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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5-09 10:17
2010년 5월 9일 동경만나주일말씀 (용서는 축복의 능력입니다.)
 글쓴이 : 동경만나교…
조회 : 4,437   추천 : 0  
∥2010. 5. 9 동경만나교회 주일말씀
∥제목 : 가정을 축복하라- 용서는 축복의 능력입니다.
∥본문 : 마태복음 18:21-22절의 말씀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번 뿐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할찌니라.”
(そのとき,ペトロがイエスのところに來て言った.「主よ,兄弟がわたしに對して罪を犯したなら,何回赦すべきでしょうか.七回までですか.」
イエスは 言われた.「あなたに言っておく.七回どころか七の七十倍までも赦しなさい.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5월의 첫째주일은 어린이주일로 지키고,
오늘 두 번째 주일은 어버이주일로 지킵니다. (한국은 어머니의 날과 어버지의 날을 구분하지 않고 어버이의 날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5월 두 번째 주일을 부모의 날로 정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5월을 가정의 달로 선포하고, 가정에 대한 메시지를 설교합니다.
저도 역시, 5월은 가정을 축복하라! 는 테마로 정하고, 가정에 대한 축복의 메시지를 준비하였습니다. (옆사람하고 인사합시다. 당신의 가정을 축복합니다.)
지난 주일의 멧세지는 회개는 축복의 시작입니다. 였습니다.
이번 주일의 테마는 용서입니다. 여러분! 용서는 축복의 능력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옛날영화가 있습니다.
몽테크리스토백작(はくしゃく)이라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내용은 유명한 복수극(ふくしゅう)입니다.

애드몬드 단테스라고 하는 성실한 한 청년이 자신의 사랑하는 婚約者와 재산을 빼앗기 위한 모략(ぼうりゃくにかかて)에 빠져, 도망갈 수 없는 감옥(かんごく)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단테스는 감옥에서 자신의 인생을 전환시킬 수 있는 은인(おんじん)을 만납니다. 그는 신부였습니다.

신부가 감옥에서 죽을 때, 단테스에게 보물지도를 전해줍니다. 그리고 선한일에 사용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단테스는 그 보물들로 복수하겠다고 합니다.
단테스에게 신부는 말합니다.
복수때문에 예수님에게 반역(はんぎゃく)하는 짓을 하지 말게, 원수는 주님이 갚는다(かたきはイエス様がうつ). 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단테스는 전 신을 안 믿어요. 라고 말하지만, 신부는 주님은 당신을 믿는다. 고 죽습습니다.

감옥에서 빠져나온 단테스는, 몽테크리스토백작이라는 인물로 변신합니다.
단테스는 신부가 알려준 보물지도로 엄청난 부자가 되고, 자신의 인생을 빼앗았던 사람들에게 복수를 시작합니다. 모든 복수를 다 마친 단테스는 말합니다.
“복수를 끝내도(かたきをうつでも) 행복하지 않군요.
복수해야 한다는 생각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죄를 지었습니다.
신부님, 복수하려고 사용한 모든 것들을 지금부터 선한 일에 사용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지은 모든 더러운 죄를 모두 깨끗하게 용서해 주셨습니다.
만약, 예수님에게 용서받지 않았다면, 그 죄가 우리를 몇 번이나 죽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는 죄에서 완전히 해방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를 똑같이 용서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를 믿는다. 그리고 용서한다.”

사랑하는 여러분!
용서는 어떤 힘을 가지고 있을까요? 용서는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줍니다.
다른 사람의 허물을 용서한 사람에게는 기쁨이 있습니다. 행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언제나, 그 사람을 향한 미움으로 마음이 괴롭습니다. 마음이 아픕니다. 아물지않는 상처(治らない傷)를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32절 말씀입니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互いに親切にし,憐れみの心で接し,神がキリストによってあなたがたを赦してくださったように,赦し合いなさい.)

사람들은 마음에 어떤 사람만은 용서할 수 없다고 하는 이상한 결심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어떤 일도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고 자기자신에게 약속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것은 자신도 불행하게 하지만, 그 사람의 가족과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까지도 불행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주 궁금한 의문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 성경말씀처럼 몇 번이나 용서하느냐? 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21-22절의 말씀을 다시한번 보시겠습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번 뿐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할찌니라.”
(そのとき,ペトロがイエスのところに來て言った.主よ,兄弟がわたしに對して罪を犯したなら,何回赦すべきでしょうか,七回までですか.イエスは言われた.あなたに言っておく.七回どころか七の七十倍までも赦しなさい.)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가 말합니다. 예수님 몇 번이나 용서하면 될까요? 7번까지는 용서할까요? 여러분은 몇 번이나 용서할 수 있습니까?
부모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아들과 딸입니다. 그러나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는 아이들을 7번이나 용서하는 아빠나 엄마를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많아야 3번, 4번, 5번정도 가면, 목소리가 커지고, 화를 냅니다(おこります).

