭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 회사일, 내 집의 이웃집들이 모두 평화로울 때, 우리의 안전은 지켜지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건, 사고는 이웃들에 의해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만약 이웃이나 가족과 평화를 이루지 못한다면,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방황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그들과 평화를 이루고 그들을 사랑할 때, 비로소 우리의 마음이 평화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나만 평화를 가지는 것은 진정한 평화가 아닙니다. 그것은 도망입니다. 우리의 가족이나 우리의 친구, 우리의 이웃과 함께 평화를 이룰 때 진정한 평화는 완성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바로 이 완전한 평화를 우리에게 주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분이 오심으로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에게 평화로다.「いと高きところには榮光,神にあれ,/地には平和,御心に適う人にあれ.」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은 평화입니다.
우리가 서로를 미워하고, 서로를 비난하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고, 다툼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들 사이에서 우리의 비난과 우리의 미워함을 모두 안고 십자가에서 죽어주셨습니다. 그때 우리들은 하나님과 평화를 이루게 되었고, 우리들과도 평화를 이루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땅에 평화로 오신 이유는,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우리의 평화를 위해서 오셨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하여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소망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도 예수님처럼 평화를 만드는 인생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보이지 않는 이 평화,
그리고 나에게 주신 평화의 약속, 나와 나의 가족, 나에게 속한 모든 것들을 평화롭게 하신 하나님의 평화의 축복.
이 평화가 이 땅에 머무는 동안 저와 여러분에게 영원히 함께 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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