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ㅣ 로그인 ㅣ 회원가입 ㅣ 최근게시물 ㅣ 사이트맵  
ID저장
회원가입 ㅣ ID/비밀번호찾기
교회비젼소개
동경만나비젼
선교사소개
예배안내
주일말씀
주일말씀
   홈 >  주일말씀
 
작성일 : 14-09-07 09:49
2014년 9월7일 서른여섯번째 주일말씀
 글쓴이 : 동경만나교…
조회 : 6,135   추천 : 0  
성경본문: 누가복음 19:1-10
제목 : 삭개오같은 사람

1.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 2.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 3.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 4.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 5.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 6.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 7.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 8.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 9.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 10.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1.イエスはエリコに入り,町を通っておられた./ 2.そこにザアカイという人がいた.この人は徵稅人の頭で,金持ちであった./ 3.イエスがどんな人か見ようとしたが,背が低かったので,群衆に遮られて見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 4.それで,イエスを見るために,走って先回りし,いちじく桑の木に登った.そこを通り過ぎようとしておられたからである./ 5.イエスはその場所に來ると,上を見上げて言われた.「ザアカイ ,急いで降りて來なさい.今日は,ぜひあなたの家に泊まりたい.」/ 6.ザアカイは急いで降りて來て,喜んで イエスを迎えた./ 7.これを見た人たちは皆つぶやいた.「あの人は罪深い男のところに行って宿をとった.」/ 8.しかし,ザアカイは立ち上がって,主に言った.「主よ,わたしは財産の半分を貧しい人々に 施します.また,だれかから何かだまし取っていたら,それを四倍にして返します.」/ 9.イエスは言われた.「今日,救いがこの家を訪れた.この人もアブラハムの子なのだから./ 10.人の子は,失われたものを搜して救うために來たのである.」)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평생에 많은 사람들에게 비교되고, 또 비난받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에게는 핸디캡이 있었습니다. 장애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보통 사람들보다 키가 많이 작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는 누구에게나 이런 핸디캡이 있습니다. 저에게도 물론 이런 장애가 있습니다. 저는 어떤 일을 부탁받거나 제안받을 때, 싫지만, 싫다거나 못한다는 말을 잘 못합니다. 그래서 억지로 하게 되는 일이 많고, 또 다른 사람에게 싫은 말을 잘 못해서 결국 오해를 받는 일도 있습니다.
그래서 당당하지 못하다는 말도 많이 듣고, 바른 소리를 못하느냐는 비난도 듣지만,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만약 제가 이 핸디캡을 극복하지 않으면, 이 장애가 나중에는 장애물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장애물은 결국 넘을 수 있는 장애물이 아니라, 넘을 수 없는 장애물이 되는 것입니다. 넘을 수 없는 장애물을 만들면, 결국 그 작은 장애 하나가 자기자신의 마음을 다치게 하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도 다치게 하는 큰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이 일이 오해를 받고, 또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으려고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저뿐만 아니라, 여러분들에게도 이런 작은 장애물이 하나씩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장애물을 치우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넘을 수 없고, 치울수 없는 큰 장애물로 변해서 여러분 자신을 아프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이 남자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키가 많이 작다는 이 장애 때문에 이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는 직업을 선택했습니다. 그 당시 세금을 걷는 세리는 지배국인 로마의 지시를 받아서 자기 동포들인 유대인들에게서 세금을 걷어서 로마정부에 상납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세리의 일을 싫어했고, 또 동족을 괴롭히는(苦しめる) 일을 한다하여 유대인들은 유대인 세리들을 아주 미워했습니다.

