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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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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6-05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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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03일 주일예배 [하나님의 공의와 선포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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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동경만나교…
 조회 : 4,202  추천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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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3일 주일예배 본문 : 『신명기 16:20』
제목 : 하나님의 공의와 선포의 능력
"너는 마땅히 공의만 좇으라 그리하면 네가 살겠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을 얻으리라.“
(ただ正しいことのみを追求しなさい.そうすれば命を得,あなたの神,主が與えられる土地を得ることができる.)
[공동번역] 정의, 그렇다, 너희는 마땅히 정의만을 찾아라. 그리하여야 너희는 살아서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주시는 땅을 차지할 것이다.
[현대인의성경] 여러분은 언제나 공정하고 정직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살 수 있을 것이며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여러분에게 주시는 땅을 소유할 것입니다.
[新改譯] 正義を,ただ正義を追い求めなければならない.そうすれば,あなたは生き,あなたの 神,主が與えようとしておられる地を,自分の所有とすることができる.
[口語譯] ただ公義をのみ求めなければならない.そうすればあなたは生きながらえて,あなたの神,主が賜わる地を所有するにいたるであろう.
(예화)
1884년 폭풍우속에 침몰한 영국함선 미뇨네트호 사건이 있었습니다.
구명정으로 탈출한 선원중에 3명만이 살아남았는데, 3명이 살아남은 이유는, 부양가족도 없고, 죽을 것 같아 보였던 젊은 객실사환을 죽여서 그 살을 먹고 살아남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재판에 회부되었고, 당시 대다수의 영국인들은 이들의 유죄판결에 반대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4명이 죽는것보다 한사람이 죽는 것이 낫지 않느냐는 공리주의적인 논리였습니다.
공리주의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정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 사회인 영국에서 있었던 사회정의였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자기의 생각을 말하기 전에, 우리 생명과 구원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정의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은 어떻게 말씀할까요?
먼저, 성경 마태복음18 :12-1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경제적인 논리로는 전혀 바보같은 생각일 수 있습니다. 손해나는 장사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것이 하나님아버지의 뜻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는 방법은 성경말씀대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 실천방법은 세가지를 버리는 것입니다. 함께 나누어 보겠습니다.
첫째, 나는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정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너는 안되지만, 나는 된다는 것입니다. 너는 목사니까 안되고, 나는 목사가 아니니까 된다는 생각입니다. 이것은 개인적인 정의입니다. 이 개인적인 정의가 살아나면, 그 교회는 부흥할 수 없습니다. 개인적인 정의를 가진 성도들이 있으면 언제나 트러블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개인적인 정의는 공의가 아니므로 서로 다른 주장과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안되면, 나도 안되는 것입니다. 당신을 용서할 수 없다면, 나도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당신을 미워하면, 나도 미움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언제나 공평합니다. 그리고 정당합니다. 그리고 정직합니다. 누가 보아도 손해가 없으며, 누구도 하나님의 정의에 불만이 없습니다.
둘째, 형편이 나아지면 헌신하겠다는 마음을 버려야합니다.
어떤 젊은 그리스도인들은 생활이 윤택하게 되면, 그때부터 선교를 시작합니다. 또 가난한 사람을 돕는 구제헌금도 하게됩니다.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지금의 형편보다 조금 어려워지면, 바로 그 선한 마음들도 함께 끊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헌신은 믿음입니다. 그런데 지금 헌신할 믿음이 없는데 언제 믿음이 생겨나겠습니까? 믿음은 내가 마음대로 만들고, 얻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삶가운데 우리들 자신이 자신의 신앙생활 성실하게, 진실하게, 충실하게 해나갈 때 우리의 믿음은 측량할 수 없을만큼 커지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로마서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야고보서 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실천하지 않는 사람의 믿음은 거짓과 같습니다. 실천하지 않는 신앙생활은 죽은사람의 신앙입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들음은 말씀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말씀을 보지도 않고, 듣지도 않는 사람에게 어떻게 믿음이 있디고 할수 있습니까?
