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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3-04 17:28
2010년 2월 7일 동경만나주일말씀(사랑하고 있습니까?)
 글쓴이 : 동경만나교…
조회 : 10,484   추천 : 0  
∥2010. 2. 7 동경만나 주일말씀
∥제목 : 사랑하고 있습니까?
∥본문 : 고린도전서 13장(1-13절)

たとい,私が人の異言や,御使いの異言で話しても,愛がないなら,やかましいどらや,うるさい シンバルと同じです.
また,たとい私が預言の賜物を持っており,またあらゆる奧義とあらゆる知識とに通じ,また,山を 動かすほどの完全な信仰を持っていても,愛がないなら,何の値うちもありません.
また,たとい私が持っている物の全部を貧しい人たちに分け與え,また私のからだを燒かれるために 渡しても,愛がなければ,何の役にも立ちません.
愛は寬容であり,愛は親切です.また人をねたみません.愛は自慢せず,高慢になりません.
禮儀に反することをせず,自分の利益を求めず,怒らず,人のした惡を思わず,
不正を喜ばずに眞理を喜びます.
すべてをがまんし,すべてを信じ,すべてを期待し,すべてを耐え忍びます.
愛は決して絶えることがありません.預言の賜物ならばすたれます.異言ならばやみます.知識ならばすたれます.
というのは,私たちの知っているところは一部分であり,預言することも一部分だからです.
完全なものが現われたら,不完全なものはすたれます.
私が子どもであったときには,子どもとして話し,子どもとして考え,子どもとして論じましたが, おとなになったときには,子どものことをやめました.
今,私たちは鏡にぼんやり映るものを見ていますが,その時には顔と顔とを合わせて見ることになります.今,私は一部分しか知りませんが,その時には,私が完全に知られているのと同じように, 私も完全に知ることになります.
こういうわけで,いつまでも殘るものは信仰と希望と愛です.その中で一番すぐれているのは愛です.(コリント人への手紙一13章)

성경에는 수많은 계명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나 모세오경에 기록된 그 많은 계명들은 현대의 우리들이 지키기에는 너무나 힘들고 부담스러운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모세의 율법에 있는 유명한 법이 이것입니다.
네 형제가 너의 눈을 다치게 하면, 그의 눈을 뽑아서 그도 너처럼 보지 못하게 하라.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라는 법입니다.
이 법에는 사랑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수가 없습니다. 이 구약의 율법의 용서는 내가 당한 것을 갚아주는 것이 용서입니다. 내가 받은 모욕을 그대로 갚아주고 나서 용서가 있습니다. 내가 잃어버린 재산만큼 상대방의 재산을 빼앗아 오고나서야 용서가 있습니다.
여기에 어떻게 사랑이 있습니까? 희생, 화목, 평화 이런 것은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고 하는 이 법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시대는 눈에 보이는 것을 지키면 되는 사회였습니다.
상대방에게 손해를 끼치면, 그만큼 갚아주면 되는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의 율법은 그렇치 않습니다.
예수님이 세우신 신약시대의 율법은 사랑의 법입니다. 용서의 법입니다. 희생과 화목의 법입니다.
그런데 이 법이 너무나 어려운 법입니다.
왜냐하면, 이 법은 육체의 법보다 무섭습니다. 물질의 법보다 세밀하기 때문입니다.
이 예수님의 법은 속일 수가 없습니다. 숨길수도 없습니다.
네 형제를 보고 미워하고 욕한 자는 살인자요,
네 이웃의 여자를 보고 눈으로 간음한 것도 간음죄다. 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참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시대이지만, 신앙을 지키기도 어려운 시대입니다.
구약시대는 눈에 보이는 율법을 지키기만 하면 되었는데, 지금은 영적인 부분, 마음속의 생각도 지키지 않으면 안되는 신약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법은 모든 사람이 죄인이며, 죄를 떠나 살수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희망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제가 신학교 다닐때 신학교 교수님 한분이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하라. 라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어려운 문제의 해결방법도 바로 성경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12장 28:31절 말씀)
“서기관 중 한 사람이 저희의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대답 잘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律法學者がひとり來て,その議論を聞いていたが,イエスがみごとに 答えられたのを知って,イエスに尋ねた.「すべての命令の中で,どれが一番たいせつですか.」 イエスは答えられた.「一番たいせつなのはこれです.『イスラエルよ.聞け.われらの神である 主は,唯一の主である. 心を盡くし,思いを盡くし,知性を盡くし,力を盡くして,あなたの神である主を愛せよ.』次にはこれです.『あなたの隣人をあなた自身のように愛せよ.』この二つより大事な命令は,ほかにありません.)

