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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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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6-28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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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27일 동경만나주일말씀 (누가 그리스도인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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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동경만나교…
 조회 : 3,924  추천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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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6. 27 동경만나교회 주일말씀
∥제목 : 누가 그리스도인입니까?
∥본문 : 사도행전 11:22-26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このうわさがエルサレムにある敎會にも聞こえてきたので,敎會はバルナバをアンティオキアへ行くように派遣した.バルナバはそこに到着すると,神の惠みが與えられた有樣を見て喜び,そして,固い決意をもって主から 離れることのないようにと,皆に勸めた.バルナバは立派な人物で,聖靈と信仰とに滿ちていたからである.こうして,多くの人が主へと導かれた.それから,バルナバはサウロを搜しにタルソスへ行き,見つけ出してアンティオキアに連れ歸った.二人は,丸一年の間そこの敎會に一緖にいて多くの人を敎えた.このアンティオキアで,弟子たちが初めてキリスト者と呼ばれるようになったのである.)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누구에게 사용하는 표현입니까?
예수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한 사람들을 말하는 표현입니다. 그렇다면, 누구든지 예수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한 것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까?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인정하는 것만으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분명히 오늘 성경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에서는 세가지로 나누어서 그리스도인이 된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 말의 뜻은 이 사람이 구제와 같은 선행을 일삼는 자라는 뜻입니다. 또한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확실한 주님의 제자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둘째, 둘이(바나바와 사울) 교회에서 1년간 모여 큰 무리를 가르쳤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이름으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 들어와서 예수님에 대해서 듣고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어떻게 예수님을 인정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예수님을 전할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은 자신만 예수님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알고 있는 예수님을 전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바나바와 사울이 교회에서 1년간 무리를 가르쳤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무리는 어떤 무리입니까? 오늘날 우리처럼, 교회안에 있던 성도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있는 무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무리였던 것입니다. 교회안에 있다고 모두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이들이 언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
셋째,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워졌다.
그렇게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들이 되어, 선행과 구제를 하고, 예수그리스도에 대하여 공부하여 배운 다음에 제자들이 된 그들이 비로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워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교회가 성장하고 있습니까? 부흥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정말입니까?
어떤 근거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저는 작년과 달리, 올해는 우리 동경만나교회의 교인들 숫자가 줄어들고, 다른 교회에서 왔던 분들도 한두번 오고 안오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무슨 문제가 있는가? 우리는 지금 부흥하지 않고 있구나? 우리교회는 성장하지 않는다. 라고 생각하고 기도하며, 힘들어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기도가운데 주님께서 알게 하셨습니다.
교회의 진정한 성장은 믿지 않는 영혼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교회의 부흥은 교회안에 들어온 한사람, 한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어가는 것이다.
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지난해 우리교회에 전도되어서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이 몇 명인지 아십니까?
2009년에 우리교회에서 함께 새롭게 신앙생활을 했던 사람은 24명이나 됩니다. (조은제, 기정희,권광현, 오언정, 권가진, 권규진, 권도영, 임종화, 박용재, 박유경, 박지훈, 박주은, 장숙연, 스기우라에이꼬, 조평세, 박주현, 주유니, 민수식, 김난영, 예솔, 서진, 이하연, 남현희, 사이또토시야상) 그러나 그 가운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교회가 아니라도 어느 교회든지 다닐수 있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유일하게 한분 만이 우리교회에 들어와서 처음 주님을 영접하고 세례를 받은 분입니다. 결과적으로 2009년의 우리교회의 영혼구원의 추수는 1명이었던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다이나믹만나교회를 개척해서 돕겠다고 왔지만, 2009년에 다이나믹만교회교회에서 영혼을 구원한 케이스는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반년동안을 저와 신철식집사님, 사이또토시야상, 신동호형제, 사이또요스케형제, 니시타니다이스케군, 김수민자매, 리서연자매 8명이 예배를 드려 왔습니다.
