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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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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3-04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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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14일 동경만나주일말씀 (좋은이웃 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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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동경만나교…
 조회 : 4,309  추천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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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2. 14 동경만나 주일말씀
∥제목 : 좋은 이웃입니까?
∥본문 : 누가복음10:29-37
이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①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 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②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 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가로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③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1.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 (29절)
이웃이 누굽니까? 라는 이 질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말씀 전에 나오는 25-28절 말씀을 이해하여야 합니다. 어떤 율법사가 예수님에게 질문합니다.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요? 율법사는 당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잘 안다고 자부하는 인테리입니다. 성경을 가르치는 랍비이기도 하고, 성경선생이기도 합니다. 그런 율법사가 예수님에게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느냐고 질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나요?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얻지요? 맞습니까?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습니까? 네 맞습니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예수님은 다른 대답을 가르쳐 주십니다. 한번 보시겠습니다. 27절을 한번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몸과 같이 사랑하라.) 그런데 성경의 다른 곳을 보면, (주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도대체 어떤 말씀을 들어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이 두 말씀이 같은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역사적인 실존인물이었다는 역사적 사실만을 믿는 것이 믿음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이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의 생애와 그분의 희생, 그분의 말씀과 그분이 달려주신 나무십자가의 은혜를 믿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주신 그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믿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 죽어주신 예수님을 사랑하게 된 것, 그래서 이제는 내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 살게 된 것, 이제부터는 내 마음대로 살지 않고, 예수님의 뜻대로 살게 된 상태를 예수님을 믿는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렇다면, 우리가 이제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믿습니다, 라는 고백은 우리의 인생을 예수님을 위해 살기로 결심한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습니다. 라는 고백은 이제부터 내 인생은 나의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은 예수님의 것입니다. 라는 인생의 고백인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이 아무리 힘들고 고달파도 예수님을 위해 사는 인생이기에 보람이 있습니다.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위해 드리는 나의 시간, 나의 꿈이기에 그저 아침에 눈뜨면 사라지는 꿈이 아니라 이루어져야만 하는 거룩한 비젼이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시간들은 재미없고 지루한 시간이 아니라 예수님께 드려지는 우리의 예배이며 우리의 찬송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거룩이라고 감히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거룩의 근본이시기 때문에 그 거룩하시고 거룩하신 예수님이 죽어주시고 용서하신 우리가 거룩해졌습니다. 의인이 되었습니다. 정말 거룩해서 거룩한 사람이 된 것이 아니고, 정말 의로운 사람이라서 의인이 된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께서 거룩한 보혈을 모두 다 흘려 주시고 살려내신 사람들이기에 아무 공로없이 거룩한 사람, 의로운 의인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것을 믿습니까? 아멘! 아멘!
이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니 어찌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이 귀한 예수님을 우리에게 선물로 보내신 하나님을 어찌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그래서 믿음은 사랑인 것입니다. 믿음의 결정은 사랑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13장에 (사랑은 오래참고, 온유하며, 투기하지 않으며, 자랑하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으며, 무례히 행하지 않으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으며, 성내지 않으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으며,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며,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딘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그렇습니다. 사랑은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소망을 믿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믿음과 이웃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모든 것을 믿는 중심에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것을 믿는 것이 사랑인데, 하나님의 소망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에게 원하시는 하나님의 간절한 소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는 세상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보호하고 지켜주는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태초에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모든 만물을 그들에게 맡기시고, 관여하지 않으신 것처럼, 하나님은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세상이라면, 이 세상에 관여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그 방법이 우리가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 몸처럼 다른 타인을 사랑하고 아껴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이웃은 누구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묻습니다. 내 이웃은 누구입니까? 정말 몰라서 묻는 질문일까요? 그렇치 않습니다. 우리는 이웃이 누구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단지, 내가 사랑해야 하는 그 이웃이 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에, 내가 지켜주어야 하는 그 이웃은 나에게 무례하기 때문에, 내가 희생하고 양보해야 하는 그 이웃이 나에게 감사하지 않고, 오히려 나를 무시하고 비난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웃사랑하기를 포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2.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33-34절)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 외에는 누구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받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들,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이 마음이 없습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 이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죄로 죽어가는 우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셨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이 마음은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자신을 창조하신 살아계신 하나님을 부인하고 지옥을 향하여 달려가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대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던 그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이 예수님의 마음이 우리를 살려주신 생명의 마음이 되었고, 우리의 이웃이 되셨던 것입니다.
