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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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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6-13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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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13일 동경만나주일말씀 (구원의 상징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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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동경만나교…
 조회 : 4,195  추천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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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6. 13 동경만나교회 주일말씀
∥제목 : 구원의 象徵 십자가
∥본문 : 누가복음 23:21
“그들은 소리 질러 이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しかし人々は,「十字架につけろ,十字架につけろ」と叫び續けた.)
(无奈他们喊着说,钉他十字架,钉他十字架)
여러분은 오늘 교회를 들어오시기 전에 먼저 십자가를 보았을 것입니다. 그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늘 보던 분들은 교회니까 당연히 십자가가 있겠지. 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처음 교회를 들어오는 분들은 교회 위에 세워진 십자가를 보고 보통의 주택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일본에 카토릭교회가 들어온 것은 1549년 프란시스 자비엘이라는 예수회 신부에 의해 처음 소개되었고,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요코하마개항과 함께 일본에 소개된지는 약150년이 되었습니다만, 시간에 비례해서는 아직 교회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일본인들에게 교회의 십자가도 익숙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전에 소학교에 다니는 저희 아이들의 일본인 친구들이 교회에 놀러왔었는데, 十字架屋냐고 묻더랍니다.
그럼 교회는 왜 십자가를 세워서 교회를 표시하는 것일까요? 여러분은 그 이유를 알고 계십니까? 십자가가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며, 십자가를 말하지 않는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왜 그럴까요? 왜 교회는 십자가를 보여주어야하고, 십자가를 말해야 하는 것일까요?
십자가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다리이기 때문입니다.(에베소서 2: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十字架を通して,兩者を一つの體として神と和解させ,十字架によって敵意を滅ぼされました.)
(既在十字架上灭了冤仇,便藉这十字架,使两下归为一体,与神和好了。)
사람들은 서로 미워하고, 속이고, 빼앗고, 욕심을 부리고, 때리고, 죽이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또한, 자신을 창조하고 사랑하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불순종하며 살아가는 죄도 저질렀습니다. 그 죄의 결과로 인간은 인간을 창조한 하나님과 더 이상 화목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의 죄가 하나님과 함께 할수 없도록 떨어지게 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인간은 죽음으로 그 죄를 대신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것은 멸망이며, 영원한 지옥에 떨어져 고통가운데 무서운 벌을 받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이 창조하신 인간을 그렇게 엄청난 고통가운데 멸망받게 할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죄를 가진 인간과 화목할수 없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다시 화목할 수 있는 방법은 모든 죄의 형벌을 받고 죽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무 죄가 없는 예수그리스도를 우리 죄를 대신하여 사형대에 내어주었습니다. 그렇게 아무 죄도 없는 예수님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셔서 십자가라고 하는 사형대에 매달려 죽어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대신 죽어주신 예수님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과 다시 화목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하나님과 인간을 화목하게 만들어 주는 화목의 다리인 것입니다. 그 화목은 아무 죄가 없는 예수님이 십자가라고 하는 사형대 위에서 대신 죽어주시고 피를 흘려 주신 결과입니다.
골로새서 1: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その十字架の血によって平和を打ち立て,地にあるものであれ,天にあるものであれ,万物をただ御子によって,御自分と和解させられました.)
(既然藉着他在十字架上所流的血,成就了和平,便藉着他叫万有,无论是地上的,天上的,都与自己和好了。)
그렇습니다.
그렇게 인간은 십자가에서 흘려주신 예수님의 피로 다신 평화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으로 인하여 모든 인간이 죄에서 용서받고 하나님과 평화를 이루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 이렇게 인간을 사랑해 주신 신은 없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피를 흘려 인간을 구원해 주신 신은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그 예수님의 구원을 상징하는 십자가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멋지고 아름다운 십자가를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십자가는 아름답고 멋진 상징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용서와 구원의 상징이지만, 아픔과 사랑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십자가의 원래 의미는 죽을 죄인을 처벌하는 사형대이기 때문입니다.
1. 십자가는 사형대(누가복음 23:21)
“그들은 소리 질러 이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しかし人々は,「十字架につけろ,十字架につけろ」と叫び續けた.)