어떤 작은 교회를 간 일이 있는데, 7-8명 되는 교인들이 어떤 여집사님이 아주 믿음이 좋은 분이라고 소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그 교회에 가서 2-3개월이 지나가는데 그 집사님을 한번도 본 일이 없습니다. 주일에도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다. 집에서 혼자 성경을 본다는 것입니다. 뭔가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큰 문제를 일으키고 말았습니다. 도대체 믿음이 좋은 근거는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의 기본이 무엇입니까? 주일예배입니다. 일주일에 한번인 주일예배를 나오지 않으면, 우리의 믿음이 점점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말씀을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모든 신자의 기본적인 헌신은 주일예배를 지키는 것이며, 말씀대로 생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본적인 헌신입니다.
주일에 갑자기 많이 아플수도 있고, 중요한 일이 생길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일이 주일에 생기지 않도록 토요일에는 주일을 준비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며, 주일을 올바로 지키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공의와 내 정의가 부딪칠 때, 나의 정의를 버려야합니다.
다른 사람의 정의와 내가 생각하는 정의가 부딪칠때는 항상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의 응답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아무리 자신의 지식과 자신의 경험과 자신의 생각으로 정당하다고 정의를 주장해도 하나님의 공의와는 다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보다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하는 한가지 정의구현방법이 있습니다.
어떤 상황이던지, 어떤 환경이던지, 어떤 문제이던지, 한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정의로 심판받아야 하고, 멸망받아야 하고, 죽어야만 하는 내 자신이
어떻게 용서받고, 어떻게 구원받았는가?
하나님은 왜 나를 용서하시고, 나를 위해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죽게 하셨는가?
왜 하나님은 그렇게까지 해서 죽어야 마땅한 나를 살렸을까?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였다면,
나는 누구보다 앞서고, 누구보다 위에 서야하고, 누구보다 인정받아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일까?
오늘 여기에 있는 저와 여러분은 바로 하나님의 공의로운 결정에 의하여 살아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었다고?”
“하나님이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서 나의 모든 죄를 대속하셨다고?”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고 인간도 창조했다고? 나는 안봐서 못믿겠다.”고 말합니다.
못 본 것은 믿을 수 없습니까?
본 것만 믿을 수 있습니까?
그가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자기 몸속에 있는 백혈구와 적혈구를 보아서 자신의 생명이 유지된다고 믿습니까?
자기 머리에 머리카락이 몇 개나 나왔는지, 자고 일어나면, 몇 개나 빠졌는지? 샴푸하고 나면, 몇가닥이 또 빠졌는지 모두 계산하고 이해되나요?
아버지가 어머니와 결혼해서 내 생명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보았습니까?
내가 어떤 형태를 가지고 만들어졌는지, 어떤 과학적인 논리로 탄생되었는지 볼 수 없었습니다. 모든 아기들은 눈을 감고 태어납니다. 눈뜨고 태어난 사람 있습니까? 뭘 보았는지 기억이 납니까? 기억나지 않으면 못 본 것입니까? 사실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공의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지만,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예수님을 믿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중국사람은 예수님을 믿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습니다.
1945년 태평양전쟁이 끝났을 때, 일본에는 무려 50만-100만 명이 교회를 다녔고, 중국에는 10만 명도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65년이 지난 지금, 중국은 1억명 이상이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며, 일본은 50%가 줄어서 주일에 예배드리는 사람은 25만에서 50만 명 정도입니다.
복음을 전한 전도자들이나 선교사들의 활동도 영향이 있겠지만, 사람들의 문화적인 사고방식이 큰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인은 사람이 말하는 것을 쉽게 믿어줍니다. 부풀려서 이야기를 해도 인정하고 받아들여줍니다. 예수님을 이야기하면 믿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그 사람의 이야기를 인정하고 듣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사람이 말하면, 고민합니다.
“저 사람의 말이 사실일까? 어디까지가 진실인가?”
이해되지 않으면 증거가 나올 때까지 머릿속에서 인정하지 않습니다. 성경의 기적들을 이야기하면, 보지 않았으니 진실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성경의 기적들 가운데 상식적으로 이해되는 것만 성경이라고 생각합니다. 굉장히 개인적인 정의를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입니다. 놀라운 능력입니다.
