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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4-11 21:23
2010년 4월 11일 동경만나주일말씀 (예수를 믿는 이유)
 글쓴이 : 동경만나교…
조회 : 3,956   추천 : 0  
∥2010. 4. 11 동경만나교회 주일말씀
∥제목 : 예수님을 믿는 이유
∥본문 : 요한복음 11:25-27 말씀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지난 주일은 부활주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부활은 끝난 것이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부활은 매일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삶에서 부활은 매일 증거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하루를 마치고 나면 잠을 잡니다. 그것은 우리의 인생을 마치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연습입니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우리는 눈을 뜨고 새로운 하루를 시작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잠을 깨고 다시 영원한 인생을 살아가는 부활을 연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저녁에 잠자리에 들어가면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예수님 저를 주님의 평화로 지켜주시고, 새로운 아침을 허락해 주십시오.”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면서 “할렐루야!”라고 외치며, 부활의 기쁨을 연습합니다. 여러분도 오늘 연습해 보십시오. 아주 상쾌한 마음으로 아침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을 믿는 이유에 대하여 함께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왜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안 믿으면, 오늘 일요일에 다른 곳에 놀러가서 맛있는 음식을 사먹거나, 재미있는 영화를 볼 수도 있는 시간인데, 아니면, 오늘은 좀 잠도 자고 쉴수 있는 시간인데, 우리는 왜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교회에 와서 앙팡만같은 목사의 설교를 듣고 있는 것입니까?

제가 예전에 큰 교회에 다닐 때에 들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어느 일요일 아침에 어느 집에서 어머니와 아들이 말하는 소리입니다.
“엄마 나 오늘 교회 안갈래요.”
“아니 왜 갑자기 교회를 안 간다고 그러니?”
“엄마 내가 오늘 교회에 가기 싫은 이유는 세가지가 있어요.”
“첫째는, 예배시간에 대표기도하는 장로님 기도가 너무 길고 지루해서 못참겠어요.”
“둘째는, 우리교회 성가대는 노래를 너무 못해요. 그렇게 연습도 안하는 성가대의 찬송을 더 이상 못듣겠어요.”
“마지막 세 번째이유는, 일주일동안 열심히 일하고 너무 힘든데 일요일이라도 좀 늦잠자고 쉬고 싶어요. 그래야 살 거 같아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이 남자의 어머니가 대답했습니다.
“그랬구나. 그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오늘 너에게 교회가야만 하는 이유 세가지를 알려주마.”
“첫째는, 예배시간에 대표기도하는 장로님 기도가 길던지 짧던지 예배는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중요한 믿음의 표현이기 때문이고, 둘째는, 성가대가 드리는 찬송이 듣기 싫어도 예배는 선택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필수이기 때문이고, 마지막 세 번째 이유는 일주일 동안 열심히 일해서 일요일에는 잠을 좀 자야 살 것 같다고 하지만, 오늘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려야 너의 영혼이 살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네가 오늘 교회에 가야하는 이유가 한가지 더 있단다. 그것은 네가 이 교회의 담임목사이기 때문이란다.”라고 말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 다른 이유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첫째. 예수님은 사랑의 신이기 때문입니다.
요한1서4:7-11말씀을 다같이 봉독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이 세상에는 참 많은 신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인간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신은 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제가 2000년도에 인도에 단기선교를 간 일이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신 것처럼, 인도도 신이 많은 나라입니다. 무려 3억3천만개의 신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3억 3천만의 신들가운데 인간을 사랑해 주는 신은 들어본 일이 없습니다. 3억 3천 만개의 신들 가운데 가장 힘이 세다고 알려진 신은 깔라여신입니다. 사람들은 매일 깔라여신을 섬기는 신전에 와서 양과 염소를 죽여서 그 피를 뿌립니다. 그 이유는 깔라여신은 폭력과 전쟁의 신이기 때문에 깔라여신에게 잘 하지 못하면, 여신의 분노로 망하게 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 일본에는 800백만의 신들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800백만의 이름도 셀 수가 없습니다. 우찌무라 간조의 간증을 들어보겠습니다.