올해 2010년 동경만나교회는 주재원 교인들이 모두 한국으로 돌아가고, 유학생들도 돌아가고, 다른 교회에서 왔던 분들도 다 돌아가서 빈자리가 이렇게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다이나믹만나교회는 어떤줄 아십니까? 교회를 다니던 사람은 이은정자매, 강새미자매, 송준하형제 세사람이고, 김새암, 김다솔, 조재철, 백유진, 이선우, 유도현, 김영욱, 조아라, 윤미나, 남광민, 조명학, 김웅, 친웅기, 세이키, 쵸쇼노, 요우에이 등 16명의 형제자매들이 교회를 다니지 않거나 교회에 가본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16명의 영혼들이 다이나믹만나교회에 전도되어 예배를 나오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8명이 중국인이며, 4명은 한족 본토 중국인들입니다.
이들은 아직 예배를 드린다는 의미도 잘 모릅니다. 한번도 헌금을 드린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아야 할 영혼들이 교회를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무엇이 부흥이며, 무엇이 교회성장입니까?
마태복음 18:12-14절 말씀입니다.
“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 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あなたがたはどう思うか.ある人が羊を百匹持っていて,その一匹が迷い出たとすれば,九十九匹を山に殘しておいて,迷い出た一匹を搜しに行かないだろうか.はっきり言っておくが,もし,それを見つけたら,迷わずにいた九十九匹より,その一匹のことを喜ぶだろう.そのように,これらの小さな者が一人でも滅びることは,あなたがたの天の父の御心ではない.」)
예수님은 그런 분입니다. 이미 구원받아서 어느 교회든지 떠날 수 없는 우리들이 문제가 아니라, 아직 교회 문턱도 들어서본 적이 없는 영혼, 아직 예수님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어서 죄인인줄 모르고 지옥으로 향해가는 한 영혼이 예수님의 문제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 영혼을 인도할까? 살려낼까? 구원할까? 이것이 예수님의 최대의 관심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예수님은 오늘 여기 있는 우리 20여명이 문제가 아니라, 이 교회밖에 있는 사람들, 자신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해서 멸망의 길로 향하고 있는 그 영혼 한 사람을 위해 우리 모두를 사용하시는 분입니다. 할렐루야.
오늘 우리의 할 일을 무엇입니까? 그 예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의도대로 한 영혼을 품는 일입니다.
이상적인 교회성장은 무엇일까요?
일반적으로 신생아의 체중은 3.3kg, 그리고 신장은 50cm정도가 정상입니다. 물론 모태내에서도 그러했지만 태어난 후 이 아이는 성년이 되기까지 놀랍게 성장합니다. 적어도 체중은 20배, 신장은 3배이상 자라게 됩니다. 그러나 자라는 것은 육체만이 아닙니다. 사고력이나 사회성 등 정신적인 면도 함께 자라 완전한 성인이 됩니다. 육체적, 정신적 성장 중 어느 하나라도 정체된다면 그것은 치명적인 장애가 될입니다.
만약, 정신적 성장이 지체된다면 이는 정신박약아일 것이고, 육체적 성장이 지연된다면 기형아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성인이 되려면 반드시 육체와 더불어 정신적 성장을 병행해야 합니다.
이 원리는 교회 성장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즉 교회가 온전히 성장하려면 외적으로, 양적으로 부흥해야 할 뿐만 아니라 내적으로, 질적으로도 성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안디옥교회는 이에 대한 좋은 모범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안디옥 교회 성장을 살펴보겠습니다.
