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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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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3-23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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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21일 동경만나주일말씀(하나님나라의 회복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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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동경만나교…
 조회 : 3,842  추천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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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3. 21 동경만나교회 주일말씀
∥제목 : 하나님 나라의 회복(4)
∥본문 : 마21:1-3절 말씀
“저희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이르시되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너라.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一行がエルサレムに近づいて,オリ―ブ山沿いのベトファゲに來たとき,イエスは二人の弟子を使いに出そうとして,言われた.「向こうの村へ行きなさい.するとすぐ,ろばがつないであり,一緖に子ろばのいるのが見つかる.それをほどいて,わたしのところに引いて來なさい.もし,だれかが何か言ったら,『主がお入り用なのです』と言いなさい.すぐ渡してくれる.」)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는 의미는 첫째, 질병으로부터의 회복 즉, 치유와 건강을 말합니다. 둘째, 관계의 회복을 말합니다. 셋째, 인간과 평화의 회복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마지막 회복의 의미로 창조의 회복을 전하겠습니다.
첫째로, 신자로의 회복입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회복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믿음이 없이는 아무것도 진행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보여줄 수 있는 것도, 능력도 행할 수가 없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에 대하여 연구할수도, 창조를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가장 우선적으로 불신자에서 신자로 회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100년 전인 1910년에 여기 있는 우리가운데 예수님을 믿었던 사람도, 조상도 없었습니다. 우리의 조상들은 모두 우상숭배자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불과 100년 만에 우리는 모두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양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처음 창조하신 사람은 그저 하나님을 보고 믿는 평범한 신자로의 시작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아담과 에바가 제자로 창조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창세기2장 16-17절 말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主なる神は人に命じて言われた.「園のすべての木から取って食べなさい.ただし,善惡の知識の木からは,決して食べてはならない.食べると必ず死んでしまう.」)
그러나 평범한 신자였던 아담과 에바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제자로 변화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전에는 그저 신자였던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말씀을 가진 사람, 즉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제자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냥 일요일이 되면 교회에 와서 의자에 앉아 예배만 참석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살아가는 제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아담은 에덴동산 동서남북 어디에 가서 있던지 “동산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말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살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변질되어 죄가 들어옵니다.
창세기3장 2-3절 말씀입니다.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女は蛇に答えた.「わたしたちは園の木の果實を食べてもよいのです.でも,園の中央に生えている木の果實だけは,食べてはいけない,觸れてもいけない,死んではいけないから,と神樣はおっしゃいました.」)
이처럼 말씀이 변질될 때, 제자에서 불신앙으로 타락하게 되고, 축복된 자리에서 심판의 자리로 추방당하는 것입니다.
신자가 된 우리들이 지켜야 할 것은, 말씀대로 사는 삶입니다. 사는 것이 어렵습니까? 편하게 사는 방법이 있습니다. 간단합니다. 성경말씀대로 살면 행복합니다. 성경말씀을 바르게 지키고 살면 바르게 사는 사람이 됩니다. 예배를 지키고, 말씀을 지키고, 신앙을 지키면 우리에게 불안이나 근심, 걱정이 마음에 들어올 자리가 없습니다. 말씀이 가득 채워져 있으면, 다른 어떤 것도 우리를 공격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믿음으로의 회복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로, 제자로의 회복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음의 길에 들어선 이들의 두 번째 단계의 회복은 신자에서 제자로의 성장입니다. 2천년전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라 제자가 되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로마의 무서운 기독교탄압과 핍박속에서 신앙을 지키고,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도시 지하에 땅굴을 파서 지하도시를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카타콤입니다.