세리가 왜 좋지 않은 직업이었을까요? 세리들은 권력이 있었습니다. 로마정부에서 한 사람에게 10만엔의 세금을 받아서 제출하라고 하면, 세리들이 15만엔이나 20만엔을 받아서 10만엔만 로마정부에 제출하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만약, 세리가 정한 세금을 내지 않으면, 군대를 동원해서 잡아가고 감옥에 가두어서 세금을 받을 수 있는 로마정부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유대인세리였던 것이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평범한 사람들은 같은 동족을 괴롭히는(苦しめる) 이 세리의 일을 하지 않았지만, 삭개오라고 하는 키가 작은 장애를 가진 이 남자는 세리의 일을 아주 잘해서 세리들의 보스인 세리장을 맡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삭개오는 자기가 사람들과 달리, 키가 작은 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픔을 대신해서 키가 큰 사람들, 보통 사람들을 괴롭히고 세금을 걷어내는 권력을 가질 수 있는 세리의 직업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러나, 삭개오에게는 영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장애를 극복해보려고, 사람들의 무시를 견디어내려고 세리라는 직업을 선택해서 세리장까지 되었고, 사람들이 자신을 무서워하고 무시할 수 없는 위치가 되었지만, 그것으로 자신의 장애를 이겨낸 것은 아니었습니다. 육체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영혼의 문제, 영적인 문제, 동족을 괴롭히고 갖게 된 돈과 권력이 가져온 죄의 문제가 삭개오라는 사람의 마음 깊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중, 어떤 사람이든지 사랑하고, 용서하고, 회개의 복음을 전한다고 하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었고, 자기가 살고 있는 마을을 지나간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삭개오는 이 사람을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자신은 죄인이며,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생님이기에 자신과 만날 수도 없고, 자신을 보아 주지도 않겠지만,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고, 사랑을 전하는 이 예수님을 멀리서라도 보고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삭개오는 자신의 키가 작은 것을 사람들에게 보이기 싫었지만, 예수님을 보고싶은 마음에 자신이 자존심과 체면을 모두 내려놓고, 나무 위에 기어올라갔습니다. 그리고 길을 지나가는 예수님을 보며 “아 예수님이 저렇게 생기셨구나. 정말 자비로운 얼굴이구나, 예수님이라면 내 죄를 용서해 주실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때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지나가던 예수님이 갑자기 삭개오가 기어올라간 나무 앞에서 멈추어 섰습니다. 그리고 삭개오가 올라간 나무를 바라보며 자비로운 얼굴로 삭개오에게 먼저 말을 걸었습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ザアカイ ,急いで降りて來なさい.今日は,ぜひあなたの家に泊まりたい.」
삭개오도 깜짝 놀랐지만,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을 사람들도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예수님은 유명한 선생님이시며, 거룩한 분이고, 삭개오는 동족을 괴롭히는(苦しめる) 세리였는데 예수님이 먼저 죄인에게 말을 걸고, 손을 내민 것입니다.

우리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들도 삭개오같은 사람들입니다. 언제나 자신이 만든 장애를 가지고, 그 장애물 뒤에 숨어서 사람들을 비난하고 미워하며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위 환경과 세상을 원망하며 숨어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그런 우리를 예수님이 먼저 오셔서 손을 내밀어 주셨고, 그 손을 잡아 우리는 구원받았지 않습니까?

잠깐 오늘 말씀 누가복음 19장에서 예수님이 삭개오를 만나시기 전에 18장에서 또 한 사람을 만난 사건이 있습니다. 같이 보겠습니다.
누가복음 18:18-23절입니다.
[18.어떤 관리가 물어 이르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 19.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 20.네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 21.여짜오되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 22.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 23.그 사람이 큰 부자이므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18.ある議員がイエスに,「善い先生,何をすれば永遠の命を受け繼ぐことができるでしょうか 」と尋ねた./ 19.イエスは言われた.「なぜ,わたしを『善い』と言うのか.神おひとりのほかに,善い者はだれもいない./ 20.『姦淫するな,殺すな,盜むな,僞證するな,父母を敬え 』という掟をあなたは知っているはずだ.」/ 21.すると議員は,「そういうことはみな,子供の時から守ってきました」と言った./ 22.これを聞いて,イエスは言われた.「あなたに欠けているものがまだ一つある.持っている物をすべて賣り拂い,貧しい人々に分けてやりなさい.そうすれば,天に富を積むことになる.それから,わたしに從いなさい.」/ 23.しかし,その人はこれを聞いて非常に悲しんだ.大變な金持ちだったからである.}

어떤 관리(ある議員)라고 하는 사람은 당시 유대인들의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의 존경받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는 재산도 많은 부자였습니다. 이 사람과 삭개오는 정반대에 있는 사람입니다. 젊고 존경받는 유대인의 지도자와 키가 작고 비난받는 유대인 세리입니다.

  오늘 성경에서 소개하는 삭개오는 당시 아주 비참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으며, 대표적인 죄인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예수님을 만날때에, 자신의 영적인 문제를 해결받고, 그는 변화되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면, 우리는 우리의 불행한 인생을 행복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입니다. 삭개오처럼 변화 시킬 것인가? 아니면, 예수님에게 제자가 될 기회를 얻었지만, 자신이 가진 많은 것을 포기하지 못하여 제자의 길을 선택하지 않은 유대인 관리(ある議員)과 같은 사람이 될 것입니까?

