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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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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7-12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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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동경만나교…
 조회 : 4,147  추천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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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시 : 2009.06.14
․설교자 : 김광현목사
․테 마 :『인간의 문제」
․본 문 : 요한복음 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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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한글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표준새번역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
新改譯 神は 靈ですから, 神を禮拜する者は,靈とまことによって禮拜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
口語譯 神は靈であるから,禮拜をする者も,靈とまこととをもって禮拜すべきである 新共同譯 神は 靈である.だから,神を禮拜する者は,靈と眞理をもって禮拜しなければならない. 」
이 세상에는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하늘과 우주, 그리고 땅과 바다, 하늘을 나는 새들과 땅위의 동물들, 곤충들, 여러 가지 식물들과 꽃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것도 문제를 가지고 있거나, 고민하고 있는 것들은 없습니다. 오직 인간만이 문제를 안고 살고 있으며, 그 문제는 나이가 많고, 적은 것, 여자와 남자를 가리지 않고 모든 인간에게는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습관적으로 문제를 안고 사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문제를 문제시 하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것이며, 문제는 인간에게 근심과 걱정, 불안과 공포를 가져다 줍니다.
문제는 인간의 행복과 평화를 방해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문제가 인간의 행복과 평화를 방해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문제를 가지고 살고 계십니까? 어떤 문제가 여러분의 마음에 그늘을 만들고 근심과 걱정이 되어 있습니까?
오늘 요한복음 4장의 말씀을 통해서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찾아내고, 그 문제를 해결하여 행복한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 문제는 육체적인 문제, 물질적인 문제,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문제입니다.
오늘 본문 4장에서는 예수님과 한 사마리아 여자가 등장합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수가라고 하는 한 사마리아인 마을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풍습으로는 전통적인 유대인이 사마리아인의 마을에 들어간다고 하는 것도 드문 일이었습니다. 사마리아인은 반쪽짜리 유대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마리아인과 유대인들은 서로 미워하는 관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이 사마리아인 마을로 들어섰고, 그때의 시간은 정오, 한낮 12시경이었습니다.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간 사이에 예수님은 우물가에서 한 사마리아 여자를 만납니다. 그리고 여자에게 말을 붙입니다.
예수께서“물을 좀 달라.”하시니 여자가 말합니다.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러라.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여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그러자 여자는 깜짝놀라서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삽나이까?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먹었으니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라고 질문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러자 여자는 말하기를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라고 간청합니다.
인간의 첫 번째 문제는 무엇입니까?
육체적인 문제, 물질적인 문제,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문제입니다.
이 사마리아 여자는 한낮 해가 너무나 뜨거워서 여행자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거리에 돌아다니지 않는 정오에 우물에 혼자 물을 뜨러 나왔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추측설이 있습니다. 첫째, 이 여자는 해를 좋아해서 뜨거운 열대의 태양빛에 일광욕도 할겸 꼭 낮에 물을 뜨러 나온다. 둘째, 이 여자는 너무 바빠서 이 시간이 아니면 물을 뜨러 올 시간이 없다. 셋째, 이 여자는 기다리는 것을 싫어서 다른 사람들이 오지 않는 한가한 시간에 물을 뜨러 오는 것이다. 넷째, 이 여자는 이 시간에 사람들 눈을 피해서 물을 뜨러 오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가 있다.
어떤 것이 가장 가까운 답일까요? 그렇습니다. 네 번째 이유가 가장 맞는 이유가 될 것입니다.
이 여자는 사람들 눈을 피해서, 사람들을 만나지 않기 위해서 아무도 오지 않는 이 뜨거운 태양빛의 시간에 우물을 와야 했습니다. 그러니 매일 우물에 물을 뜨러 오는 이 일은 너무나 힘든 일이었습니다.
사람이 물을 먹지 않고 살수는 없을까? 아니면 한모금 물을 마시면 몇일동안, 한달 동안이라도 목마르지 않고 살수는 없을까? 많은 생각을 했을지 모릅니다.
