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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9-19 10:35
2010년 9월 19일 동경만나주일말씀 (하나님의 사람들-노아)
 글쓴이 : 동경만나교…
조회 : 4,397   추천 : 0  
2010년 9월 19일 주일예배 (동경만나교회)
『하나님의 사람들-3 노아』
본문 : 창세기 6:9-11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これはノアの物語である.その世代の中で,ノアは神に從う無垢な人であった.ノアは神と共に步んだ.ノアには三人の息子,セム,ハム,ヤフェトが生まれた.この地は神の前に墮落し,不法に滿ちていた.〕 

오늘은 하나님의 사람들 세 번째 시간으로 노아라는 인물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싶어하시는 말씀을 함께 들기 원합니다.

노아는 어떤 사람입니까?
노아라고 하면, 【노아의 홍수】라는 생각이 납니다.
【노아의 홍수】는 하나님이 창조한 모든 생명이 이 땅에서 물로 심판받아서 멸망당한 사건입니다. 아담과 하와 두사람으로 시작된 인류가 시간이 갈수록 죄를 짓고, 하나님앞에서 부패하게 됩니다.

창세기 6:5-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主は,地上に人の惡が增し,常に惡いことばかりを心に思い計っているのを御覽になって,地上に 人を造ったことを 後悔し,心を痛められた.主は言われた.「わたしは人を創造したが,これを地上からぬぐい去ろう.人だけでなく, 家畜も這うものも空の鳥も.わたしはこれらを造ったことを後悔する.]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범죄한 인류를 지상에서 심판하시고, 다시 한번 하나님의 사람들로 축복하셨습니다. 두 번째 인류의 조상으로 선택받은 사람들이 오늘 성경에 등장하는 노아와 그 아들 세명, 그리고 아내들까지 모두 8명이 선택받게 됩니다.

아담 이후로 두 번째 하나님께 선택받은 사람 노아, 과연 그는 어떤 사람일까요?
성경은 노아의 이야기를 상당히 많은 시간을 들여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노아라는 사람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노아는 어떤 사람일까요?

오늘 본문 성경말씀은 크게 세가지로 노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째, 노아는 의인입니다.
노아는 하나님께 의인으로 인정받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노아는 두 번째 아담으로 인정받기도 합니다.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때, 아담만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때 노아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차이가 있습니다. 아담은 죄가 없는 깨끗한 세상에서 혼자 살았고, 스스로 죄를 지었지만, 노아는 죄가 많은 세상에서 혼자 죄를 멀리하고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노아와 그 가족만이 구원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럼 먼저 {의}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겠습니다. 한국어성경에서 의인이라는 말이 일본어성경에서는 [正しい者], 영어성경에서는 [righteous-옳은, 정의로운, 정직한] 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원어 [차디크]라는 말이 의인이라는 말입니다. 그 뜻은 [올바르게 행한다]는 의미입니다. 사람들은 죄를 짓고 살면서 죄인줄 모르고 삽니다. 죄에 대한 무감각증에 빠져사는 것입니다.

[미드라쉬]라는 오래된 유대인의 지혜서에 보면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노아가 살던 당시 사람들에게 이런 법이 있었다고 합니다.
1. 진실을 말하지 말아라.
2. 만일 종으로 살게 되면, 주인의 물건을 최대한 많이 훔쳐라.
3. 될수 있는대로 방탕을 즐겨라
4. 주인을 미워할 기회가 생기면 즉시, 미워해라.
5. 서로 사랑하라. 죄를 짓기 위한 동료들끼지 모여라.
이런 악법이 있었다고 하니, 얼마나 악한 세상이었습니까?

이런 세상이었기에 하나님은 모든 악한 사람들을 물로 심판하실 때, 하나님앞에서 올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노아만 구원하여 주신 것입니다. 창세기19장에는 소돔과 고모라성이 죄로 멸망당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 죄의 도시에 살던 모든 사람들이 심판을 받았지만, 하나님은 롯과 그 가족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조카인 롯을 살리기 위한 아브라함의 중보기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누군가의 기도는 그 사람을 살리는 구원의 방주가 되는 것입니다.
한가지 의문점이 있습니다. 로마서 3:10-12절 말씀에 보니까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次のように書いてあるとおりです.「正しい者はいない.一人もいない.悟る者もなく,/神を探し 求める者もいない.皆迷い,だれもかれも役に立たない者となった.善を行う者はいない.ただの一人もいない.] 의인은 한사람도 없다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아는 의인이었다고 기록합니다. 왜? 성경은 다른 곳에서는 노아를 의인이라고 했으며, 또 다른 성경에서는 의인은 한사람도 없다고 말했을까요? 