1. 내적, 질적 성장(23절)
안디옥교회의 목회자로 파송받은 바나바는 그 교회의 외적 성장에만 만족하지 아니하고 내적 결실을 위해 '주께 붙어있으라'고 권고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붙어있다'라는 헬라어 '프로스메노'는'~을 향하여' 또는 '가까이에'라는 뜻, 또는 '거주하다'라는 뜻이 결합된 말입니다. 그러므로 '프로스메노'는 문자적으로 '가까이 머무르다', 또는 '함께 남아 있다','안에 있다'라는 의미이며, 본문에서는 성도는 오직 주 예수와 함께 있어야 함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예수께서는 만약 그렇지 않으면 줄기에서 떨어진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는 가지는 전혀 열매를 맺을 수 없듯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살지 않는 사람은 결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그리스도 안에 머무름으로써 내적 성장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2. 외적, 양적 성장(24절)
안디옥 교회에는 이미 많은 성도가 모였으나, 바나바가 뚜렸한 목회관으로 그들을 권하고 양육하자 더욱 큰 무리가 주께 더하였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더하다'라는 헬라어 '프로스티데미'는 '곁에','~을 향하여'라는 뜻과 '두다', '가두다', '쌓다'라는 뜻의 합성어로서 이를 직역하면 '옆에 두다'이며 본문에서는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안디옥 교회는 내적 성장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성장을 외적인 성장의 기초로 삼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날 교회에 대한 사랑을 강조하며 혹은 내실을 기하는 일련의 운동들이 자칫 개교회만의 성장을 도모하는데 그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결코 을은 일이 아닙니다. 교회가 내실을 기하는 것은 더 큰 성장, 곧 선교를 위한 기초를 찾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의 내적 성장을 기할 뿐만 아니라 거기에서 머물지 말고 그것을 기초로 외적, 양적 성장과 더욜어 더 큰 복음 선교의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안디옥 교회는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온전히 성장하는 교회였습니다. 이에 비해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지나치게 숫적인 팽창에만 급급하는 것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물론 교회가 양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숫적으로 정체되어 있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오늘도 우리는 세상의 많은 불신자들에게 나아가서 제자삼고 그들을 하나님의 교회로 인도하는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목적을 위해서 정작 성도들의 내적 신앙의 성숙을 방관한다면 하나님의 교회는 불균형한 성장으로 말미암아 어느 한계에 도달해서는 더 이상 성장할 수 없으며 오히려 퇴보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우리 교회의 모습을 다시 점검하고 외적으로 뿐 아니라 내적으로 균형 있는 교회 성장을 위해 기도하며 겸손하게 주님의 말씀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할렐루야.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하여 세가지 실천해야 할 실천사항이 있습니다.
첫째, 그리스도인의 말입니다.
①말한 것은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신명기 23:23-24 말씀입니다.
네 입으로 말한 것은 그대로 실행하도록 유의하라 무릇 자원한 예물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 네가 서원하여 입으로 언약한 대로 행할지니라.
(唇に出したことはそれを守り,口で約束した誓願は,あなたの神,主に誓願したとおりに實行しなさい.)
②입으로 그리스도를 시인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로마서 10:10 말씀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人は心に信じて義と認められ,口で告白して救われるのです.)
③축복하는 말만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로마서 12:14 말씀입니다.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あなたがたを迫害する者を祝福しなさい.祝福すべきであって,のろってはいけません.)
둘째. 그리스도인의 행동입니다.
①언행일치하는 사람
마태복음 23:3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ですから,彼らがあなたがたに言うことはみな,行ない,守りなさい.けれども,彼らの行ないをまねてはいけません.彼らは言うことは言うが,實行しないからです.)
②믿음으로 행동하는 사람
야고보서 2:18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しかし,「あなたには信仰があり,わたしには行いがある」と言う人がいるかもしれません.行いの伴わないあなたの信仰を見せなさい.そうすれば,わたしは行いによって,自分の信仰を見せましょう.)
③가난한 자를 돕는 사람
시편 41:1-2 말씀입니다.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그를 건지시리로다.
(いかに幸いなことでしょう/弱いものに思いやりのある人は.災いのふりかかるとき/主はその人を逃れさせてくださいます.)
■ 안디옥 교회의 구제 모범 驪
초대교회 이래로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것은 복음 전도와 함께 교회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로 인식되어져 왔습니다. 초대 교회가 설립되기 이전인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기간에도 구제는 꾸준히 시행되어져 왔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이후에도 제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주셨던 교훈을 따라서 보다 체계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구제를 시행하였습니다).
초대교회가 서둘러 스데반을 비롯한 일곱 집사를 세우고 구제 사역을 그들에게 전담케 하였던 것은 당시 교회가 구제를 얼마나 중요시했는가를 보여주는 훌륭한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기록된 구제, 곧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안디옥 교회의 구제는 이와 함께 또 다른 중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오늘날 교회가 혹은 성도 개인이 구제할 때에 어떠한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훌륭한 모범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본문을 통해 안디옥 교회가 시행한 예루살렘 교회의 구제가 갖는 의미를 살피며 아울러 우리의 구제 자세와 비교해 볼 수 있는 계기를 삼아야 하겠습니다.
1. 교회의 하나됨을 확인하는 구제였습니다.
