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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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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5-13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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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13일 주일예배 [당신이 바쁜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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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동경만나교…
 조회 : 4,360  추천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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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13일 주일예배 본문 : 『누가복음 10:38-42절 말씀』
제목 : 당신이 바쁜 진짜 이유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一行が步いて行くうち,イエスはある村にお入りになった.すると,マルタという女が,イエスを家に迎え入れた./ 彼女にはマリアという姉妹がいた.マリアは主の足もとに座って,その話に聞き入っていた./ マルタは,いろいろのもてなしのためせわしく立ち働いていたが,そばに近寄って言った.「主よ,わたしの姉妹はわたしだけにもてなしをさせていますが,何ともお思いになりませんか.手傳ってくれるようにおっしゃってください.」/主はお答えになった.「マルタ,マルタ,あなたは多くのことに思い惱み,心を亂している.しかし,必要なことはただ一つだけである.マリアは良い方を選んだ.それを取り上げてはならない.]
이 세상은 참 바쁜 세상입니다.
바쁘게 움직이지 않으면 먹고살기 힘든 시스템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천천히 하다가는 자기 것까지 다른 사람에게 빼앗길까 두려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세계사전에 [빨리빨리]라는 한국어가 등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무슨뜻인지 우리 모두 압니다. 바쁘게 움직이라는 말입니다. 서두르라는 말입니다.
오늘 성경에서는 참 바쁜 한사람을 소개합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마르다라는 여인입니다.
마르다는 마리아의 언니이며 나사로의 누나입니다. 요한복음11장에서 나사로는 죽었다가 예수님께 은혜를 얻어 살아난 일이 있으며, 누가복음 7장에서 마리아는 예수님의 몸에 향유를 부은 일이 있습니다. 그만큼 이들 가족은 예수님과 각별한 사이였기에 예수님이 자신의 마을로 들어오시자 마르다는 당연히 예수님일행을 기쁘게 초청한 것입니다.
그래서 마르다는 예수님을 정성껏 모시고 싶었습니다. 이제부터 이 여인은 무척 분주해 졌습니다. 여기 갔다가, 저기 갔다가, 정신이 없습니다. 무엇을 먼저 만들어야할지 모릅니다. 무엇이 집에 있는지, 시장에 가서 무엇을 사와야 할지 정신이 없이 바쁜 상태입니다.
한두사람도 아니고, 예수님과 귀한 제자들 12사람이 함께 왔으니, 모두 남자만 13사람입니다. 이들이 먹을 음식을 만든다는 것은 큰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그래서 마음도 바쁘고, 몸도 바빠졌습니다.
여러분, 지금 이곳은 예수님이 오신 집입니다. 그냥 집이 아니라,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님이 오셨고, 말씀을 주시는 장소가 되었기 때문에 이곳은 이제 교회입니다. 마르다의 가정집이면서, 교회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기억하시고 말씀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마르다는 자신의 가정집에서 무척 바빠졌기도 하지만, 예수님이 오신 교회에서 아주 바쁜 한사람이 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분주한지라(페리에스파토)는 사방에서 끌어당기다'는 의미로 그녀의 바쁜 상태가 어느 정도인가를 생생하게 나타내는 말입니다. 이렇게 바쁜 마르다의 모습과 예수님의 발아래 앉아 그의 말씀을 조용히 듣고 있는 마리아의 모습은 뚜렷한 대조를 보이고 있습니다. 마르다가 보기에 동생 마리아는 아주 얄밉게 보였을 것입니다. 지금 성경을 읽는 우리들도 그렇게 생각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마르다도 마리아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르다는 지금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는 그분이 맛있게 먹고 마실 수 있도록 음식을 장만하는 일이 더 중요한 일이라고 판단하여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의 발 아래 앉아 – 마리아가 '아래 앉아'의 문자적인 의미는 '곁에 앉다’로 제자가 스승의 발치에 앉아 교훈을 듣는 자세를 묘사하는 말입니다. 이것은 마리아가 마치 학생이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듯이 예수에게 진리의 말씀을 들으려고 매우 열심이 있었음을 뜻합니다.