성경을 연구하는 수많은 신학자들이 말하기를 모든 성경의 법중에 법이며, 율법의 왕인 황금율법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율법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라는 아주 짧은 명령입니다.  다같이 한번 말해봅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너무나 짧아서 에게? 겨우 이 말씀이 성경의 모든 율법을 지키는 방법인가? 의심이 생길 정도입니다. 의심이 막 생겨나시는 분 있죠? 아마도 목사님이 길게 말하기 귀찮으니까 이렇게 짧은거 찾아다가 하나보다. 라고 생각하시는 분 안 계신가요?

그러나 정말입니다. 진실입니다. 사실입니다. 그리고 진리입니다. 아멘!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네가 모든 율법을 지켰느냐? 그러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
그런데, 사실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립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몸과 같이 네 이웃을 사랑하라. 아멘”
신령과 진정이란 무슨 뜻입니까?
네가 영으로, 그리고 진심으로 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육체는 변합니다. 늙어갑니다. 생각도 변하고, 약속도 변하고, 욕심도 많이 많이 늘어납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은 변함이 없습니다. 영혼은 하나님께서 주신 그대로 있습니다. 단지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할 때는 영혼이 기뻐 노래하며 춤을 추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살며, 예배하지 않을 때는 우리 영이 마치 죽은 자처럼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혼은 변함이 없습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라. 진심으로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 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권유가 아닙니다. 충고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 라고 하는 엄한 명령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마음을 다해서 사랑하십시오. 진심으로 사랑하십시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의 도리이며,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의 은혜로 죄인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  그리스도인의 의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마치 자신이 하나님께 예배드려주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예배받을 사람이 없는 줄 알고 있습니다. 자기가 예배드려 주니까 하나님도 나를 축복해라. 라는 식으로 교회를 다닙니다. 이런 사람들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 성도가 아니라, 교인입니다. 교회만 아는 사람입니다. 교회는 오랫동안 다녔지만, 하나님은 못 만난 사람입니다.

(누가복음 19:37-40절 말씀)
“이미 감람 산 내리막길에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들이 본 바 모든 능한 일로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시니라.”
(イエスがすでにオリ―ブ山のふもとに近づかれたとき,弟子たちの群れはみな,自分たちの見たすべての力あるわざのことで,喜んで大聲に神を贊美し始め,こう言った.「祝福あれ.主の御名によって來られる王に.天には平和.榮光は,いと高き所に. 」するとパリサイ人のうちのある者たちが,群衆の中から,イエスに向かって,「先生.お弟子たちをしかってください.」と言った. イエスは答えて言われた.「わたしは,あなたがたに言います.もしこの人たちが默れば,石が叫びます.」)
 
성경은 말씀합니다. “네가 찬송하지 않으면 이 돌들이 찬송하리라.”
하나님은 그런 분입니다. 모든 만물이 주의 것이며, 모든 것을 창조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조화롭게 하셨으며, 모든 것에 생명과 의미를 주셨습니다.
이 작은 돌은 움직이지도 호흡을 하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작은 돌 하나에도 하나님의 창조물의 증거를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이 돌을 보면서 하나님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그것을 우리는 자연계시, 일반계시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알려주고, 하나님을 드러내는 모든 것을 계시라고 부르기 때문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오늘은 사랑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신 사랑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인간이 어떻게 사랑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간관계에서 갈등을 일으키고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워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없는 관계를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면, 다 용서가 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가 아직 종되었을때에, 그리스도를 보내어 십자가에 달려 죽게하였다. 고 말입니다.

(로마서 5장 6-8절 말씀)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私たちがまだ 弱かったとき,キリストは定められた時に,不敬な者のために死んでくださいました.正しい人のためにでも死ぬ人はほとんどありません.情け深い人のためには,進んで死ぬ人があるいはいるでしょう.
しかし私たちがまだ罪人であったとき,キリストが私たちのために死んでくださったことにより, 神は私たちに對するご自身の愛を明らかにしておられます.)