“다원적인 사회에 살다보니 많은 신들이 있는데 유독 기독교만이 한분 하나님을 주장하느냐는 질문을 숱하게 받습니다. 그때 우치무라 간조가 대답을 줍니다. 그는 800만의 일본 신들을 신심을 다하여 섬겼습니다. 신들은 대개 한두 가지 금기가 있었습니다. 신들에 따라 들, 산, 강, 바다를 싫어한다. 콩이나 계란을 금하는 신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800만 신들의 요구와 금지를 지키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것입니다. 요구와 금지가 너무 많고, 심지어 서로 충돌합니다. 제대로 지키려면 어디라도 가면 안 되고, 무엇도 먹으면 안 됩니다. 신들의 벌이 두렵고, 이도 저도 못하게 된 믿음 깊은 간조는 점차 성마르고 소심한 소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가장 위대한 한 신만 섬기면 다른 신들이 정한 금기는 무용지물이 된 것입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많은 신이 아닌 오직 한분이신 하나님은 내 작은 영혼에 참으로 기쁜 소식이었다. 쾌활해졌고, 지적으로 건강해졌다. 많은 신이 아니라 한분 하나님이 전인적인 구원과 자유를 준다.”라고 우찌무라간조는 고백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다른 신들과 다른 것은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신도 사람을 위해서 죽어준 신이 없으며, 사람을 위해 인간으로 태어나서 고난받은 신은 없습니다. 유일한 하나님만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인간으로 오셔서 인간을 대신하여 그 죄를 대신하여 죽어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사랑의 하나님인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은 역전(반전)의 명수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반전 혹은, 역전이라는 단어를 아십니까?
저는 영화를 좋아합니다. 특히, 마지막에 해피앤드로 행복하게 반전되는 영화를 좋아합니다. 영화의 주인공들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더라도, 마지막에 반전되어 적을 물리치고 승리하여 행복하게 끝내는 역전의 영화는 스트레스를 풀어줍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이 이 역전의 명수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아기로 태어나신 예수님은 가난한 목수의 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렸을 때부터 가난한 집의 아들로 자라났습니다. 로마의 식민지배를 받고 있던 이스라엘에서 예수님도 지배를 받는 이스라엘사람으로 태어나서 어려운 시기를 보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단의 계획대로, 예수님은 누명을 쓰고, 붙잡혀서 고난을 당하고 사형수들만 달리는 나무십자가에 달려서 사형을 당하게 됩니다. 죽을때까지 예수님은 아무말도 하지 않습니다. 수천만, 수억의 천사의 군대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공격명령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예수님은 묵묵히 그렇게 십자가 위에서 한방울의 피까지 모두 흘리며 죽어가셨습니다.

이 땅 위에서는 사단과 사단의 명령을 받는 악한 죄인들의 승리의 축배가 시작되었지만, 그래도 3일간 예수님은 묵묵히 고통과 죽음가운데 계셨습니다. 모든 것이 끝난줄 알았습니다. 3년반동안 예수님을 쫒아다녔던 수많은 제자들도 모두 제각각 자기의 길로 떠나버렸습니다.

그러나 역사상 가장 아름답고 가슴벅찬 역전의 드라마가 시작됩니다. 그것이 부활입니다.
예수를 죽였다고, 하나님을 죽음속에 가두었다고 승리의 축배를 들고 있던 사단의 무리를 향하여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마태복음 28:5-10절 말씀입니다.
“천사가 여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나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음질할쌔, 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40일동안 수많은 사람들에게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해 보이시고 사람들이 보고 있는 상태에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모든 능력과 부활의 승리를 제자들에게 전해주셨고, 우리가 이제 그 부활의 능력을 전해 받았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멋진 역전의 승리자이시며, 우리가 그 역전의 승리자이기에 저는 예수님을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은 조금 힘듭니다. 지금은 조금 아픕니다. 지금 우리의 인생은 조금 눈물도 납니다. 그러나 곧, 예수님의 부활처럼 우리의 인생이 풀릴 것이기에, 우리의 눈물이 씻겨질 것이기에, 지금 조금 힘든 것은 참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가 예수님을 믿는 이유의 한가지입니다.