마리아의 태도를 묘사한 '말씀을 듣더니'- 는 그녀는 다른 일에 관심을 돌리지 않은 채 열심히 계속해서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였다는 마리아의 예배자세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예배자의 자세로 예배의 자리에서 결코 빼앗기지 않을 것임을 말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마르다의 바쁜 마음이 상한 것입니다. 상처가 된 것입니다. 감정이 상하고 기분이 나빠졌습니다. 그래서 바쁜 마음을 안고 예수님에게 달려들어갔습니다.
신개역일본어성서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みもとに來て言った]이 말이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의 발앞에 와서 말했다는 말입니다. 원어적인 의미로는 예수님의 발 끝에 뛰어 달려들어 왔다는 의미입니다. 그 말은 화가나서 예수님께 큰소리로 따지러 왔다는 것입니다.
지금 마르다는 무엇을 잃어버렸습니다. 무엇을 잃어버렸나요?
정신을 잃었습니까? 예의를 잃어버렸습니까?
차분하고 침착한 마음을 잃어버렸습니까? 믿음을 잃어버렸습니까?
모두 맞습니다. 그러나 정확하게 한가지로 표현하자면, 마르다는 지금 목적을 잃어버렸습니다. 예수님을 편안하게 모시고, 기쁘시게 해드리려고 했던 처음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예수님을 향하여 너무 바빠서 마음이 상한 분노를 폭발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성도님은 주일에 다른 성도님들을 위해서 그리고 목사님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주기위해 아주 바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합니다. 우리가 교회에 온 가장 큰 이유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어떤 것이든,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것이 분명합니다. 예배드리는 것보다 교회에서 더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만약 주일에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저 분주한 것입니다.
오늘 마르다의 모습속에서 우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까? 내가 왜 우리 집에서 그렇게 바빴을까? 나는 왜 교회만 가면 그렇게 바빠서, 서두르고, 내 맘에 안들면 화가 났을까?
여러분은 왜 교회에 가는 것입니까?
신령과 진정으로 정성껏 하나님께 예배드려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고 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예배를 통해서 은혜받고 회복을 얻으려고 왔습니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이것 하랴? 저것 하랴? 너무나 바빠서 늘 주일이 주님의 날이 아니라, 나의 일요일이 되어 화가 난채로 끝나버리는 날이 몇날이었습니까?
예배를 드리고,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하고, 축복기도를 받고 난 후에, 왜 우리는 마음이 바쁘고, 마음이 상하고, 기분이 나빠지고, 감정이 상해서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것입니까? 이게 아닌데, 뭔가 주일의 나는 잘못되었는데 어디서 잘못되었는지 모른채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집에 가서 또 가족들과 싸우지요.
오늘 성경에 나온 마르다의 모습과 같지 않나요?
명하사...도와주라 하소서 - 아마 마르다는 혼자서 음식을 준비하기에는 너무 바쁘니 와서 도와 달라고 마리아에게 신호를 보내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말씀에 열중인 나머지 마르다의 분주함에 동참하지 않는 마리아의 태도에 화가 난 마르다는 마침내 예수님에게 달려들어와서 직접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마르다는 정당한 이의제기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이의 제기에는 두가지 의미가 들어 있다고 봅니다.
(첫째)자신이 그렇게 바쁜데도 불구하고 전혀 자기를 도우려 하지 않는 마리아에 대한 간접적인 불평이며, (둘째)그러한 사실을 알고서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예수님의 무관심에 대한 원망입니다.