우리중에 어떤 분은 그런 생각을 할지로 모르겠습니다.
일요일은 너무 바쁜데, 한달에 한번 교회가면 안될까? 아니 일년에 한번만 예배드리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일주일동안 아르바이트 하랴, 회사에 다니랴, 너무 피곤한데 집에서 부족한 잠좀 자고 교회는 한 두세달에 한번 가는 것으로도 충분히 하나님께 은혜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고 말입니다.
그렇게 힘들게 땡볕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물항아리를 이고 우물가에 왔는데 한 유대인 남자가 말을 붙입니다. 그렇게 별로 잘생기지도 않은 남자가 말입니다.
“물을 좀 주겠소.”그러자 힘들게 한낮에 아무도 만나고 싶지않았던 이 여자는 말합니다.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러라.
그렇습니다. 지금 이 여자는 같은 사마리아 사람들도 만나고 싶지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오지 않는 이 시간에 물을 뜨러 왔습니다. 그런데 엎친데 덮친격으로 랍비처럼 생긴 한 유대인 남자를 만났습니다.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기분이 나빴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사람들 눈을 피해 왔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남자가 물을 좀 달라고 하자, 화가 났습니다.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어떤 목사님은 이 말을 실제적으로 이렇게 표현합니다.
“니 손으로 떠 먹어라. 난 지금 힘들다.”
자존심이 상한 사람, 기분이 나빠진 사람, 부끄럽고 창피한 사람, 상처를 가슴에 담고 살아가던 이 여자는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상처를 전달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사람을 용서하지 않고, 그 미움과 분노를 안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은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에 거침없이 자신의 미움과 분노를 쏟아냅니다. 그 상처가 다른 사람에게 전염된다는 것도 모르고 말입니다. 어떤 때는 자신의 아내와 남편에게, 어떤 때는 사랑스런 자녀들에게, 또 아버지와 어머니를 향하여 그 분노와 미움을 쏟아냅니다. 그러면서 치료받거나 스트레스가 풀어지거나 하면 좋은데 그렇치 않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분노와 미움을 쏟아내면서 자신도 역시 다시 상처를 입고 깊은 문제에 빠져들어갑니다. 이것이 때로는 절망감으로 자신을 향한 좌절과 실망으로, 더 심하게 되면, 자신을 포기하고, 자신을 죽이기까지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이런 육체적인 문제, 물질적인 문제, 가시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그 해답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여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그러자 여자는 깜짝놀라서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삽나이까?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먹었으니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라고 질문합니다.
이 사마리아 여자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나한테 물을 달라고 하더니, 자기가 누군지 알면 오히려 자신한테 생수를 달라고 했을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도대체 이 남자가 누군가? 누군데 자신이 생수를 준다고 하지? 아마도 우물을 가지고 있는 부자인가보다? 아니면 선지자인가? 라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러자 여자는 말하기를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라고 간청합니다.
잘하면 지금 이 여자는 이 부끄러운 일상생활에서 해방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자신이 오랫동안 고민해 온 문제, 무엇입니까? 사람들 눈을 피해서 한낮에 물을 뜨러 와야만 했던 이 문제가 해결될 것 같았습니다. 이 예수님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자신의 이 자존심 상하는 문제, 이 뜨거운 햇볕을 받으며 땀 흘려야 했던 이 육체적인 고민의 문제는 해결될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예수님께 간청을 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오고, 신앙을 가질 때에 바로 이 마음의 평화를 얻기 원합니다. 혹은 가난한 문제에서 하나님의 힘을 빌어서 복을 받기를 원하기도 합니다. 바로 이 물의 문제 때문에 교회에 나오고 기도를 하는 것을 볼수가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그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생수를 가지고 있는 분입니다. 그러나 그 문제만 해결되면 행복할 수 있을까요?
