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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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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3-04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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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24일 동경만나주일말씀(만족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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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동경만나교…
 조회 : 4,878  추천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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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10.1.24 동경만나 주일설교
본문 : 고린도후서 3:5
주제 : 만족하십니까?
고린도후서 3:5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여러분, 만족하십니까?
뚱딴지같이 무슨 말이냐? 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무엇에 만족하느냐고 물어야겠지요?
그럼 묻겠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무엇에 만족하고 있습니까?
우리 생활 가운데 없어서는 안되는 가장 중요한 것들 가운데, 돈에 만족하고 있습니까?
그럼, 건강에 만족하고 있습니까? 마음의 평화는 만족합니까?
그렇다면, 가족관계, 자녀관계, 결혼생활에는 아무 부족함 없이 만족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도대체 우리에게 만족한 것은 무엇입니까?
돈도, 건강도, 가정도, 마음이 평화도 만족함이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니 왜 살고 있습니까? 아무 만족이 하나도 없는 인생을 왜 살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생과 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잠언 27:20 말씀
스올과 아바돈은 만족함이 없고 사람의 눈도 만족함이 없느니라
전도서 5:10 말씀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아멘)
그렇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으로 만족할 때, 다른 것을 찾아 범죄하면서부터는 만족함이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만족은 없습니다. 아무리 풍족해도 만족한 생활은 아닙니다. 어떻게 인간에게 만족을 채워줄 수 있을까요?
잠언 27:20
음부와 유명은 만족함이 없고 사람의 눈도 만족함이 없느니라.
(예화-끝없는 욕심)
어떤 사람이 너무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먹고 싶은 음식, 입고 싶은 옷 한 벌 제대로 못 입어봐서 너무나 한이 맺혔습니다. 그래서 자라면서 한푼 두푼 긁어모았습니다. 자신이 목표로 한 1억엔이 모일 때 까지는 어떻게든지 돈을 모으리라 결심했습니다. 돈 쓰는 모임에는 안 갔습니다. 돈이 드는 사람도 안만났습니다. 그렇게 20여년을 돈을 모으다보니 1억엔이 넘게 모아졌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이 돈을 쓰려고 생각했습니다. 20년동안 먹고 싶었지만, 먹어보지 못했던 고기도 먹고, 입고 싶었던 옷도 사 입으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돈 백만엔을 손에 들고 고기집을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메뉴를 보니까 돈이 아까워졌습니다. 그래서 포기하고 나와서 이번엔 옷을 사려고 옷가게를 갔습니다. 그런데 옷에 붙어있는 가격표를 보자, 1억엔을 모으기 위해 고생했던 기억들이 떠올랐습니다. 어떻게 고생해서 벌었는데 이 옷을 사는데 쓰나, 도저히 옷을 살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옷가게를 나왔습니다. 그리고 결심했습니다. 2억엔을 모으면 그때 돈을 써보리라.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늘 사먹던 컵라멘을 하나 사서 집에 들어왔습니다.
제가 생각할때에 이 사람은 2억엔을 모아도 돈을 사용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는 그렇게 늘 돈을 모으다가 인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에게 돈은 만족하기 위한 목표였지만, 돈은 절대로 만족할 수 없는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디모데전서 6:7-12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
그렇습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만족하다. 라고 말씀합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이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났다고 말씀합니다.
이 유혹을 이기기 위하여 의, 경건, 믿음, 사랑, 인내, 온유를 좇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이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다. 라고 말씀합니다.
돈으로 만족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돈으로 만족한다는 것은 돈을 그저 많이 가지고 싶다. 나를 위해서 많이 사용하고 싶다는 의미가 강합니다. 자기자신을 위해 충분히 사용하고 남을 만큼의 돈을 충분히 가지고 싶다라는 소원입니다.
그러나,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을 마음껏 도와주고 싶다. 주님을 위해서 언제든지 필요한 곳에 헌금하고 싶다. 가난하고 배고픈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고 그들을 위해 사용하고 싶다. 라는 소원은 돈으로 만족하고 싶다는 소원과 다릅니다.
그래서 돈이 많은 것과 돈을 잘 사용하는 것과는 좀 다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돈이 많지만, 잘 사용하지 못합니다.
누가복음12:16-21 말씀에 이런 비유가 나옵니다.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이 부자는 오직 자신을 위해 돈이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사람, 다른 일, 하나님은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①평안히 쉬고 ②먹고 ③마시고 ④즐거워하자. 모든 관심이 자기자신한테만 있습니다. 자신의 유익에만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일본어 신개역성서에서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安心して,食べて,飮んで,樂しめ.