마르다는 지금 자신의 분주함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며, 이 분주함은 예수님을 위한 것이며, 예수님 때문에 분주하게 여러 가지 맛있는 음식을 마련하는 자신의 판단과 행위가 가장 옳다고 확신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만 듣고 있는 마리아와 그런 마리아를 책망하지 않는 예수님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렇게 당당하게 예수님께 뛰어들어와서 말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조용히 말씀하십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염려하고 근심하나 - 마르다의 이름을 두 번에 걸쳐 부르는 뜻은, 예수님께서 마르다의 정성스런 행위 자체에 대해서는 동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계셨음을 의미합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잔잔하고 조용한 음성으로 그의 분노를 가라않히십니다. 그리고 말씀합니다.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메림나스)라는 표현은 '흩어지다', '나누어지다'는 의미로서 과도한 욕구로 인해 어지럽게 분열된 심적 상태를 나타냅니다. 또한 근심하나(도뤼바제)는 '문제를 야기시키다'는 뜻으로 이것 역시 자기가 스스로를 괴롭게 하는 것을 뜻합니다. 마르다는 한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 문제를 만들어냈습니다. 결코 예수님이 원한 것이 아님에도 마르다는 예수님을 위해 이 많은 문제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들도 때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문제가 교회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해결해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교회의 문제는 기도하는 사람만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고, 내가 판단하는 내 머리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주님의 생각이 아닐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단, 주님이 옳다고 생각하시는 것이면, 내 생각과 달라도 순종할 수 있는 것이 믿음입니다. 할렐루야.
물론, 예수님을 대접하기 위해 열심이었던 마르다의 태도가 잘못된 것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을 초대하고 잘 대접하려고 애쓰는 열심 또한 예수님에 대한 사랑에서 기인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마르다는 가장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습니다.
복음 전파를 수행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을 가장 잘 대접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예수님께 말씀을 듣는 것보다 , 어떤 것도 가치 있는 일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성도의 생활에 있어서 육적 문제보다 영적 문제가, 그리고 주님과 성도의 관계에서 외적 형식이나 결과보다 주님의 복음을 향한 순수한 사랑 자체가 우선적으로 요청됨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 우리는 본문에서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결코 이기적인 주관주의에 빠져서 내 기준에 의해서 다른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 말씀을 통해 나의 모습을 점검해 보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마르다는 봉사의 열심이 지나쳐서 예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먼저 생각하기 보다는 자신이 정한 우선순위의 일을 자신의 힘으로 해내려고 노력한 것이 실수였습니다. 또 다른사람이 가치를 두고 하는 일을 예수님의 기준이 아닌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예수님에게 그 우선순위를 제지하도록 하려했습니다.
둘째, 마르다는 세상 일에 분주하여 하나님 말씀을 듣는 일에 소흘했습니다. 우리도 일상생활 속에 파묻혀 하나님을 잊기 쉽습니다. 이런 때는 마리아처럼 신앙생활에 유익한 기회를 잡아서 과감하게 상황을 박차고 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진지한 태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일보다는 영적인 일을 먼저 추구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물질적인 헌신도 요구되지만, 가장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받아들인 후에 이와 함께 여러모양의 봉사로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이 정말 바쁜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오늘 우리가 바빠게 살았던 세가지를 우리 스스로 점검해야 합니다.
첫째, 당신이 집에서 바쁜 이유는 무엇입니까?
내가 바쁘니까 당신도 나를 도와주고, 인정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인정받고 싶고, 나는 도움이 필요하니까 나는 정당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까?
내가 직장에서 바쁘게 일했고, 내가 바쁘게 살아온 사람이니까 집에 있는 가족들이 나를 그렇게 바쁜 사람으로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집에서도 바쁜 이유는 내 생각 때문입니다.
마르다는 내 생각에 내가 예수님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하고 있으므로 바쁜거니까, 모두들 예수님까지도 나를 따라야 해. 라는 자기생각이 중심이 된 것입니다. 이 집은 이제 마르다만의 집이 아닙니다. 동생인 마리아, 그리고 손님으로 초대된 예수님과 12제자들의 집입니다. 모두의 집입니다. 이 집에서 바쁜 이유로 인하여 화가나고, 기분이 나빠진다면 안 바쁜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둘째, 당신이 교회에서 바쁜 이유는 무엇입니까?