  나를 구원하시고,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셔서, 천국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영원한 생명을 약속해 주신 예수님을 믿고, 영혼의 행복과 평화를 원한다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에는 어느 정도 희생과 헌신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오늘 소개하는 삭개오에게 세 가지 교훈을 배우려고 합니다.
죄인 중의 죄인으로 사람들에게 비난받는 인생이었던 삭개오가 어떻게 예수님을 만났으며, 용서받고, 구원받았는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첫째, 삭개오는 변하기 위해 자신의 자존심을 내려놓았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께서 여리고에 들어오셨다는 소문을 듣고 예수님의 얼굴이라도 한 번 보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그의 작은 소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작은 소원은 자신의 작은 키 때문에, 평생 자신을 괴롭혀 왔던 그 장애, 키가 작은 것 때문에 또 예수님 얼굴이라도 보고싶었떤 마음에 장애가 된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떻습니까?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은혜받으려고 하다가도 작은 장애물을 만나면, 은혜받는 것을 너무나 쉽게 포기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고 하다가도, 작은 장애물을 만나면, 다음으로 연기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뜻하지 않은 장애에 직면하면 이런 식으로 포기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삭개오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갔습니다. 여러분, 키가 작은 중년의 남자가 그것도 마을에서 비난받고 있는 세리장이 나무위를 기어올라가서 어린 아이처럼 예수님이 지나가는 것을 쳐다보고 있는 장면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할 수 있는 일일까요? 체면(体面)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동양의 사람들은 어쩌면 할 수 없는 일일지 모릅니다. 그런데, 자신이 체면이나 자존심을 버렸을 때, 예수님을 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둘째, 삭개오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삭개오가 있는 곳까지 오시더니 위를 쳐다보시며 그를 부르셨습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여기서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하지 못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만나본 적도 없는 삭개오의 이름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요한복음 1장에 보면, 예수님은 나다나엘(ナタナエル)을 만나기 전부터 알고 계셨습니다. 사도행전22장에서는 사울(サウル)의 이름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으로 이 땅에 내려왔지만, 본래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능력을 가진 분이시기 이런 일이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삭개오뿐만 아니라, 오늘 여기에 있는 우리 모두도 너무나 잘 알고 계시며 우리를 불러 주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삭개오에게 오늘 너의 집에서 머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여기에 있는 우리들에게 예수님이 갑자기 이렇게 말씀하셨다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아직 집을 안 치워서 더러운데요, 오늘은 안됩니다. 내일 오시면 안될까요? 오늘은 오후에 친구랑 식사하기로 선약(先口の約束)이 있어서 안되겠는데요. 저기 미안한데요... 예수님, 오늘은 진짜 안됩니다. 다음에 오시면 안되겠습니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저런 대답으로 오늘은 안되는 사람들이 많을지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삭개오를 주목했습니다. 저 사람은 뭐라고 대답할까? 오늘 당장 예수님을 모실수 있을까? 어려울 거야? 죄인의 집은 더럽고 냄새날 거야. 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삭게오도 당황스러웠을 것입니다. 왜지? 왜 예수님은 나같은 죄인에게 말을 걸어주시고, 내 집에 오겠다고 하시지? 의문은 있었지만, 삭개오는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나무 위에서“급히”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즐거워하며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영접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의 제의를 거절할 수도 있었습니다. 상황을 보십시오. 예수님 한사람이 아닙니다. 최소한 12명의 제자들이 함께 있습니다. 제자들 뿐만도 아닙니다. 멀리서부터 예수님을 따르는 수많은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 모든 사람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잠자리를 제공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일 입니까? 돈은요? 키가 작은 자기를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세리가 되었고, 세리장이 되어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 삭개오에게 있어서 돈은 자신의 장애를 덥어주는 것이었는지 모릅니다. 다른 사람보다 더 돈에 민감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일행을 모두 접대한다면, 얼마나 많은 돈이 들겠습니까?
아내에게 사전에 손님을 초청하기로 이야기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나중에 아내에게 혼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삭개오는 그 모든 인간적인 계산을 뒤로 밀어버렸습니다. 이것이 삭개오의 순종입니다.