안심하고, 먹고, 마시고, 즐겨라.입니다. 이 부자는 안심하는 것이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축복인줄 알았던 것입니다.
틀렸습니다. 안심하는 축복은 자신의 선택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이 부자는 부요치 못한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돈으로 만족할 수 있는 평화, 안심은 하나님이 주셔야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계획하고 내 마음대로 태어난 것도 아니지만, 내 마음대로 계획해서 죽을수도 없습니다. 그렇게 죽으면 이 세상에서의 고난과 어려움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무섭고 끔찍한 고통과 심판을 받고 지옥에서 영원히, 영원히 지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심판과 영생이 있음을 아는 우리는 만족이 없는 세상에서 하나님 한분 만으로도 만족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시편 145:14-16 말씀
여호와께서는 모든 넘어지는 자들을 붙드시며 비굴한 자(웅크리고 있는 자, 엎드려있는자, 낮은 자)들을 일으키시는도다
모든 사람의 눈이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때를 따라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며
손을 펴사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하게 하시나이다
하나님은 모든 넘어진 사람, 낮은 사람, 약한 사람을 일으키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모든 사람들의 마지막 희망이며, 유일한 소망이 되십니 하나님을 의지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유일한 만족이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게 살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요?
성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언 18:20
말은 음식이 배를 채워 주는 것처럼 그 영혼을 만족시킨다. 곧 입술의 바른 말이 사람을 만족시킨다
우리의 말은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말은 다른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또한, 말은 사람을 배부르게 하며, 만족함을 주기도 합니다.
옆에 있는 분의 얼굴을 보아 주십시오. 그리고 정말 진지하게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말해 보십시오. “당신은 정말 귀한 사람입니다. 당신은 올해 모든 일이 잘 되고 축복받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안 믿어도 나는 당신을 믿습니다.”어떻습니까? 이 말을 듣고 어떤 마음이 생겼습니까? 기분이 나빠졌습니까? 아닙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해준 사람이 사랑스럽습니다. 좋아집니다. 그렇게 말은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대로 이런 말을 다른 사람에게 듣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은 정말 바보같아! 당신의 얼굴을 보면, 얼굴과 마음이 모두 못생겼어! 당신은 그냥 이유없이 싫어!”라고 말입니다. 생각만 해도 기분 나쁘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렇게 말한 사람을 평생 용서할 수 없을거 같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우리 교회에 있다면, 아무리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러 가는 거지만, 이 사람이 있는 교회는 절대로 안 나갈거 같습니다.
이렇게 우리들에게 들려지는 말,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하는 말은 격려가 되고, 힘이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절망하게 만들고, 낙심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서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시편 17:15 말씀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뵈오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우리의 만족이 어디에 있습니까?
주님의 얼굴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얼굴은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나의 얼굴에 있는 것입니다.
거울을 들여다 보십시오. 거울 속에 잔뜩 인상을 쓰고, 무언인가에 매일 화가 나있고, 분노에 가득찬 얼굴이 있다면, 그가 주님일리는 없습니다. 그러니 매일 불만족의 연속이며, 불평과 불행의 날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울속의 얼굴을 보니, 왠지 기쁘고, 즐거운 얼굴이며, 따뜻하고 웃는 얼굴이라면, 그 얼굴은 주님의 얼굴일 수도 있습니다. 나를 보며, 웃고 있습니다. 나를 보며 행복해 합니다. 나를 보며 기뻐합니다. 바로 주님의 얼굴입니다.
내 모습속에 나타나는 주님의 그 얼굴은 바라만 보아도 만족하게 해 줍니다. 바라보는 것 외에 다른 것을 요구할 것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누구의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까?
거울이 없다면, 옆의 사람에게 물어보십시오. “당신의 눈에 보이는 나는 만족한 주님의 얼굴입니까? 아니면, 불만족한 불행의 얼굴입니까?”
만족이란, 주님과의 관계에서 주어지는 행복입니다.
만족이 다른 사람에게서 얻어진 물질의 수입, 재산의 증식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서 기쁨을 얻을 수 있을 정도의 마음의 따뜻함과 여유를 잃지않고 산다면, 우리는 행복한 크리스천인 것입니다.
오늘 주님은 바로 이런 그리스도인을 찾고 계십니다.
바로 지금 여기에 앉아 만족해 하는 사람을 말입니다.
진정한 만족은 내 마음의 만족입니다.
또한, 나를 통해 보여지는 주님의 얼굴입니다.
오늘 내 얼굴에서 주님이 보여지는 삶을 가져가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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