나는 교회에서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바쁘다고 말합니다. 내가 바쁜 이유는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나는 교회를 위해서, 또 하나님을 위해서 바쁘다고 말합니다. 내가 바쁘지 않으면, 하나님이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바쁘게 움직이는 것은 사실은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럴까요?
마르다는 예수님이 오신 자신의 집이 교회로 쓰임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교회가 되었고, 이 교회에서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영광스러운 일에 소명을 받은 마르다는 예수님이 오셔서 하시는 일, 교회가 하는 일보다 자신의 일로 바빠졌습니다. 너무나 분주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시간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전하는 복음보다 지금 내가 분주하게 준비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때때로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마르다의 잘못된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는 예배드리기 위해서 옵니다. 기도하기 위해서 옵니다. 찬송하기 위해서 옵니다. 은혜받기 위해서 옵니다. 이런 이유가 최우선이 아니라면, 지금 교회에 오는 목적은 의심될 수 있습니다.
예배드리기 위해 교회에 오는 사람은, 반드시 예배시간 30분전에 도착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교회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예배당에 올라가서 조용히 하나님께 출석보고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시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기도가 끝나면, 오늘의 주보를 보고, 설교본문말씀을 찾아서 한번 읽고 표시해놓고 그리고 나중에 오시는 성도님들과 축복의 인사를 나누다가 예배시작 10분전이 되면, 다시 예배당에 착석하여 조용히 오늘 주실 은혜를 구하는 기도를 드리며 예배의 시작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셋째, 당신이 당신 마음으로부터 바쁜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때때로 자기자신으로부터 너무나 바쁘게 살아갑니다. 바쁘게 살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도태될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것처럼 바쁘게 살아갑니다. 매일, 매일 그렇게 살다가 어느날인가 내가 왜 이렇게 바쁠까? 살아가는 목적을 잃어버리고 바쁘기 위해서 바쁜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마르다는 처음에는 예수님을 모시기 위하여 바쁜 일을 선택했습니다. 언니 마르다가 초대한 예수님과 제자들을 만난 동생 마리아는 초청된 손님들과 인사하고 그분들 곁에 앉아서 듣기 힘든 예수님의 설교를 듣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마르다의 집에 오셨지만, 식사를 하시고, 또 어느 마을로 떠나실지 언제 다시 오실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예배는 저와 여러분에게 반복되는 예배가 아닙니다. 오늘의 말씀은 여러분에게 두 번다시 반복되지 않습니다. 오늘 주시는 은혜가 다시 반복되지도 않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은혜받는 쪽을 선택하셨습니다. 지혜로운 선택입니다.
(옆사람과 인사할까요. 잘 선택하셨습니다. 당신은 지혜로운 분입니다. 축복합니다.)
5월은 가정의 달, 가족구원의 달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가정에 돌아가시면, 먼저 희생하십시오. 먼저 섬기십시오. 먼저 작은목소리로 말씀하십시오. 가능하면, 먼저 말하기보다 먼저 듣는 편을 선택하십시오. 그것이 성경이 가르쳐주시는 지혜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구세주가 되신 것은, 우리를 위해서 아낌없이 희생하셨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인생, 젊음, 비젼, 장래의 평안함, 그리고 마지막에 생명까지 아낌없이 희생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의 주님이 되셨고, 그 은혜와 사랑에 우리는 감동하는 것입니다.
희생없이 가족구원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 영혼을 위하여 희생하십시오.
주님은 여러분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두가지를 위해 두번 기도하겠습니다.)
