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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3-04 17:33
2010년 2월 21일 동경만나주일말씀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
 글쓴이 : 동경만나교…
조회 : 4,189   추천 : 0  
∥2010. 2. 21 동경만나 주일말씀
∥제목 :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본문 : 마 11: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 11:28-30)

  신문에는 연일 어두운 기사들로 가득합니다. 직장을 잃은 실업자들은 생계로 인해 고통의 나날을 보내는가 하면, 어떤 대기업의 CEO는 업무의 과중으로 자살을 했습니다. 올해 대학을 졸업하는 졸업예정자들은 취업을 하기위해 수십장의 이력서를 써서 제출합니다. 어렵게 공부해서 대학을 졸업해도 직장을 얻지못하는 사람이 많아지자, 이제는 아직 대학을 가지도 않은 어린 고등학생들이 입시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젊은 생을 스스로 마감하기도 합니다.

  취업자나 미취업자, 입학생이나 졸업생 구분 없이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져야 하는 무거운 인생의 짐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무거운 짐에 눌린 모든 사람을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그러나 예수님의 약속이 우리의 삶 가운데 이루어지려면 우선적으로 세 가지 인식이 필요합니다.

(첫째)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가 바로 어느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이라는 인식입니다.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고 병에 걸려 고통스러운 사람이 의사를 찾듯이, 휴식이 필요한 사람이 휴식을 찾게 됩니다.
물은 위에서 흘려내려와서 낮은 곳에 고이며, 하나님의 은혜는 곤고하여 구할 때에 부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바로 나 자신이 휴식이 필요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라고 분명히 인식하여야 주님이 주시는 휴식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둘째) 주님은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약속을 지키시고,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라고 말씀하신 성품을 가지셨다는 것을 믿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많은 재산을 확보하고 노후대책을 철저히 준비하였다면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조금 편리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사람보다 조금 편리할 뿐입니다.
다른 사람은 전철타고 출근할 때, 자가용으로 출근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이 500엔짜리 싼 점심(란치)으로 식사할 때, 2천엔짜리 조금더 맛있는 점심식사를 할 수 있는 정도의 편리함입니다.
  그러나 피곤하고 지친 인생에게 진정한 평안을 주실 수 있는 분은 주님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쉼(휴식)을 주실 수 있는 분은 주님이라고 알고는 있지만, 정작 그 주님께 나아가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하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마저 포기하라고 하실까봐서 겁을 냅니다.
그러나 오늘 성서의 말씀은 “주님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온유하고 겸손하신 주님은 우리에게 항상 가장 좋은 것을 공급하시는 분으로 믿고, 주님께 망설이지 말고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만이 온전한 쉼을 주실 수 있으며, 우리에게 최고의 유익을 주시는 온유하고 겸손한 성품의 주님이라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여야 도우시는 주님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싶지만, 만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 인생의 고난과 고통의 이유를 알고싶어서 하나님을 만나서 물어보고 싶지만, 정작 속마음 깊은 내면에서는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으로 인하여 자신의 모든 인본주의(人本主義)적인 가치관과 죄악들이 드러나게 될까봐 두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마음속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이론적으로만 알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진짜 신앙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께 자신의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받기 원하십니까?
정말 그렇다면, 다시 한번 이 질문을 생각하고 대답하십시오.
하나님을 만나 그 하나님께 자신의 연약함과 죄악을 모두 내려놓을 수 있습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쉼을 달라고 말했지만, 마음으로 구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육체를 해방시키고 휴식을 주시기 위한 시원한 생수와 같은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영혼을 해방시키기 위해 오신 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아멘)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면, 나를 괴롭히면 모든 문제를 해결받고, 재산의 문제, 건강의 문제, 자녀의 문제, 직장의 문제, 미래의 문제가 모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잘 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지만, 이 믿음은 올바른 믿음이 아니라, 신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과 신념이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믿음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지만, 신념은 내가 만든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께로부터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받은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모든 일이 잘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루실 일들을 믿고 있는 한, 우리가 나서서 무엇을 하겠다고 하는 욕심도 없으며, 내 마음과 내 기분에 따라 방향이 바뀔 이유도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믿음을 주실 때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믿음의 능력을 주시기 때문에 내 능력이 부족하거나, 내가 모자라서 못하는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며 이루어야 하는 일에는 신념이 아니라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신념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내가 무엇인가를 이루어보겠다고 하는 나 자신의 의지이며, 결심입니다. 그래서 그 신념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는 무리한 방법을 사용하기도 하며, 내 신념의 달성을 위하여 주변 사람들을 괴롭게 하기도 합니다. 내 신념의 목표달성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의 불이익이나 상처받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신념은 욕심이 포함되어 있으며, 신념은 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신념을 가지고는 절대로 내 인생의 무게, 내게 지워진 짐을 벗어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이 짐을 벗어버릴 수 있습니까?
셋째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는 주님의 짐에 인식이 필요합니다.
불교에는 해탈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해탈은 모든 속박과 욕심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이 연구해 낸 철학과 인간연구에 있어서 이 해탈은 가장 높은 차원의 인간이해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해탈은 인간을 욕심에서 자유하게 해주는 가장 유일한 방법이기도합니다. 그래서 저는 젊었을 때는 가장 공부해 보고 싶었던 것이 불교학이었습니다. 불교의 해탈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영원히 해탈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차원의 해탈은 죽어야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습니다.