(无奈他们喊着说,钉他十字架,钉他十字架)
수많은 어리석은 인간들이 자신들을 구원해 주시기 위하여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신 예수님을 몰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라고 외쳤습니다. 2천년전의 유대인들만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고 예수님을 죽이라고 외쳤을까요? 아니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날 21세기라고 하는 이 시대, 일본땅에서 살아가는 우리들도 예수님을 잊어버리고, 구원받은 은혜도 잊어버리고, 매일매일 자신의 건강과 재산문제, 인간관계와 일 때문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치는 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自分の十字架を背負ってついて來る者でなければ,だれであれ,わたしの弟子ではありえない.)
(凡不背着自己十字架跟从我的,也不能作我的门徒。)
누가복음 14:27절 말씀입니다.
2천년 전에는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죽어주셨지만, 예수님이 대신 흘리신 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사건을 기억하기만 하면, 구원받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주셨다는 십자가를 고백하기만 하면, 우리는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십자가의 은혜라고 합니다. (십자가의 은혜)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기억하고 고백하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를 기억하는 사람들입니다. 기억할 뿐만 아니라, 십자가를 자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죽어주심으로 구원받았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14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しかし,このわたしには,わたしたちの主イエス·キリストの十字架のほかに,誇るものが決してあってはなりません.この十字架によって,世はわたしに對し,わたしは世に對してはりつけにされているのです.)
(但我断不以别的夸口,只夸我们主耶稣基督的十字架。因这十字架,就我而论,世界已经钉在十字架上。就世界而论,我已经钉在十字架上。)
이 고백을 한 사람은 바울이라는 사람입니다.
그 시대에 가장 유능한 엘리트였습니다. 학력도 좋았습니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동경대학교를 졸업하고, 가장 유명한 교수님에게 가르침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집안도 좋았습니다. 로마인도 아니면서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바울은 모든 학문에 유식하였고, 성경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무시했고,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였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바울에게 십자가는 아무 의미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기 위하여 여행을 떠난 바울은 여행길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변했습니다. 예수님을 무시하던 바울이 예수님 때문에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던 바울이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의미를 몰랐던 바울이 십자가를 자랑하는 사람으로 변한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十字架の言葉は,滅んでいく者にとっては愚かなものですが,わたしたち救われる者には神の力です.)
(因为十字架的道理,在那灭亡的人为愚拙。在我们得救的人却为神的大能。)
십자가는 구원얻은 사람들에게는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 능력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첫째는, 평안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에게는 마음에 평화가 있습니다.
어떤 문제가 일어나던지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면 다 이루어지기 때문에 건강의 문제나, 직장의 문제나, 가정의 문제나, 물질의 문제까지 하나님께 기도하고, 욕심을 부리지 않습니다. 이런 평안을 어디서 얻을 수 있습니까?
둘째는,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불쌍한 사람을 보면 도와주고 싶어합니다. 어려운 사람을 보면 도와주고 싶어합니다. 누가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우리자신이 하나님께 도우심을 받았고, 축복을 받고 살아가기 때문에 우리도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것을 기뻐합니다.
셋째는, 죽음에 대한 소망입니다.
모든 인간은 죽음에 대하여 불안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이라도, 아무리 권력을 가진 사람도 죽음 앞에서는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의 인생이 마지막이 아니라, 천국이라고 하는 영원한 나라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1549년 카토릭이 일본에 복음을 전한 이후, 당시 인구의 무려 1%에 달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기리시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얼마후, 기리스도교 박해가 시작되자, 나가사키에서만 수만명의 기리시탄들이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부끄럽게 죽음을 당한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죽음을 맞이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후미에라고 하는 일을 행하지 않고, 기리시탄이라는 것을 당당하게 밝힌 사람들은 처형장으로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맞이할때에 그들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노래를 부르며 처형을 당하였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습니까?
천국이라고 하는 나라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죽음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과정에 불과한 것입니다. 교통사고를 당해서 죽던지, 병이 들어서 죽던지, 늙어서 죽던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죽음은 두렵고 무서운 이 세상과의 이별이 아니라, 영원한 행복의 나라를 향한 첫걸음인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20 말씀을 보겠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生きているのは,もはやわたしではありません.キリストがわたしの內に生きておられるのです.わたしが今,肉において生きているのは,わたしを愛し,わたしのために身を獻げられた神の子に對する信仰によるものです.)