첫째, 오늘 여러분이 전도하려고 마음먹은 세사람의 이름을 기록한 [전도카드]를 꺼내서 성경위에 올려놓으십시오. 그리고 우리 이시간 다같이 전도카드에 기록된 영혼을 위해서 하나님게 중보기도 드리겠습니다. 다같이 기도합시다.
두번째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어제 온 회교권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님의 기도편지를 읽어드립니다. 들어보시고, 함께 중보기도를 부탁드립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평강으로 문안 인사드립니다. 두메산골 선교사 오늘도 산골 이곳 저곳을 다니며 잃어버린 무슬림 영혼들을 주님께 인도하고 있습니다.
정말 변화되기 어려운 오랜세월 악한 영에게 붙잡혀 종노릇하는 저들이 예수를 주로 시인하고 예수를 믿을 수 있는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요 성령님의 특별하신 은총임을 실감합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남을 기적이라고 한다면 무슬림 영혼들이 예수를 믿을 수 있는 것이 기적입니다.
몇일전 교회성도집에 심방을 가서 잠시 앉아 있는데 모르는 남자 몇명이 급습합니다. 그리고 집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사람들을 조사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안기부원과 검찰, 경찰들로 구성된 팀인데 교회에 심어 놓은 안기부 정보원의 신고로 들어닥친 것입니다. 신고 내용은 미국의 한 정보원이 어느 성도의 집에서 타직 사람들을 모아 반정부 모임을 꾀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지난번에는 영국스파이로 오해를 받았었는데 이번에는 다시 미국 스파이로 지목되어 조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선교사를 조사하기 위해 교회로 찾아온 안기부 직원은 이해할수 없다는 듯이 선교사에게 심문을 합니다. 어떻게 무슬림을 기독교로 개종시켜서 열심히 신앙생활하게 할 수 있느냐? 정보에 의하면 교회에서 무슬림들을 물질공세로 믿음을 산다고 하는데 얼마씩 주었냐고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 수 있느냐는 듯, 계속해서 질문을 해댑니다.
주변의 무슬림들이 어떤 오해를 하던지, 어떤 누명을 씌우던 상관없습니다. 성령님은 당신의 능력으로 수많은 무슬림들을 변화시켜 나가십니다. 성도들도 갖은 불이익과 핍박속에서도 성령님의 능력안에서 천국의 소망을 안고 믿음을 지켜 나가고 있습니다. 여러 지교회 지도자들도 마지막 추수꾼의 사명을 위해 제자양육과 영혼구원에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은혜의 눈물인지 서러움의 눈물인지 모르지만 선교사도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믿음의 제자들을 훈련시켜 나아갑니다. 지금까지 훈련되어 온 제자로 인해 또 다른 제자들이 훈련되어져가고 있습니다. 여러가지로 부족한 선교사를 사용하셔서 일 하시는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즈베키스탄에서의 사역은 점점 더 어려워져 가고 있습니다. 정식 등록된 교회에서도 예배와 종교활동에 많은 제재가 가해지고 있습니다. 찬송을 부르지마라, 손뼉을 치지마라, 큰소리 내지마라 등등..가정에서 모이는 모임은 핍박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가정에서 기도회로 몇 명이 모이면 이웃이나 정보원의 신고로 무장한 우즈베키스탄의 안기부원들이 출동해서 모인사람들을 수갑을 채워 연행하고 조사를 합니다. 심하면 감옥에 구금되어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동서남북 사방이 꽉 막힌 카타콤 같은 어려운 환경이지만 제자들은 믿음을 잃지 않고 천국을 바라보며 사명 감당하고 제자양육을 해 나아가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1.우즈베키스탄의 지도자들이 핍박을 이기고 계속해서 사역을 감당해 갈 수 있도록
2.타지키스탄의 성도들과 교회의 지도자들이 믿음을 지킬 수 있도록
3.아프카니스탄의 사역자들을 알카에다의 테러로부터 지켜시도록
4.이스라엘 단기선교팀을 통한 성령님의 역사가 이스라엘에 임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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