강도당한 사람에게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아주 너무나 훌륭한 제사장이 마침 그 길을 지나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제사장은 강도당한 사람과 같은 유대인입니다. 제사장은 거룩하고 근엄한 분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가까운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제사장에게는 어려운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사장은 피를 만지면 안되는 율법이었습니다. 피를 만진 제사장은 하나님께 제사드릴 수가 없는 법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장은 생각했습니다. (저 사람은 아직 살아있고, 이 길은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이니까 곧 다른 사람이 도와줄 것이다. 내가 저 사람을 도와준다면, 나는 내일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가 없을 것이고, 그러면 내일 제사를 기다려 온 수많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게 되면 안된다. 그러니 저 사람을 위해 하나님이 다른 도와 줄 사람을 보내달라고 기도나 해주자.) 그렇게 제사장은 여러 가지 중요한 이유들로 도와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제사장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정당한 이유들이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웃이 되어주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도와주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도와주리라고 기도만 해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이웃은 지금 나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고 있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 제사장의 기도덕분이었는지, 두 번째 사람이 그 길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레위인입니다. 레위인은 경건한 사람입니다. 레위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이제 강도만난 사람은 살아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다. 레위인이 서서 그를 지켜보며 생각합니다. (저 사람이 혹시 강도가 아닐까? 도와주려고 다가가면 갑자기 일어나서 칼로 나를 찌르고 나의 돈을 다 빼앗아 가지 않을까? 갑자기 이 길에 강도당한 사람이 왜 있지? 그리고 그가 정말로 강도를 당했다고 해도, 나는 지금 아주 중요한 일이 있어서 저 사람을 도와줄 시간이 없기도 하다. 내가 저 사람을 돕는다고, 저 사람을 데리고 이 산길을 내려가려면 너무나 시간이 많이 걸릴거야. 그러면 나의 중요한 약속시간에 늦을거고, 나를 기다리던 그 사람은 나를 신용없는 사람이라고 비난할거야. 나는 몸도 약해서 저 사람을 업고 갈 자신도 없어. 미안해요. 나는 당신을 데려갈 힘이 없어서 당신이 더 힘들거요. 시간여유도 있고, 힘센 사람이 당신을 도와주어야 당신도 빨리 치료받을 수 있으니 당신도 더 좋을거요. 당신을 위해서 나는 도와줄 수가 없소.) 그렇게 생각하고, 레위인도 자리를 피해서 달아났습니다.
우리들 가운데 레위인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맡아도, 여러 가지 하지 못할 이유들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웃의 도움을 외면하고 싶지 않지만, 외면해야 하는 이유들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늘 도와주고 싶지만, 그때마다 도와줄 수 없는 이유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어느 교회에서 훌륭한 목사님을 초청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신학교의 신학생 몇 명에게 설교 부탁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신학생들이 신학교에서 나와서 교회에 올때까지 뒤를 쫒았습니다. 그리고 신학생들이 교회로 오는 중간에 한 가지 사건을 만들었습니다.
깡패들에게 매를 맞고 쓰러져서 신음하고 있는 사람을 보이게 했습니다. 신학생들은 쓰러진 사람을 보았지만, 그 사람을 돕다가는 자신들을 초청해 준 교회에 가서 설교해야 할 약속시간에 늦을 것이 뻔했습니다. 그래서 신학생들은 모른채 하고, 그 자리를 피해서 교회에 늦지않게 갔습니다. 그날 그 교회에서 이 학생들에게 부탁한 설교의 말씀은 바로 오늘 말씀인 누가복음 10장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길거리에서 강도를 만나 피흘리며 죽어가는 불쌍한 여행자가 누구일까요? 그 불쌍한 사람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우리는 인생이라고 하는 이 세상을 여행하는 인생의 여행자들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악한 사단을 만나 유혹받고, 망가지고, 멸망당합니다. 어떤 사람은 지금도 강도같은 사단의 공격에 피흘리며 죽어가고 있습니다. 예전의 우리처럼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아무런 도움의 손길도 받지 못한 채, 외롭게 죽어가고 있습니다. 예전의 우리처럼 말입니다. 아무에게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못한채, 그렇게 혼자서 고통가운데 괴로워하는 이웃이 이 세상에는 아직도 많습니다. 예전의 우리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셨던 사람을 불쌍하게 생각하는 그 마음을 지금 우리가 품어주기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제 예수님을 대신하여 그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이웃이 되어주기를 원하십니다. 거룩한 제사장도 아니고, 멋진 레위인도 아닌 사마리아사람이 되어주기를 원하십니다.
3.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37절)
살아있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신앙은 살아 있는 것입니다. 실천하는 것입니다.
진행하는 것입니다. 신앙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움직이지 않는 신앙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세계중앙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금보유량은 한국금이 약580억엔 분량이고, 일본금은 약3조엔 분량입니다.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금은 일본보다 많은 어마어마한 금액이지만, 이 금은 국가의 재산이므로 움직이지 않는 재산입니다. 아무도 사용할 수 없는 금입니다. 사용할 수 없는 금은 아무리 많아도 소용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에서는 사랑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린도전서 13:1-3절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사랑이 실천하는 사랑, 희생하는 사랑, 아픔을 넘어서 조건없이 주는 사랑, 그 사랑은 움직이지 않는 사랑이 아닙니다. 말과 이론의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가장 사랑하는 아들 예수님을 죽음가운데 내어 주고 우리를 살리신 보여주신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받은 사람들은 그렇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사랑은 이 세상의 사랑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받은 사랑이 이 세상의 사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살아있는 사랑을 전수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을 전해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이 알수 없는 평화, 이 세상이 줄수 없는 평화, 이 세상이 할 수 없는 사랑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사랑은 능력이 있습니다. 그 사랑은 죽어가는 이웃을 살리는 생명이 있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왔고,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시작된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웃을 돌보게 될 때 기적은 일어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전달하는 도구로 사용될 때, 역사는 만들어집니다. 우리는 그저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보통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마지막 희망이며, 우리의 사랑은 이 세상을 살려내는 생명의 힘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그 사랑을 흘려보내지 않는다면, 만약 우리가 예수그리스도께 받은 그 생명의 힘을 다른 이웃에게 흘려보내지 않는다면, 우리는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강도만난 사람을 피해 갔던 제사장과 레위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이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제사장이나 레위인이 아닌 동경만나교회의 여러분들에게 질문하고 계십니다.
너는 오늘 강도만난 사람의 이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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