성경에서 말하는 의인은 하나님앞에서 라는 전제가 붙습니다. 하나님앞에서 의인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앞에서 의로운 사람은 한사람도 없다는 성경말씀이 분명히 맞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완전한 의인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변화하는 의인, 의롭게 살려고 노력하는 의인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완전하게 의롭게 사는 사람이 의인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엄격하게 법을 정해 놓으시고 한사람도 구원받지 못하게 하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한마디만 하면, 바로 즉시, 지금 곧 구원해 주시고, 그 사람의 지난 모든 과거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예수를 믿겠다고 말한 너는 지금부터 의인이다.”라고 선포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의인의 요구조건인 것입니다. 노아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앞에서 올바르게 살려고 노력했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앞에서 정직하게 살려고 노력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를 하나님은 이 세상을 물로 심판하시고 다시 번성케 할 두 번째 아담으로 선택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한 의를 요구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앞에서 올바르게 행동하려고 노력하십시오.
하나님앞에서 똑바로 살려고 노력하십시오.
우리는 의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의인이라고 불러 주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매일매일 조금씩 조금씩 올바르게 살려고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매일매일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변해가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제보다는 오늘 조금 더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지난 주일보다는 이번 주일이 조금 더 거룩한 사람이 되어져야 합니다.
지난 달보다는 이번 달이 조금이라도 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예배자의 모습으로 변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주 조금이지만, 그렇게 매일 매일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해가려고 노력하는 그 사람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인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두 번째, 노아는 완전한 사람입니다.
일본어성경에서 신공동역은 [無垢な人-청정무구한 사람, 순수한 사람], 신개역은[その時代にあっても,全き人であった.],  구어역은 [かつ全き人]라고 말합니다. KJV영어성경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perfect in his generations-그 시대에 완전한 사람이었다.]
노아는 죄가 많은 그 시대에도 하나님만 아는 순수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이 순수한 믿음을 성경은 완전하다. 라고 노아를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죄와 상담하며 살아갑니다.
“야! 죄야 우리 친하게 지내자. 내가 너를 멀리하지 않을테니까, 너도 적당하게 나를 괴롭히지 말아줄래. 네가 너무 무거운 죄를 가져오지만 않는다면, 어느 정도는 내가 가끔 죄를 지을게. 알았지? 너무 나한테 죄책감 주지 마! ” 이렇게 말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은 자기자신을 아주 순수한 믿음의 사람으로 합리화시켜서 착각하고 살아갑니다. “그래도 우리 교회에는 나밖에 없어. 아마 하나님이 우리교회에서 한명을 선택하신다면 분명히 나를 선택하실거야.” 라고 말입니다.
또 더 많은 사람들이 죄를 죄가 아닌것처럼 속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하나님이냐? 내가 어떻게 완전하게 신앙생활 할 수 있어? 난 예수님이 아니야.” 그러나 하나님은 성경에서 분명하게 노아가 당대에 완전한 자이기에 심판가운데 구원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노아만 완전하면 된다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한 완전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5:48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
〔だから,あなたがたの天の父が完全であられるように,あなたがたも完全な者となりなさい.〕
하나님이 완전하신 것처럼 우리도 완전하라고 성경은 명령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완전할 수 있습니까?

