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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5-02 21:32
2010년 5월 2일 동경만나주일말씀 (세번째믿음-회개는 축복입니다.)
 글쓴이 : 동경만나교…
조회 : 4,291   추천 : 0  
∥2010. 5. 2 동경만나교회 주일말씀
∥제목 : 가정을 축복하라- 회개는 축복의 시작입니다.
∥본문 : 시편32편 1절의 말씀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5월의 첫째주일은 어린이주일로 지키고, 두 번째 주일은 어버이주일로 지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5월을 가정의 달로 선포하고, 가정에 대한 메시지를 설교합니다.
저도 역시, 5월을 가정을 축복하라! 는 테마로 정하고, 가정에 대한 축복의 메시지를 준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축복이 너무나 형식적이며, 가슴에 와 닿는 축복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진짜 축복의 시작은 무엇인가에 대하여 묵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축복의 시작은 무엇일까요? 세상에서는 축복의 시작이 돈일수도 있습니다. 좋은 아빠와 좋은 엄마, 착한 아들과 딸이 있으면 축복된 가정일수도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좋은 집과 좋은 자동차를 가지고 주말마다 좋은 음식을 사먹을 수 있는 것이 축복이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이 세상에서만이 아니라 천국이라고 하는 하나님이 만드신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진정한 축복, 가정의 축복은 어디서부터 시작할까요? 이 문제에 대해서 묵상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죄사함을 받은 것보다 더 큰 축복이 있다고 믿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 믿고 별로 복받는 것도 없다.”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매일 매일 우리를 괴롭히는 불행한 이유는 내가 받은 구원의 복을 생각하지 않고, 오늘 조금 부족한 물질과 오늘 조금 인정받지 못한 것과 오늘 조금 만족하지 않은 기분과 날씨와 옆집사람이 이유일 때가 많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해 보았습니까? 당신의 가장 사랑하는 귀하고 거룩하신 예수님을 아직 회개하지도 않은 죄인인 저와 여러분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게 하시고, 아직 회개하지 않은 우리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시며, 눈물을 흘리시며 끝까지, 회개할때까지, 감사할때까지 참으시고 인내하시는 하나님아버지를 말입니다.

저는 군대에 가기 전까지 신학생이었습니다. 신학교에 다니며 신학을 공부하던 학생이었습니다. 군대에서 직업군인이 된것도 신학을 공부하기 위한 학비를 벌기 위해서였습니다. 신학교를 다니기 위해 연탄배달을 하고, 음악테이프를 팔기도하고, 이삿짐을 나르기도하고, 주차장아르바이트를 하고, 백화점배달을 하고, 과외선생을 하고, 유치원교보재를 팔고, 중국어성경을 세일즈하고, 공사장에서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20살인 저는 성경에서 금하는 것은 한가지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 율법주의자 같았습니다. 3대째 기독교신앙을 받은 소위 말하는 모태신앙자입니다. 걷기시작할때부터 교회를 다녔습니다. 구약성경에서 날것을 먹지 말라는 말씀을 본 이후로 날생선을 먹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날생선인 스시를 잘 못먹습니다.(지금은 가끔 회전스시를 잘 먹습니다.)

그런데 그런 제가 군대에 가서 술을 배우고 신앙생활에서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십일조헌금도 안내기 시작했고, 그 돈으로 술을 마셨고, 주일에도 교회를 빠지기 시작하고, 그 시간에 놀러가고, 술을 마셨습니다. 그러면서도 처음에는 하나님의 벌을 내리실까 두려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십일조헌금을 도둑질해도, 주일에 예배를 드리지 않아도, 술을 마시고, 놀러다녀도 천벌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져 가는데도 하나님의 간섭하심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게 축복인줄 알았습니다. 괜찮은줄 알았습니다.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자, 세상의 것들이 내 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죄와 죄책감이 성령님이 아닌 사단의 생각을 넣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던 뱀과도 같았습니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창3:4-6)