(카타콤에 대하여 간단하게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 네로 시대의 박해를 비롯하여 기독교인들은 많은 박해를 받게 되었습니다. 첫 박해를 전후하여 초기의 선교활동은 로마 근교에 살던 가난하고 신분이 낮은 계층 사람들에게 주로 많이 행해졌으며, 그들이 살던 지역은 주로 테베레강 어귀와 아피아가도 주변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에 대한 박해가 심해지면서, 신자들은 예전처럼 자유롭게 모임을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자연히 신자들은 주위의 눈을 피해 로마의 성 밖에서 은밀히 모였는데 그 중에서도 아피아가도 주변에 많이 있던 지하 무덤 안이 가장 안전한 장소가 되었습니다. 급기야는 신자들의 무덤도 그 안에 마련되면서 지하 무덤, 즉 카타콤바의 면적이 점점 더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갈수록 심해지는 모진 박해 속에서 초기 교회 공동체 신자들의 보금자리와 휴식처는 오직 구원자이신 하나님께 의지하는 길밖엔 없었습니다. 카타콤바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현실적인 피난처였으며, 하나님을 찬미하는 예절을 행할 수 있었던 교회였고, 또한 죽어서도 가까이 있고 싶어했던 그들만의 보금자리였습니다. 비록 지상세계에 있던 집과 재산, 맛있는 음식과 좋은 옷이라고 하는 편안하고 풍부한 환경은 포기해야 했지만, 그 대신에 예수님은 포기하지 않아도 되었던 것입니다. )
ΙΧΘΥΣ(익투스.ιχθυs.물고기) 이야기를 아십니까?
물고기의 뜻을 가진 헬라어 ΙΧΘΥΣ는 상당히 깊은 뜻과 의미를 지니고 있답니다.
각 단어의 첫 머리글자만 모으면 바로 "물고기(익투스)"라는 단어가 됩니다. 자세한 뜻과 의미와 시대배경은 뒤에 언급하기로 하고 먼저 물고기(익투스)의 상징 단어를 알아보겠읍니다.
ΙΧΘΥΣ(익투스.ιχθυs.물고기)
Ιησoυs(예수스,예수)
Χχριστοs(크리스토스,그리스도)
Θεοs(데오스,하나님)
Υιοs(휘오스,아들)
Σωτηριαs(소테리아스,구세주)
즉, 앞단어를 연결해 보면, 예수스 크리스토스 데오스 휘오스 소테르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 라는 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물고기는 1세기 로마의 카타콤(Catacombs)의 그리스도인의 상징입니다.
초대교회시대에(주후64년부터 250년간)로마는 교회를 향하여 큰 박해를 가하게 됩니다. 이때에 사람들은 피신하여 지하 공동묘지인 카타콤 등에 숨어서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서로의 신분을 은밀하게 밝히기 위하여 물고기를 나타내는 그림을 그려보이거나 물고기 모형의 조각품을 소지하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그리스도인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신분을 나타낼 때에 땅에 물고기를 그렸습니다. 물고기 그림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신분을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알리는 일종의 암호입니다. 물고기는 헬라어로(익투스)로서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구주십니다."라는 헬라어 문장의 각각 첫 머리 글자를 딴 글자와 일치하기 때문에 물고기 그림이 그리스도인의 상징이 된 것입니다.
박해가 한창일 때 초대교인들은 그들을 박해하는 적들로부터 자신들을 구별하는 의미로서 그리고 의사소통과 신분확인을 위한 암호의 한 형태로서 땅이나 카타콤의 벽에 물고기 그림을 그렸읍니다. 한 그리스도인이 물고기의 반을 그려 놓으면 다른 사람이 나머지 절반을 거기에 그려 넣음으로서 서로가 한 신앙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카타콤은 공동묘지의 역할과 함께 일종의 지하 도시로서 외부의 침략에서 은신할 수 있는 미로였습니다. 외부인들이 익숙하지 못한 장소로서 비록 그들이 카타콤 내부에 들어온다 할지라도 출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하고 복잡하게 만들어진 곳으로서 현지의 지리에 익숙한 기독교인들이 숨기에는 안성마춤이었습니다. 그들이 미로에서 길을 찾는 표식도 바로 물고기 모양이었습니다.