유명한 신학자 칼빈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완전한'이란 원래 지혜로운 제작자가 만들어내는 완성된 제품을 가리키는 말로서 객관적으로 볼매 힐난할 만한 구석이 없이 완벽하고 충분하다는 뜻이다. 이는 곧 하나님의 완전하심과 같은 완전함이 아닌 부분적 완전이요, 도덕적 성실성의 맥락에서의 완전을 의미합니다.
결론적으로 본문의 이 말은 절대적 의미에서 노아의 성품이 전혀 무죄하고, 무흠하다는 뜻은 아니라, 그 시대의 극심한 타락상황 가운데서 노아는 신앙적 측면에서 경건했고, 도덕적 측면에서 순결했다는 의미입니다. 노아의 생애 내내 그 경건성과 도덕성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미드라쉬라는 책을 보면, 노아는 498세에 결혼하였다고 나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늦게 결혼한 사람이 노아입니다. 창세기 5:3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노아는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ノアは五百歲になったとき,セム , ハム ,ヤフェトをもうけた.] 노아는 왜 이렇게 늦게 결혼했을까요?
죄악이 가득한 세상에 물들지 않으려고 산속에 들어가서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화)런던에 살고 있는 4살된 아이가 있었습니다. 어느날 이 아이가 넘어져서 팔이 부러졌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울지 않고, 엄마에게 와서 부러진 팔을 보이며, 웃더랍니다. 의사들이 아프면 통증을 느낄수 있도록 이 병을 고쳐보려고 했지만 고칠수 없었습니다. 이 병의 이름은 (갱글로뉴로파디-ganglineuropathy)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몸이 아파도 아픔을 모르고, 고통을 모르는 병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것보다 더 무서운 병이 있습니다. 바로 {죄에 대한 무감각증}입니다. 죄를 지어도 부끄러운줄 모르며, 죄를 지어도 회개할 줄 모르는 죄무감각증입니다.

그런데 노아는 이런 죄의 무감각의 세상속에서 완전하였다는 것입니다. 완전이라고 하는 말은 히브리어로 [타밈]이라고 하는데 흠도, 티도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완전하고자 노력하는 단계를 의미합니다. 그렇게 노아는 언제나 하나님앞에 나아가기 위하여 노력한 사람이었기에 하나님은 노아를 당대에 완전한 자라고 불러주셨습니다.

세 번째,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눈에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요? 이것은 경건을 의미합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항상 하나님과 함께 있다는 생각입니다. 노아가 그러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떠합니까? 어려운 일이 닥쳐왔을 때 그것의 해결을 위하여 하나님을 찾기보다 세상의 것을 더 찾는다면 이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아니며, 분명히 경건한 모습이 아닌 것입니다.

창세기6:8절은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번역하면 이런 내용입니다. 〚'노아 마차 헨 베에네 예호와'〛라는 말을 직역해 보면, '노아는 여호와의 눈에서 은혜를 찾았다'입니다. 즉,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찾기 위해 능동적인 노력을 기울였으며, 결국, 노아의 경건한 노력은 하나님의 눈에 들게 된 것입니다.

여호와의 눈은 인간이 숨어서 하는 것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여호와의 눈을 의식하는 사람은 인간의 시선만을 따라 사는 사람과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선을 행하다가 핍박을 받아도 실망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의식을 가진 삶'을 높이 평가합니다. 현실만을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먼 안목을 가지고 사태를 파악하는 '역사의식'이 필요합니다. 개인만을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공동체 전체를 생각하는 '사회의식'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보다 더 근원적인 것은 하나님의 시각을 의식하고 그것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노아는 당세의 모든 사람이 물로 심판받을 때 구원을 경험하였습니다. 오늘날 악이 범람하는 우리들의 시대도 이러한 구원이 요청됩니다. 이러한 구원의 길은 노아와 같이 의인이 되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의인이란 착한 일을 많이 한다는 인간적 기준을 충족시키는 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각으로 이 세상을 보며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의 삶은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할 때 만날 수 있는 은혜입니다.

창세기 6:8-9절 말씀을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아멘.
노아가 받은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은혜라는 것은 선물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주시는 선물입니다.