정말로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이 떠나가고, 괜찮다, 해도 괜찮다, 죄를 지어도 괜찮다. 라는 뱀의 생각이 머리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참아주셨지만, 사단은 참지않고 공격했습니다. 죄를 지어도 괜찮다고 해 놓고, 죄책감으로 공격했습니다. 나의 영혼을 괴롭게 했습니다. 하나님께 돌아갈수 없도록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저는 나는 이제 다시는 신학을 하지 않으리라. 아니 신학공부를 할 자격을 잃어버렸다. 라고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태초에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시험했던 것처럼, 저도 똑같은 방법으로 하나님을 시험하였습니다. “하나님! 만약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나를 신학을 공부하던 신학생으로 돌려놓아보세요. 그럼 하나님이 살아계신줄 믿을께요.” 저는 이미 하나님을 믿지않는 사람으로 저주받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부터 사단은 더욱 나를 공격했습니다. 이제는 사단의 것, 사단의 죄의 노예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어느날 부터인가, 집에 돌아오면 어두운 존재가 가득차서 두려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무리 술을 마시고 취해서 들어와도 무서워서 잠을 잘수가 없었습니다. 찬송가를 들으면서 잠을 자야했습니다. 성경말씀을 한절이라도 읽으면 잠을 잘수 있었습니다. 머리맡에 성경책을 놓고 잠을 자기 시작했습니다. 일요일에 가까운 교회를 찾아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도둑질했던 십일조헌금도 다시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퇴직을 했습니다.

1993년 7월 28일입니다. 퇴직하고 다니던 교회에서 중고등학생들을 위한 여름캠프가 있었습니다. 남자청년이 필요했던 교회에서 저에게 도와달라고 연락을 했고, 저는 정식교사가 아닌 임시교사로 참석했습니다. 말하자면 캠프를 하는데 힘을 쓸 일꾼으로 불려갔던 것입니다.
중고등학생들을 은혜받게 하기 위한 캠프의 첫째날 저녁 집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목사님은 캠프가 시작되도록 수고한 교사들과 저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저희를 둘러싼 중고등학생들에게 축복기도를 해주자고 말했습니다. 그 아이들이 기도를 시작하는 순간, 하나님의 사랑이 저에게 들어오셨습니다.

아직 회개하지 않고,
아직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아직 깨끗해지지 않았던 그런 저에게

오랫동안 인내하셨던 하나님은 찾아오셨습니다. 제 마음을 만지셨습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이렇게 사랑한다.”
하나님을 보지 않아도 내 영혼이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을 만지지 않아도 내 마음에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내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습니다.
 “하나님, 제가 뭐길래 이렇게 사랑하시나요. 왜 저를 사랑하시나요. 왜 나를 사랑하세요.”
이 말밖에 할 말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셨으니까요.

사랑하는 여러분!
주일에 힘들면 쉬십시오. 바쁜 일, 돈 벌 일이 있으면 일하십시오. 십일조 아까우면 내지마세요. 십일조로 다른 곳에 쓸데가 있으면 써야지요. 술 마시세요. 거짓말하세요. 다른 사람 비난하세요. 아니 저 목사도 비난하세요. 마음대로 욕하세요. 괜찮습니다.
제가 감히 여러분에게 하지말라고, 그렇게 살지 말라고 말할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저는 누구에게도 그러면 안돼! 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거룩한 사람이 아닌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끝까지 참고, 참고, 또 참고, 기다려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우리가 상상하거나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사랑을 가진 분입니다.

단, 이것만은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죽어있는 신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부인한다고 죽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죄를 지금 징계하지 않으신다고 하나님을 무시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시받을 분이 아닙니다.

오늘 이사야서 53장5-6절 말씀은 이렇게 가르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예수님이 찔림이 우리의 허물 때문이며, 예수님이 상하신 이유가 우리 죄악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우리에게 평화가 주어졌고, 채찍에 맞아주셔서 우리가 고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양처럼, 동물처럼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살아가고 있고, 그런 우리의 더러운 모든 죄를 하나님은 예수님께 지우셨다는 말씀입니다.