이 해탈은 나 한사람에게는 의지적인 자유를 주는 것 같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 유익도 없는 것이 해탈입니다. 해탈은 나만 벗어나는 것입니다. 내 욕심, 내 의지, 심지어는 내가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과 가족들에게서까지 벗어나는 것이 해탈입니다. 모든 인연(緣)을 끝어야 합니다. 그러나 나와 연결된 다른 사람들에게는 무책임 할 수도 있습니다. 내 가족은 어떻게 합니까? 나와 연결되어 있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인간관계는 어떻게 합니까? 내가 해탈하면 그들도 해탈하게 되는 것일까요? 내가 죽으면 이 세상이 자유를 얻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죽어도 이 세상은 그대로 있습니다. 나의 해탈이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내가 죽어도 내 죽음 이후에도 나의 짐이 내 위에 얹혀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 있을 때 행했던 모든 행위들, 내가 관계했던 사람들과의 인과관계(因果關係)는 나의 죽음 이후에도 남아서 그들을 괴롭히고, 죽음 이후의 나의 길을 정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의 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나아오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려고 하지 않습니다. 왜그럴까요? 우리는 자신의 현재 지고있는 짐보다도, 예수님의 짐이 훨씬 무겁다고 오해하고 예수님께 가기를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진리만을 말씀하시는 주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예수님의 짐이 쉽고 가볍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매인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가벼운 예수님의 짐을 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쉼을 주시는 주님께 나오지 않을까요? 그 이유는 사람들이 자신을 쉼이 필요 없다고 착각하고 있거나, 예수님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주님의 멍에는 어렵고 무겁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진정 우리들이 자신을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로 인식하고, 예수님만이 쉼을 주시는 온유하고 겸손한 분임을 알게된다면, 주님의 멍에가 쉽고 가볍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당연히 주님 앞에 나올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앞에 나아올 때,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두 가지가 있습니다.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남 11:29b)

첫째, 예수님의 멍에를 메어야합니다. 그리고 그전에 주님의 멍에를 메기위해서는 현재 지고 있는 나의 멍에를 먼저 내려놓아야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려고도 하지않지만, 예수님을 만나게 된 사람들도 예수님께 진실하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멍에를 그대로 진 채로 주님의 멍에까지 이중으로 올려놓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무거운 책임, 불안, 고집, 계획 등의 짐을 먼저 내려놓고 나서 주님의 멍에를 메고, 예수님의 생각과 비젼을 소유하여야 하는데, 자신의 생각도 버리지 못하고, 자신의 욕심도 버리지 못합니다. 그 위에 예수님의 생각을 얹어놓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성서의 말씀을 읽어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아무리 눈물을 흘리며 기도해도 기도의 응답을 듣지 못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죽은 신을 믿는 사람들처럼 죽은 믿음을 가지고 교회만 다닐 뿐입니다. 그들이 믿는 하나님은 자신보다 낮은 하나님, 자신의 의지와 뜻에 따라주어야 하는 자신이 만든 우상과 같은 하나님인 것입니다.