노아가 의인이어서 은혜를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의인이 된 것입니다.
노아가 완전하게 살아서 은혜를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완전하게 살수 있었던 것입니다.
노아가 하나님과 동행하니까 은혜를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동행할수 있었습니다.
기독교는 다른 종교들처럼 인간이 하나님께 가는 종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찾아오시는 신앙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불순종의 죄를 짓고 숨어있을때에도 하나님은 그들을 찾아오셨습니다. 엘리야가 그릿시냇가에 숨어서 두려워하고 있을때에 하나님은 까마귀를 보내서 찾아오셨습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서 만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바울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15:10에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매일 조금씩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하다 보면, 어느 날 하나님이 나를 의인이라고 불러주십니다. 매일 조금씩 성경말씀대로 정직하려고 노력하다보면, 어느 날 하나님은 나를 네가 완전하다. 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매일 조금씩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려고 노력하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네가 일평생을 나와 동행하였구나. 잘하였다. 사랑한다. 천국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도록 축복하겠다. 라고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영이신 하나님과 동행하였다는 말은 다른 말로 성령충만한 생활을 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님과 함께 살았고, 성령님을 위하여 살았고, 성령님과 더불어 걸어갔습니다.
동행이라는 말은 [함께 걷는다.] 는 뜻입니다. 그런데 함께 걷는 방법에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내가 조금 앞에서 걸어갈 수도 있고, 반대로 조금 뒤에 걸어갈 수도 있고, 아니면 조금 떨어져서 걸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동행이란 단어는 바로 옆에 붙어서 함께 걸음을 맞추어 걷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조금 빨리 걸으시면, 조금 빨리, 조금 늦게 걸으시면, 조금 늦게 그 걸음의 속도를 맞추어 걷는 것을 동행이라고 말합니다.
성령님이 말씀하시는 곳으로 걸어가고, 성령님이 말씀하도록 하시는 말을 하고, 성령님이 원하시는 행위를 하는 생활이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 노아는 말씀에 순종한 사람입니다.
창세기 6:32절 말씀입니다.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ノアは,すべて神が命じられたとおりに果たした.]
{준행하였더라}는 말은, 말씀에 순종하였다. 말씀하신 그대로 행하였다.는 뜻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노아의 시대에는 아직 비가 내리지 않았던 좋은 계절의 시대였습니다. 비가 내리지 않아도 농작물이 풍성하게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비를 내려서 심판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배를 만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노아의 머리로는 절대로 이해할수 없었습니다. 비가 내린 적이 없는데 비로 이 세상을 덮어서 모든 살아있는 생명을 심판하신다는 의미가 이해될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자신의 머리로 이해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히브리서 11:7절은 노아의 믿음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信仰によって,ノアはまだ見ていない事柄について神のお告げを受けたとき,恐れかしこみながら,自分の家族を救うために箱舟を造り,その信仰によって世界を罪に定め,また信仰に基づく義を受け繼ぐ者となりました.] 일본어 성경은 노아의 신앙을 세 번이나  거듭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믿음, 한사람의 순종, 한사람의 성령충만이 가족과 온 세계를 구원하는 힘이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축복받을 기회를 저주받는 것으로 바꾼 불행한 한 사람이 성경에 등장합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함}입니다. 노아의 둘째아들입니다. 셈과 야벳은 함과 함께 저주받을 자리에 유혹당했지만, 축복의 자리로 바꾸어 축복을 받게 됩니다.

(함의 교훈)
창세기 9:20-27절 말씀을 다같이 찾아서 보겠습니다.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노아가 술이 깨어 그의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또 이르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さて,ノアは農夫となり,ぶどう畑を作った.あるとき,ノアはぶどう酒を飮んで醉い,天幕の中で裸になっていた.カナンの父ハムは,自分の父の裸を見て,外にいた二人の兄弟に告げた.セムとヤフェトは着物を取って自分たちの肩に掛け,後ろ向きに步いて行き,父の裸を覆った.二人は顔を 背けたままで,父の裸を見なかった.ノアは醉いからさめると,末の息子がしたことを 知り,こう言った.「カナンは呪われよ/奴隷の奴隷となり,兄たちに仕えよ 」また言った.「セムの神,主をたたえよ.カナンはセムの奴隷となれ.神がヤフェトの土地を廣げ(ヤフェト)/セムの天幕に住まわせ /カナンはその奴隷となれ.」]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서 농사를 지었는데, 포도밭을 만들었습니다. 역사상 가장 오래된 와인의 역사는 바로 노아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포도주는 음료가 부족한 때에 음료대용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만들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것도 과하면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흥수 이후 노아는 순간의 방심과 부주의로 인해 술을 흠뻑 마셨고, 그 결과, 자신의 몸과 이성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취한 것입니다. 홍수가 나서 온통 깨끗한 물이 귀했던 당시에 음료수 대용인 포도주를 마신 그 사실 자체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취할 정도로' 마신 사실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술에 취한 노아는 벌거벗었습니다. 마치 하나님께 불순종의 죄를 짓고 옷을 벗을 것을 깨달아 부끄러워했던 아담과 하와처럼 말입니다.