두 번째 문제는 죄의 문제, 영혼의 문제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목마르지 않는 생수가 있으시면 저에게 좀 주십시오. 그래서 창피하게 여기에 와서 물 긷지 않아도 되게 좀 해주세요. 라고 소원을 빌고 있는 이여자에게 갑자기 뚱딴지 같은 대답을 하십니다.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갑자기 이 무슨 해괴한 질문과 대답입니까?
방금전까지만 해도 이 여자의 문제는 목마름의 문제였습니다. 생수의 문제였습니다. 목마름만 해결되면 행복할 것 같았습니다. 물만 해결되면, 이 우물에 안 와도 되기만 하면 다 행복해 지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 여자의 실질적인 문제는 바로 죄의 문제였던 것입니다.
아무리 잊으려고 해도 잊어지지 않았던 죄의 문제, 집에 있는 여섯 번째 남자의 문제, 이제까지 지나갔던 남자들의 문제, 언제나 잊고 싶었지만 결코 잊혀지지 않았던, 지워지지 않았던 자신의 죄의 문제가 이 여자의 실질적인 문제였던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은 이 여자에게 생수를 주어서 잠깐동안 목마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려는 것이 아니라 이 여자의 영원의 문제, 가장 고통받고 있었던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여기 계신 분들 가운데에도 이 죄의 문제로 신음하는 분이 계십니까? 이 고통스러운 문제로 인하여 영혼이 묶여있는 분이 있지 않습니까?
매일 매일 거듭되는 죄와 사망의 문제가 여러분의 영혼을 묶어놓고 자신의 영혼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은 지금 말씀하십니다.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생수를 가지고 있으니 나에게 생수를 달라고 해라. 라고 말씀하셔서, 여자가 그럼 제게 생수를 주십시오. 그래서 그 생수로 제 문제가 해결되기 바랍니다. 라고 말했는데 예수님은 그럼 네 남편을 불러오라는 청천벽력같은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숨기고 싶었던 문제였습니다. 남편의 문제는요.
그 문제 때문에 자신이 지금 이 한낮에 물을 뜨러 왔어야 했던 것입니다.
내 육체적인 고민, 걱정, 근심의 실제는 바로 그 남편의 문제, 죄의 문제였던 것입니다. 이제 이 여자는 예수님 앞에서 고백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예수님께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습니다.
지금 이 죄의 문제를 다 토해놓고 해결받지 않으면 다시 그 죄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 여자는 고백합니다.
“나는 남편이 없습니다.”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집에는 여섯 번째 남자가 있지만, 그 남자도 제 남편은 아닙니다. 지금까지 숨기고 싶었고,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죄악이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자신이 숨어살게 되었고, 사람들 앞에 드러낼 수 없었고, 그 고통속에서 한낮에 물을 뜨는 신세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앞에서 죄를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남편이 없습니다.”이 한마디는 그동안의 모든 죄를 고백하고 해방받는 회개였습니다.
이 여자는 돈만 있으면 행복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돈이 많은 남자와 살았습니가.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남자는 잘생긴 남자를 찾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만족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세 번째 남자는 힘이 좋은 남자를 만나 살았습니다. 그래도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네 번째 남자는 재미있었습니다. 유모어도 많고 많이 놀아주었습니다. 그래도 무언가 풀리지 않는 고민과 고통이 있었습니다. 다섯 번째 남자는 배경이 좋았습니다. 내가 갖지 못한 환경과 학식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불행했습니다. 여섯 번째 남자는 친절한 남자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어디에도 참 평안은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까지 여러분들을 괴롭히던 문제가 무엇이었습니까?
여러분을 움츠러들게 하고, 여러분을 하나님께로부터 떨어뜨리려 했던 문제가 무엇입니까? 여러분을 행복하지 못하고 하고, 무엇인가 부족하다고 생각하게 했던 문제가 무엇입니까? 물질의 문제입니까? 건강의 문제입니까? 자식의 문제입니까? 남편과 아내의 문제입니까?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그 문제는 바로 죄의 문제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죄로 인하여 우리의 행복과 평화가 깨져버렸던 것입니다. 그 죄의 상처와 아픔이 우리에게 불행과 고통을 가져다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이시간 주님께 고백하십시오.