성서의 말씀은 분명히 능력이 있는 것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성서를 읽을 때, 우리의 가슴이 뜨거워져야 합니다. 성서를 손에 쥘때, 우리의 심장이 쿵쾅거리고 뛰어야합니다. 성서의 말씀을 하나님의 능력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믿고 성서를 읽는 사람은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원한다면, 성서를 읽어야 합니다. 이것을 배운다고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내게 배우라. 주님을 따르며 배우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이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가운데 가장 큰 이유는 신앙생활을 자기 생각대로 하기 때문입니다. 배우지 않은 신상생활을 자기 생각과 자기 계획대로 하기 때문에 어렵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에게 배운다는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배운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제자(disciple)는 따르는 자(follower)입니다. 따라서 주님께 배우려면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을 꾸준히 따라야합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제자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제자들이 그렇게 어렵게 예수님의 제자생활을 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성서를 보면, 제자들처럼 마음편한 사람들이 없습니다. 배고프면 빵을 만들어 주지요. 힘들면 쉬게 해주지요. 잠을 잘때면 가는 곳마다 예수님을 모시는 사람들이 제자들까지 잠자리를 대접해 주었습니다. 물론 여행하며 노숙할 때도 있었고, 배고플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자의 생활이 익숙해질수록 제자들은 신이 났고, 예수님 따라다니는 재미가 아주 좋았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이 제자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베드로와 몇 명은 어부들이었습니다. 조그만 조각배 하나를 가지고 바닷가에 나가서 그물을 던져 잡힌 고기를 팔아 생계를 연명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고기가 잘 잡히는 날이면 손에 돈이 생기기도 했지만, 고기가 잘 안 잡히는 날이면 굶어야 했습니다. 작은 배를 가진 어부를 생각해 보십시오. 날씨가 안 좋거나 비가오면, 비가 온다고 일하러 안나가고, 이래 저래 일하지 않는 날이 많은 직업이 어부입니다.

이렇게 일이 고정적이지 않은 직업의 사람들은 성실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재미가 없으면 잠을 자더라도 움직이지 않는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들이 예수님을 따라 여행다니며 제자의 생활을 하는 것을 보십시오. 얼마나 재미있었을까요?
예수님이 설교하면, 옆에 있다가 군중들에게서 헌금이나 걷어서 맛있는 빵사다가 예수님은 한조각 드리고, 자기들이 다 먹을 수 있었습니다. 은혜받은 사람들, 예수님을 만나서 병을 고친 사람들이 헌금을 드리고, 맛있는 음식을 가져오고, 잠을 잘수 있도록 제공하였습니다. 제자의 생활은 참 재미있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한 일은 단지,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것이 일이었습니다.
(따라해 주십시오. 제자는 잘 따라다니면 된다. 그렇습니다. 제자의 일은 선생님을 잘 따라다니는 일입니다. 우리의 일도 예수님을 잘 따라다니면 됩니다. 예수님이 하라고 하시면 하고, 하지 말라면 하지 말고, 예수님이 기도하라고 하면, 기도하고, 쉬라면 쉬면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생활하면, 재미있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러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생각보다 내 생각을 우선합니다. 예수님의 말씀보다 내 이야기를 먼저 합니다. 예수님의 계획보다 내 계획이 먼저입니다. 항상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 짐을 지고, 예수님 짐도 지려고 노력하지만, 우리가 지고 있는 짐위에는 결코 예수님의 짐이 올려지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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