로마황제인 글라우디오의 통치기에는 로마제국 내에 네번의 큰 흥년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중 본문에 기록된 흥년은 A.D.7-47년경에 팔레스틴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흥년
이었습니다. 지금처럼 농사기술이 발달되지 않았던 당시에 흉년이 들게 되었을 때의 참상은 이루 말할수 없었을 것입니다. 농사가 평년작을 이루었을 때에도 가난한 사람들은 그날그날 먹을 것만을 구하는 데에도 무진 애를 써야 했는데 하물며 흥년 때에야 어떠했겠습니까? 더욱이 이 때의 흥년은 팔레스틴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났으므로 예루살렘에 있는 성도들이 겪어야 했던 고초는 참으로 큰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때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이 구제 헌금을 모아 예루살렘으로 보낸 것은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의 어려움을 돕는 의미는 물론, 나아가서는 자신들도 결코 넉넉할 수 없었던 점을 무릅쓰고 도움을 줌으로써, 진정한 교회를 이룬 성도들은 지역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다 해도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변함없는 사실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교회 안에는 부유한 자도, 가난한 자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은 교회의 하나됨을 이루는 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같은 교회내에서 한 성도가 어려움을 당하고 있을 때에 그를 충분히 도울 능력을 가진 성도가 자신의 소유나 시간이 축날 것을 염려하여 돕지 않으려 한다면 교회의 하나됨은 결정적으로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손의 아픔을 몸의 다른 지체가 느끼지 못한다면 이미 그 손과 다른 지체는 한 몸일 수 엄습니다. 여러분 주위에 있는 성도가 진정 우리들과 한 몸을 이루고 있는 지체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2. 그리스도의 말씀이 실현되고 있음을 확인하는 구제였습니다.
초대교회가 온갖 핍박을 이기고 굳건히 설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사실 중 하나는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셨으며 성령으로 교회와 함께 계신다는 확신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최소한 오백여명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이들 중 백이십 명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던 중 성령을 받았습니다. 이후에 벌어진 각종 이적들 역시 그리스도가 살아계시고 그들과 함께 계심을 확신케 하는 증거가 되었습니다. 결국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신의 재물을 교회에 내놓아 유무상통(有無相通)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이처럼 성도들이 자신의 소유를 아끼지 아니하고 다른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전력했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확신케 하는 또 다른 요소가 되었습니다. 흥년이 들어 어려운 때에 같은 성도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의 소유를 내놓아 먼 곳에 있는 교회를 돕는 모습을 볼 때에 불신자들은 참으로 그리스도의 말씀이 실현되고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성도들은 교회를 주장하시는 그리스도를 확신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각종 의식과 기도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형제 안에, 그리고 교회 안에 살아 계심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손은, 우리의 재물은 오히려 그리스도의 살아계심을 부인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입술의 고백과 더불어 사람들을 향해 구제의 손길로 다가갈 때 그리스도의 선하신 뜻은 우리 안에서 완전하게 성취될 것입니다. 아멘.
3. 교회 내에 질서가 확립됨을 보이는 구제였습니다.