셋째. 예수님은 희망(소망)을 주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이보다 더 큰 소망이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으면,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으면 죽지 않는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의 일입니다. 아마도 중학교 3학년 15살 때인 것 같습니다.
4-5살부터 혼자 교회를 다녔던 저는 무려 10년이나 교회를 다니고서야 15살에 의문이 들었습니다. 나는 내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는가?
사춘기의 15살 소년에게 매일 이 인생의 문제는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세가지가 하고 싶었습니다. 첫째는 연극을 해서 연예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도 보시다시피 얼굴마스크가 받쳐주지 않습니까? 이때는 미남이었습니다. 둘째는 철학을 전공해서 인생의 철학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세 번째는 목사가 되어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평화를 전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한겨울을 고민으로 지새던 중학교 3학년 소년은 마침내 세 번째 목표인 목사가 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연예인이나 철학자는 자기만족일뿐, 사람들을 도와주지는 못하는 직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은 좀 힘들 때도 있습니다. 생활도 넉넉하지 않고, 사람들이 알아주는 유명인도 아닙니다. 그러나 희망이 있습니다. 제 인생을 역전시킬 예수님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계속 이렇게 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면, 그곳에서는 저에게 전도지를 받았던 분들, 저의 전도멧세지를 들었던 수많은 분들이 와서 알아줄지도 모릅니다. 고맙다고 인사할지도 모릅니다. 수많은 보물들을 가지고 와서 제게 선물할지도 모릅니다. 그 인생의 반전을 생각하면, 지금 이 세상에서 사는 7-80년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리 길지도 않은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는 충분한 희망이 있습니다. 포기하지 맙시다. 할렐루야.

그런데 저는 사실 제가 정말 예수님을 믿게 된 이유, 지금도 절대로 예수님을 떠날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이 저의 네 번째 이유입니다.

네번째. 예수님은 끝까지 용서하시는 신이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7:3-4절 말씀을 보면,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예수님은 죄를 기억하지 않는 분이며, 비판하지 않는 분이셨습니다.

우리가 가장 힘든 때가 언제입니까? 우리가 잘못을 범했을 때가 아닙니다. 그 잘못을 다른 사람 누군가가 비난하고 비판할 때가 가장 힘든 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가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비난하거나 비판하지 않으십니다. 단지 회개하기를 기다리십니다.
그 예수님의 기다려 주심 때문에 오늘 저와 여러분은 당당하게 예수님을 믿는다고 교회에 와서 예배하는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저의 죄를 비난하지 않으시고, 회개할 때까지 기다려 주시는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이 아니면, 누가 우리를 기다려주고, 우리를 용서해 주겠습니까?
누가 여러분의 죄를 모두 용서해 줄수가 있습니까? 아마도 여러분과 저의 마음속을 모두 들여다 볼수 있는 진실의 거울이 있다면, 우리는 그 진실의 거울앞에서 참으로 부끄럽고 수치스러울 것입니다. 얼마나 사람들을 미워했는지, 얼마나 나 자신을 중심으로 이기적으로 살아왔는지 모두 드러난다면 우리중 누가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모두 용서하셨습니다.
잘못했다고, 용서해달라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한마디만 하면, 모두 영원히 기억하지 않고, 우리의 죄를 삭제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시편103편 10-13절 말씀입니다.
“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

히브리서 8:12절 말씀입니다.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

이사야서 38:17절 말씀입니다.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나의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나의 모든 죄는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
오늘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 않은 신, 유일하시며, 위대한 사랑의 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반드시 예수님을 믿고 모든 죄를 용서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자신의 죄로 인하여 멸망당할 것입니다. 심판받을 것입니다. 이 세상의 100년이 문제가 아니라, 영원히 영원히 시간의 끝이 없는 지옥에서 고통당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이렇게 고백하기 원합니다. 여러분도 함께 이렇게 고백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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