나는 남편이 다섯이었다고요. 그리고 지금 여섯 번째 죄의 남편이 있다고요. 그러나 내 진짜 남편은 그것이 아니라고요. 고백하셔야 합니다.
세 번째 문제는 회복의 문제, 하나님과의 화목의 문제입니다.
이 여자는 예수님앞에 자신의 모든 죄를 드러내고야 말았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이제까지 자신의 인생에서 묶여있던 죄의 사슬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러자 이제 그동안 고민했던 한 가지 문제만이 남았습니다.
그것은 죄에서 용서받았지만, 용서받은 자로서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였습니다. 그것이 예배의 문제입니다.
“우리의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으나, 유대인들은 예배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예루살렘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어디에서 예배를 드려야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가 될까요?”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참되게 예배하는 사람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올 것인데, 지금이 바로 그 때요.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예배하는 사람들을 찾고 계시오.
하나님께서는 영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 예배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죄가운데 살면서도 이 여자는 하나님을 목말라 했던 것입니다. 죄를 지으면서도 언제나 나도 예배할 수 있을까? 나의 예배를 하나님은 받아주실까? 어떻게 예배하여야 하나? 어떻게 하나님과 화해하고 화목할 수 있을까? 바로 영혼의 문제가 이 여자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문제가 예수님을 만남으로 해결받았습니다.
육체의 문제, 죄의 문제, 예배의 문제가 해결되자. 이 여자는 변했습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한낮에 땡볕아래 물동이를 이고 물을 길으로 와야 했던 이 여자, 그래서 자신의 육체의 문제였던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달려갑니다.
자신이 미워했고, 자신을 멸시했던 그 죄의 대상인 마을 사람들을 향해 복음과 사랑으로 달려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문을 두드리며 사람들을 불러 외칩니다.
“동네사람들, 모두 이리 와서 내 과거의 일, 내 여섯 남편의 죄를 모두 해결하신 분을 만나 보세요. 이분이 바로 우리가 기다려왔던 그 메시아입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마을에서 나와 예수님께로 왔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께 그들과 함께 지내다 가시기를 청했으므로 거기서 이틀을 머무르셨습니다.
그래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사마리아의 마을 사람들이 이 여자에게 말합니다.
“처음에는 우리의 눈을 피하고 교제를 피했던 당신이 우리에게 달려와 외쳤던 그 외침이 신기해서 당신의 말을 들었지만, 지금의 우리는 당신의 말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제는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었고, 이분이 참으로 세상의 구세주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참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유대인들에게 멸시받던 이 사마리아마을에서조차 멸시당하던 죄의 중심이었던 이 여자가 죄의 문제를 해결받고, 예배의 문제가 해결되자, 변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변한 그는 자신을 미워했던, 그리고 자신도 증오했던, 그 마을 사람들에게 달려가 복음을 전하는 자로 바뀌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그 마을의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났고, 그들도 이 여자처럼 죄의 문제와 예배의 문제에서 구원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우리의 인생에서 두 번다시 돌아오지 않는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 이 사마리아 여자를 찾아오셨던 예수님이 여러분을 찾아오셨습니다. 한마디만 하면 됩니다. 이 사마리아 여자처럼, 고백하면 됩니다. 이 사마리아 여자처럼,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예수님 저의 죄를 용서해주세요. 예수님 지금 이 예배에 찾아와 주세요. 나를 만나주세요. 그리고 나의 육체의 문제, 죄의 문제, 영혼의 문제, 예배의 문제에서 구원해 주십시오.”라고 고백합시다.
기도합시다. 지금 이 시간은 두 번다시 오지 않습니다. 지금 예수님 만나지 않으면 또 다시 이 예배당을 나서면서 여러분은 육체의 문제와 죄의 문제로 고통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 물동이를 내려놓으십시오. 이 여자처럼 한마디만 고백하십시오. 예수님이 필요하다고요.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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