그런데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대답하십니까? 
イエスは言われた.あなたに言っておく.七回どころか七の七十倍までも赦しなさい. 7회뿐만 아니라 7회를 70번이라도 용서하라. 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서의 7이라는 숫자는 완전한 숫자입니다. 7번 완전히 용서하고, 그 7번을 70번 완전하게 용서하라. 는 말씀입니다.
용서에는 끝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17:3-4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 일곱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あなたがたも氣をつけなさい.もし兄弟が罪を犯したら,いましめなさい.そして,悔い改めれば,赦してやりなさい.一日に七回あなたに對して罪を犯しても,七回,『悔い改めます』と言ってあなたのところに來るなら,赦してやりなさい.」)

누가복음의 이 말씀은 무슨 의미입니까?
용서하는 것에 조심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조심하라는 말일까요?
이 말씀은 1-2절 말씀까지 보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イエスは弟子たちに言われた.「つまずきはさけられない.だが,それをもたらす者は不幸である.そのような者は,これらの小さい者の一人をつまずかせるよりも,首にひきうすをかけられて,海に投げ込まれてしまう方がましである.)
우리가 용서하지 않은 이유로 그 사람이 완전히 실족(ついらく)하게 되는 잘못은 목에 맷돌(ひきうす)을 매고 바다에 빠져 죽는 편이 더 낫다고 할 정도의 무서운 죄라는 것입니다.

조심하십시오. 우리를 용서하지 못하게 하는 유혹에서 조심해야합니다. 우리로하여금 사람을 미워하게 하는 죄에서 떠나가야 합니다. 그렇지않으면, 하나님도 우리를 용서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고린도후서 2:10-11절 말씀
“너희가 무슨 일에든지 누구를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이는 우리로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 계책을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
(あなたがたが何かのことで赦す相手は,わたしも赦します.わたしが何かのことで人を赦したとすれば,それは,キリストの前であなたがたのために赦したのです.わたしたちがそうするのは,サタンにつけ込まれないためです.サタンのやり口は心得ているからです.)
용서는 사탄의 유혹에서 벗어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용서는 무슨 죄든지 나의 죄를 용서받게 하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용서하지 않으면, 우리의 죄도 용서받지 못합니다.
골로새서 3:13-14절 말씀입니다.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互いに忍び合い,責めるべきことがあっても,赦し合いなさい.主があなたがたを赦してくださったように,あなたがたも同じようにしなさい.
これらすべてに加えて,愛を身に着けなさい.愛は,すべてを完成させるきずなです.)

그러나 용서는 누가 할 자격이 있습니까?
아내입니까? 남편입니까? 부모입니까? 자녀입니까?
수많은 가정, 수많은 가족들이 용서하지 못해서 불행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격이 맞지않아서, 습관이 달라서 서로를 미워합니다. 미워하면서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거짓말입니다.
미워하는 마음, 용서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랑할 수 없습니다.

지금 이 시간, 옆사람을 용서하십시오. 그리고 용서받으십시오.
(당신을 용서합니다. 나도 용서해 주세요.)
이 자리에 없는 가족도 용서하십시오.
(아버지, 어머니를 용서합니다. 그리고 나도 용서해 주십시오.)
잊어버린 오래된 사람들과도 용서하십시오.
그리고 가장 가까운 당신의 옆사람, 가족에게 용서를 구하십시오.
(나를 용서해 주십시오. 나도 당신을 용서합니다.)

마태복음 6:14-15절 말씀입니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もし人の過ちを赦すなら,あなたがたの天の父もあなたがたの過ちをお赦しになる.
しかし,もし人を赦さないなら,あなたがたの父もあなたがたの過ちをお赦しにならない.」)

우리가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아직 회개하지도 않은 나를 위해 용서하셨는데,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주시고, 나를 용서해 주신 것은 감사하지만,
나를 상처준 저 사람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나를 저 사람을 위해서 조금도 십자가를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그를 생각하면, 기분이 나쁩니다.
왜냐하면, 그는 나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는 나를 비난하고 인정해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내가 어려울 때, 나를 돕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우리는 사람을 용서하지 않습니다.
용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미워합니다. 비난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그 사랑보다 더하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용서해주신 나의 죄는 사실은 그 사람이 나에게 지은 잘못보다 더 크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죄입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불행합니다. 그냥 불행한 것이 아니라, 죄 가운데 불행합니다.
용서하지 않는 것이 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는 그 이상, 우리는 하나님앞에서 죄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 죄에서 용서받으려면, 용서하십시오. 용서만이 우리에게 축복을 가져오는 능력의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20:23절 말씀으로 마치겠습니다.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だれの罪でも,あなたがたが赦せば,その罪は赦される.だれの罪でも,あなたがたが赦さなければ,赦されないまま殘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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