우리가 아직 사단의 종이 되어 죄를 짓고, 제 마음대로 하나님을 무시하며 살 때에, 아직 우리가 회개하지도 않았고, 선하게 변하지도 않았을 때에 하나님은 그런 죄인을 위하여 가장 거룩하시고, 아름다우신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왕으로, 우리의 지도자로, 우리의 예배를 받는 자로 보내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종으로, 우리의 죄를 짊어질 사형수로, 우리의 죄값을 다 대신 받을 십자가의 죄인으로 내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을 보내신 분이 하나님아버지이시고, 이런 사람을 받는 분들이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그런데 왜 감격이 없습니까? 어떻게 감동이 없을 수가 있습니까?

성경 마태복음 18장에는 이런 사람들을 비유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1만 달란트 빚진자가 빚을 못받은 왕에게 잡혔습니다. 빚을 갚지 못하면 벌을 받겠다고 하자, 그는 눈물을 흘리면서 제발 한번만 용서해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왕은 불쌍하게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불쌍한 사람을 용서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일생동안 도저히 갚을 수 없이 많은 그 모든 빚을 다 탕감해 주었습니다.
너무나 기쁜 이 사람은 모든 빚을 용서받고 나오는 길에 전에 자신에게 조금 빚진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자신의 빚을 갚으라고 왕이 자신에게 한것처럼 합니다. 그 사람도 역시 마찬가지로 눈물을 흘리며 애원합니다. 한번만 용서해 달라고, 갚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용서하지 않고, 그를 빚을 갚을때까지 감옥에 집어 넣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왕은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그를 다시 잡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하나님은 지금 우리를 그렇게 생각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용서받은 수많은 죄를 기억해 보십시오. 죄책감에 빠지라는 것이 아니고,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불과 수십년전만 해도, 점을 치러다니고, 주일에 놀러다니고, 술마시고 방탕하게 살았던 우리가 지금 그 모든 더러운 죄와 행실을 모두 용서받았습니다.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우리가 용서받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 너무나 야박하게 상대합니다.
조금만 잘못해도, 가차없습니다. 미워하고, 분노합니다. 용서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늘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만은 이해못해, 그것만은 용서못해, 그사람만은 안돼. 라고 말입니다. 오늘 당신에게 주님은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너 만은 안돼!” 라고 말입니다. 무섭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은 분명하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예수님은 아무 조건없이 우리 죄를 용서해 달라고 가르치지 않으셨습니다.
분명히 우리가 용서하면, 우리를 용서해 주십시오. 반대로 이렇습니다.
한번 따라해 보십시오.
“하나님! 내가 다른 사람을 미워하면, 나를 미워해 주십시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분노하면, 내게 분노해 주십시오. 내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 한, 하나님도 나를 용서하지 말아 주십시오. 아멘.” 아멘이 나옵니까?  안 나옵니다. 왜요. 무서우니까요. 내가 그렇게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 사람이니까요. 다른 사람을 그렇게 그렇게 미워했습니다. 분노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기도를 드릴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분명히 성경은 이렇게 말씀했고, 우리는 그렇게 따라 했습니다. 우리가 용서할 때, 우리를 용서해 달라고요.

사랑하는 여러분!
무섭지 않습니까?  고작 성경에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율법은 단 두가지인데, 이 두가지를 지금 우리가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여러분! 정말 사랑하고 있습니까?
무엇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자신의 욕심입니까? 자신의 가족들만입니까?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만 사랑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가짜 사랑입니다. 그것은 구원받은 사랑이 아닙니다.
아무리 악한 자도 자기 자식에게는 뱀을 고기라고 주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자기 자신, 자기 가족, 자신의 것만을 사랑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본능입니다.

나와 관계없는 이웃, 내 자식이 아니 남의 자식, 나와 관계없는 사람들을 사랑하십시오. 그들의 아픔을 돌보아 주십시오. 그들의 눈물을 닦아 주십시오. 이것이 하나님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진리입니다. 할렐루야.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우리는 정말 사랑하고 있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하나님을 제대로 사랑하지도, 이웃을 사랑하지도 않은 것을 고백합니다.
이제 이 시간 하나님아버지의 시선이 머무는 곳, 하나님의 눈물이 고인 곳을 저희가 함께 바라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당신의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아끼지 않고 주셔서, 그 예수님으로 인하여 우리가 구원받았는데, 아직도 우리는 당신을 신령과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그리고 오늘부터 우리의 생활과 마음이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 오늘부터 한사람씩 용서하는 신앙을 실천하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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