(我已经与基督同钉十字架。现在活着的,不再是我,乃是基督在我里面活着。并且我如今在肉身活着,是因信神的儿子而活,他是爱我,为我舍己。)
사람이 자신의 인생가운데 선택할 수 없는 세가지가 있다고 말합니다.
첫째는, 태어나는 것입니다. 어느 부모에게서 언제 태어날지 자신이 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둘째는, 결혼하는 것입니다. 오늘 결혼하신 분들 가운데 지금 결혼한 배우자와 나는 언제 이런 이름을 가진 사람과 언제 어디서 결혼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결혼한 사람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셋째는, 죽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 죽겠다고 계획하고 죽을 수 없습니다.
어찌보면, 정말 인간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이 세가지도 우리는 자신의 의지대로 결정하지 못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이미 태어났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직 결혼하지 않았으니 결혼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자신이 원하는 배우자의 조건을 적어서 기도하십시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이 기도한대로 배우자와 결혼했다고 하는 간증을 들었습니다.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더 중요한 마지막을 위해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죽음에 대해서 기도하십시오. 부끄럽게 죽지 않아야 하며, 가족들과 평안한 이별이 되어야 하며, 죽음 이후에도 남은 가족들이 힘들지 않게 이 세상과 이별하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잊지말아야 하는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고백하고 죽어야 천국에서 살아난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십자가는 겸손과 순종의 상징입니다.
빌립보서 2장 8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へりくだって,死に 至るまで,それも十字架の死に至るまで從順でした.)
(既有人的样子,就自己卑微,存心顺服,以至于死,且死在十字架上.)
십자가를 고백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겸손합니다.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사람들과 하나님앞에서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앞에서는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모든 다른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신뢰를 얻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렸다는 사실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늘위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너무나 높고 고귀한 분이었습니다. 그런 예수님이 땅위의 죄만 짓고 살아가는 인간들을 용서하고 구원해 주시기 위해 땅위에 내려오셨습니다. 왕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들의 죄를 대신 짊어진 십자가형의 사형수로 오셨습니다. 죄인인 인간에게 채찍을 맞고, 뺨을 맞았고, 멸시받고, 침밷음을 당했고, 결국엔 우리가 달려야 할 십자가 형틀에 대신 달려 올려졌습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의 겸손이었고, 하나님께 대한 순종의 실천이었습니다.
누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아무도 그런 겸손과 순종을 보여줄수도 따라할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는 겸손과 순종의 상징입니다. 그 십자가의 깊은 의미를 깨달은 우리도 겸손하여야 합니다. 순종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2장 36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찌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だから,イスラエルの全家は,はっきり知らなくてはなりません.あなたがたが十字架につけて殺したイエスを,神は主とし,またメシアとなさったのです.」)
(故此,以色列全家当确实的知道,你们钉在十字架上的这位耶稣,神已经立他为主为基督了。)
그렇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이제 우리들에게 주님이시며,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그 이름 예수만 불러도 예수님은 우리의 고난과 함께 해 주십니다. 십자가에 달려주신 예수를 기억하는 동안,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의 약속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계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 말씀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信仰の創始者また完成者であるイエスを見つめながら.このイエスは,御自身の前にある喜びを捨て,恥をもいとわないで十字架の死を耐え忍び,神の玉座の右にお座りになったのです.)
(仰望为我们信心创始成终的耶稣。(或作仰望那将真道创始成终的耶稣)他因那摆在前头的喜乐,就轻看羞辱,忍受了十字架的苦难,便坐在神宝座的右边。)
오늘 십자가이야기를 처음 듣는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십자가에 그런 의미가 있는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오늘 알게 된 십자가의 의미를 들을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여러분의 예수님으로 고백하신다면, 오늘 여러분의 영혼도 구원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십자가를 고백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너무 간단해서 모두 따라해 주실수 있습니다.
이 말을 따라해 주시면, 10초 만에 여러분의 고백이 여러분의 영혼을 지옥에서 천국으로 인도하는 나비게이션이 될 것입니다. 따라해 주십시오.
“예수님, 십자가에 달려주심으로 나를 구원해 주신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인정하며,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합니다.
오늘 나를 기억하시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축복을 부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고백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우리 인간을 향한 사랑이 너무나 크셔서, 아들 예수님을 우리 대신 십자가에 달리시고,
그 십자가의 은혜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구원해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가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를 고백했습니다. 이 고백을 영원히 기억하여 주셔서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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