물고기의 몸통에는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라는 헬라어의 약자인 "ΙΧΘΥΣ" 라는 글이 쓰여졌는데 이 물고기의 머리가 향하는 방향을 따라 그리스도인들이 예배장소를 찾아왔습니다. 물고기 모양은 오늘날 십자가가 기독교의 상징이 되었듯 초대교회에서 기독교의 상징이 되었읍니다. 근래에 와서도 역시 이 심볼은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물고기가 그리스도인을 상징하는 심볼이 된 것은 성서의 사건들에서 힌트를 얻은 것입다.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림으로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를 낚은 일(요한 6:1-13) ,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갈릴리 바닷가에서 제자들과 함께 고기를 구워먹은 일(요한 21:1-13), 돈이 없어 예수님의 일행이 곤궁에 빠졌을 때 시몬 베드로가 물고기의 입에서 금화를 찾아낸 이야기(마 17:24-27)등이 그것이지요. 이러한 이야기는 예수의 대속적 죽음에 의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값없는 은총을 보여주는 사건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카타콤의 제자들의 삶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카타콤에서 태어나서 카타콤에서 죽어서 카타콤에서 장사지내고 그대로 카타콤에 묻혔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카타콤을 찾은 로마군에 의해서 순교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종교의 자유를 얻어서 지하카타콤에서 지상으로 나오기까지는 한세대가 지나가야 하는 긴 세월이 걸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제자들이었습니다. 제자는 예수님과 떨어져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제자의 삶이란 예수님과 함께 인생을 살아가는 동행자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무엇을 한 것이 아니라 그저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며 살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자의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과 동행하는 제자입니까? 아니면, 예수님의 인생과 내 인생을 철저하게 구별해서 내 인생이 예수님이 관여하지 않기를 원하는 신자입니까? 제자로 회복되지 않으면 결코 우리들의 인생의 고난과 축복이 예수님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잠을 자고, 길을 걷는 제자가 아니라면, 예수님의 고난도 우리의 고난도 별개의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최후까지 함께 하시며,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신 예수님의 제자로 회복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사역자로의 회복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은 12명의 제자들은 그저 예수님과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전도여행에 동행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모든 사역을 마치시고, 하늘로 승천하시기 전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특별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8:19-20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イエスは,近寄って來て言われた.「わたしは天と地の一切の權能を授かっている.だから,あなたがたは行って,すべての民をわたしの弟子にしなさい.彼らに父と子と聖靈の名によって洗禮を授け,あなたがたに命じておいたことをすべて守るように敎えなさい.わたしは世の終わりまで,いつもあなたがたと共にいる.」)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이 일은 누구의 일입니까? 예수님의 일이었습니다. 3년 반동안 예수님이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보여주신 일입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유언으로 이 세상에 남겨주신 명령이 바로 예수님이 하시던 그 일을 제자들이 하도록 위임하셨다는 것입니다.
무슨 뜻일까요? 이제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일을 이어서 해야 하는 동역자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처음에 불신자에서 신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신자에서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며 동행하였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어주시며, 예수님의 구속의 사역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로 승천하시며, 이제까지 예수님이 하시던 사역자의 일을 제자인 우리들에게 부탁하셨습니다. 아니요, 명령하셨습니다.
하지 않으면 안되도록 명령을 하시고, 우리를 동역자로 삼아 주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하시던 모든 복음전도의 사명은 제자인 우리들의 사명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병을 고치시고, 회복하셨던 모든 예수님의 사역이 우리의 사역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당당하게 예수님의 사역자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2천년 전의 그 신자로 남아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과 동행하기를 거부하고, 그저 예수믿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는 신자가 있습니다.
또한, 제자는 되었지만,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그때처럼, 지금도 예수님이 먹을 것, 잠잘 곳을 해결해 주시기를 바라고, 기도만 하고 않아 있는 성장하지 않는 제자들이 있습니다. 아마도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이 제자의 자리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래도 괜찮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분명하게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의 증인이 된 모든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해 오셨던 귀한 사역을 위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12명의 제자는 사도라고 부릅니다. 제자는 나이어린 사람을 말하지만, 사도란 뜻을 좆아 걸어가는 사람을 뜻합니다. 제자일때는 예수님이 없으면 식사도 숙박도 해결이 안되었지만, 이제 사도로 사역을 맡은 이들은 자신들이 그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도 주셨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늘 본문말씀을 보겠습니다. 마태복음21장1-3절 말씀입니다.
“저희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이르시되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너라.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一行がエルサレムに近づいて,オリ―ブ山沿いのベトファゲに來たとき,イエスは二人の弟子を使いに出そうとして,言われた.「向こうの村へ行きなさい.するとすぐ,ろばがつないであり,一緖に子ろばのいるのが見つかる.それをほどいて,わたしのところに引いて來なさい.もし,だれかが何か言ったら,『主がお入り用なのです』と言いなさい.すぐ渡してくれる.」)
하나님이 필요하실 때, 쓰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사역자입니다. 준비된 사역자에게 능력도 주시며, 은혜도 주십니다. 매일매일의 삶 가운데 능력과 은혜가 풍성한 회복을 얻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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