제가 1993년 7월 28일, 그날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처음으로 그렇게 몇시간을 울었습니다. 감사의 눈물이었습니다. 회개의 눈물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변했습니다.
그날부터 술과 담배를 끊었습니다. 그날부터 수요일기도회와 금요일 저녁철야집회를 나갔습니다. 주일오전예배와 오후예배를 드렸고, 일요일 하루를 모두 하나님께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성가대를 하여 찬양을 드렸고, 교회학교 교사를 하겠다고 자원하여 교사로 봉사를 했습니다. 그런데도 부족하여, 오토바이를 타고 3-40분 거리에 있는 교회까지 새벽기도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매주일의 목사님 설교는 꿀처럼 달고 맛있었습니다. 주일이 기다려지고, 예배가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제 생활습관이 바뀌고, 신앙생활이 변했지만, 몇일 지나지 않아서 또 제 속에서 사람을 향한 미움과 비난이 있었고, 제 자신은 교만과 자만이 남아 있었고, 또 다시 죄의 유혹이 계속되었던 것입니다.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눈물을 흘리고 회개하고 은혜받은 내가, 아니 지난 주일의 예배에서도 은혜받고 감사했던 내가 몇일 지나지 않아서 또 죄속에 있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오랫동안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교회에서 주신 장학금으로 12년만에 신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고, 일주일에 12회 이상의 설교봉사를 하고, 교회봉사를 하면서 대학원을 마쳤습니다. 금요일저녁집회때마다 일본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서, 일본선교회를 만들어 신학생들과 기도회를 했습니다. 맥도날드햄버거 아르바이트보다 적은 50만원밖에 안주는 의료선교단체에서 봉사하면서 매주 새벽마다 의료선교대회를 위해 아침회의를 하고, 40일 아침금식기도를 드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나의 죄성은 여전히 남아있었고, 교만과 고집은 때때로 불쑥불쑥 나타났습니다.

목사가 되어도, 선교사가 되어도, 누구라도 결코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더라도 여전히 죄를 지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것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렇다고 죄를 용납하시는 하나님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은 죄 위에 복을 내리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지 않으며, 부흥이 임하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죄가 있으면, 기도의 문이 막히고, 감사와 기쁨이 사라집니다. 그리고 연단과 시험이 계속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을 복주지 않는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죄 때문인 것입니다.

요한일서 1:7-9절 말씀입니다.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이미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축복을 받았습니다. 과거에 지은 죄, 지금 짓는 죄, 앞으로 지을 죄까지 모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셨는데, 이런 축복을 받았는데,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축복은 시작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할까요?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회개입니다.
회개의 축복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죄를 지을 때마다,
죄를 깨달을 때마다,
하나님께 죄송할때마다 회개하십시오.
잘못을 인정하십시오.
또 똑같은 죄를 지어도, 똑같이 하나님께 고백하십시오.
그때마다 그 죄들은 우리 속에서 더 이상 역사하지 못합니다.
죄책감으로 괴롭히지 못합니다.
이것이 회개의 축복입니다.

그런데 회개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무슨 배짱입니까?
그것은 배짱이 아니라 아주 큰 교만입니다.
하나님없이도, 하나님께 고백하지 않아도, 천국에 안가도 좋다는 교만입니다. 그것을 회개하십시오.

그날 그날 회개하지 않고 살아간다면, 3일, 5일, 7일 지나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기도가 안되기 시작합니다.
스트레스가 쌓이고, 짜증이 납니다.
쉽게 화가 나고, 분노가 일어납니다.
참을수 없고, 인내심이 줄어듭니다.
사람을 향한 공격과 비난이 많아집니다.
나 자신에 대한 좌절과 절망,
그리고 자학과 자존심이 망가집니다.
결국,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확신도 흔들리고,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이 믿져지지 않게 됩니다.

오늘부터 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때면, 고백하고 회개하십시오.
“예수님 오늘 하루의 모든 죄를 고백합니다. 용서해주세요.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주신 예수님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여러분의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실줄 믿습니다. 아멘!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아주 오랫동안 참고 기다려 주십니다.
또 어떤 죄도 용서해 주십니다.
죄를 짓는 것보다 무서운 것이 있다면,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앞에 회개할 것이 생각나십니까?
그러면 지금 회개하십시오.
그것이 축복의 시작입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축복도 없습니다.
죄도 지워지지 않습니다.

이시간 하나님앞에 지금까지의 모든 죄를 한 순간에 다 쏟아내십시다.
모두 의자에서 내려와서 옆에 통로에 무릎꿇고 않거나, 의자 위에 무릎을 꿇고 앉으십시오.
회개합시다. 축복의 통로는 회개입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그 죄가 우리의 복을 막고 있습니다.
축복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라고 벧후3:9에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늦지 않았습니다. 고백합시다. 잠깐이라도 좋습니다. 죄가 생각나지 않으면, 이렇게라도 고백합시다.
“하나님, 지금까지 지은 모든 죄를 회개합니다.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 회개하지 않은 모든 더러운 죄를 고백합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라고 말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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