안디옥 교회가 행한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구제 행위는 또한 교회가 엄격한 질서 가운데에 운용되어 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본문을 보면 구제 헌금이 안디옥 교회 성도들의 손에서 모아져 바나바와 바울에게 전달되고 바나바와 바울은 그 구제 헌금을 예루살렘 교회의 장로들에게 전하여 어려운 이들을 돕도록 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무룻 어떤 단체에서든지 그 단체에 유입되는 자금을 관리하는 자가 그 단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 것이 통례입니다. 따라서 흔히 생각하기로는 바나바와 바울이 가져온 구제헌금이 예루살렘에 있던 사도들에게 전달되어 그들에 의해 분배되고 사용되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븐문을 보면 구제 헌금은 사도들이 아닌 장로들에게 직접 전달되고 있습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곧 이전에 사도들이 일곱 집사를 세우면서 약속했던 바대로 구제하는 일은 집사들에게 일임하고 자신들은 기도와 말씀 전하는 일에만 전념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사실 교회 내에서 가장 중추적인 지도자였던 사도들이 교회 재정에서 완전히 손을 메기가 쉬웠을 리 없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이를 과감히 시행하였으며 이로 인해 교회내에는 행정적인 질서가 확립되어 갔던 것입니다. 본문에서 바나바와 바울이 사도들 아닌 장로들에게 구제 헌금을 전달한 것이 그 증거입니다. 실로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구제는 이렇듯 질서를 따라 행할 때에 더욱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특히 성도의 구제는 그 구제의 근본 주체가 구제하는 자 자신이 아닌 그리스도이심을 인식해야 하는 것이므로 이러한 질서가 더욱 요청되며 따라서 안디옥 교회의 구제는 참으로 모범이 될만한 선한 행실이었다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초대교회 성도들이 자신의 재산을 서로 유무상통했던 것을 오늘날 문자적으로 적용시키기는 사실상 어렵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소유가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의 것임을 인식하고 어려운 이들을 구제하는 데에 결코 아끼지 않았던 그 신앙, 그 정신만은 우리에게도 계숭되어야 마땅합니다. 여러분의 주위를 한 번 돌아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의탁하신 자, 여러분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가난한 자, 어려운 자가 없습니까? 그들에게 할수 있는 대로 힘을 다해 베품으로써 교회의 하나됨올, 그리고 그리스도의 말씀이 지금도 실현되고 있음을 보여주며, 또한 질서를 따라 구제하여 성도된 모범을 보이는 것은 성도된 우리의 당연한 의무이며 기쁨일 것입니다. 할렐루야.
마지막으로 셋째. 그리스도인의 비젼입니다.
①미래의 희망을 가는 사람 (시편 126편)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 보내소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主がシオンの捕われ人を連れ歸られると聞いて/わたしたちは夢を見ている人のようになった.そのときには,わたしたちの口に笑いが/舌に喜びの歌が滿ちるであろう.そのときには,國々も言うであろう/「主はこの 人々に,大きな業を成し遂げられた」と.主よ,わたしたちのために/大きな業を成し遂げてください.わたしたちは喜び祝うでしょう.主よ,ネゲブに川の流れを導くかのように/わたしたちの捕われ人を連れ歸ってください.淚と共に種を蒔く人は/喜びの歌と共に刈り入れる.種の袋を背負い,泣きながら出て行った人は/束ねた穗を背負い/喜びの歌をうたいながら歸ってくる.)
②장래와 소망을 소유한 사람 (잠언 23:17-18)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罪人らのことに心を燃やすことはない/日ごと,主を畏れることに心を燃やすがよい.確かに未來はある/あなたの希望が斷たれることはない.)
③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 (요한복음 16: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しかし,その方,すなわち,眞理の靈が來ると,あなたがたを導いて眞理をことごとく悟らせる.その方は,自分から語るのではなく,聞いたことを語り,また,これから起こることをあなたがたに告げるからである.)
과거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이 '그리스도인'이라 칭함받은 이래 오늘날 우리도 '그리스도인'이라 칭함을 받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정말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어떤 그리스도인의 지침을 세워 놓고 있습니까?
구세군을 창시한 부드선생의 그리스도인의 삶의 지침 10가지를 말씀드리고 마치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지침 ●
구세군의 창시자인 부드(W. Booth, 1829-1912)는 그리스도인이 삶의 지침으로 삼아야 할 규칙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1) 자신의 몸을 성령이 거하시는 전(殷)으로 여기며 존경과 주의로써 다루라.
2) 항상 적극적으로 사고하라,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고하고 행동하는가를 살펴보며 자신의 정신을 적극적인 사고로 자극하라.
3) 매일매일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라.
4) 자신의 교회를 힘써 섬기고 교우들과 교제를 나누라.
5)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늘 기억하라. 하나님은 당신이 마음문을 열기만 하면 당신의 삶과 의지 속으로 들어오신다.
6) 하나님을 자신의 삶 세세한 곳까지 모셔들이라. 그리할 때 곤란한 문제나 어려운 일의 해결을 자연스럽게 하나님께 간구하게 될 것이다.
7) 어지러운 이 세상과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 많은 정치인들을 위해 기도하라.
8) 나라와 가정, 친구들 그 외에도 많은 선물을 주신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라.
9) 일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 각오로 열심히 일하고, 기도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기도하라.
10) 죽음을 두려운 대상으로서가 아닌,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시 만나고 성도의 꿈이 실현되는 위대한 경험으로 인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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