요한계시록 3:20 말씀입니다.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見よ,わたしは戶口に立って,たたいている.だれかわたしの聲を聞いて戶を開ける者があれば,わたしは中に入ってその者と共に食事をし,彼もまた,わたしと共に食事をするであろう.}

셋째,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난 결과를 보였습니다.
  삭개오는 이렇게 큰 희생을 치르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만난 것만으로 변화되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도 매주 예수님께 예배드리며, 예수님을 만납니다. 예수님이 우리 눈에 보여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남겨주신 예수님의 가르침과 설교를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의 사상과 정신을 매주 만나고 있습니다. 만남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또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安部総理를 만나거나 박근혜대통령을 만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 그래서 그 이야기의 결과가 무엇인가?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삭개오는 돈에 집착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의 혐오 직종인 세관 일을 맡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돈을 벌 수만 있다면 민족으로부터 배신자란 말을 들어도 괜찮았습니다. 돈을 벌수만 있다면 외톨이가 되어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왜요? 자신의 약점이며 장애인 키가 작은 핸디캡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삭개오는 열심히 세리의 일을 했고, 신체적으로 작은 사람이었음에도 그는 여리고성의 세리들의 보스인 세리장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역시 그도 다른 세리들처럼 부자가 되었습니다.

이런 삭개오가 자신의 자존심을 버리고, 자신의 환경과 상황을 모두 뒤로 제쳐두고(後方に身を置いて),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비난이나, 비판으로 될 수 없었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미워하고 무시해도 변하지 않던 변화입니다. 그가 순수하게 예수님 앞에 순종할 때, 그 만남은 변화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삭개오 자신은 그 자신의 내면의 변화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에 순종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리고 삭개오는 예수님과 사람들 앞에서 작은 키를 움직여 일어섰습니다. 그는 사람들 앞에나, 사람들 중앙에 서서 이야기 해본 적이 거의 없는 사람이었기에 사람들은 놀랐습니다. 변화는 환경을 놀라게 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ザアカイは立ち上がって,主に言った.「主よ,わたしは財産の半分を貧しい人々に施します.また,だれかから何かだまし取っていたら,それを四倍にして返します.)

이런 말을 들어본 일 있으십니까 여러분?
(やられたらやり返す、倍返しだ。)이 바이가에시(倍返し)의 시작이 바로 삭개오가 한 말입니다. 드라마에서는 나쁜 의미로 사용되었지만, 삭개오는 좋은 의미로 갚겠다. 그것도 네배로 갚겠다는 선언입니다.

이것은 작은 변화가 아니라 엄청난 변화입니다. 어떻게 모은 재산인데 그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다고 하는 것입니까? 그는 여태까지 이렇게 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기꺼이 자신의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고자 했습니다. 그의 가치관이 바뀐 것입니다.

율법에 의하면 남의 물건을 탈취한 사람은 훔쳤던 것의 5분의 1을 덧붙여서 임자에게 반환해야 했습니다(레6:1-7). 만일 그가 가축을 훔쳤으나 잡거나 팔아버려서 돌려줄 수 없을 때에는 소 하나에 다섯 마리, 양 하나에 네 마리로 갚아야 했습니다(출22:1). 가지고 있을 경우는 두 배로 배상해야 했습니다(출22:4).

삭개오가 네 배로 갚겠다고 한 것은 율법이 요구하는 것 이상으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 내 영혼이 자유를 얻었고, 내 평생의 장애와 장애물이 나를 괴롭게 했지만, 이제 영적인 모든 문제가 해결된 이 시간, 삭개오에게는 세상의 율법이나 어떤 규칙보다 자신의 결심과 변화가 더 뜨거웠으며 더 진실하였던 것입니다. 변화는 이런 것입니다. 세상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정한 법보다 더 진실하게 살게 됩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삭개오와 같은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예수그리스도의 만남이 여러분과 저에게 있어야 합니다.그래서 지금까지 자신을 괴롭혀온 자기가 만든 장애와 장애물에서 벗어나 자유하시기 바랍니다. 그 방법이 오늘 예배에 있습니다. 이 예배가 저와 여러분을 자유하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변화시킬 것입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은 삭개오같은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자신이 움켜쥐려고(握り締めた) 했던 것들, 예수님 앞에서도 지켜보려고 했던 자존심과 욕심의 손을 펴고(手を広げて), 예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영혼의 자유를 얻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기도하겠습니다.)

 
   
 


Address : 〒124-0005) 東京都葛飾区宝町1-3-15
Copyright ⓒ 2008 동경만나교회. All rights reserved. E-mail. jmcc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