술취함의 부끄러운 결과로서, 곧 스스로 옷을 벗어 던져 알몸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흥수 전, 죄악이 넘쳤던 세상에서는 숱한 유혹과 죄악의 순간을 오직 믿음과 순종으로 극복한 당세의 의인 노아가 홍수 후, 이처럼 안일 중에 처했을 때 그 부끄러움을 드러내고 말았다는 사실은 오늘날 성도로 하여금 늘 깨어 근신의 삶을 살 것을 교훈하는 것입니다.
무절제는 부끄러움을 당합니다. 절제가 없으면 실수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절제는 성령의 9가지 열매중의 하나가 되어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12절 말씀입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だから,立っていると思う者は,倒れないように氣をつけるがよい.]
맛있는 포도주를 만든 노아는 갈증을 없애줄 정도로 마신 것이 아니라 취할정도로 마셔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술이 취해서 더우니까 옷을 다 벗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웃기는 모습을 둘째아들 함이 보게 된 것입니다.

함이 보니 아버지 노아의 모습이 너무 웃겨서 도저히 혼자보기 아까운 모습이었습니다. 언제나 올바르게 살려고 하고, 정직하게 살아서 하나님께 의인이라고 인정받고, 축복받은 경건한 아버지가 자기가 만든 음료수를 마시고 취해서는 옷을 다 벗어던지고, 소리를 지르고, 노래를 부르면서 드르렁 드르렁 코를 골며 자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함은 아무생각없이 천하에 다시 없는 이 구경거리를 혼자 볼 것이 아니라 형과 동생들을 불러 같이 보여주려고 셈과 야벳을 불렀습니다. 함은 아무생각도 없었습니다. 단지 재미있었던 것 뿐입니다.

함의 잘못은 아버지 노아의 하체를 우연히 목격한 그 사실에 있지 않습니다. 함의 잘못은 아버지의 하체를 악의적으로 즐기며 모욕한 데 있습니다. 두 형제에게 알려서, 함은 아버지의 부끄러운 실수를 사랑으로 덮어 주기는 커녕, 오히려 다른 두 형제(셈과 야벳)에게 '경멸과 조롱의 태도로' 떠벌림으로써 스스로 저주를 자초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만일, 함이 셈과 야벳모르게 아버지 노아의 실수를 옷을 벗어 덮어주었다면, 인류의 역사는 함의 자손으로 뒤바뀌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축복의 자리를 함은 저주로 바꾸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셈과 야벳은 달랐습니다. 함과 함께 아버지 노아의 실수를 보고 웃고 즐길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셈과 야벳은 부끄러웠습니다. 경건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람인 노아의 실수를 보고 그 실수를 덮어주었습니다.

창세기 9:2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セムとヤフェトは着物を取って自分たちの肩に掛け,後ろ向きに步いて行き,父の裸を覆った.二人は顔を背けたままで,父の裸を見なかった.]
셈과 야벳의 겸손한 행동입니다. 그들은 비록 실수와 수치 중에 있는 아버지라 할지라도 최대한의 존경과 효로서 자식의 예를 표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아버지의 실수를 사랑으로 덮고 존경을 버리지 않은 셈과 야벳을 축복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본질상 자신의 죄와 허물을 모두 하나님께 덮이움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도 당연히 타인의 수치와 허물을 또한 덮어주는 사랑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참고-대홍수의 역사기록)
참고로 성경에 기록된 노아의 대홍수사건은 아주 오래된 기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의 각 민족과 나라들에는 이상하게 동일한 대홍수사건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죄악된 인류의 심판과 물의 멸망사건은 온 인류의 기억에 남게 된 것입니다.
먼저 성경에서 방주가 머물렀다고 하는 아라랏 근처의 페르시아는 물론 버어마, 인디아, 인도네시아, 사라왁, 뉴우기니아, 타이티, 하와이, 중국, 일본, 시베리아, 오스트레일리아. 뉴우질랜드, 알라스카, 이집트, 수단 등에 놀랄만한 기록들이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46가지, 아시아에서 20가지, 유럽에서 5가지, 아프리카에서 7가지, 호주와 남태평양 섬들에도 대흥수에 관한 기록과 전설이 전해오고 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몇 가지를 소개하겠습니다.