공부를 하고, 연구를 해서 박사가 된 사람도, 의사도, 과학자도, 우주비행사도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기적이 놀랍다고 은혜를 받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실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으면, 그런 놀라운 기적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생활속에서 기적을 경험하고, 체험을 합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기적도 경험하고 싶지도 않고, 체험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조금 믿어주고, 믿는다고 배려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무서운 개인의 정의입니다.
이 개인의 정의가 하나님과 계속 부딪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을 약하게 만드는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 다시한번 일본에서 살고계신 여러분들에게 말씀으로 교훈합니다.
히브리서 11장1-3절 말씀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공의를 신뢰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십시오. 그냥 성서에 기록된대로 그대로 눈으로 보고, 입으로 소리내어 읽고, 마음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십시오.
이것을 믿게하는 능력으로 선포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포하는 방법을 소개하겠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입으로 찬양하는 것을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서 12:4 말씀입니다.
[그 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의 이름이 높다 하라.]
[その日には,あなたたちは言うであろう.「主に感謝し,御名を呼べ.諸國の民に御業を示し/氣高い御名を告げ知らせよ.]
함께 따라하시겠습니다.
1. 하나님은 천지만물의 창조자입니다. 아멘.
2. 하나님은 살아계신 유일하신 분입니다. 아멘.
3.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아멘.
4. 하나님은 온 인류의 역사를 통치하십니다. 아멘.
5. 하나님은 공의와 공평하신 분입니다. 아멘.
6.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아멘.
7.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입니다. 아멘.
8. 하나님은 소망입니다. 아멘.
9. 하나님의 나의 구원자입니다. 아멘.
10. 하나님은 나의 평화입니다. 아멘.
11. 하나님의 나의 안식처입니다. 아멘.
12. 하나님은 나의 치료자입니다. 아멘.
이번에는 여러분 자신을 축복하는 선포를 하겠습니다. 자신의 가슴에 손을 올리십시오.
1. 내 영혼아 예수이름으로 말씀이 충만하라. 아멘.
2. 내 영혼아 예수이름으로 믿음이 충만하라. 아멘.
3. 내 영혼아 예수이름으로 사랑이 충만하라. 아멘.
4. 내 영혼아 예수이름으로 은사가 충만하라. 아멘.
5. 내 영혼아 예수이름으로 감사가 충만하라. 아멘.
6. 내 영혼아 예수이름으로 건강이 충만하라. 아멘.
7. 내 영혼아 예수이름으로 지혜가 충만하라. 아멘.
8. 내 영혼아 예수이름으로 기쁨이 충만하라. 아멘.
9. 내 영혼아 예수이름으로 평화가 충만하라. 아멘.
10. 내 영혼아 예수이름으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 아멘.
11. 내 영혼아 예수이름으로 모든 일이 형통하라. 아멘.
12. 내 영혼아 예수이름으로 주변 환경을 다스리라. 아멘.
마지막으로 이 세상과 싸워 이기기 위한 선포입니다.
1. 내 영혼아 예수이름으로 죄를 이길지어다. 아멘.
2. 내 영혼아 예수이름으로 악을 이길지어다. 아멘.
3. 내 영혼아 예수이름으로 사단의 시험을 이길지어다 아멘.
4. 내 영혼아 예수이름으로 돈과 물질을 이길지어다 아멘.
5. 내 영혼아 예수이름으로 환경을 이길지어다 아멘.
6. 내 영혼아 예수이름으로 세상의 습관을 이길지어다 아멘.
7. 내 영혼아 예수이름으로 세상의 유혹을 이길지어다. 아멘.
8. 내 영혼아 예수이름으로 고난을 이길지어다. 아멘.
9. 내 영혼아 예수이름으로 근심걱정을 이길지어다. 아멘.
10. 내 영혼아 예수이름으로 스트레스와 질병을 이길지어다. 아멘.
11. 내 영혼아 예수이름으로 두려움과 공포를 이길지어다. 아멘.
12. 내 영혼아 예수이름으로 음행과 외로움, 우울을 이길지어다. 아멘.
이 모든 것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포합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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