①중국의 배를 가리키는 선(船)자는 배를 가리키는 배주[丹]자에 8사람을 가리키는 여덟팔[八]자, 그리고 사람의 입을 가리키는 입구[口]가 합해진 글자입니다. 여기서 8을 가리키는 숫자는 노아의 가족 8명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② B.C.18세기경 아카더아어로 기록된 아트라하시스 서사시와, B.C.27세기 초엽의 길가매쉬 서사시 에서도 모두 대흥수 사건에 관해 기륵하고 있습니다. 길가메쉬 서사시는 전체적으로 유일신 사상과 대흥수의 원인에 대한 도덕적 견해만 다를 뿐, 전체의 내용은 노아대흥수 기사와 매우 유사합니다. 이는 후대 유일신 사상과 도덕성을 상실한 자들에게 흥수 기사가 구전되는 과정에서 변질되었기 때문입니다.
③ 고대 아즈텍 문명의 한 기록은 홍수로 전 세계가 파괴되기 전에 최초의 문명은 1716년간 지속되었다고 전합니다. 그런데 이 1716년이라는 수는 성경의 흥수 전 사람들의 나이를 합한 수1709년과 불과 7년의 차이를 보이는 근사한 수입니다. 또한 아즈텍 문명은 그 홍수이후 한 가족만이 남아서 새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노아가족의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④남아프리카의 호헌토트라는 족속은 모든 인류가 '노(Neh)'라는 한 조상에서 파생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⑤ 하와이인은 '누(Nu-u)'와 그 가족들만이 구원된 전 세계적 흥수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⑥ 그리이스인은 제우스신이 흥수로 인류를 멸망시키려 했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노아대홍수 사건은 창조후 1700년경에 일어나 실제 사건이었으며, 오늘 날 수많은 나라와 민족들이 대홍수의 심판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물의 심판이 얼마나 무섭고 혹독했는지, 하나님께서도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 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 약속의 증거로 비가 내리면 비속에서 커다란 무지개가 떠올라, 하나님의 진노를 멈추도록 합니다. 무지개는 하나님의 진노를 멈추게 하는 평화의 상징인 것입니다.

[예화-아프리카대륙의 아버지로 불리는 리빙스턴선교사의 이야기입니다.)
노년에 모교인 옥스퍼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게 되었습니다. 학위수여식에서 리빙스턴은 후배들과 아프리카선교의 경험을 나누었습니다. 리빙스턴의 경험담은 대부분이 무섭고 고난의 이야기들이었습니다. 맹수들이 공격한 이야기,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습격한 이야기, 인디언들이 뱅해한 이야기 등 모두가 아프고 고통스러운 사건들이었습니다. 박사학위를 받는 리빙스턴의 오른 팔은 이미 오래전에 사자에게 물려 떨어져 나가 있었습니다. 연설을 마치자 한 학생이 손을 들고 질문을 했습니다.
“선교사님! 그렇게 어려움과 위험이 둘러 싸고 있었는데 끝까지 승리한 비결은 무엇입니까?” 리빙스턴이 입을 열어 말했습니다.
“아무 비결도 없습니다. 다만 우리 주님이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신 마태복음 28:20절 말씀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세 번째 시간으로 하나님의 사람 노아를 여러분에게 소개한 것은, 노아도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하나님과 함께 하려고 노력한 사람이었기에 하나님께 선택받고 구원받았다는 성경의 기록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오늘 우리가운데 아무도 완벽한 사람은 없지만, 매일의 삶속에서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당신의 사람으로 축복하신다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3-4절 말씀입니다.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あなたがたが信仰によって働き,愛のために勞苦し,また,わたしたちの主イエス·キリストに對する,希望を持って忍耐していることを,わたしたちは絶えず父である神の御前で心に留めているのです.神に愛されている 兄弟たち,あなたがたが神から選ばれたことを,わたしたちは知っています.]
오늘 노아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 노아를 선택하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고 성경에서 약속하신 약속의 말씀을 의지하고 기도합시다. 나의 오늘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시간이 되도록 겸손하게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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